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인재 사관학교’ 마쓰시타 정경숙, 일본 정계에 새 바람 몰고 올까
  • 도쿄·임수택 | 편집위원 ()
  • 승인 2009.09.29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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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졸업생 30%가 정치권에 진입해 국회의원 34명 배출…‘명품 인간상’으로 국민 기대 모아

▲ 마쓰시타 정경숙(왼쪽)은 마쓰시타 전기의 창업자이자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 씨가 일본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했다. ⓒ마쓰시타 정경숙 제공

일본 자민당의 54년 장기 집권이 끝나고 민주당의 하토야마 정권이 탄생했다. 일본 사회에는 정치·경제·사회의 근본을 바꾸고자 하는 개혁 바람이 불고 있다. 개혁을 진두지휘할 당과 내각의 면면이 드러났다. 정권 창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네 사람의 권력 분점도 이루어졌다.

총리를 맡게 된 하토야마는 정권 창출의 일등공신인 오자와 이치로에게  간사장 직을 맡겼다. 당권 일체를 일임했다. 나아가 이번 내각 인사 때에도 긴밀히 협력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특별하게 예우했다. 앞으로 오랜 시간 험난한 항해를 해야 하는 하토야마 총리로서는  정국 운영의 한 축인 당과 국회를 안정적으로 끌고 갈 동반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편, 국가 예산의 골격을 결정하고 외교·안보의 기본 정책을 이끌어갈 신설조직인 국가전략국장에는 자타가 인정하는 논객인 간 나오토 전 대표를 임명했다. 그가 시민사회 운동가 출신으로 하토야마 총리가 지난 선거 당시 내세웠던 공약인 관료 사회 개혁을 추진하는 데 최적임자라는 판단에서다. 안정과 개혁이라는 목적을 두 공신을 통해 실현하겠다는 뜻이다. 또 한 사람의 공신인 오카다 가쓰야는 외무대신으로 기용되었다. 티 없는 권력 분점을 이루었다.

정권 교체의 파트너인 야당과 공조하겠다는 약속도 지켰다. 금융·우정성 담당 대신에는 가메이 시즈카 국민신당 대표를, 소비자·식품안전·소자화 대책 대신에는  후쿠시마 미즈호 사회당 당수를 임명했다. 하토야마 총리와 서열 2위인 간 나오토 부총재 겸 국가전략국장이 이공계 출신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이번 인사의 특징은 권력의 분점, 야당과의 공조 그리고 이공계 출신의 주요 포스트 등장이라는 3대 요소로 압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말고 이번 인사에서 주목되는 부분이 있다. 마쓰시타 정경숙 출신들의 등장이다. 내각에 차세대 리더로 불리는 마에하라 세이지 의원이 국토교통대신에 임명되었으며, 하라쿠치 카즈히로 의원은 총무대신으로 발탁되었다. 이들은 각각 마쓰시타 정경숙의 4기와 8기생 출신이다. 내각에 입각하지는 않았지만 노다 요시히코 의원(1기생)은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에 버금가는 실력자로 당내 영향력이 막강하다. 민주당 내 마쓰시타 정경숙 출신 의원은  중의원 25명, 참의원 3명으로 모두 28명의 의원이 포진하고 있다. 당내에서는 물론 여야를 초월해 일본 정계에서 가장 주목되는 정치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마쓰시타 정경숙은 마쓰시타 전기의 창업자이자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 씨가 1979년에 사재를 털어 설립했다. 일본 정치의 앞날을 걱정한 마쓰시타 고노스케 씨는 만년에 자신이 직접 정계에 뛰어들려고 했으나 주위의 만류로 포기했다. 그 대안으로 일본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인재를 양성하고자 만든 것이 바로 마쓰시타 정경숙이다. 그의 나이 86세 때였다. 지도자는 모름지기 정치와 경영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정경’(政經)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자민당의 장기 집권이 계속되고 각종 정치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던 시대적 상황에서 일본인들이 가장 추앙하는 고노스케 씨가 만든 마쓰시타 정경숙은 국민들의 깊은 관심과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선생님도, 도서관도 없이 스스로 갈고 닦아

숙생들은 졸업을 하면 자신들의 진로를 자유롭게 선택하지만 정계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많다. 현재 34명의 국회의원 이외에 가나가와 현과 미야기 현 지사들을 비롯해 마쓰시타 정경숙 출신 광역 및 기초 자치단체장이 11명이다. 이외에 광역 및 기초 단체의원을 포함하면 26명으로 8월31일 현재 졸업생 2백37명 중 71명(30%)이 정계에 몸담고 있다.

마쓰시타 정경숙 출신 국회의원의 수는 21석인 공명당보다 더 많다. 당 하나를 충분히 만들 수 있는 규모이다. 마쓰시타 정경숙이 이렇게 일본 정치의 중심 세력으로 떠오른 배경에는 바로 교육과 실천에 있다. 정경숙의 교육 이념은 ‘진실로 국민과 국가를 사랑하고 정치와 이념을 탐구해서 인류의 번영과 행복 그리고 세계평화에 공헌한다’이다. ‘숙(塾)’에는 선생님이 없다. 도서관도 없다. 배움에 필요한 일이라면 현장의 대가를 찾아가 배우거나 초청해서 배운다. 스스로 닦고 얻는 것과 현장을 중심에 두는 것이 교육 방법의 핵심이다. 마치 도를 구하는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곳이다. 가야 할 곳과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진리와 숙의 이념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자칫 방종으로 빠지기 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마쓰시타 고노스케 설립자는 전체 숙생 중에 단 한 사람만이라도 일본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가 제대로 나온다고 한다면 그것으로 숙을 만든 목적이 충분히 달성된다고 생각했다. 그 역사적 행군이 올해로 30년을 맞고 있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는 말처럼 숙생들은 매일 아침 자신들이 미래의 지도자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숙시와 숙훈 그리고 5가지를 맹서하는 5서(誓)를 읽고 외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계속된다. 읽고 외우고 외치는 과정 속에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숙시, 숙훈, 5서가 체화되는 것이다. 세간에서 마쓰시타 정경숙을 인재 사관학교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정경숙의 심연을 들여다보면 이것은 피상적인 관찰에 지나지 않는다. 정경숙이 추구하는 인재상은 단순히 정치인이나 리더가 아니다. 마쓰시타 고노스케 씨가 평생을 통해 가장 중시한 것은 ‘스나오노 고코로’이다. 즉, 있는 그대로의 마음이다. 지도자가 되기 전에 먼저 이 마음이 충만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소 철학적인 표현이지만 숙생들에게는 숙에서 생활하는 동안 이 말의 깊이를 느끼고 가슴에 새기는 지루한 나날이 계속된다. 명품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마쓰시타 정경숙 출신의 정치가들이 정계에서 급부상하고 주목받는 이유는 숫자가 많아서가 아니다. 명품 인간상으로 함양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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