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동대문 넘어 뉴욕까지 간 디자이너들의 빛나는 질주
  •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09.10.20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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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된 11명 가운데 9명이 디자이너…1위에 정구호

패션 분야는 지난해와 달리 올해에는 디자이너 일색이다. 차세대 리더로 거론된 11명의 인사 가운데 가수 서인영과 탤런트 이영애를 제외하고는 모두 디자이너들이다.

올해 차세대 리더 1위로 선정된 정구호 디자이너는 해를 거듭할수록 명성을 더해가고 있다. 자신이 직접 만든 여성의류 브랜드 ‘구호’는 최근 4년간 해마다 20~30%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그가 ‘구호’ 브랜드를 들고 제일모직 여성사업부 상무로 입성하던 2003년, 제일모직의 연매출은 100억원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불과 5년 만에 여섯 배 가까이 뛰었다. 올해 매출액이 7백억원을 넘길 전망이다. 패션업계에서 대표적인 ‘대기업은 여성복에 약하다’라는 속설을 한 방에 무너뜨렸다.

그가 제일모직으로 들어갈 때만 하더라도 상업주의에 휘둘릴 것이라는 비판적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대중과 폭넓게 대화하는 길은 ‘잘 팔리는 옷’을 만드는 것이라는 철학 하나로 대기업에 입사했다. 체계적인 시스템을 통해 ‘구호’를 대중적인 브랜드로 키워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창의성과 상업성을 적절히 버무리며 ‘구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창조하는 데 성공한 그에게, 국내 1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란, 옷 디자인만 작업하는 일반 의류 회사 디자이너와 달리 감성을 상품화하는 데 필요한 모든 창조적 업무를 진두지휘한다. 제일모직의 든든한 지원 아래 그는 성공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나가는 디자이너라고 평가되고 있다.

그는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지 않았다. 1986년 휴스턴 대학 광고미술과를 졸업한 뒤, 파슨스디자인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디자인을 전공했다. 뉴욕에서 그래픽 디자이너,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1996년에 한국으로 들어왔다.

‘대기업은 여성복에 약하다’는 속설 한 방에 무너뜨리기도

35세가 되던 1997년, ‘해보고 싶었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패션디자이너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서울 청담동에 ‘구호’ 매장을 열자 특유의 절제된 스타일이 입소문을 타면서 단숨에 패션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1999년에는 패션 잡지 <ELLE>가 선정한 최우수 신인 패션디자이너상을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영화 <정사>(1998년), <텔미썸딩>(1999년)의 의상 디자인을 맡은 데 이어 <스캔들>(2003년)로 대종상영화제 의상상도 수상했다. 그해 제일모직은 ‘구호’를 사들였고, 6년 만에 ‘구호’는 여성복 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한섬의 ‘타임’을 바짝 추격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언론도 그를 인정했다. 그는 지난해 7월, 기자들이 선정한 패션피플 30인 가운데 8위를 차지했다. 언론은 그를 ‘스타일 유발자! 여자의 옷을 짓는 남자’라고 정의 내렸다. 그의 옷을 즐겨 입는 영화배우 장미희씨는 “옷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을 명품으로 만들어주는 브랜드이다”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강진영 디자이너가 그 뒤를 이어 차세대 리더로 꼽혔다. 강디자이너는 세계가 먼저 주목한 신인이었다. 여성복업체 ‘오브제’로 국내 시장을 공략하는 데 성공한 그는 2002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 뉴욕 컬렉션에 진출했다. 뉴욕 현지에서 선보인 브랜드 ‘Y&Kei’는 할리우드 스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 그 결과 2003년에 미국 패션그룹 인터내셔널이 신진 디자이너에게 주는 ‘라이징 스타 어워드’를 수상했다.

가수 서인영·탤런트 이영애는 올해 처음 이름 올려

그의 부인 윤한희씨도 같이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오브제’를 이끌어나가고 있다. 2004년에는 부부가 함께 한국패션협회가 주최한 ‘2004 서울패션인상’에서 올해의 디자이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6년에는 여성복 브랜드 ‘하니 Y’로 일본 시장에도 진출했다.

