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을 뒤집어서 성공한 SF
  • 이지선 | 영화평론가 ()
  • 승인 2009.10.13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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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자에서 지구 최하층민으로 전락한 외계인…사색과 재미 동시에 안겨

▲ 디스트릭트 9 (District 9) 감독 | 닐 블롬캠프 , 주연 | 샬토 코플리, 바네사 헤이우드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상공에 거대한 미확인비행물체(UFO)가 나타났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보던 외계인의 침공은 아니었다. UFO는 몇 달을 그저 상공에 떠 있을 뿐이었다. 보다 못한 지구인들이 진입을 시도했다. 외계 모선 안에는 영양실조에 걸린 수백만의 외계인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지구인들은 외계인 담당 국제기구인 MNU를 만들고 그들을 데려다 남아공의 한 지역에 집단 수용시킨다. 지구인이 외계인을 관리한다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설정에서 출발해 상상 이상의 결말을 끌어내는 영화 <디스트릭트 9>은 이렇게 시작된다.

외계 물질에 노출된 지구인 주인공에게 닥친 비극적인, 그러나 때때로 지독하게 희극적인 상황을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로 그려낸 영화는 말 그대로 흥미롭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특징을 교묘히 섞어놓은 형식도 독특하지만 이야기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외계인에 대한 발상부터가 여타의 작품과는 다르다. 영화는 그간 우리가 숱하게 접해 온 외계인을 다룬 영화와는 조금 다른 길을 간다.

이 영화에는 <X파일>이나 <에이리언> <인디펜던스데이> 같은 작품에서 늘 만나왔던 침략자 외계인, 혹은 외계 바이러스 감염으로 초토화되는 지구가 등장하지 않는다. 지구 정복을 목표로 음모를 꾸미는 외계인이 등장하지 않으니 외계 물질에 노출된 주인공이 인간적 고민 끝에 외계인 섬멸에 앞장서는 아이러니도 당연히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지구인들의 통제와 지배 속에 슬럼화된 지역에서 최하층민이 되어 살아가는 외계인이 등장한다. 지구 수호라는 대의명분이 아니라 무기 입수와 종족 연구라는 이기적 욕망을 위해 질주하는 인간이 등장한다. 향수병에 걸린 똑똑한 외계인과 사고로 인해 인간으로서의 생존에 위협을 받는 지구인은 뒤집힌 권력 관계 안에서 적이었다가 친구가 되며, 이 과정의 화학 작용은 스크린에 펼쳐지는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만큼이나 폭발적이다.

<디스트릭트 9>은 대다수 선배 작품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어 대다수의 성공한 SF가 그랬던 것처럼 사색이 필요한 관객과 재미가 필요한 관객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명불허전이라는 말은 이런 경우에 써야 옳다. 10월1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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