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중원’에 당당히 복귀하다
  • 소준섭 | 국제관계학 박사 ()
  • 승인 2009.10.2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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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치·경제 영향력 세계적 수준으로 확대

▲ 10월1일 중국의 고위 인사들이 톈안먼 광장에서 중국 건국 60주년을 맞아 펼쳐진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나라 TV 광고에서도 직접 중국어가 발음되어 나오는 광고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매우 작지만 꽤나 상징적인 신호이다. 중국이라는 아시아 초강국이 떠오르는 징후는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세계 금융 위기에서 아시아 국가들의 산업 생산은 중국 경제의 호조에 힘입어 경기 침체 저점으로부터 급반등했다. 2008년 말과 2009년 초 저점을 기록했던 역내 산업 생산은 한국과 타이완에서 각각 28%, 26% 급증했다.

올 초 중국을 방문했던 응웬 떤 중 베트남 총리는 귀국하면서 중국이 베트남의 보크사이트(알루미늄의 주요 원료)를 개발하기 위해 1백50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선물을 받았다. 이는 1백10억 달러에 이르는 대중 무역 역조를 줄이기 위해 광물 수출에 부심하고 있는 베트남에게 너무도 반가운 선물임에 틀림없다. 이후 베트남은 중국과 분쟁이 계속 진행 중인 영해 개발과 관련해 페트로베트남이 엑슨모빌과 체결하려던 협정을 그만두라는 중국의 경고를 조용히 받아들였다.

본토로부터 자국을 방어하기 위해 최근 미국으로부터 65억 달러의 무기를 구입한 바 있는 타이완은 천수이볜 정권 때 전개했던 대중국 적대 정책으로 훼손된 외교 및 경제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최근 마잉주 타이완 총통은 중국 기업들의 투자를 허용하는 데 동의했고, 차이나모빌이 타이완 이동전화 사업체인 파이스트원의 지분 12%를 5억3천3백만 달러에 인수하는 것도 승인할 예정이다. 중국 역시 이에 부응하여 국제기구에 타이완이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던 관례를 접고 세계보건기구(WHO)의 연차 총회에 타이완이 업저버로 참석하는 것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처럼 양안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에 힘입어 타이완의 증시는 15%나 폭등했다.

중국이 한국의 최대 교역 대상국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더구나 중국은 북한과 북한 핵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이다. 이것은 한국과의 관계에서 매우 유력한 지렛대로 기능한다. 현재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 투자한 액수는 4백억 달러에 이르며, 연간 양국 관광객이 5백80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1980년대만 해도 연간 양국 관광객은 고작 4만명에 지나지 않았다. 중국에 들어오는 외국 유학생 중 한국 학생의 비율은 압도적으로 수위를 달리고 있다.

한편, 일본은 동북아 지역의 맹주 자리를 놓고 중국과 경쟁하고 있다. 전후 일본은 경이적인 경제 발전을 통해 경제 원조, 투자와 기술 이전을 통해 한국에서 태국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중국에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일본은 자국의 막강한 경제적 우위를 외교적 영향력으로 전환하기 위해 부심해왔다. 그러나 과거 역사를 반성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 협애한 사고방식의 외교를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그 영향력이 반감되었다.

일본이 그동안 누려왔던 경제적 우위는 중국이라는 강력한 경쟁자에 의해 급속하게 잠식되고 있다. 아니, 오히려 날이 갈수록 중국은 동북아 지역에서 전통적인 ‘패자’로서의 분명한 위상을 발휘하도록 준비가 된 것처럼 보인다. 중국이 바야흐로 선발 주자였던 일본의 위상을 급속히 잠식하면서 아시아의 맹주로서의 위상을 차근차근 다져가고 있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최근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북한 방문을 통해 중국은 대북 무상 원조 재개와 압록강대교 건설에 이어 나진항 부두 개발권도 따냄으로써 다시금 북한에 대한 ‘유일무이한’ 영향력을 과시했다.  