승승장구하던 그였지만 혼자 힘으로 세계 시장을 공략하는 데에는 힘이 부쳤다. ‘오브제’를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키워내기 위해 2007년, 그는 SK네트웍스와 손을 잡았다. 하지만 불과 1년 반 만에 SK네트웍스에 대표직에서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주위의 안타까움을 샀다. 지난 9월부터 미국 코넬 대학에서 어패럴 디자인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최범석 디자이너도 차세대 리더로 거론되었다. 올해 성공적으로 뉴욕 컬렉션에 진출하며 현재 패션업계에서 가장 ‘핫(hot)한’ 디자이너로 부상하고 있다. 그에게 늘 붙어다니던 동대문 출신 고졸 디자이너라는 꼬리표도 사라진 지 오래다. 그는 21세가 되던 1997년, 동대문에서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상표도 ‘무’(Mu)였다. 가진 것도, 아는 것도 없다는 뜻에서 정했다. 2003년에 내놓은 제너럴아이디어(General Idea) 브랜드를 가지고 프랑스 백화점에 입점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인으로서는 두 번째 일이었다. 6년 만에 디자이너 12명과 직원 40명을 둔 대형 패션 디자인업체로 키웠다. 그의 도전은 패션 분야마저도 벗어났다. 책도 두 권이나 냈다. 지난 9월에는 가수 브라운아이즈걸스와 함께 동대문 패션축제 홍보대사를 맡아 활동하고 있다.

그 뒤로는 장광효·두리정·간호섭 디자이너가 동일한 지지를 받으며 차세대 리더로 꼽혔다. 장광효 디자이너는 대한민국 최초로 남성복 컬렉션을 개최하고 최초로 파리 남성복 전시회와 파리 컬렉션에 참가한 것으로 유명하다.

올해에는 이랜드와 손을 잡고 세계로 뻗어나간다는 계획이다. 그는 오는 10월 출시되는 이랜드그룹의 패스트패션 브랜드 ‘스파오’(SPAO)와 콜레보레이션 계약을 맺은 상태이다. 

두리정 디자이너는 재미교포 출신으로 5년 전 뉴욕 컬렉션을 통해 데뷔했다. 2002년 자기 이름을 딴 브랜드 ‘두리’를 선보이며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그녀는 2004년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가 수여하는 유명 디자이너상을 받았고, 2006년에는 미국 <뉴스위크>가 선정하는 ‘올해의 주목할 인물(패션 부문)’에 뽑히기도 했다.

간호섭 디자이너(홍익대 섬유미술·패션디자인학과 교수)는 신예 디자이너 발굴 프로그램인 케이블TV 온스타일의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덕에 대중들에게 친숙한 디자이너 가운데 한 명이다. 송자인·리처드 채·서은길 디자이너와 가수 서인영, 탤런트 이영애도 올해 처음으로 패션 분야 차세대 리더에 이름을 올렸다.


▲ 제일모직 여성사업부 상무. 브랜드 ‘구호’의 성공으로 창의성과 상업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국내 1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패션디자이너 정구호씨에게는 여러 개의 수식어가 붙어 있다. 패션디자이너이자 미술감독, 푸드스타일리스트, 그리고 현대무용 연출가 등이다. 도무지 능력의 한계를 모르는 사람이다.

그리고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늘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더욱이 믿기지 않는 것은 그가 진행하는 것 모두가 성공을 거둔다는 점이다. 도대체 그의 넘치는 끼와 정열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직접 물어보았다. 
 
패션 부문 차세대 리더 1위로 선정되었다.

먼저 1위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지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새롭게 도전하고 노력해 온 모습들을 좋게 평가해주신 것 같다. 

다방면의 일을 소화해내고 있다. 동시에 여러 일들을 진행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패션은 단순히 옷을 만들고 파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 옷에 스며들어 있는 배경과 라이프스타일을 대중에게 알려주고, 유행을 선도해가는 것이 패션이다. 일종의 문화 장르인 셈이다. 패션의 트렌드는 의식주 전반을 서로 연관지어야 대중들에게 쉽게 전달될 수 있다. 디자이너가 다방면의 일을 동시에 소화해내어야만 의도한 바를 대중들에게 쉽게 이해시켜줄 수 있다.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하는 것이 휴식이다”라고 했다.

한 곳에서 풀리지 않는 고민들이 다른 일을 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해결 방법을 알려줄 때가 많다.

일을 통해 문제를 풀어가기 때문에 일이 곧 휴식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나의 24시간은 다른 사람들의 하루와 별반 다름이 없다. 단지 쉬는 날은 일하는 시간보다 더 보람되고 알차게 보내려 노력한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열정이 대단하다. 원천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자신이 하는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나는 진정으로 패션이 좋아 패션을 선택했다.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열정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이 가진 수많은 능력 가운데 어떤 점이 가장 탁월하다고 보는가?

패션 트렌드를 미리 읽을 줄 알고, 컨셉트가 정해지면 연결감 있게 풀어나가는 능력이 있다.

내년 2월에 뉴욕 컬렉션으로 진출한다. 계획은?

패션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리고 싶어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더 많은 가능성과 새로운 시도를 통해 세계의 패션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많이 제시한 디자이너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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