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 드라마’ 가능성 보였다
  • 하재근 | 문화평론가 ()
  • 승인 2009.10.2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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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액 쏟아붓고 초호화 캐스팅으로 화제 모은 <아이리스>

▲ 10월5일 제작 발표회에서 나란히 선 주인공들. ⓒKBS


엄청난 기대를 모았던 2백억원짜리 초대작 드라마 <아이리스>가 지난 10월14일 시작되었다. <아이리스>는 제작비 규모로도 화제를 모았고, 이병헌, 김태희, 정준호, 김승우, 김소연에서 빅뱅의 T.O.P(최승현)에 이르는 초호화 캐스팅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제작진은 한국 드라마의 역사를 새로 쓰겠다며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한류 열풍을 새로 지피겠다는 각오도 들린다. 과연 <아이리스>는 성공할 것인가?

<아이리스>의 관전 포인트는 아주 많다. 일단 이 작품이 지루한 수목 드라마의 침체기를 끝낼 수 있을지가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올해 들어 월화 드라마에서는 <꽃보다 남자> <내조의 여왕> <선덕여왕> 등의 화제작이 잇달아 터졌지만 수목 드라마는 조용하다. 15% 내외의 시청률로 동시간대 1위를 하는 상황이었다. 절대 강자가 없는 무주공산이었기 때문에 수목에 편성되는 작품에게는 언제나 시장을 장악할 기회가 열려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야말로 ‘줘도 못 먹는’ 형편이었던 것이다.

<아이리스>는 과연 이 지루한 수목극 침체기를 깨고 <선덕여왕>과 함께 양강 구도를 형성할 수 있을까? 분위기는 좋다. 동시간대 경쟁작인 <맨땅에 헤딩>은 계속해서 맨땅에 헤딩만 하는 중이고, <미남이시네요>도 전혀 시동이 걸리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아이리스>의 편성 운은 올해 최강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이 조금만 받쳐주면 30% 선까지는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다.

<아이리스>는 첫날 24.5%, 둘째 날 25.3%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산뜻하게 출발했다.

블록버스터 대작 드라마로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도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영화도 그렇고, 드라마도 그렇고, 한국에서 외국 로케나 액션이 가미되는 대작을 만들면 대체로 실패하는 징크스가 있었다. 영화에서는 최근 그런 징크스가 사라지는 징후가 보이는데 드라마에서는 여전했다. <백야 3.98>부터 <로비스트>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드라마 본연의 이야기가 규모에 짓눌리는 모습이 나타났던 것이다. <태왕사신기>도 후반부에 이야기가 급격히 무너지는 한계를 노출했다. <아이리스> 바로 전에 방영되었던 <태양을 삼켜라>도 아프리카와 미국을 넘나드는 대작이었지만, 볼거리 전시에만 급급하다는 혹평을 들어야 했다. 사람은 돈이 있으면 멋지게 쓰고 싶고, 화려하게 썼으면 과시하고 싶어진다. 바로 그것이 블록버스터의 덫이다. 돈 많이 썼다고 자랑하는 샷들을 남발하느라 이야기의 치밀성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아이리스>가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정말로 한국 드라마의 새 역사를 쓸 수 있을까?

한류 기획극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관심을 모으는 대목이다. 한류 붐이 나타난 이래 한국 대중문화 산업계는 그 단물을 손쉽게 빨아먹기에 급급해왔다. 그 방법은 한류 스타 최대한 이용하기이다. 작게는 한류 스타 팬사인회 같은 행사들이 있었고, 크게는 한류 드라마·한류 영화를 기획하는 것까지 있었다. 해외에서 한류 스타로 이름이 난 배우들을 내세워 영화와 드라마들을 만든 것이었는데, 대체로 실패했다. 작품의 질에 집중하지 않고 한류 스타의 상품성에만 기댔기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런 행태가 이어지자 한류 자체의 힘이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병헌은 일본에서 <지.아이.조> 제작진이 마치 마이클 잭슨의 인기를 보는 것 같다고 하며 놀랐을 정도의 한류 스타이다. 그런 점에서 <아이리스>는 한류 기획극으로 분류될 수 있다. 과연 그동안 한류 드라마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을까? 이것은 ‘이병헌의 <아이리스>’로 남느냐, 아니면 ‘<아이리스>의 이병헌’을 만들어줄 수 있느냐에서 갈릴 문제이다. 결국, 작품 자체의 힘이 관건이다.

