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무슨 돈으로 해외 호화 주택 사들였나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9.09.22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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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거주하는 교포가 국내 유명 인사들의 미국 내 부동산 구입과 관련한 내용을 자신의 블로그에 밝힌 이른바 ‘안치용 리스트’가 정·관계를 떨게 하고 있다. <시사저널>은 안씨가 공개한 내용을 토대로 유명 ?


‘시크리트 오브 코리아’(secrete of Korea). 미국에 거주하는 재미교포 안치용씨(42)가 운영하는 블로그 이름이다. 최근 이 블로그가 제목이 주는 호기심만큼이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지난 9월14일 안씨가 비밀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일명 ‘안치용 리스트’이다. 유명 인사들이 미국에 있는 부동산을 사들인 내용을 증명하는 각종 문건과 자료가 실명과 함께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부동산 구입 날짜에서부터 구입 가격, 구입 방법 등이 자세하게 실려 있다.

일부 유명 인사들의 경우 부동산을 사들이는 과정이나 자신 또는 가족들이 소유하는 과정에서 온갖 불법·탈법을 동원한 것으로 의심되고 있다. 이들은 어떻게 해서 수백만 달러를 호가하는 호화 주택을 소유할 수 있었을까. <시사저널>은 안씨가 공개한 내용을 토대로 유명 인사들의 해외 부동산 소유 내역을 집중 추적했다.

지난 2006년 3월 ‘외환거래 규제 완화 방안’이 시행되기 이전에는 투자용 해외 부동산을 취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거주용 주택도 송금액이 20만 달러로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던 때였다. 이번에 안치용씨가 공개한 정·재계 인사들이 미국 내 부동산을 구입한 시점은 외환 거래 규제 완화가 이루어지기 이전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수백만 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드러났다. 단기간에 올린 막대한 시세차익은 차치하더라도 이 뭉칫돈이 어떻게 해서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을까. 공식적인 루트와 세관을 통했다면 당연히 빠져나갈 수 없는 거액이다. 이 때문에 이들이 주택을 매입한 과정에 대해 당국의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부동산 투자 전문가들도 하나같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해외 부동산 컨설팅 전문 업체인 지코앤루티즈 홍은희 리서치센터장은 “지금은 투자용 부동산도 9~36%의 양도세만 내면 구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규제가 완화되기 이전에는 부동산 취득이 엄격하게 제한되었다”라고 강조했다.익명을 요구한 한 해외 부동산 컨설팅업체 대표는 “국내 은행을 통해 송금할 수 있는 액수는 정해져 있다. 수백만 달러 상당의 호화 콘도는 사실상 매입이 불가능하다. 부동산 관련 세금 규제가 상대적으로 덜 까다로운 미국을 통해 부를 승계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안치용 리스트’에서 주목할 점은 유명 인사들의 부동산 거래 수법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페이퍼 컴퍼니(유령 회사)를 이용했다. 개인이 부동산을 매입한 후 위장 법인에 넘기는 방식이다. 이에 대해 홍은희 센터장은 “국내와 달리 미국은 중과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개인이 몇 채의 부동산을 구입해도 추가로 세금을 부과하지 않기 때문에 부유층이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일부 인사의 경우 매입가보다 저렴하게 부동산을 법인에 넘겼다. 한 재계 인사는 콘도를 사들인 지 하루 만에 법인에 매각하기도 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둘째아들 전재용씨의 부인인 탤런트 박상아씨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박씨는 지난 2003년 9월 전씨의 비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미국으로 떠났다. 박씨는 미국으로 가기 4개월여 전인 2004년 5월15일 미국 애틀랜타에서 36만5천 달러를 주고 이미 주택을 구입한 상태였다. 박씨는 1년쯤 후인 2004년 4월 이 집을 40만4천 달러에 매도해 약 4만 달러의 시세차익을 남겼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것은 콘도 매입 자금 36만5천 달러가 어떻게 해서 미국으로 넘어갔느냐는 것이다. 박씨도 이런 점을 의식했는지, 주택 구입 6개월 후인 2004년 11월 ‘5735 Lake’라는 법인을 설립해 소유권을 넘겼다. 매각 금액은 0달러. 사실상 무상 증여인 셈이다.

