“친숙한 우리 술 취해도 좋으니 마음껏 마셔라”
  •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09.08.04 18:2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명사 10인의 추억과 함께하는 ‘막걸리 예찬’

▲ 왼쪽부터 탤런트 최불암씨, 최영찬 교수, 장태평 장관, 윤진원 소장, 홍일선 시인. 그들은 한결같이 막걸리가 최고의 술이라고 추켜세웠다. ⓒ시사저널 박은숙

막걸리 열풍이 거세다. 경기 불황과 웰빙 바람은 주머니 사정과 건강을 고려하는 실속파를 낳았고, 그들은 막걸리를 택했다. 막걸리의 맛과 질이 한층 높아진 덕에 깐깐한 20~30대 여성 소비자들마저도 막걸리에 매료되었다. 이를 반영하듯 주류업체인 국순당은 올해 6~8월 매출액이 18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서울탁주도 지난 5월부터 공급이 달려 제한 출고를 하고 있다. 수출도 늘었다. 올해 상반기 매출액은 2백만 달러로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10% 이상 증가했다고 농수산물유통공사는 밝혔다. 한마디로 ‘막걸리의 부활’이다. 막걸리가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막걸리를 즐겨 마시는 명사 10인을 만났다.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은 1주일에 한 번 이상은 꼭 막걸리를 마신다. 1주일에 3~4번 정도 저녁 식사를 겸한 자리에 참석하게 되면 꼭 한 번 정도는 막걸리가 나온다. 장장관은 “내가 직접 마련한 자리에는 일부러 막걸리를 내놓기도 한다. 최근에는 다른 행사에서도 막걸리로 건배 제의를 하는 곳이 많이 생겼다”라며 흐뭇해했다. 장장관은 인터뷰가 진행되기 3일 전인 7월27일 열린 ‘농어업선진화위원회’ 회의에서도 막걸리를 마셨다고 했다.

60대에 들어선 장장관에게 막걸리는 친숙한 술이다. 그가 어렸을 때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부모님들이 내놓는 술이 막걸리였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군대에 가서도 늘 막걸리를 마셨다. 장장관은 막걸리로 인한 아픈 기억도 떠올렸다. “군대에 입대한 뒤 처음으로 자대 배치를 받은 날, 고참이 주는 대로 막걸리를 죄다 받아 마신 것이 화근이었다. 점호를 하던 중, 내무반장 앞에서 그대로 쓰러진 것이다. 눈을 떠보니 다음 날 아침이었다.” ‘정신 상태가 썩어빠졌다’ ‘버릇없다’라는 온갖 비난이 군대 생활 내내 따라다녀 두고두고 고생했단다.

장장관은 “다 옛날 이야기이다. 지금은 제조 기술이 발전하고 좋은 원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많이 먹는다고 쓰러지거나 머리가 아프지는 않다”라며 오해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술을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막걸리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장장관은 “막걸리의 원재료로 쓰이는 쌀의 97%가 수입쌀이다. 국내 쌀로 전환할 수 있도록 재고미를 적절한 가격에 공급할 계획이다. 유통을 위한 가공 기술의 다양화와 유통 구조의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 홍보하겠다. 막걸리 소비가 늘어나 다른 술을 덜 먹게 되면 이 또한 국부를 늘리는 방법이지 않느냐”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언제라도 현장에 뛰어나갈 듯한 태세로 흰 티셔츠와 잠바를 걸쳐 입은 장장관의 모습은 막걸리의 소탈한 이미지와 맞닿아 있었다.

