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거리는 ‘박근혜 대권 시나리오’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9.11.17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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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표가 최근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전에 없이 강한 목소리를 내면서 여권 내부에 심상찮은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이를 두고 본격적인 대권 기싸움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강하다.박 전 대표의 대권 시나리오가 본격화되었다는 얘기도 나온다.‘2012년 대권 승리를 위한 강남 비밀 사무실 가동’ 소문도 있다.

지금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얼마 전 ‘미실’이 비장한 최후를 맞았다. 그녀는 최후의 장면에서 “정천군, 도살성, 한다사군, 속함성, 이곳이 어디인지 아느냐. 이 미실의 피가 뿌려진 곳이다. 그것이 신라다. 진흥대제와 이 미실이 이뤄낸 국경이다”라고 말했다. 신라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그녀는 자신의 권력과 신라의 안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운명의 갈림길에서 끝내 신라의 안위를 먼저 선택했다. 자신을 돕기 위해 국경 수비대의 한 친위부대가 달려오려 하지만, 백제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보고를 받고 회군을 명한 것이다. 그녀의 정적인 ‘덕만공주’도 미실의 이런 모습에 고개를 숙인다.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미실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견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친박(친박근혜)계’ 주변에서 주로 나오는 얘기이기는 하지만, 한나라당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는 박 전 대표를 부각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당을 위해 이명박 후보를 도운 점을 미실의 경우와 비교하는 것이다. 

박 전 대표가 최근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전에 없이 강한 목소리를 내면서 여권 내부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다.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팽배하다. “세종시는 하나의 계기이고, 이제 여권의 권력 게임이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윤여준 전 환경부장관)”라는 분석이다. ‘박근혜 대권 시나리오’가 본격화되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나라당의 ‘친이(친이명박)계’로 분류되는 김용태 의원은 11월9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박 전 대표에 대해 “(세종시 수정안 반대는) 차기 대권을 겨냥한 지역주의에 기댄 정치적 사익 추구의 행태이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민감한 부분인 ‘대권’을 정면으로 언급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정두언·정태근 의원 등도 박 전 대표를 향한 공격에 가세했다. 모두 친이계 핵심 인사들이다. 친박계에서는 “드디어 저쪽에서 싸움을 걸어오기 시작했다”라며 강하게 응전했다.

김의원은 11월13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각자의 개인적 소신일 뿐, 조직적이거나 그런 것은 없다”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세종시 문제 등으로 인해서 차기 대권 싸움에 이미 불이 붙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라고 밝혔다. 그는 “친이계라고 해서 박 전 대표는 절대 (대권 후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그런 입장은 아니다. 박 전 대표는 현재 가장 유력한 대권 후보로 지목되는 우리 당의 소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지금은 여당으로서의 역할이 먼저이지, 개인의 대권 행보를 우선할 때가 아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친이계의 핵심 인사로 거론되는 한 재선 의원은 최근 사석에서 기자에게 “이회창 총재가 (대권 도전에) 왜 실패했나.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대선 전에 이미 대통령이 다 된 듯이 행동했다. 그래서 졌다. 묘하게도 지금 박 전 대표는 이총재가 가던 길을 그대로 가고 있다.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제왕적이다”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한 친이계 인사는 “친박계 쪽은 박 전 대표의 대권 시나리오만 염두에 둔 채 움직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가는 길이 우리와 다르다”라는 얘기도 했다.

‘박근혜 대권 시나리오’는 존재하는 것일까. 친박계에서는 “박 전 대표의 성격상 혹시라도 그런 문건을 작성한 자가 있다면 경을 칠 것이다”라고 손사래를 친다. 지난 2007년 11월 당시 <시사저널>이 단독 보도한 ‘박근혜 친위 그룹 ‘파랑새단’ 활동 문건 입수’ 기사가 나간 뒤 관계자들이 박 전 대표에게 불려가 크게 혼이 난 일화를 친박계의 한 인사가 귀띔해주기도 했다. 박 전 대표가 끔찍이 싫어한다는 것이다. ‘수첩 공주’라고 불릴 정도로 박 전 대표는 측근이나 주변 관계자의 얘기를 직접 적는 방식을 선호한다. 하지만 대권 시나리오라는 것이 친박계 인사 각자의 머릿속에는 이미 다 들어 있는 구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친박계 주변에서도 이것까지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그들이 꿈꾸는 ‘박근혜 대권 시나리오’는 무엇일까. 지난 3월 기자는 친박계 의원들을 대상으로 설문 인터뷰를 실시한 바 있다. 당시 인터뷰에 응한 의원들 및 친박계 인사들은 한결같이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계파의 단합 및 결속을 말하는 것이었다. “내년 6월 지방선거가 분기점이 될 것이다. 그때까지는 조용히 있어야 한다”라고도 했다.

지금도 이런 공식은 변함이 없다. 친박계의 한 인사는 “내년까지 박 전 대표가 직접 크게 움직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친박계) 조직은 내년 지방선거 후부터는 가동되어야 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세종시’ 문제가 돌출되면서 변수가 생겼다. 예전의 방식대로라면, 또 친박계 내부에서 공감하고 있는 시나리오대로라면, 지금 세종시 문제로 친박계가 똘똘 뭉치고 나서는 것은 분명히 ‘속도 위반’이다. 이에 대해 친박계의 한 인사는 “우리 쪽의 의도를 읽고 저쪽에서 먼저 싸움을 걸어왔기 때문에 그냥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라고 설명한다. 지금의 구도가 굳어지기 전에 판을 흔들어야 하는 청와대 및 친이계측의 입장에서는 세종시의 원안을 수정함으로써 박근혜를 흔들고, 대항마를 띄우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즉, 이명박 대통령은 절대 ‘박근혜 대통령 후보’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속내를 분명히 드러냈다는 것이다.

