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님 덕에 나팔 분’ 비인기 스포츠 종목들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9.09.29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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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우생순> 등 영화 성공으로 국민적 관심 쏠려

ⓒKM컬쳐

여름방학 시즌에 높이 날았던 영화 <국가대표>가 서서히 착지하고 있다. <국가대표>는 개봉이라는 점프대를 벗어나는 순간 <해운대>라는 암초를 만나 잠시 주춤했지만 곧 자세를 바로잡고 누구보다도 높이 그리고 멀리 날았다. 이제 멋진 텔레마크(스키점프의 착지 자세로 한쪽 발을 살짝 앞으로 내딛고 다른 쪽 발꿈치를 세우는 모양) 자세로 땅에 닿는 일만 남았다. <국가대표>는 9월20일 현재 7백76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흥행 순위 10위를 기록하고 있다. 줄곧 1위를 달려오던 주간 박스오피스에서 <애자>에 밀려 2위로 쳐졌고, 새 영화가 대거 등장하는 추석 시즌에 들어서면 극장가에서 물러나겠지만 8백만 관객 동원이 가능할 전망이다.

<국가대표>가 거둔 성공이 반가운 것은 단순히 한국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을 넘어 영화로 인해 비인기 종목인 스키점프가 주목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 감동한 관객들이 스키점프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스키점프라는 종목이 있는지조차 모르던 대중들은 영화 내용처럼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이 훈련하는 국가대표의 현실에 안타까워하며 응원을 보냈다. 지난 9월3일부터 9월5일까지 열린 ‘2009 평창 FIS 대륙컵 대회’에는 유례없는 관중이 몰려들었다. 대표 선수들도 이에 화답하며 김현기 선수가 K-125와 K-98 경기에서 각각 금메달과 은메달을 획득했다.

국민의 관심과 대표 선수들의 선전은 이들에게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지난 9월17일 최용직·강칠구 선수와 김흥수 코치가 하이원 스포츠단에 입단한 것이다. 기존 김현기·최홍철 선수에 이어 국가대표 선수단 다섯 명이 모두 하이원 스포츠단에 소속되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김흥수 코치는 “영화가 없었다면 이런 기회를 가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평창 대륙컵 대회에서 가득 찬 관중석을 보고 감개가 무량했다. 스키점프를 다룬 영화가 제작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김코치가 말한 것처럼 잘된 영화 한 편은 비인기 종목을 인기 종목으로 만들어내는 힘을 가졌다. 이런 사실을 우리는 지난해 개봉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에서 경험한 바 있다. 핸드볼은 올림픽이 돌아오는 4년에 한 번씩 우리를 기쁘게 하는 효자 종목이지만 나머지 기간에는 언제나 관심 밖에 머무르며 ‘한데볼’이라 불렸다. <우생순>은 핸드볼에 열기를 불어넣었다. 영화가 성공하며 핸드볼은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오랜 숙원이던 전용 경기장 확보도 성사되었다. 지난 8월24일 대한핸드볼협회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핸드볼 전용 경기장 조성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이다. 이에 따라 올림픽공원 내 펜싱 경기장이 3천~5천명 수용이 가능한 핸드볼 경기장으로 리모델링될 예정이다. 세미 프로리그 형태로 출범한 ‘핸드볼 슈퍼리그’도 지난 9월8일 마쳤다. 실업 팀 수도 남자 다섯 개 팀, 여자 여덟 개 팀으로 늘어났고 윤경신·조치효 등 해외에서 활약했던 스타플레이어도 돌아왔다. 핸드볼을 인기 종목으로 분류하는 것은 시기상조이지만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분명하다.

