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어가는 스타벅스·커피빈 뜨거워진 국내 커피 브랜드 공세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9.11.17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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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전문점 시장 각축 치열…엔제리너스·할리스 등, 싼 가격과 새로운 맛 앞세워 점유율 계속 끌어올려

ⓒ시사저널 임준선


서울 교대역 사거리에서는 커피 전쟁이 한창이다. 교대역 사거리에서 서울교육대학교까지 왕복 6차선 도로 양쪽에는 커피 전문점들이 즐비하다. 스타벅스와 커피빈이 한 건물에 나란히 붙어 있고 그 건너편에 엔제리너스, 할리스, 탐앤탐스가 자리한다. 이곳에는 내로라하는 커피 전문점이 밀집되어 있다 보니 국내 커피 시장에 일고 있는 ‘커피 전쟁’의 전개 양상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스타벅스와 커피빈 같은 외국계 커피 전문점이 시장을 양분했다. 그러나 최근 엔제리너스와 할리스가 진입하면서 세를 확장하고 있다.

커피 전쟁이 벌어지는 곳은 이곳만이 아니다. 지금 전국에는 국내외 커피 전문점들이 골목 구석구석에 들어서고 있다. 커피 전문 매장은 주요 업체만 따져보아도 전국적으로 2천여 곳에 이른다. 3백10곳 점포를 자랑하는 스타벅스, 1백85곳 점포를 운영 중인 커피빈 등 외국 브랜드들은 여전히 막강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후발 주자로 뛰어든 국내 업체들의 기세가 무섭다. 올해 2백 번째 매장을 돌파한 엔제리너스와 할리스 그리고 탐앤탐스 등 국내 업체들도 어느덧 규모 면에서 밀리지 않는 수준에 도달했다.

새로운 사회 현상으로 이야기되던 테이크아웃 문화, 프리미엄 커피 문화를 만들어낸 것은 스타벅스이다. 스타벅스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중산층의 새로운 문화 코드로 각광받았다. 밥보다 더 비싼 커피를 마신다는 비아냥도 스타벅스의 장악력을 떨어뜨리지 못했다. 외국계 커피 전문점이 국내 커피 문화에 변화를 가져오고 대세가 되자 국내 업체들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롯데가 출자해 만든 ‘엔제리너스’는 국내 업체 중 상승세가 가장 가파르다. 프리미엄 커피 수요는 여전히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많고, 그래서 기업들이 속속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나은옥 엔제리너스 홍보팀 주임은 “포화 상태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성장할 여력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제는 프리미엄 커피가 예전에 믹스 커피를 먹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 시장 자체가 커졌고, 소비자들의 요구 수준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국내 업체들은 성장했지만 여전히 프리미엄 커피 시장을 주도하는 곳은 외국 업체들이다. 스타벅스와 커피빈이 절대 강자인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지난해 시장 점유율을 보면 스타벅스가 33%, 커피빈 17%, 할리스 12%, 엔제리너스가 10%를 차지하고 있다. 1, 2위를 외국 업체가, 3, 4위를 국내 업체가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스타벅스와 커피빈의 시장 점유율을 합치면 5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불과 7~8년 전만 해도 70~80%를 넘나들었다. 외국 업체들이 시나브로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내 업체가 선전하는 데에는 변해가는 커피 문화가 한몫하고 있다. 이전에는 어디에서 커피를 마시는가가 중요했다. 스타벅스는 커피가 아니라 ‘스타벅스’라는 브랜드를 팔았다.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이 “우리는 커피뿐만 아니라 문화를 판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정도였다. ‘된장녀’라는 철 지난 신조어가 유행했던 것도 이런 스타벅스 문화 탓이었다.

이제는 어떤 맛의 커피를 마시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는 흐름이다. 프리미엄 커피를 접하는 기회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입맛이 까다로워졌다. 커피 맛은 신선도에 달려 있지만 외국 업체들은 높아지는 소비자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일반적으로 로스팅한 커피가 신선함을 유지하는 기간은 약 20일이다. 하지만 해외 브랜드들의 커피 원두는 귤화위지(橘化爲枳, 강남에 심은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라는 말이 어울린다. 해외 브랜드들이 수입한 원두는 국내에 유통되기까지 보통 수개월 이상이 걸린다. 진공 포장을 하더라도 신선도가 떨어지고 커피를 뽑더라도 맛과 향이 떨어지기 십상이다. 미국에서 느낀 커피 맛이 한국의 그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신선한 원두’ 수요 늘면서 발 빠른 국내 업체들 ‘약진’하기도