주택 구입한 후 법인 설립해 0달러에 매각하기도

이에 대해 안치용씨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국내 세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공시지가 열람서 등에는 현재의 오너만 나온다. 소유주가 바뀌면 법인만 나오기 때문에 추적이 쉽지 않다. 지번을 가지고 전체 내역을 조사해야 개인에서 법인으로 가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이름을 감추기 위해 법인을 만들어 넘긴 것으로 생각된다”라고 말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도 비슷한 방법으로 시세차익을 거두었다. 여기에는 장인인 신명수 전 동방유량 회장이 직접 나섰다. 신 전 회장은 지난 1997년 1월9일 뉴욕에 ‘하우스 이글’(HOUSE EAGLE N.Y. LTD)이라는 법인을 설립했다. 이 회사의 대리인은 변호사 김 아무개씨이다. 법인을 설립한 지 45일 후인 2월26일 맨해튼 72번가의 고급 콘도를 매입했다. 이곳은 맨해튼 최고의 부자 동네로 알려진 곳으로 구입가는 1백15만1천 달러이다. 건물 가격의 1%인 1만1천5백10달러의 호화세(MANSION TAX)까지 지불해야 할 정도로 부의 상징으로 꼽히는 곳이다.

그런데 수상한 거래는 여기서 시작된다. 신 전 회장은 2년여 후에 또 다른 페이퍼 컴퍼니인 부에나 비스타(BUENA VISTA N.Y. LTD)에 단돈 10달러를 받고 이 콘도를 매각한다. 하지만 이 회사 역시 하우스 이글과 주소뿐 아니라 대리인까지 같았다. 3년 후인 2001년 1월31일 이 건물은 1백82만5천 달러에 매각되었다. 이로 인해 하우스 이글은 3년여 만에 70만 달러 상당의 시세차익을 남길 수 있었다.

노씨가 드러난 것은 2001년 6월6일 하우스 이글이 또 다른 고가 콘도를 구입하면서다. 이 콘도의 매입 단가는 1백50만 달러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콘도를 구입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2002년 5월6일 명의를 재헌씨에게 이전한다. 매각 가격은 99만5천 달러로, 매입가보다 50만 달러 이상 낮다. 노씨는 이 부동산을 다시 2백10만 달러에 매도해 1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셈이다.

