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조절’ 에 들어간 북한 권력 승계
  • 정성장 |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09.09.15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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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후계 체계 구축 대주민 선전 축소·중단…클린턴·현정은 방북 시점과 맞물려 외부 노출 꺼린 듯

▲ 경성애자공장에서 현지 지도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왼쪽 아래 사진은 김정운. ⓒ연합뉴스


북한 지도부는 지난해 11월쯤부터 김정일 조선노동당 총비서의 3남 김정운을 후계자로 내세우기 위한 작업에 은밀히 착수했다. 그리고 김정운의 생일날인 올해 1월8일, 김정일이 후계자를 결정했다는 사실을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에 통보함으로써 후계 체계 구축이 급속도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미 올 상반기에 북한 권력 체계에서 김정운 후계 체계 구축이 일정 궤도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감지되었다. 지난 7월쯤부터 김정운에 대한 북한 당국의 대주민 선전이 축소 또는 중단된 것이다. 이에 대해 김정운의 인사 실책론과 후계 논의에 대한 회의적 평가 등 다양한 해석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김정운 후계 체계 구축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
또한, 최근의 ‘이상 징후’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김정운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결정된 것은 올해 1월 초였지만, 그가 김정일의 공개 활동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부터였다. 김정운은 지난해 11월 김정일의 군수 공장과 군부대 현지 지도에 동행했고, 12월부터 김정일의 현지 지도를 본격적으로 수행했다. 

김정운의 활동이 본격화되면서 북한 권력 기관에서 김정운에 대한 충성 맹세도 동시에 진행되었다. 이미 지난해 12월부터 북한 군부에서 비공개로 김정운을 후계자로 추대하려는 ‘궐기 모임’이 시작되었고, 올해 1월에는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성에서 김정운을 받들자는 궐기 모임이 진행되었다. 이는 군부와 엘리트와 주민들에 대한 감시·통제 기구들이 김정운 후계 체계 구축에 앞장서고 있음을 시사한다.

올해 1월8일 김정일은 후계자를 결정했다는 사실을 리제강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게 통보했다. 리제강 제1부부장은 곧바로 조직지도부 과장급 이상 간부들을 긴급 소집해 김정일의 결정 사항을 전달한 데 이어 각 도당으로까지 후계 관련 지시를 하달했다. 이로써 북한 권력 체계에서 김정운 후계 체계 구축이 본격화되었다. 이후 김정일은 자신의 생일날인 2월16일 북한의 핵심 엘리트들에게 후계자 결정 사실을 직접 통보하는 등 김정운 후계 체계 구축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왔다.

김정운 후계 체계 수립과 관련해 군부와 보안 기관들의 충성이 특별히 중요하기 때문에 김정일은 군부의 핵심 실세인 김정각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과 감시·통제 기구들을 지도하고 있는 장성택 당중앙위원회 행정부장으로부터는 직접 김정운에 대한 충성 서약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을 포함해 현재 김정운 후계 체계 구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파워 엘리트들로는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의 리제강, 리용철, 김경옥 제1부부장, 당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의 최익규 부장과 리재일 제1부부장, 군 총정치국의 한동근 선전부장, 국방위원회의 위원들인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수석부부장, 주상성 인민보안상 등이 있다. 북한의 핵심 실세들 대부분이 김정운 후계 체계 수립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김정일은 5월25일 제2차 핵실험 직후에는 해외 공관의 외교관들에게까지 후계자 결정 사실을 통보했다. 이는 이미 그 시점에 대내적으로 북한 권력 체계에서 김정운 후계 체계 구축이 만족할 정도로 진전되었음을 시사한다.

이처럼 김정운 후계 체계 구축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 갑자기 지난 7월부터 북한 내부에서 김정운에 대한 대주민 선전이 축소 또는 중단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7월 초까지만 해도 “백두의 청년대장 김정운 장군이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을 선두에서 지휘하고 계신다”라고 요란하게 선전했지만, 7월 중순쯤부터 그같은 선전이 중단된 것이다. 그리고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1백50일 전투에 대해서도 ‘김정운 대장이 직접 발기하고 지휘하고 있다’라는 선전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국내외 일부 언론은 ‘김정운이 성실한 간부들을 누명을 씌워 쫓아내고 그 자리에 자기 세력을 심자, 벌써부터 분파주의를 한다며 김정일이 화를 내면서 김정운에 대한 선전 작업이 중단되었다’라는 소문을 소개하기도 했다. 
후계자 논의 ‘시기상조’도 와전된 것

그러나 현재 김정운은 여전히 리제강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및 장성택 당중앙위원회 행정부장과 북한 엘리트의 인사에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러므로 김정운의 부적절한 인사에 대한 김정일의 반발 때문에 선전 작업이 중단되었다는 소문은 근거가 희박한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 8월 말 방북한 한국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북한 여성 봉사원이 김정운 개인 숭배 가요인 <발걸음>을 활기차게 부르는 것을 직접 보았다. 이같은 사실은 주민들에 대한 김정운 선전이 중단되었다고 해서 김정운 후계 구축에 이상이 발생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북한에서 후계자 논의는 ‘시기상조’라는 지시 내용도 와전된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 지도부가 김정운에 대한 대주민 선전을 축소 또는 중단한 7월은 북한이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준비하기 시작한 시점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8월4일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받아들인 데 이어, 8월10일에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을 받아들여 금강산 관광과 개성 관광 재개, 육로 통행 제한 해제, 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 민간 교류의 활성화를 가져올 조치들에 대해 합의했다.

현재 북한 주민들에게 김정운이 후계자로 결정된 사실을 알리는 작업은 이미 끝난 상태이다. 그같은 상황에서 북한 지도부는 향후 북한 엘리트와 주민들이 외부 방문객들과 접촉할 때 후계 문제가 거론되는 것에 대해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김정운의 현재 실제 나이는 만 26세인데, 후계자로 결정되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가 아니냐는 비판 가능성을 의식해, 북한 지도부는 대내적으로 유언비어를 통해 김정운은 30대 중반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북한의 엘리트나 주민들이 외부 방문객들과의 접촉 과정에서 김정운의 실제 나이를 알게 된다면 김정운에 대한 환상이 깨질 수 있다. 그리고 3대 세습에 대한 외부 세계의 비판 가능성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같은 판단 하에 북한 지도부는 현재 김정운 후계 체계 구축과 관련해 속도 조절에 들어갔으며, 이후 은밀하게 북한 권력 체계에서 김정운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더욱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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