스포츠 영화가 가진 힘은 비인기 종목 현장에서도 체감할 수 있다. 영화를 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관련 협회와 선수들이 적극 동참하고 있다. 대표 선수들은 배우들이 스키점프를 익히는 데 도움을 주었고, 선수와 코치는 대역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영화 제작진도 스키점프 부흥을 위해 앞장섰다. 평창 대륙컵 대회 현장에 하정우를 비롯한 배우들이 총출동해 선수들을 응원한 것이다.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다. 역도를 소재로 올여름 개봉해 좋은 평가를 받았던 또 다른 스포츠 영화 <킹콩을 들다>에는 올림픽 메달리스트 전병관·이배영 선수가 출연했다. 역도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자는 데 공감했기 때문이다. 역도 역시 장미란이라는 세계적 스타를 보유하고 있는 종목이지만 관심을 얻는 것은 4년에 한 번뿐이다. <국가대표>처럼 흥행 대박을 이루지 못했지만 <킹콩을 들다>를 본 관객들은 역도인들이 겪는 어려운 현실에 공감했다. 스포츠평론가 기영노씨는 “스키점프에 4천~5천명의 관객이 들고 선수들이 일자리를 찾은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다른 종목에도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지만 영화가 일정 부분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대다수 비인기 종목은 여전히 ‘찬밥’…영화 만들어져도 성공 못 하면 관심 못 받아

▲ 9월8일 ‘핸드볼 슈퍼리그’ 경기에서 우승의 기쁨을 나누는 삼척시청팀. ⓒ연합뉴스

볕이 있으면 그늘도 있게 마련이다. 영화가 성공하면서 스키점프, 핸드볼, 역도에 대한 관심은 올라갔지만 대다수 비인기 종목은 여전히 찬밥 신세이다. 그렇다고 비인기 종목마다 영화를 만들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대중성을 담보로 하는 상업영화가 비인기 종목 부흥을 위해 그럴듯한 이야기도 없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이다. <우생순>과 <국가대표>라는 성공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이전까지 스포츠는 한국에서 성공하기 어려운 소재로 꼽혔다. 영화가 만들어져도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비인기 종목에 대한 관심도 수그러든다. 동계올림픽 종목인 컬링 국가대표 이야기를 다루려했던 <돌 플레이어> 제작이 무산된 것도 상업적인 매력에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생순> 이후 핸드볼에 대한 관심도를 쭉 따라가 보면 영화가 대중들 머릿속에서 멀어지면 소재로 활용된 종목에 대한 관심도 멀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흥행 가도를 달릴 때는 누구나 경기장을 찾고 팀을 창단하고 경기장을 마련해줄 것처럼 달려들다가도 어느 샌가 척박한 현실로 돌아가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핸드볼 슈퍼리그 경기장은 여전히 빈자리가 대부분이었고, 핸드볼 전용 경기장 건립도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비인기 종목에 필요한 것은 확 달아올랐다가 금방 식어버리기는 열기보다는 꾸준한 관심이다.


TV 속 스포츠, 드라마 ‘찬밥’ 예능 ‘더운밥’

스포츠는 TV 드라마에서도 좋은 소재이다. 프로 2군 축구 선수를 소재로 한 MBC <맨땅에 헤딩>과 이종 격투기를 소재로 한 SBS <드림>이 현재 방영 중이고, 야구를 소재로 한 <2009 외인구단>과 피겨스케이팅을 소재로 한 <트리플>이 방영되었다. 영화와는 달리 인기가 있거나 관심이 집중되는 종목을 소재로 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스포츠를 단순히 소재로 사용했을 뿐 일반 트렌디 드라마와 별 다를 것이 없는 삼각·사각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통해 박진감 있는 경기 장면과 운동선수의 현실에 열광했던 대중들은 사랑 이야기로 변질된 스포츠 드라마에는 관심을 접었다.

스포츠로 성공을 거두는 것은 예능 프로그램이다. KBS 2TV <천하무적 야구단>은 인기 종목인 야구를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도 환경이 척박한 사회인 야구를 다루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비인기 종목 부흥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MBC <무한도전>도 성공적이다. <무한도전>은 에어로빅, 스포츠 댄스, 봅슬레이 등 비인기 종목으로 치부되어온 운동 경기 현장에 멤버들이 직접 뛰어들어가 긴 시간 훈련을 거치며 결과물을 내놓는 과정을 담아냈다. <천하무적 야구단>과 <무한도전>은 어려운 현실과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담아낸 스포츠 영화의 성공 궤도를 그대로 따라가 시청자들의 호응을 끌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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