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맞은 민심, 정권 향해 역풍
  • 조홍래 편집위원 ()
  • 승인 2009.08.25 16:0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타이완 마잉주 총통, 이재민 구호 과정에서 실책에 실언까지…지지율 35%로 급락

▲ 8월12일 마잉주 타이완 총통이 태풍 모라꼿이 강타한 지역을 방문해 실종자와 사망자의 친인척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얼마 전 타이완을 강타한 태풍 모라꼿이 국민당(國民黨)의 마잉주(馬英纓九) 총통을 정치적으로 위기에 처하게 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 지난해 5월 대선에서 중국과의 경협을 활성화하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당선된 그의 정치 행보는 순탄했다. 상당한 정치적 위협을 무릅쓰면서 본토와의 자유무역협정(FTA)까지 추진해 내년 초 타결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분리 독립을 추구했던 민진당(民進黨)의 천수이볜(陳水扁) 정권에 피로감을 느끼던 국민들은 그의 화해 정책에 박수를 보냈다. 양안 간 FTA가 타결되면 타이완의 GDP는 1.7% 상승한다. 외국 직접 투자가 89억 달러 늘어 26만명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경제 교류가 증대되면서 언젠가는 통일까지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마저 부풀게 했다.

그러나 꿈으로 끝났다. 타이완 남부를 강타한 태풍은 5백명의 인명을 앗아가고 33억 달러의 경제 손실을 입혔다. 마 총통이 잃은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오히려 더 소중한 정치적 신뢰와 지지를 상실했다. 수많은 마을이 통째로 떠내려간 폐허에는 한숨과 분노만 남았다. 인력으로 천재지변을 막을 수는 없으나 거대한 태풍 앞에서 갈팡질팡한 정부의 무능과 오만이 국민의 분노를 샀다. 재해 지역을 방문한 그는 마치 적지에 간 것처럼 철통같은 경호까지 받아야 했다. 총통을 본 이재민들은 성난 폭도로 변해 삿대질을 하고 심지어 돌까지 던졌다. 신뢰와 사랑을 배신한 지도자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더구나 태풍이 국토를 짓이기던 순간 마 총통은 어이없는 실언도 했다. 그는 TV 연설을 통해 미리 대피하지 않은 이재민들을 나무랐다. 정부의 복구 능력을 자랑하면서 외국 원조도 받지 않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의 말은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관리들이 적시에 대피령을 내리지도 않았고, 정부의 복구 자원도 턱없이 부족했다. 뒤늦게 심각성을 깨달은 그는 실언을 사과하고 외국 원조도 받겠다고 말했다.

“내가 좀더 신속히, 좀더 효율적으로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송구하다”라는 그의 사과 성명은 군중들의 야유 속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그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어쨌든 내가 총통이므로 모든 책임을 지겠다”라고 했다. 그는 총통 선거에서 ‘준비된 총통’이라는 구호로 인기를 얻어 당선되었다. 이를 믿고 그를 전폭적으로 밀었던 국민들은 태풍에서 나타난 정부의 무능에 할 말을 잃었다. 실망이 얼마나 컸던지 그의 정치 생명이 사실상 끝났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재난 앞에서 허둥지둥…“외국 원조 거부한 조치는 오만” 비난받아