막걸리의 원조가 자신임을 당당하게 말하는 이가 있다. ‘국민 아버지’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탤런트 최불암씨이다. 그는 연예계에서도 알아주는 애주가이다. 술을 얼마나 자주 먹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3백65일 중에 3백60일은 마신다”라는 답변이 돌아올 정도이다. 최씨가 막걸리를 접하기 시작한 때는 고등학교 시절부터였다. 최씨의 어머니는 1950~60년대 문인들의 아지트로 사랑받았던 ‘은성’ 주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최씨의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한 가지 실험을 했다. 닭똥집을 맥주, 양주, 정종, 소주, 막걸리에 각각 담아 두었다. 그리고 1주일 뒤, 그를 불러 젓가락으로 하나씩 건져내 보였다. 막걸리와 맥주에 담긴 닭똥집만 온전했고 나머지 술에 담겨 있던 닭똥집은 상해서 녹아내렸다. 최씨는 “어머니는 그것을 보여주면서 딱 한 말씀 하시더라. ‘다른 술을 먹으면 간이 이렇게 녹아내린다.’ 얼마나 섬뜩하던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탤런트 최불암씨 “막걸리 덕분에 지금껏 건강 유지”

최씨는 소금이 안주의 전부였던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막걸리만 마셨다. 안주 없이도 든든하게 마실 수 있는 술은 막걸리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김치가 나오고 먹을거리가 다양해지면서 소주로 점차 옮겨 갔다. 지금은 막걸리만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종류의 술을 즐긴다. 그런 그도 “막걸리 덕분에 지금껏 별 탈 없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라며 특유의 ‘파~’ 소리와 함께 껄껄 웃었다.

수원박물관 이달호 관장도 최불암씨만큼 술을 좋아한다. 인터뷰를 하던 7월29일에도 앞날 먹은 막걸리의 취기가 조금 남아있을 정도로 막걸리를 즐겼다. 주량도 대단했다. 한 번 앉은 자리에서 막걸리 2ℓ를 뚝딱 해치울 정도라고 했다. 그런데도 숙취가 전혀 없다는 것이 이관장이 겪은 생생한 경험이다. 그는 “막걸리가 얼마나 사람 몸에 좋은지 뒷날 대변을 보면 알 수 있다. 소주를 먹고 나면 시커먼 대변을 땀을 뻘뻘 흘려가며 보게 되지만, 막걸리를 먹으면 황금빛 대변을 시원하게 볼 수 있다. 요구르트의 100배에 달하는 유산균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경험담을 늘어놓았다.

막걸리에 대한 인식을 조사해 보면 ‘머리가 아프다, 트림을 하면 냄새가 지독하다, 소화가 잘 안 된다’ 등등이 나온다. 과거 1970~80년대 제조되었던 막걸리는 밀가루를 사용한데다 빠른 발효를 위해 화학 성분인 카바이트를 인위적으로 넣었기 때문이다. 자연 숙성 발효시키는 기술이 개발되고 100% 쌀을 주원료로 하는 막걸리가 등장하면서 이런 문제가 말끔히 사라졌다. 그는 “직장 생활하면서 양주, 소주 별것 다 먹어보았지만 10년 전부터 막걸리만 마신다”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건강 때문에 한평생 막걸리만 고집하는 명사도 있다.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최영찬 교수는 저인성골연화증 때문에 다른 술을 일절 먹지 않는다. 최교수는 “외국 유학을 갔다가 한국에 들어온 1993년부터 폭탄주를 엄청 마셨다. 당연히 건강에 적신호가 오더라. 간은 인을 먹어야 기능을 100% 발휘하는데 몸에서 인이 빠져나가면서 간도 나빠졌다. 사회생활을 하면 어쩔 수 없이 술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지 않는가. 그럴 때 차선책으로 택한 방법이 막걸리를 마시는 것이었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최교수는 막걸리의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다양한 막걸리 상품이 개발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요즘에는 과일이나 요구르트를 넣은 막걸리도 나오고 있다. 색깔도 파란색, 빨간색으로 변화를 주어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추려고 한다. 대환영이다. 다만, 막걸리의 주원료가 쌀인데 지금 생산되는 것의 97%가 수입쌀로 만들어지고 있다. 국내 쌀로 만든 막걸리를 좀더 생산한다면 농가 수익을 확보하고 국민 건강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술로 재탄생할 수 있다”라고 발전 방향을 제시했다.

