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밑에 군식구 바글바글 민주당, ‘대연합’ 앞날이 안 보인다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9.09.08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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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계파별 이해관계 엇갈려 통합 과정 험난할 듯…정동영-동교동계 제3의 신당 창당설도

▲ 지난 9월3일 오전 민주당의 국회의원 워크숍에 참석한 의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맨 앞 가운데가 정세균 대표. ⓒ시사저널 이종현


 ‘민주당’은 진보적 성향의 정당을 상징한다. 지난해 11월 미국의 민주당은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후보를 당선시키며 공화당을 밀어내고 재집권에 성공했다. 지난 8월30일에는 일본의 민주당이 ‘거함’ 자민당을 격침시키며 54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루어냈다. 미국과 일본의 민주당이 승리의 기쁨을 누리는 지금, 대조적으로 한국의 민주당은 큰 위기에 봉착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잇따른 서거 이후 ‘범민주 대연합’의 리더를 자처하고 나선 민주당이지만, 과연 지금의 민주당이 그만한 힘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민주당은 이슈를 선점하는 데서 여권에 밀리고 있다. 던져놓은 주제에 대해 반대하기 바쁘다. 새로운 인물을 발굴하려는 노력도 부족하다. 당장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권을 압도할 인물들이 보이지 않는다. 여권이 ‘정운찬 총리’ 등 새로운 인물들을 끌어들이며 외연을 넓혀가는 것과 대비된다. 투쟁 형태 등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새로운 방식을 내놓지 못하고 식상한 과거 형태를 반복하고 있다. 민주당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는 거목이 사라진 이후 야권의 리더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 보강하고 변화해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정세균 대표는 민주당이 통합의 구심점이 되어야 하며 친노 그룹이 통합의 1순위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친노 그룹이 민주당과의 통합 내지 연대의 가장 큰 축이라는 이야기이다.

여권의 ‘정운찬 총리’ 발굴도 강 건너 불구경

▲ 지난 9월2일 여의도 관광호텔에서 열린 시민주권모임 기자간담회에서 이해찬 전 총리(오른쪽)가 모임성립 배경 등을 말하고 있다. 왼쪽은 한명숙 전 총리. ⓒ연합뉴스

겉으로 보면 현재 민주당은 정세균 대표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물밑에서는 김대중(DJ)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각 세력 및 계파 간에 헤게모니 쟁탈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두 전직 대통령의 잇따른 서거를 계기로 부상하고 있는 ‘범민주 대연합’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경쟁이 한창이다.