 취임 후 그가 야심차게 밀어붙인 본토와의 협력 관계는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지나친 협력 기조가 타이완의 주권을 팔아먹는다는 야당의 비판은 오히려 그의 지지율을 높였다. 이 모든 것이 모라꼿과 함께 사라졌다. 그가 방문한 한 재해 지역에서는 가족을 잃은 한 남자가 총통과 맞서서 “정부는 뭘 했느냐? 가족을 살려내라”라고 대들었다. 그는 허둥지둥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하고 재난 책임자를 경질했으나 격앙된 민심을 다독거리기에는 너무 늦었다. 일부 논평자들은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 무능을 드러낸 부시의 과오를 상기시켰다. 중국 문화 대학의 사회학 교수 조지 차이는 자연 재앙에 대처하는 조직도, 능력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긴급 구호 작전은 뒤죽박죽이었다. 군인들이 끊어진 다리 부근에서 실종자를 찾았으나 모든 것이 물에 떠내려간 뒤였다. 겨우 살아남은 이재민들은 1주일 동안 식량과 식수도 없이  사경을 헤맸다. 정작 더 큰 도전은 재건 작업이다. 특히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복구하는 일이 어렵다. 집들이 통째로 사라졌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손을 쓸지 막막하다. 그는 처음에는 외국 원조를 사양하라는 지침을 재외 공관에 하달했다. 이 메모가 누설되는 바람에 정부의 안이한 대처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 지침 때문에 필요한 원조를 제때에 받지 못하고 액수도 줄었다. 언론은 자연 재해 앞에서 외국 원조를 거부한  조치를 마 총통의 오만이라고 규정했다.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최대의 문제점은 관리들의 무사안일이었다. 마 총통은 지금까지 잘못된 일은 모두 민진당과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에게 돌렸다. 이들의 비협조와 발목잡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민심은 역전되었다. 비록 부패 혐의로 감옥에 들어갔으나 무능한 정권보다는 천수이볜 정권이 낫지 않느냐는 한탄도 들린다. 아직 국민당에 대한 지지가 다 무너지지는 않았으나 연말로 다가온 지방선거와 2012년 대선이 문제이다. 지지율이 35%로 급락한 마 총통이 3년 후까지 국민당에 대한 지지 기반을 유지할지가 불확실하다. 설사 정권을 재창출한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치러야 할 정치적 대가가 너무 크다. 

자연재해로 인해 정치 위기를 맞는 경우는 흔하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상식선을 벗어났다.  마 총통에 걸었던 기대가 일시에 또 너무 허망하게 무너졌다. 민심은 거의 패닉 상태이다. 남부를 휩쓴 태풍으로 마을 주민 모두가 산 채로  매몰되는 상황이 일어나면서 정부의 인기도 통일의 희망도 함께 매몰되고 말았다. 피해 집계가 완료되면 인명 손실과 재산 피해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중국 쓰촨(四川) 성 지진과는 달리 태풍이 예고되었음에도 정부의 대비는 허술했다. 그저 해마다 오는 태풍이려니 했다. 정부의 안이한 늑장 대처가 피해를 키웠다는 여론이 들끓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부는 피해가 발생한 후에야 18만명의 병력을 재난 지역에 투입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주민과 집들이 탁류에 휩쓸려 간 뒤였다. 군인들은 뒤늦게나마 수천 명을 구조했다. 국제 사회에 대한 뒤늦은 구호 요청에 59개국이 물자와 구호 요원을 보내왔다. 미국은 헬기 한 대를 보냈다.

정치적 파장은 이제 시작 단계이다. 마 총통의 지지율은 계속 추락 중이다. 앞으로 복구 작업이 신속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지지도는 더 떨어질 것이 확실하다. 가장 심하게 피해를 입은 곳은 농업지대인 남부이다. 이 지역은 그의 정적인 천수이볜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벌써부터 정적의 거점이기 때문에 늑장 구호를 했다는 흉흉한 소문이 나돈다.

관심의 초점은 민진당이, 국민당이 범한 실정의 반사 이익으로 민심을 다시 얻을 수 있느냐에 맞춰져 있다. 타이완 국민은 중국 지진 피해자들과는 달리 투표를 통해 정권을 심판할 수 있다. 그래서 올 12월의 지방선거가 벌써부터 주목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마 총통은 외교만 잘하고 내치는 망쳤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양안 FTA가 체결되면 타이완 경제가 본토에 함몰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번 무능을 보인 정권이 하는 일은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는 기류가 팽배하다. 마 총통이 본토와의 화해 외교에 너무 자신감을 갖고 내치를 소홀히 한 것이 실수였다. 부시가 겪은 카트리나 교훈을 잘 활용해 재기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난 민심을 진정시킬 묘안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