무거운 남성 드라마로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도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올해 성공한 작품들은 모두 화사하거나, 코믹하거나, 막장이거나, 말랑말랑한 분위기의 작품들이었다. 반면에 놀라울 만큼 잘 만들었던 <친구, 우리들의 전설> 같은 수작은 실패했다. 진지한 문제의식이 빛났던 <남자 이야기>도 실패했다. 한국인은 무거운 것을 기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아이리스>가 이런 트렌드를 끝내고 굵은 획을 그을 수 있을까? 또, 한국형 첩보액션극을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인지도 관전 포인트이다. 이런 장르는 ‘미드(미국 드라마)’의 몫이었고, 한국 드라마는 사랑 싸움이나 해왔다. 

볼거리에도 충실하면서 세 주인공의 감정선 섬세하게 그려내

지금까지 많은 것을 열거했다. 워낙 대작이고, 한국 드라마로서는 특별한 작품이기 때문에 여러 지점에서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도입부가 공개된 지금 <아이리스>는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을까?

적어도 도입부에서 이 작품은 규모에 짓눌리지 않았다. 액션과 이국 풍물을 화려하게 나열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 볼거리를 충분히 제공하면서도 이병헌, 김태희, 정준호 세 인물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규모와 볼거리와 감정의 서정성이 제대로 결합되면 그 폭발력은 어마어마하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쉬리>가 그 모범을 보인 바 있다. <아이리스>는 도입부에서 그런 가능성을 보였다. 중반부에 길을 잃지 않고 이야기의 집중력을 계속 이어간다면 후반부에 폭발력을 기대할 수 있겠다. 위성까지 이용한 입체적 액션을 선보인 것도 첩보액션으로서 성공적이었다. 미드에 필적할 만큼은 아니지만, 한국 드라마의 수준을 뛰어넘은 것은 확실했다.

<아이리스>가 절대로 가서는 안 될 길을 <태양을 삼켜라>가 확실히 보여주었다. 미국에서 스트리퍼와 서커스를 보여주는 데 집중하고, 아프리카에서는 총격전을 보여주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세 젊은이의 감정선은 허공에 날려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 길만은 피해야 한다. 아무리 총격전이 난무해도 이야기와 감정선을 절대로 놓지 않을 것, 규모가 인간을 삼키는 사태를 막을 것, 이것이 <아이리스> 앞에 남겨진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김태희는 연기자로 ‘진화’할까?

 
김태희의 성공 여부도 <아이리스>의 관전 포인트이다. 최근 여배우들의 연기력 논란이 거셌다. 윤은혜, 성유리, 손담비, 이지아 등 여배우들이 네티즌의 맹폭을 받았다. 지금은 김태희가 도마 위에 올라 있다. 모두 벼락 스타이거나, 정통 배우가 아니라는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그들이 과연 얼마나 연기자로서 능력을 보여주는지에 대해 대중의 시선이 엄격해진 것이다.

김태희는 연기자라기보다는 ‘CF 요정’에 가까웠다. 그러므로 연기자로서의 능력을 항상 의심받아왔다. 나이까지 먹어가며 CF 요정으로서의 위상도 위태로워지는 분위기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리스>는 김태희에게 중대한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여기서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녀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반면에 연기력을 인정받는다면 그녀의 전성기는 연장될 것이다.

<아이리스> 도입부에서 김태희는 무난했다. 평가도 호의적이다. <아가씨를 부탁해>의 윤은혜와 <스타일>의 이지아가 도입부 때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장면, 장면을 화보처럼 만드는 클로즈업의 마신으로서, 축복받은 미소도 여전했다. 만약 중반부 이후 조금 더 감정이 들어간 연기를 보여준다면, 김태희는 CF 요정에서 아름다운 연기자로 진화해 행복한 30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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