중국의 영향력을 실감하는 나라는 비단 아시아 국가들만이 아니다. 최근 3개의 중국 국영 기업들이 호주 광물 산업의 지분을 2백20억 달러에 인수하겠다고 발표했다. 특히 중국 알루미늄공사(치날코)가 세계 3위 광산업체인 리오 틴토의 주식, 채권, 광산권을 1백95억 달러에 인수하겠다고 발표하자 호주인들의 자존심은 크게 상했고 중국에 대한 분노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중국은 호주의 최대 무역 상대국으로서 호주 국채의 최대 구매국이다. 호주 철광석 수출 가운데 절반 이상을 점하고 있고, 중국 섬유 공장은 호주 양모의 50% 이상을 구매하고 있으며, 중국은 호주 농지와 부동산의 주요 매입국이다. 호주의 야당 정치인들은 호주의 미래를 현지인들이 혹사당하는 가운데 중국인들이 순이익을 챙기는 거대한 노천 광장으로 묘사하고 있을 정도이다. 뿐만 아니다. 최근 프랑스와 독일이 2분기 플러스 성장을 발표했는데, 전통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보여온 도이체방크가 “유로존 2분기 GDP, 중국 덕분인가?”라는 제하의 보고서를 발표할 정도였다. 중국의 영향력은 가히 세계적 수준으로 확대되고 있다.

새롭게 평가되는 ‘중국 시스템’

최근 적지 않은 서방 정치평론가들이 유럽과 미국 정치의 현실에 의문을 표시하면서 오히려 중국 정치의 건강성과 안정성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는 사실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중국은 국가 지도자의 선출에서 충분한 검증을 통해 최고 수준의 엘리트가 충원되는 시스템으로서 최소한 조지 부시와 같은 ‘함량이 문제시되는’ 인물이 국가 최고 지도자로 선출되는 ‘사건’은 미리 방지할 수 있는 장점을 지녔다는 것이다. 또한, 서구의 대의민주주의 제도가 4~5년마다 계속되는 정권 교체에 따라 정책의 일관성과 통일성을 견지하기 어려운 반면, 중국은 길게는 수십 년 동안의 장기적 플랜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정치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제까지 서구 학자들에 의해 개발독재라는 오명을 뒤집어 써왔던 정부 주도형의 중국 경제 개발 방식 역시 그 유효성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최근 발생한 세계적 금융 위기 과정에서도 정부의 강력한 통제 하에 있는 중국의 은행 시스템은 미국 금융 시스템과 관련이 큰 유럽과 달리 세계 금융 위기의 와중에서도 그 충격이 매우 작았다. 또, 금융 위기 대응 과정에서 중국은 올해 상반기에만 1조 달러가 넘는 대출을 가계와 기업에게 제공했다. 이러한 대출 자금은 이를테면 자동차 구매가 1년 전에 비해 82%나 급증하는 등 전반적으로 경기를 촉진하고 소비를 진작하는 데에 커다란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수출 기업들에게 대규모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외환시장 개입과 외국 수입품에 대한 제제를 통해 경제 침체 속에서도 자국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노력했다. 이렇게 하여 중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강력하고 신속한 경제 회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물론 세계은행은 “중국의 경기 부양책은 전적으로 정부 지출에만 의존하고 있으며, 이는 임시방편의 미봉책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 경제가 이제 정부 주도가 아니라 민간 분야의 자발적인 움직임을 더욱 장려해야 하며, 무조건적인 투자보다 소비를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비판의 소리도 잇따른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와 금융 위기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표현되는, 개인의 이익 추구를 무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숭배하는 데에 기인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조정자로서 정부의 지도적 역할을 강조하는 중국식 경제 발전 방식은 더 이상 단순한 분석 틀로만 평가할 수 없게 되었다. 특히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현재의 정부 주도형 경제 운용은 바로 중국 정부가 막강한 자금력을 보유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점에서 천문학적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미국과 일본 정부와 전혀 다르다. 더구나 도덕성과 지도력을 갖춘 엘리트 집단으로 구성되는 중국의 지도층은 ‘차별성이 별로 없는, 유사한’ 성격의 정당 간에 권력을 교대하는 서구식 민주주의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확하고 일관성 있는 국가 전략 및 정책을 수립·집행해나가고 있다. 결국, 중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한 것이 결코 일시적이고 우연한 흐름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는 시각이 확대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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