ⓒ시사저널 임준선

신선한 원두를 찾는 사람은 날로 늘어나고 있다. 나은옥 엔제리너스 주임은 “일반적으로 커피 종류 중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은 라떼나 모카 종류이다. 하지만 커피의 맛을 그대로 즐길 수 있는 아메리카노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원두 자체에 대한 요구가 늘고 있다는 반증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수요에 발맞춰 커피업체들은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특히 국내 업체들은 이 부분을 공략했고, 효과를 보고 있다. 커피 매장에 갓 볶은 신선한 원두를 공급하고 빠른 시일에 사용할 수 있는 유통 시스템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엔제리너스는 계열사인 롯데칠성 공장에서 원두를 볶고 있다. 지난해까지 OEM(주문자 상표 부착 방식)으로 원두를 공급받던 할리스 역시 올해 1월 경기도 용인에 직접 로스팅 공장을 설립했다. 흥미로운 것은 던킨도너츠이다. 해외 업체이지만 국내 업체들만큼 스타벅스나 커피빈 등과 대립각을 세우던 곳이다. 싼 가격을 내세우며 국내 커피 시장을 공략하던 던킨도너츠는 지난 4월 충북 음성에 1천9백83㎡(약 6백평) 규모의 로스팅 공장을 지었다. 해외 업체가 가진 약점을 스스로 시인하고 보완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커피 시장을 두고 포화 상태라고 말하지만 매일유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세계 백화점 지하 1층 구석에 자리한 ‘커피스테이션 폴바셋’은 매일유업이 설립한 곳으로 늘 사람들이 북적인다.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인 폴바셋이 직접 엄선한 커피 원두만을 사용하고 매장의 바리스타가 그 자리에서 직접 드립해서 커피를 뽑는다. 신선도 면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셈이다. 구자효 매일유업 대리는 “원두를 로스팅했을 때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메인 바리스타가 모두 버린다. 커피 맛을 월등하게 관리하기 때문에 커피 맛을 아는 분들은 이곳만을 찾는다”라고 말했다.

기업화된 국내외 업체들 ‘전쟁’ 여파에 개인 점포는 전멸해

이처럼 커피에 관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지만 원두의 유통 기한이 길다는 약점을 지닌 해외 업체와 짧은 유통 기한에 신선도를 강점으로 내세운 국내 브랜드의 전쟁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전쟁에는 항상 희생자가 생긴다. 대형 마트와 슈퍼슈퍼마켓(SSM)의 진입으로 골목 상권이 위협받듯이 커피 전쟁 역시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

정형상 다빈치 사장은 “외국계 업체나 기업화된 국내 업체들은 수도권에서 지방 쪽으로 눈을 돌리며 전국으로 진출하려고 한다. 이미 개인 점포는 전국에서 다 전멸하다시피한 상태이다. 이제는 중소 업체가 힘들어질 차례가 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자본력이 앞서는 외국 업체와 기존 판매망을 내세워 구석구석 치고 들어오는 국내 업체들의 다툼 속에 중소 업체들은 나름의 활로를 모색 중이다. ‘로즈버드’처럼 소규모 매장으로 전환해 틈새 시장을 노리거나 베이커리나 케이크를 제공하는 카페 형태로 변신하기도 하지만 쉽지 않다. 정사장은 “커피로 유명한 미국 시애틀에서는 스타벅스보다 개인이나 중소 업체가 운영하는 커피 전문점이 더 잘되지만 우리는 아직 멀었다. 얼마나 맛있게 볶아서 다가가느냐가 앞으로 중요하겠지만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을 좋아하는 우리 정서상 장사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시사저널 유장훈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카페 ‘연두’는 5년 전부터 공정무역 커피를 판매하고 있다. 공정무역 커피 유통업체는 유통 비용을 줄여 커피 농가에게 적정한 값을 지급한다. 지금까지 커피 유통업체는 유통 이윤을 과다하게 취하고 정작 커피 농가에게는 헐값을 지불해 윤리 논란을 일으켰다. 카페 연두에는 전체 메뉴의 20~30%에 FT(공정무역; Fair Trade) 표시가 되어 있다. 연두가 처음 공정무역 커피를 거래하게 된 것은 원두 유통사의 추천 때문이었다.

박국현 연두 삼청동점장은 “공정무역 커피가 어떤 것인지는 잘 몰랐지만 테스팅 결과 원두 품질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제3세계 커피 재배자를 돕는다는 뜻으로 공정무역 커피를 들여왔다”라고 말했다. 5년 동안 고객의 인식도 바뀌었다. 초기에는 메뉴판에 적힌 ‘공정무역 커피’ 문구에 대해 무슨 뜻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요즘은 고객 다수가 공정무역 커피가 무엇인지 안다. 인터넷에서 공정무역 커피를 판매한다는 글을 읽고 찾아오거나 메뉴판에 적힌 FT(Fair Trade)라는 문구에 호감을 갖고 메뉴를 선택하는 손님도 있다.

공정무역 커피 유통망이 확대되면서 공정무역 커피 소비도 함께 늘어났다. 아름다운 가게는 2006년 네팔 커피 농가와 공정무역 계약을 맺고 원두 유통을 시작했다. 이듬해 대형 할인 마트와 편의점, 홈쇼핑에까지 진출했다. 한국 YMCA도 동티모르 커피를 들여와 올리브영과 이마트에 공정무역 커피를 유통하고 있다. 판매 실적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매출액은 2006년 1억2천만원이었으나 2007년 3억5천만원, 2008년 9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매출액은 상반기에만 9억원이 넘었다. 지난 10월14일 홈쇼핑 판매는 30분 만에 매진되었다. 

공정무역 커피에 대한 관심이 커졌지만 값이 비싼 것이 흠이다. 공정무역 커피 대부분이 유기농 재배인 탓이다. 재배 시기와 원두 종류에 따라 값에 차이가 있으나 대체적으로 공정무역 원두 값이 일반 원두에 비해 비싸다. 또, 공정무역 커피를 사려면 현금으로 거래해야 한다. 아름다운 가게 홍보캠페인팀 엄소희씨는 “아름다운 가게는 비영리 단체이기 때문에 싼 가격에 커피를 제공할 수 있지만 일반 커피 전문점은 비싼 값에 판매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박국현 점장 역시 “공정무역 커피가 비싸다는 인식을 주지 않기 위해 일반 커피와 가격 차이를 두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전략은 비영리 단체나 가게 규모가 큰 경우에만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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