당 밖에서 보는 견해도 이와 비슷하다. 한나라당 의원으로 여의도연구소장을 지낸 바 있는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은 최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박 전 대표라면 이대통령이 두 정씨(정운찬 총리,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를 등장시킨 배경에 2012년(대권)의 경쟁 구도를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함 직하다. 두 정씨가 세종시 문제를 수정하는 쪽으로 추진해 간다면 박 전 대표 스스로 정치적 입지가 어떻게 된다고 보았을까. 이대통령이 끝내 자기를 도와줄 것 같지 않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단계에서 일단 한번 진검 승부를 하자. 그래서 초기에 기선을 제압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라고 진단했다.

친박계측에서는 향후 친이계의 ‘흔들기’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수도권에서 기초단체장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한 친박계 인사는 “당 지도부에서 지방선거 기초단체장 및 지방의회 의원 후보 공천권을 다시 중앙당에서 행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 때 박 전 대표가 각 시도당 위원장이 공천권을 행사하도록 당헌·당규로 정한 것을 되돌리려는 것이다. 최근 친박계 인사들이 시도당 위원장에 대거 당선된 것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만약 이를 실제 추진한다면 지방선거를 앞두고 친박계를 또 한 번 뒤흔들려는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당 제1사무부총장을 맡고 있는 안홍준 의원은 “일각에서 그런 의혹이 나도는지는 몰라도 당에서 공식적으로 논의된 적은 한 번도 없다”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안의원 역시 친박계로 분류된다.

▲ 김무성 의원 등 한나라당 내 친박계 모임인 여의포럼 의원들이 11월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주호영 특임장관(왼쪽 세 번째)은 참관차 참석했다. ⓒ시사저널 임영무

친박계 “탈당 따른 분당 가능성은 0%도 없다”

친박계 주변의 최근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조직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2007년 경선 캠프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인사들이 최근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표의 2012년 대선 승리를 위해 서울 강남의 모처에 ‘비밀 사무실’이 운영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물론 친박계 인사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젓는다.

▲ 지난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 30주기 추도식에서 박지만씨(왼쪽)와 박근혜 전 대표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친박계 주변에서는 ‘범박(凡朴)’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범박근혜계’를 일컫는 것으로 친박계의 확대 전선을 뜻한다. 현재 한나라당 내 친박계는 60~63명으로 분류된다. 친박계측에서는 “범박까지 포함하면 90명에 이른다”라고 말한다. 친이도, 친박도 아닌 중도를 표방하지만, 심정적으로 친박 쪽에 가까운 인사들을 일컫는 것이다. 3선의 이한구 의원은 얼마 전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날더러 자꾸 친박 아니냐고 하는데, 분명히 말해서 나는 중도이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가장 강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는 이의원은 대표적인 범박계로 꼽히고 있다. 친박계측에서는 지방선거가 끝나고 박 전 대표로의 대권 구도가 점점 가시화될수록 범박계의 숫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일각에서 제기되는, 친박계가 탈당해 한나라당이 분당되는 시나리오에 대해 친박계 쪽에서는 “단 0.1%의 가능성도 없는 얘기이다”라고 일축한다. 최근 정치권에서 떠도는 ‘친박+자유선진당’ 연대론, 혹은 ‘친박+충청 세력’의 신당 창당론을 두고 하는 말이다. 친박계의 한 인사는 “나가려면 세입자가 나가야지, 집주인이 나간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며 탈당설의 진원지로 친이계를 지목했다. 실제 친이계의 한 의원은 기자에게 “최근 김용환 전 의원 등이 거론되는 친박계와 충청권 정치 세력의 신당 창당설이 나오더라”라고 귀띔해주기도 했다.

친박계의 약점도 지적된다. 최근 세종시 문제로 전에 없이 강한 결속력을 보이고 있지만, 과거 ‘동교동계’나 ‘상도동계’처럼 패밀리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친박계 내부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고 있다. 당 밖에서 활동 중인 친박계의 한 인사는 “솔직히 친박계의 결속력은 매우 약하다. 강한 카리스마의 ‘보스’가 있으니까 그 아래 모여들 뿐이지, 박 전 대표가 없으면 모두 흩어질 사람들이다. 지금도 보면 박 전 대표 앞에서는 충성하고, 자기들끼리는 서로 싸우고 있지 않나. 좌장도 없고 중간 보스도 없다. 박 전 대표 스스로가 절대 2인자나 측근을 만드는 스타일이 아니다. 일종의 박근혜 팬클럽 성격이다”라고 밝혔다.

친이계측에서도 이런 친박계의 성격을 간파하고 있다. 각개 격파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현재 박 전 대표가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질주하고 있기 때문에 주변에 의원들이 모여 있는 것일 뿐, 대권 주자 구도가 바뀌면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라는 것이다. 친이계의 한 의원은 “박 전 대표에 맞설 여권의 유력 대선 후보가 한 3~4명은 형성되어야 한다. 아직 시간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라고 전했다. 친이계측의 전략은 정총리와 정대표를 포함해 유력 대권 주자들이 각축을 벌이다가 막판 단일화를 통해 현재 선두인 박 전 대표와 정면 승부를 벌이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내년 7월의 전당대회에 맞춰 당 밖에 나가 있는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과 김문수 경기지사가 당에 복귀할 것이라는 관측도 그런 맥락과 맞물린다. 이대통령도, 박 전 대표도 벌써부터 ‘대권’ 경쟁이 불거지는 것을 원치 않는 눈치이지만, 세종시 문제로 이미 권력 전쟁은 시작된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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