이런 사실은 하우스 이글이 노재현씨에게 부동산을 넘기면서 작성한 계약서에서 밝혀졌다. 대표이사 자리에 이 아무개 변호사 대신 신 전 회장의 이름이 올라와 있다. 이를 토대로 보면 그동안 신 전 회장이 변호사에게 명의신탁을 한 것이다. 노재헌씨의 경우 이사(디렉터)로 콘도위원회에 제출한 위임장에 서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 전 회장이 법인 두 개를 세운 것을 두고 노재헌씨를 거치며 돈세탁을 하지 않았나 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신 전 회장은 지난 1997년 노태우 비자금 4천억원을 비밀리에 운영하면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로 미루어볼 때 페이퍼 법인을 만들어 노씨에게 넘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안치용씨의 주장이다. 그는 “신 전 회장은 첫 번째 거래에서 자신을 숨겼다. 하지만 두 번째 거래에서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숨겼던 비자금이 외부로 드러나게 되었다. 특히 이 시기 역시 해외 부동산 투자가 허용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콘도 매입비 2백50만여 달러와 시세차익 2백여 만 달러의 행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김병국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도 해외 부동산을 다량으로 소유한 인사 중 한 명이다. 김 전 수석은 지난 1983년부터 뉴욕과 보스턴에 아홉 채의 콘도를 구입했다. 그동안 구입한 액수로 치면 수백만 달러에 이른다. 특히 김병국 전 수석의 경우 동생인 김병표 ㈜주원 대표와 공동 명의로 콘도를 구입한 것이 특징이다. 이후 김 전 수석이 동생에게 콘도를 명의이전하거나, 김대표가 형에게 명의이전을 하는 방법을 이용했다.
실제로 김 전 수석이 지난 1983년 11월3일 매입한 뉴욕 맨해튼 ‘콘도 유닛 3C’의 경우 매입 가격이 19만 달러이다. 당시 김 전 수석은 동생에게 모든 권리를 위임한다는 위임장을 작성했다. 1년여 후인 1984년 11월9일 이 콘도를 동생에게 0달러에 넘기게 된다. 시세차익이 없기 때문에 세금도 없었다. 이런 식으로 김대표는 적지 않은 시세차익을 남겼다. 보스톤에 있는 콘도의 경우에는 정반대이다. 1984년 11월7일 동생이 김병국 전 수석에게 1달러에 소유권을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지코앤루티즈 홍은희 리서치센터장은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공동 명의로 구입하면 양도세가 적었다. 특히 미국에서는 한 채든, 두 채든 단기 매매에 따른 양도 차익이 없다. 때문에 공동 명의로 구입한 뒤 한쪽에게 넘기는 방법을 사용해 세금을 절약한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 전 수석의 경우 보스턴 부동산을 구입하면서 제출한 ‘AFFIDABVIT’(선서 진술서)에 “나는 외국인이 아니다(I AM NOT A FOREIGN PERSON)”라고 한 내용이 공개되면서 국적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이희상 한국제분 회장 역시 부부 명의로 부동산을 매입한 경우이다. 특히 이회장은 지난 2001년 뉴욕 대학 인근에 3백40만 달러에 이르는 호화 주택을 구입했다가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2004년 5월에는 5백5만 달러에 이 집을 처분했다. 불과 4년여 만에 1백65만 달러의 시세차익을 거둔 것이다. 원화로 20억원에 달하는 거액이다.

이회장이 매입한 부동산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회장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87년 9월9일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콘도를 부인과 공동 명의로 31만 달러에 구입했다. 이것을 15년 후인 지난 2001년 5월17일에 42만5천 달러에 매각해 10만 달러의 차익을 거두었다. 앞서 언급된 호화 주택을 매입하기 이틀 전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회장은 신분 노출을 피하기 위해 회계사인 신 아무개씨를 대리인으로 내세웠다. 지난 1993년 8월에는 뉴저지 소재 단독주택을 37만5천 달러에 매각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정·재계의 인사들 중 상당수가 미국 내 부동산을 구입해 되파는 방식으로 상당한 시세차익을 챙겼다. 그중의 한 명이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이다. 고의원은 지난 1992년 10월19일 뉴저지의 콘도를 부인 이름으로 13만 달러에 구입했다. 당시 고의원은 유학을 할 때여서 뚜렷한 직업이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도 13만 달러라는 거액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의문이다. 고의원은 1999년 4월12일에는 뉴저지의 콘도를 45만 달러에 매입했다. 그리고 2004년 5월11일 이 콘도를 매입가의 두 배인 97만 달러에 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고의원측은 “전혀 모르는 사실이다”라고 해명했다. 고의원의 한 측근은 “처음 콘도를 구입할 당시 유학생 신분으로 수입이 없었다. (고의원 부인의) 친정에서 딸이 결혼하면서 살 집 마련을 위해 챙겨주었을 수 있다. (고의원은) 취득 사실을 전혀 몰랐다”라고 해명했다. 

현재 ‘안치용 리스트’에 이름이 거명된 인사들은 대응을 자제하는 분위기이다. 일부 인사들의 경우 “적법한 절차를 통해 부동산을 매입했다”라며 더 이상 확대되는 것을 경계했다. 하지만 국세청·금감원·검찰 등 관련 당국에서는 사건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상당수 인사들이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부동산 소유 사실을 숨겼다. 자금 출처에 대해 조사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국세청·금감원 등 관련 기관이 현재 사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해외에 ‘호화 별장’을 소유한 모든 사람이 지탄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다만, 적법한 절차를 지켰느냐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해당자가 유명 인사라고 한다면 더욱 엄격한 잣대를 대야 한다. 안씨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도 미국 내 다른 지역에 부동산을 사들인 한국 정·재계 인사들의 명단을 조사해 블로그에 밝히겠다고 언급해 향후 파장이 주목된다. 



