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해법 찾기 정치색은 빼라
  • 심익섭 | 동국대 사회과학대학 교수 ()
  • 승인 2009.09.29 17:2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균형 발전·지방 분권에 도움 된다는 논리 ‘취약’

사극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 어김없이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역사적 사실 논쟁이 덩달아 뜨겁게 펼쳐진다. 그런데 요즘 한국사회에서는 드라마만이 아니라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실조차도 하늘과 땅 만큼이나 시각차가 크다는 생각이 든다. 행정중심복합도시, 즉 ‘세종시’라는 같은 사안을 놓고도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 이렇게 다르다면, 아마 100년 후쯤에는 오늘의 이 주제를 마음대로 요리해 정말 재미있는 드라마가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전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데도 여전히 제멋대로 쓰고 있는 ‘세종시 드라마’. 더 이상 지역 주민의 인내심을 확인하려 들거나 국민을 모독하지 말고 이제 연극을 끝내야 한다.

정운찬 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통해 세종시 문제에 대한 원안 수정론이 제기되면서 ‘뜨거운 감자’ 세종시 문제의 방향정리가 논의되고 있다. 그나마 이전까지는 누구도 이 문제를 꺼내들지도 못하고 그저 눈치만 살폈다. 세종시 문제를 접근하는 정치권의 아전인수식 자기 합리화와 끊임없는 사회 갈등 조장 행태를 보면서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사람도 거주하지 않는 지역에 새로운 광역자치단체를 만들라는 발상에도 다소 무리가 있다. 행정 도시인지 자족 도시인지 또는 특례시인지 직할시인지 하는 기본적인 도시의 개념에 대한 합의조차도 없다. 해당 지역으로 가면 청원군은 빼달라면서 구역 획정에 반발하고 있는 등 갈등을 내재하고 있기도 하다. 여당이나 야당은 철저히 정치적으로 서로 다른 개념의 ‘원안’을 운운하는 사이에, 자괴감에 빠져버린 충청인들을 위해 정부는 아무런 조치도 없이 사실상 직무 유기를 하고 있다. 이처럼 총체적인 난맥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 오늘의 ‘세종시 드라마’이다.

▲ 9월10일 세종시 특별법 처리 문제와 정운찬 총리 후보자의 발언 등으로 말이 많은 세종시의 건설 현장에 있는 밀마루 전망대에서 안내원이 건설 현황과 위치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세종시는 7년 전 대선 과정에서 노무현 후보의 ‘신 행정 수도’라는 공약으로 등장했다. 이후 참여정부는 대선 공약대로 수도 이전을 추진해 2003년 12월 국회에서 ‘신 행정 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이끌어냈으나,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2004년 10월)에 따라 그 후속 대응책으로 변형되어 나타난 것이 오늘의 세종시이다. 이후 정부 안으로 ‘세종특별자치시설치법안’이 제출되었으나(2007년 6월), 17대 국회가 종료되면서 자동으로 폐기되었고, 18대 국회 들어서 지난 1년 내내 세종시 관련법을 놓고 책임 떠넘기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 우리가 보고 있는 지루한 ‘세종시 드라마’의 전말이다.

바람직한 미래 사회 구현을 목표로 권위 있는 국가 기관이 결정하는 방침이 바로 ‘정책’(Policy)이다. 이러한 국가 정책들은 의제 설정을 시작으로 정책 결정을 하게 되고, 이어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문제는 ‘행정 도시’를 지향한 세종시라는 대형 국책 과제가 의제 설정 단계부터 본격 집행을 앞둔(일부는 시행 중) 지금까지 다분히 정치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세종시 건설이라는 국가 정책의 집행 과정에서 그 성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국민적인 ‘정책 순응’(Compliance)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런 탓에 사회적 합의는 고사하고 정책 순응 집단마저도 갈등과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만 것이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세종시의 명확한 성격이다. 아직도 세종시를 여전히 ‘유사한 행정 수도’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인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볼 때 세종시가 지역 균형발전이나 지방 분권에 도움이 된다는 논거도 취약하고, 중앙 행정 기관을 세종시로 옮기는 것이 자칫 그 실효성에 비해 불필요한 낭비를 더 초래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학계에서 많이 제기되고 있다. 이미 중앙 행정은 서울이 아니라 많은 부분 과천과 대전으로 이전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세종시로 9부2처2청의 행정권을 쪼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을 표시하는 것이다. 과천과 대전으로의 행정 기관 이전이 국토 균형발전과 지방 분권에 큰 실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권은 최소한 세종시를 보는 상반된 시각에 대한 조정 노력이라도 추진했어야 함에도 오히려 시간만 낭비한 채 이전투구의 원인을 제공하는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지금의 상황은 한마디로 소통 부재의 단절 속에서 숲보다는 나무(해당 지역)만을 강조하는 미시적 시각과 나무보다는 숲(전체 국토)을 강조하는 거시적 시각의 지속적인 평행 대치뿐이다.

심각한 것은 그 엄청난 ‘국책 과제 스캔들’로 인해 물질·심리적인 국가·국민적 손실이 막대하다는 것이다. 갈수록 일반 국민들까지도 정치적 입장과 보는 시각에 따라 서로 얽혀 있는 팽팽한 긴장 상태를 증폭시키고 있고, 그 갈등을 해소해야 할 정치권 또한 이제는 초심에서 멀어져 허구적 논리들이 난무하는 심각한 문제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늦었지만 갈등 요인을 제공한 정치권과 정부가 스스로 반성하고 서로 논의해 최선의 방향으로 수정을 하든가, 갈등을 풀 능력이 없다면 대안을 논의할 장(場)이라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이제라도 해당 지역은 물론 관련 주체들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나간다면 원점으로 돌릴 수도 없고 원안도 합당하지 않은 세종시를, 세계적 도시 경쟁력을 갖춘 한국의 대표 명품 도시로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 실체가 모호한 ‘행정중심복합도시’에 미련을 두기보다는 국가적 차원과 지역의 현실적 상황을 고려해 하루속히 ‘모두가 윈-윈할 수 있고 좀 더 바람직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