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인사, 지역 편중보다 ‘충성맨’ 발탁이 더 큰 문제다
  • 고원 (상지대 학술연구 교수) ()
  • 승인 2009.08.18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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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능력보다도 ‘정권 보위 위해 믿을 만한 사람’ 우선하는 실책 잇따라…‘인사실’ 설치 등 미국식 시스템 도입해야

▲ 고원 (상지대 학술연구 교수)

요즘 이명박 정부의 인사 정책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민주당이 얼마 전 특정 지역 출신에 편중된 인사를 했다며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민주당측의 주장에 따르면,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고위직, 행정 각부 장·차관, 청장 및 주요 실·국장급 인사 1백60명의 출신지를 분석한 결과 영남 출신, 그중에서도 특히 TK(대구·경북) 출신이 주요 요직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영남 70명(43.8%), 충청 23명(14.3%), 호남 21명(13.1%), 수도권·강원·제주 48명(30%)으로 인사 편중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비단 야당만의 목소리도 아니고, 언론 등에서도 자주 제기하는 문제이다. 또, 얼추 보아도 지역 편중 시비의 소지는 다분하다. 하지만 필자는 이명박 정부의 인사 정책의 문제가 단순히 지역에 편중된 인사라는 차원을 넘어선다고 본다. 현 정부의 인사를 ‘지역’이라는 스펙트럼으로 비판할 경우 더 중요한 본질적 문제들이 가려질 수 있다. 지역 편중 인사의 문제는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적 현상이라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먼저 이명박 정부의 인사는 일반적 기준에서 한참 비켜나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적으로 공직자 인사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도덕성’과 ‘능력’이라는 두 가지 덕목이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까지 인사 정책에서 ‘도덕성’보다 ‘능력’을 중시하겠다고 천명해왔다. 그같은 인사 방향은 ‘중도 실용’을 강조하려는 맥락이라고 어느 정도 이해해줄 수도 있지만, 이 정부는 그 도가 너무 지나쳐서 인사들마다 잡음과 추문이 끊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다. 현 정부가 도덕성은 고사하고 능력이라는 기준에라도 투철했느냐 하면 별로 그렇지 않았다는 증거들이 많다. 특히 촛불 집회 이후에 현 정부의 가장 중요한 인사 기준은 단연 ‘정권 보위를 위해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이는 주요 권력기관 인사에 철저히 친위 세력을 포진시켜온 것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최근 검찰 인사에서도 공안통을 핵심 라인에 배치했는데, 검찰을 정권의 파수꾼으로 활용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도덕성 검증을 아예 무시하고 공안통 검사를 검찰총장에 앉히려다 망신만 사고 주저앉은 것도 불과 엊그제 일이었다. 올 초 철거민들과 경찰 등 모두 여섯 명이 숨진 용산 참사도 상당 부분은 인사권자의 의도를 충실하게 따르려는 신임 경찰청장 내정자의 과잉 충성과 오버액션이 빚어낸 결과였다. 즉, ‘충성맨’을 발탁한 정권의 인사 정책이 빚어낸 실책이었던 것이다.

▲ 1월20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변무근 방위사업청장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 ⓒ연합뉴스

상식에 부합하는 ‘인지 조화적 인사’를 하기 위한 조건

이명박 정부의 인사에서 국민들이 자주 실망하는 부분은 현 정부의 인사가 일반인의 상식에서 벗어난 경우가 너무 잦다는 것이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인사를 해야 하는데, 오히려 국민을 무시하는 것 같아 불편한 것이다. 이른바 인사를 통해 국민과 소통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안 된다. 예를 들어, 현인택 통일부장관은 통일 관련 경험이 거의 없고 흡수 통일 정책 노선에 기울어져 있다는 평가를 받는 데다가, 정권 인수위원회 시절에 ‘통일부 폐지’를 주장했다는 의혹을 받는데도 통일부장관에 앉힌 것은 일반인의 상식으로 납득이 잘 안 되는 부분이다. 또,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경우 자신이 인권 문외한임을 자인한 데다가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는 것이 내 소신이다”라는 발언으로 실소를 자아낼 만큼 인권 개념이 약한데도 그를 인권위원장에 앉힌 것도 그렇다. 이런 사례들은 일반인들에게도 인지 부조화를 일으키게 하는 부분들이다. 결국, 국민들의 눈에는 “나는 내 방식대로 할 테니까 불만이 있으면 떠들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 투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에서 공직자 인선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국방장관에 공화당 정부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로버트 게이츠 전 CIA(중앙정보국)국장을 임명했다. 진보 성향의 민주당 정권이지만 ‘안보’라는 다소 보수적 가치를 존중하는 인사를 한 것이다. 거꾸로 역대 공화당 정부에서도 국무장관에는 외교의 성질을 감안해 온건하고 융통성 있는 인사를 등용하는 것이 상례이다. 어느 정도는 상식에 부합하는 인지 조화적 인사를 하는 것이다. 

  대통령제의 특성상 대통령의 인사에는 항상 위험이 따른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가적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는 구조로 인해  인사가 자칫 인간적 연고나 충성도 등이 기준이 될 가능성이 항상 잠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같은 대통령 인사의 폐단을 예방하기 위해서 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제도적 대통령제’(institutional presidency)를 추구해왔다. 대통령이 사적 통치 행태를 벗어나 인사 기능을 합리적이고 전문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인사와 관련된 제도적 장치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 온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은 백악관에 인사실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는데, 그 인원이 1970년 이전에는 1~3명에 불과했으나 그 이후에는 30~40명에 이를 정도로 대폭 확충되었다. 까다로운 인사청문회 제도의 존재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나라처럼 제왕적 대통령의 폐단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나라에서는 대통령 인사의 위험성이 훨씬 더 많이 잠복해 있다. 그래서 지난 전임 정부들에서 미국과 같은 선진적 인사 제도를 도입하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일례로 국민의 정부에서는 인사청문회 제도를 도입하고 중앙인사위원회를 설치했으며, 참여정부에서는 청와대에 인사수석비서관실을 설치하고 인사평가 제도와 고위공무원단을 신설해 운영해 보기도 했다. 인사를 제도화하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물론 그같은 실험들이 과연 성공을 거두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말이다.

지난 참여정부 시절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들은 노무현 정부가 코드 인사를 한다면서 극력 반발했다. 그러나 현 정부의 인사 정책은 오히려 과거보다 더 인치(人治)의 수준으로 돌아간 느낌을 주기도 한다. 오늘날의 시대에는 분권과 책임의 원리에 입각한 인사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로 역행하는 일원적인 주식회사형 인사 운영 방식으로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인사는 소통과 통합의 핵심 기제이다. 국민들에게 국가 운영의 방향을 제시하고 협력을 구하는 데 인사만큼 선명한 메시지는 없기 때문이다. 소통을 잘한다는 것은 시대 흐름과 잘 교감하고 그것을 반영하는 가치를 잘 구현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세계화의 시대정신에 입각한 인사 철학의 정립이 필요한 이유이다. 중도 실용 노선을 천명한 이명박 정부의 인사 행보에 좋은 의미의 변화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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