이웃사촌 된 장영신·박용만·송혜교

유명 인사들 간 이웃사촌도 있었다. 한 번 스쳐간 것도 인연이라고 하는데 미국에서 옆집에 산다는 것은 대단한 인연이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과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그리고 탤런트 송혜교씨가 그들이다. 물론 이들이 현지에서 실제 거주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거의 같은 시기에 콘도를 구입했다.

이들이 구입한 미국 맨해튼 지역 콘도는 2백만 달러에 상당하는 호화 콘도이다. 이 콘도는 뉴욕 맨해튼 웨스트 57번가로 센트럴파크의 서쪽 입구에 위치해 있다. 창문을 열면 센트럴파크가 한눈에 들어온다. 유명한 콜럼버스 써클이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건물은 송혜교씨가 가장 먼저 구입했다. 송씨는 지난해 2월 말 이 콘도 33층 중 하나를 1백75만 달러의 현금을 주고 샀다.

약 3개월 후인 5월에는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이 39층 FI호를 1백95만 달러에 구입했다. 송씨와 장회장은 구입 대금을 전액 현금으로 지불했다. 박용만 두산인프라 회장은 지난 1월 43층을 2백74만 달러에 구입했다. 100% 현금을 지불한 두 사람과 달리 박회장은 모기지를 끼고 구입했다고 한다.

그런데 애경그룹 장회장은 콘도를 구입한 후 하루 만에 콘도 호실 이름과 비슷한 ‘39F1 PROPERTY LLC’라는 회사에 매각했다. 매각 금액은 0달러. 부동산 복비를 포함해 세금만 17만5천 달러를 지급한 호화 콘도를 무상으로 양도한 것이다. 얼핏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다. 법인의 실체도 의문이다. 이 회사의 대표는 장회장이 위임장을 써준 변호사였다. 법인 역시 콘도를 구입하기 2주 전에 설립되었다. 장회장이 5월7일 위 변호사에게 법인을 설립하게 한 후 15일 김 아무개 변호사에게 위임장을 써준 것이다. 이틀 후에는 장회장이 콘도를 매입하고, 다음 날 위장 법인에 공짜로 넘겼다고 볼 수 있다.

위임장에 기재된 장영신 회장의 주소는 서울시 구로구 구로동 98 대림오페라타워 1301호이다. 그런데 등기부등본상의 소유자는 서울시 구로구 구로구 83번지 애경산업주식회사로 나타나 있었다. 다시 말해 장영신 회장이 자신의 소유가 아닌 회사 소유의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이와 관련해 애경그룹 관계자는 “절세 차원이다. 콘도 매입을 앞두고 메릴린치로부터 컨설팅을 받았다. 개인보다는 법인에게 넘기는 것이 세금을 절약할 것이라는 조언을 받고 법인을 설립하게 되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부동산 투기’ 의혹은 두고두고 남는다. 한 해외 부동산 투자 전문가는 “부유층이 해외 부동산을 선호하는 것은 중과세를 막기 위함이다. 미국의 경우 국내와 달리 중과세가 없기 때문에 선호하는 것이 사실이다”라고 강조했다.
 
바로잡습니다.
9월29일자 고승덕 의원 해외 부동산 취득 기사와 관련하여
본지는 2009년 9월29일자(제1040호) "그들은 왜, 무슨 돈으로 해외 호화 주택을 사들였나"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고승덕 의원이 1992년 및 1999년에 부인 이름으로 뉴저지 콘도 두 채를 매입해 되파는 방법으로 시세 차익을 얻은 것처럼 보도하였으나 확인 결과, 위 두 건의 부동산은 고승덕 의원이 구입하거나 매도한 것이 아니고, 또한 시세 차익을 챙긴 것이 아닌 것이 밝혀져 바로잡습니다.
이 기사에 대해서 고승덕 의원에게 유감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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