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최우선적인 의무를 망각 말라
  • 염재호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
  • 승인 2009.09.15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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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황강댐 기습 방류로 임진강가에서 야영 중이던 무고한 인명이 희생되었다. 북한에서 댐의 기습 방류가 있었는데, 경보 한 번 울리지 않았다는 것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가족들이 평온하게 휴가를 즐기고 있다가 갑작스런 위험에 목숨을 잃게 되었다면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어야 하는 국가의 책임에 대해 물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정부의 최우선적인 의무는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구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안전에 대한 욕구이다. 따라서 국민의 안전을 보장해줄 것이라는 국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정부의 국정 운영은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그것이 자연적인 재해이든 인공적인 재해이든 위기가 발생하면 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위기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 어떤 환경적 요인이나 사정이 있더라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는 것이 국가의 최우선이라는 데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특히 이 문제가 심각한 것은 현대 사회가 점점 위험 사회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삶이 풍요로워지고 편리해지기는 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순식간에 인간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는 가능성도 증대되고 있다.

과연 우리의 위기 관리 시스템은 효과적으로 마련되어 있는가? 우리는 이미 성수대교 붕괴, 대구지하철 방화 사건, 연쇄살인 사건 등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건들을 경험해왔다. 하지만 이런 사건들은 자연적 재난이라기보다는 인재였고, 신속한 위기 관리 시스템이 없어 피해가 더욱 심했다. 아직도 화재의 위험, 독극물의 위험, 테러의 위험, 대량 살상의 위험, 해킹의 위험, 유괴의 위험, 질병의 위험, 도시 범죄의 위험 등 다양한 위험들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이런 위험과 위기들은 우리의 안전과 생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위기가 발생하고 나서야 그 위험성을 인식하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대응을 하는 정부에 대해 우리는 신뢰를 보내지 않는다.

지난여름 <해운대>라는 영화가 1천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관심을 끌었다. 아마 이런 흥행은 단순히 컴퓨터 그래픽이 선진 수준에 도달했다는 점보다는 위기에 대한 사회적 불안감을 관객들이 절실하게 공감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영화에서도 보듯이 기존의 안이한 관료주의적 대처 방식으로는 위기 관리가 불가능하다. 사람의 목숨을 숫자와 효율성의 관점에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는 선진국의 조건을 생각해야 한다. 선진국은 단순히 국민소득 수준이 올라가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문화가 바뀌어야 하고, 국민들의 국가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이 중요한 조건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미국에서 전쟁 실종자(MIA: Missing In Action)에 대해 어떤 상황이 되었건 엄청난 자원을 투자해서 찾아내려고 하는, 자국민을 보호하려고 노력하는 것에서 우리는 선진국의 모습을 엿본다. 이제라도 위험 사회로 들어가는 우리가 좀 더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정부는 위기 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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