현재 민주당 내에서는 정세균 대표와 박지원 정책위의장 등 이른바 ‘당권파’와, 한명숙 고문과 안희정 최고위원을 비롯한 ‘친노’ 세력 등이 포진해 있다. 손학규 전 대표와 김근태 고문 등도 일정 지분을 가지고 있다. 당 밖에는 권노갑 전 고문을 위시한 동교동계와 무소속 정동영 의원 등이 있다. 이해찬 전 총리와 유시민 전 장관, 이병완 전 비서실장 등 친노 그룹도 있다. 여기에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등 야 3당과 시민사회 세력들이 각각 자리하고 있다. 이들을 가리켜 이른바 ‘범민주’ 세력이라고 일컫는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고 있다. 필요에 따라 서로 견제와 연대가 복잡하게 엇갈리는 양상이다. 민주당은 중심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정대표와 박지원 정책위의장은 현재 정치적으로 서로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맞물려 있다. 박의장은 민주당 내 뿌리가 그다지 깊지 않다. 게다가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DJ마저 서거하면서 정대표의 필요성이 더 커졌다는 분석이다. 박의장과 가까운 한 인사는 “박의장이 당내에서 뿌리를 더 깊게 내리기 위해서는 정대표와 손을 잡고 서로 밀고 끌어주는 관계가 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엄밀히 말해 박의장은 ‘정책통’이 아니다. 하지만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보여준 정보력과 공격성만큼은 당내에서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여기에 DJ의 후광에 힘입어 대중성까지 확보했다. 언론 플레이나 여권과의 싸움에서는 정대표보다 한 수 위라는 평가이다. 민주당의 고위 당직자는 “박의장이 전쟁 통솔력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개별적인 전투 역량만큼은 당내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 안팎에서는 정대표가 내년 6월 전당대회에서 한 차례 더 대표직에 도전할 뜻이 있으며, 대권에도 도전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DJ 서거 전에 정대표가 정책위의장에 박의원을 발탁한 배경에도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대표실 밖으로 흘러나왔다. 특히 박의장이 DJ와 자신의 끈끈한 연결 고리 역할을 해줄 것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정대표는 민주당이 통합의 구심점이 되어야 하며 친노 그룹이 통합의 1순위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친노 그룹이 민주당과의 통합 내지는 연대의 가장 큰 축이라는 이야기이다. 현재 친노 그룹은 이병완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추진하고 있는 친노 신당과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를 공동 대표로 지난 9월2일 출범한 ‘시민주권모임’(가칭)이 중심이 되고 있다. 친노 신당을 주도하면서, 또 동시에 시민주권모임의 운영위원도 맡고 있는 이병완 전 실장은 9월3일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두 조직이) 출발과 인식이 다르기 때문에 특별한 관계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서로 뜻이 같고 신당 운동에 대해서도 서로 존중하고 마음속으로 성원하자는 공감대가 있다”라고 밝혔다. 친노 신당을 추진하는 인사들은 자신들을 ‘정치 의병’이라 부른다. 이 전 실장은 “신당은 어떤 특정한 분들을 중심으로 뭉치는 당이 아니다. 어느 분이든지 우리 신당의 창당 제안문에 그 뜻을 같이한다면 함께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와 유시민 전 장관 등 이른바 ‘간판급’ 인사들의 신당 참여 여부는 미지수이다.

신당이 민주당과 통합으로 가기에는 험난한 과정이 예상된다. 이 전 실장은 “민주당은 (신당과) DNA가 다른 정당이다”라고 선을 그었다. 민주당은 통합 파트너가 아닌 경쟁 상대라는 것이다. 신당측은 민주당이 지역 정당의 한계를 갖고 있으며 당원 조직과 정책이 없는 정당이라고 혹평한다. 민주당과의 통합을 염두에 두고 신당을 추진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정치 의병’을 전국에서 출마시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민주당에서도 친노 신당을 마땅치 않게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 문희상 국회부의장은 “친노 진영의 창당은 역사 앞에 죄를 짓는 것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세균 대표 역시 신당 창당에 상당히 부정적이다. 그럼에도 결국 함께 가야 한다는 인식은 강하다. 이강래 원내대표는 “야권 통합 과정에서 끊임없이 잡음이 일겠지만 불가피한 것이며 연말까지는 통합의 큰 틀을 마련하겠다”라고 말했다.

동교동계, "정동영이 대연합 한몫할 것 " 

▲ 지난 7월13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폐렴으로 서울 연세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한 지 만 36일 지난 8월18일 오후 1시43분 향년 86세로 서거했다. 8월18일 오후 병원 장례식장에 임시 빈소가 마련되었다. 오른쪽부터, 권노갑 상임고문, 한광옥 전 청와대 비서실장, 한화갑 전 의원, 김옥두 전 의원. ⓒ시사저널 유장훈

동교동계와 정동영 의원 등도 각각 통합의 대상이지만 그 과정 역시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는 전망이 우세하다. 최근 들어 양측에서는 민주당과는 오히려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서로 간에 부쩍 끈끈한 교감을 나누는 장면이 많이 노출되고 있다. 한때 정의원과 권 전 고문은 무척 불편한 관계였다. 과거 DJ 정권 시절 정의원이 권 전 고문 등을 가리키며 정치 일선에서 물러날 것을 주장한 이른바 정풍(整風) 운동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의원은 최근 권 전 고문에게 ‘정풍 운동’에 대해 사과했고, 권 전 고문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다시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서로 간에 필요한 정치적 이해관계가 작용했다는 분석을 낳고 있다. 양측 모두 지금의 민주당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원은 정대표에 의해 통합 순위에서 친노 진영보다 후순위로 밀렸다. 정의원의 한 측근은 “정의원은 ‘범민주 대연합’에 대해 통 크게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거기에는 친노 진영뿐 아니라 동교동계 인사들도 포함되어 있다”라고 설명했다. 당장의 운신에 크게 집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권 전 고문 역시 DJ 서거 이후 행동 반경이 넓어지고 있어 주목된다. 권 전 고문은 지난 2월, 1년 일정으로 미국 하와이 대학 방문교수 자격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최근 DJ 서거를 계기로 귀국했다. 그는 국장이 끝났지만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국내에 머무르기로 결정했다. 지난 9월2일에는 권 전 고문의 부인이 하와이에서 아예 짐을 싸가지고 왔다.

