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미·일 태도 바뀐 ‘북’ , ‘남’만 남았나
  •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통일학연구소 소장) (sisa@sisapress.com)
  • 승인 2009.09.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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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전후해 한반도 둘러싼 국제 관계에 변화 기류

▲ 이명박 대통령이 8월23일 청와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차 방남한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통전부장 등 북한 사절단을 접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북측 특사 조문단이 서울을 방문하는 계기가 되었고, 청와대 예방을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더욱이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얘기가 오고간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과 함께 향후 남북 관계의 변화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방문단의 면면을 보더라도 무게감을 알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그림자처럼 수행하고 있는 단장인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 부장의 방문은 쉽게 넘길 일이 아니다. 김기남 비서는 1950년대 외무성에서 일을 시작해 1960년대 중반 당에서 가장 중요한 부서 중의 하나인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맡은 이래 1985년 선전선동부장을 역임하는 등 30여 년간 당의 주요 부서에서 인민 대중 선동과 사상 교양의 책임자로서 충성을 보여온 인물이다.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역시 오랜 기간 대남 사업을 담당해왔으며, 지난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을 이끌어내는 데 북측에서 대표격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또한, 올 4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에 발탁되었으며, 지난 8월 초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하는 자리에 강석주 외교부 제1부부장과 동석한 바 있다. 요컨대 두 인물은 김정일 위원장의 최측근이자 남북 문제 전문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이들은 8월21일 조문 다음 날 현인택 통일부장관과의 면담을 거쳐 23일 오전 9시 청와대를 예방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하고 30여 분간 대화를 나누었다. 청와대는 우리 정부의 일관되고 확고한 대북 원칙을 설명했고, 남과 북이 어떤 문제든 진정성을 가지고 대화로 풀어나간다면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러나 민감한 내용들이라 공개하기는 곤란하다고 했다. 과연 어떤 얘기가 오갔을까? 사전에 북측 조의 방문단을 만난 야권 인사들은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를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북한은 지난해 4월1일자 로동신문 논평원 글에서 이미 남한 정부의 대북 정책인 ‘비핵·개방·3000’에 대해 낱낱이 비판하면서 이대통령에 대해 실명 비난을 시작했고, 그 수가 최근까지 수천 회가 넘는다고 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8월25일부터 변화가 나타나 이명박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는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조선중앙통신 및 로동신문 등에서는 22일부터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즉, 조선중앙통신 21일자에서도 을지프리덤가이드(UFG) 훈련에 대한 비난의 이유에서 ‘리명박 역적 패당’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다음 날부터 조선중앙통신의 어디에서도 대통령의 실명을 비난하는 언급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다만, ‘남조선 호전광’, 또는 ‘남조선 도당’(로동신문 8월24일자)이라는 표현만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이는 중대한 변화임에 틀림없다. 즉, 남북 관계 개선 또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인식과 ‘예우’의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의 특성상 김정일 위원장과 만남이 이루어지거나 예정되어 있는 인물에 대해 비난하지 않는 것은 통상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적어도 친서를 전달하는 입장에서 상대 지도자를 험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상식일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명 비난을 중단했기 때문에 다시 비난하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할 것이다. 즉, 그 사이의 기간은 바로 남북 관계가 상대적으로 나아진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 후계 구도 안정화로 대남·대외 관계 개선 노리는 듯

그 배경은 무엇일까? 우리 정부가 특별히 대북 정책을 전개한 것이 있는지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예컨대, 현정은 회장의 방북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에 대해 우리 정부는 ‘모르는 일’ ‘사적인 일’로 치부하고 있다. 그런데도 현정은 회장과 조선아태측의 합의문 내용에는 정부 간 협상 내용이라 할 수 있는 ‘이산가족 상봉’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결과를 볼 때, 현회장이 정부와 협의 없이 북측과 이러한 합의를 이루어냈다면 정부를 우습게 보지 않고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즉, 사전 조율 없이 이러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려우며 또한 체류 기간을 연장, 재연장하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반드시 만나서 합의문을 채택한 것 역시 어떠한 메신저로서의 역할을 한 것이라는 추측을 낳게 한다. 이것이 금번 특사 조의 방문단의 청와대 방문과 이어진다고 가설을 만들어본다면 쉽게 이해되는 첫 번째가 아닌가 생각된다.

두 번째는 우리 정부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북한 스스로 자가 발전한 경우를 말한다. 이 또한 가능성이 적지 않다. 8월 초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통해 긴장되었던 북·미 관계가 새봄에 얼음이 녹듯이 달라졌다. 4월과 5월의 로켓 발사, 핵실험 정국과는 완전히 다른 북한의 궤도를 보여주었다. 이는 김위원장 건강 문제의 ‘회복’ 못지않게 중요한 차기 정치 체제 또는 후계 구도의 안정화에서 비롯되었다고 분석된다. 다시 말해 김위원장의 건강이 심각하고, 후계 구도가 흔들릴 때일수록 대남 강경 발언(1월17일 대남 전면 대결 태세 진입 선포, 총참모부)과 로켓 발사와 핵실험 등이 발생한다고 볼 수 있고, 북측의 내부 문제가 어느 정도 진정되고 해결 기미를 보이자, 이제는 대남 및 대외 관계 개선을 통해 국제 사회의 안전판을 확보하고 경제 성장의 동력을 만들어보자는 전술로 변화한 것이라 평가된다.

미국과는 6자회담 복귀 문제를 포함해 여러 가지 쟁점 사항들이 남아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해결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고 보여진다. 다만, 6자회담으로 복귀할지 아니면 복귀 문제를 논의하는 3자회담(미국-중국-북한) 구도로 몰고 가서 장기간 이 형태를 유지하려 할지는 미지수이다. 또한, 향후 일본과의 관계도 관심 사안이 아닐 수 없다. 8월30일 중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하면서 55년 자민당 체제가 붕괴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민주당의 새 내각이 구성될 것이며, 특히 북·일 관계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 가능성이 크다. 이 기회를 북한이 놓치려 하지 않을 것이다. 2002년 ‘9·17 조일 평양선언’에 대해 당시 야당인 일본 민주당은 긍정적인 입장이었다. 따라서 북한이 이의 속계를 요청할 경우 과거 자민당 정권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미국의 민주당 정권과 북한과의 관계가 풀려나간다면, 일본 민주당 정권 역시 이를 거부할 이유도 없어진다. 오히려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가장 현안인 ‘납치자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풀어나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조일 평양선언’이 이행될 경우 한반도 정세에 ‘쓰나미’와 같은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북한에 대한 과거사 배상금 조치가 이루어질 경우 그 규모가 작지 않다. 요컨대 미국과 일본의 대북 정책이 전향적으로 변화할 기로에 있다는 것은 이명박 정부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한은 변화하려고 하고 있고, 미국과 일본도 변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8·15 경축사에서 대통령의 대북 언급은, 역시 ‘조건문’이었다. “북한이 그런 결심을 보여준다면” 대폭적인 대북 지원을 추진하고 실행한다는 내용이다.

결국,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정책이다. 자칫 주변국의 변화를 구경만 하는 사태가 생기지 않을까 염려된다. 다만,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북한이 적극적으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분단국이면서도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가진 대한민국이 이를 마다해서야 되겠는가. 지금이야말로 이명박 대통령이 확고한 통일 철학과 의지를 보여줄 중대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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