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 진영 창당은 역사 앞에 죄 짓는 것”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9.08.25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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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국회부의장 인터뷰 / “DJ의 현 정부 비판은 그만큼 인정하고 사랑한 데서 나온 충언

ⓒ시사저널 임준선

문희상 국회부의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정치적 아버지’라고 부른다. ‘정치 지망생’ 문희상이 ‘거물 정치인’ 김대중을 처음 만난 지 올해로 꼭 30년째이다. 하지만 이승에서의 인연은 지난 8월18일 끊어졌다. 국회부의장실에서 비서를 통해 서거 소식을 처음 듣고 ‘펑펑’ 우는 동안 두 사람이 함께해 온 30년 정치 역정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을 법하다. 문부의장은 노무현 정부에서는 첫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내기도 했다. 문부의장은 8월19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두 전직 대통령을 떠나보낸 깊은 슬픔과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도 ‘통합론자’인 그는 “친노 진영이 새 정당을 창당해서는 안 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떤 심정이었나?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돌아가실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마음의 준비를 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서거 소식을 듣고서 털썩 주저앉았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김 전 대통령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언제인가?

김 전 대통령은 내 정치 철학과 인생의 처음과 끝이다. 1979년 10·26 사태가 터진 이후 그해 말 처음 만났다. 그때 나는 대학(서울대 법대)을 졸업한 후 출판사를 경영하고 있었다. 당시 정치 지망생으로 김종필 전 총리와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차례로 면담할 기회가 있었다. 맨 마지막으로 큰 기대를 갖지 않은 상태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동교동 집에서 만났다. 15분 면담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2시간 동안 김 전 대통령께서는 일개 정치 지망생인 나에게 상당히 진지하게 말씀해 주셨다. 당시 나는 ‘감상적 민족주의자’였는데 그분의 3단계 통일론에 대한 설명을 듣고서 상당히 합리적인 통일 방안이라 여겼다. 바로 큰절을 하면서 정치적인 사부로 모시겠다고 했다. 그분은 나의 정치적 아버지이다. 1997년 12월 대통령으로 당선되시고 난 다음부터 나는 내 삶을 ‘덤’이라고 생각해왔다. 그 덤으로 살아온 인생마저 의미를 잃게 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김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인해 국가가 산업화된 것은 민족사의 도약이었다. 하지만 성장 일변도로 강압 통치를 하다 보니까 민주화는 상대적으로 그늘에서 죽었다. 이 민주주의를 복원시킨 것이 김 전 대통령의 평화적 정권 교체였다. 집권했다는 자체가 역사이다. 이후 10년 동안 민주주의가 많이 성장했다. 그것이 제일 큰 공로이다. 둘째는 한반도에 평화의 물꼬를 튼 주인공이었다는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노벨상을 받으면서 역사를 만들었다. 셋째는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서민 경제 발전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건강보험 등 4대 보험을 시작하면서 기초생활보장 제도를 확립했다. 민주주의·한반도 평화·서민의 삶은 내가 정치를 하는 가치이자 야당의 책무이다. 하지만 지금 이 가치들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김 전 대통령이 최근 현 정부를 강력히 비판했는데.

현 정부 들어 이 기본적 가치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니까 김 전 대통령이 경종을 울렸던 것이다. 정신을 차려달라는 피맺힌 절규였다. 이명박 정부를 인정하고 사랑하니까 했던 충언이었다. 김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 두 분이 이 가치가 소멸되는 것을 막으려고 했는데 그만…. 현 정부가 민심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 민심과 거꾸로 가는 정권치고 흥한 역사는 없었다.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가 궤멸하고 서민 경제가 파탄 나는 것에 대해 이 정부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말로만 김 전 대통령을 ‘위대한 지도자’라고 하면 안 된다.

김 전 대통령은 ‘행동하는 양심’을 강조했는데, 그 ‘행동’을 무엇이라 생각하나?

그 ‘행동’을 불법 폭력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김 전 대통령께서 수없이 강조했지만 그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폭력주의자였다. 폭력은 ‘그들’에게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김 전 대통령이 강조한 행동이란, ‘아니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라는 것이다. 말하지 않고 슬슬 비껴가면 악의 구렁텅이에 빠진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투표를 잘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북 송금 특검과 열린우리당 분당 등으로 소원했던 적이 있다.

두 분의 견해가 다를 때가 있었고, 그 현장에 내가 있었다. 당시 논리적으로 양쪽 다 타당성이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을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로 늘 생각한 것은 틀림없다. 김 전 대통령 역시 아무리 미워도 당신의 생각을 이을 사람은 노 전 대통령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도 틀림없다. 큰 테두리 안에서 같다는 것을 잘 안다. 뿌리가 같다. 민족의 갈 길에 대한 생각도 같았다.

그럼에도 최근 이병완 전 비서실장과 천호선 전 대변인 등 친노 진영에서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밝혔는데.

두 전직 대통령의 생각을 잘못 읽었을 여지가 있다. 이념의 차이가 있다고 나가서 창당하는 것은 문제이다. (민주당과 친노 진영은) 큰 테두리에서 개혁과 진보라는 같은 색깔을 갖고 있다. 중도 개혁주의로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싸우더라도 민주당 안에서 싸워야 한다. 가뜩이나 민주당의 구심점이 약한 상황에서 떨어져나가면 역사 앞에 죄를 짓는 것이다. 나는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는 것에 반대한다. 통합론자이다. 그(친노) 모임의 윗분에게도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한테도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창당까지 가면 안 되고 설령 창당한다 해도 민주당과의 전략적 제휴나 수혈을 통한 민주당의 확대 개편 역할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구렁텅이에 빠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김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국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는가?

두 분의 서거가 새로운 역사적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지난 10년 동안 정부가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이 보였어도 이번 서거를 통해 그동안 참으로 많은 일을 했구나 하는 각성의 계기가 될 것이다. 민주주의·한반도 평화·서민 경제 가치들이 소멸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더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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