동교동계 일각에서는 그가 동교동계의 구심점 역할을 자임하면서 향후 범민주 대연합 과정에서 한 축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권 전 고문의 한 측근은 “권 전 고문이 아직 복권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면에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다만, 동교동계의 좌장으로서 (정치적인) 가닥을 잡아주고 조언을 해주는 역할은 하게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서거 정국 이후 동교동계 맏형 역할을 하면서 권토중래할 의사가 있음을 시사한 대목이다.

여기에 현실 정치 재개를 준비하고 있는 한화갑·한광옥 전 민주당 대표 등도 활발한 보폭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민주당 내부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과거 동교동계 인사들의 ‘컴백’을 반기는 눈치가 아니다. 여기에 박지원 정책위의장과 권노갑 전 고문의 개인적인 앙금도 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문일까. 일각에서는 자칫 동교동계와 정의원이 민주당과 결별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별도의 신당 창당 가능성을 예고하는 셈이다. 민주노동당·창조한국당·진보신당 등 야 3당은 여전히 민주당과 동교동계를 ‘구태의 정치’로 보고 있다([민주당 주도 '대연합'은 반대...]기사 참조).

이처럼 민주개혁 진영의 대통합은 복잡한 함수 관계로 얽혀 있다. 이를 단박에 풀어낼 수 있는 묘안이나 해결사도 딱히 눈에 띄지 않는다. 민주당이 꿈꾸는 범민주 대연합의 리더 역할은 요원해 보인다.

 


ⓒ시사저널 이종현
민주당 당사에 고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사진이 나란히 걸렸다. 민주당은 그러면서 민주개혁 진영 대통합의 중심축이 되겠다고 호언했다. 정세균 대표가 그 중심축에 서겠다는 것이다. 정대표가 임명한 박지원 정책위의장은 최근 “김 전 대통령은 ‘민주당은 정세균 대표를 중심으로 단결하라’라는 유언을 남겼다”라고 말하자 동교동계가 격하게 반발했다. 동교동계의 막내 격인 장성민 전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의 유지를 이어가는 일에 사심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박의장의 발언에, 박의장뿐 아니라 정대표 등 지도부의 ‘사심’이 들어갔다는 지적이었다.

민주당 지도부가 DJ·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겠다고 나선 데는 나름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우선 두 전직 대통령으로부터 ‘유산’으로 물려받은 호남과 영남 지역 민심을 민주당에 그대로 묶어두겠다는 포석이다. 두 전직 대통령이 서거함으로써 앞으로 민주당의 지역 기득권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의 발로인 셈이다.

특히 정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DJ 후계 구도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다. 정대표는 호남 출신(전북 진안)인 데다 내년 지방선거 때까지 ‘큰 변수’가 생기지 않는 이상 민주당을 이끌어간다. 그동안 언론에 자주 노출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국민 특히 호남 지역민에게 각인시킬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 박지원 정책위의장과 이강래 원내대표 등은 각각 전남 진도와 전북 남원 출신으로 ‘포스트 DJ’를 이어갈 수 있는 ‘기본 조건’은 갖춘 셈이다. 

이와 함께 민주당이 야권 통합 과정에서 주도권을 쥐고 가기 위해서는 두 전직 대통령의 유지를 이어가야 한다는 전략도 내포되어 있다. 친노 진영이 정당 정치와 시민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정당=민주당’이라는 인식을 국민에게 전파함으로써 향후 통합 과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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