최교수의 말대로 국내 최초로 100% 국내 쌀로 만든 막걸리 개발에 성공한 주인공이 있다. 한국주류문화연구소 윤진원 소장은 한경대학교와 산학 협력으로 친환경 무농약 국내 쌀로 만든 막걸리를 개발했다. 농민들을 주주로 참여시켜 최초로 민간 차원의 농식품 클러스터형 기업을 탄생시켰다. 윤소장은 15년간 주류 관련 전문지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한국주류산업을 성장시킬 수 있는 힘은 막걸리에 있다는 확신이 서자 막걸리 개발 기획자로 돌아섰다.

4년간 고생 끝에 최근에야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막걸리 시장이 성장한 덕이 크다. 그는 “생막걸리에 들어 있는 효모는 장운동을 돕는다. 장 안에 있는 균도 잡아먹는다. 소주와 같은 양을 먹었을 때 안주를 덜 먹기 때문에 다이어트 효과도 있다. 국민 건강주로 거듭나고 있는 막걸리를 좀더 많은 사람이 마시게 된다면 국민 건강도 좋아질 것이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홍일선 시인 “막걸리는 5덕을 지닌 한국의 전통주”

▲ 2030세대를 공략하기 위해 탄생한 막거리 주점 '뚝탁'. ⓒ시사저널 박은숙

홍일선 시인은 시인답게 막걸리 예찬론을 5덕으로 표현했다. 1덕은 밥 대용이라는 점, 2덕은 막걸리의 원료인 곡식과 물을 다스리기 위해 국토를 성찰해 보는 계기가 된다는 점, 3덕은 우리 씨앗으로 막걸리를 만들기 때문에 종자를 지킨다는 점이다. 홍시인은 “사람들을 살찌우고 넉넉한 품성을 가지도록 하는 힘이 4덕이다. 마지막으로 막걸리 한 잔 기울이면서 ‘커~억’ 소리를 내면 모두가 하나가 된다. 소통의 기능이 있다”라고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는 최근 서울 생활을 접고 경기도 여주에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우렁이 농법으로 논 3마지기를 경작하고 고구마와 들깨 농사도 짓는 농사꾼이 되었다. 일을 할 때마다 한 잔씩 꼭 막걸리를 마신다는 그는 “찬물에 넣어두었다가 마시면 갈증이 싹 해소된다. 속도 든든해진다”라고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홍씨처럼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더라도 단지 ‘맛이 있어서’ 찾게 된다는 명사들도 있다. 술과는 거리가 있을 것 같은 젊은 여배우들이다. 영화배우 엄지원씨는 회식 자리마다 막걸리를 챙겨 다닐 정도로 막걸리를 좋아한다. 주량이 센 엄씨를 최초로(?) 취하게 만든 술도 막걸리라고 했다. 탤런트 장서희씨는 반대로 주량이 세지 않아서 막걸리를 즐겨 찾는다. 도수가 낮고 맛도 좋아 막걸리를 마실 때가 종종 있다고 했다. 장씨는 “술 가운데 가장 건강에 좋은 것이 막걸리라고 알고 있다. 다이어트 차원에서 마시는 것이 아니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막걸리를 마신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중소기업청 홍석우 청장은 중소기업에 대한 애정이 막걸리 사랑으로 이어진 특이한 사례이다. 홍청장은 양주나 맥주를 섞은 폭탄주보다 막걸리에 사이다나 소주를 섞은 ‘혼돈주’를 권한다.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장관도 홍청장이 권해 처음으로 혼돈주를 맛보았다고 했다. 홍청장은 “지난 1년간 술자리가 잦았는데도 오히려 건강이 좋아져서 막걸리 덕분이 아닐까 추측한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허시명 전통주 평론가는 대학교 시절, 계룡산 신도안으로 답사를 갔다 마셨던 막걸리의 맛을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한다. 첫 기억이 강렬했던 덕에 지금도 그는 막걸리를 소주보다 더 즐겨 마신다. 그런 그는 막걸리가 옛 명성을 잃고 전체 주류시장에서 3% 수준밖에 차지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허씨는 “막걸리가 시대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해 대중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막걸리를 만드는 사람들이 품질 향상을 위한 기술 개발과 차별화를 위한 노력을 개별적으로 하고, 국가는 막걸리가 국가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라고 조언을 건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