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가 다양해져야 민주주의 발전”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9.12.22 17:3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토크쇼 진행자 자니 윤 인터뷰

ⓒ시사저널 임준선

풍자와 재치로 1980년대 후반을 풍미했던 토크쇼 진행자 자니 윤 씨(본명 윤종승ㆍ73)는 웃음이 만연한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강조한다. 웃음이 민주주의 발전의 기본이라는 말이다. 48년 코미디 인생을 산 윤씨는 한국 연예계의 신변잡기식 농담이나 몸개그에 촌철살인의 비판을 가했다. 지난 12월1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요즘의 예능 프로그램을 평가한다면.

<무릎 팍 도사> <놀러와> <하땅사> <개그콘서트> <웃찾사> 등 거의 모든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 그런데 코미디에 시사성이 없다. 연예인 신변잡기나 홍보 마당이다. 또, 몸개그로 젊은 층을 자극하는 데에 그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코미디가 다양해져야 한다. 가십거리도 있고 사회적 이슈를 소재로 삼는 코미디도 있어야 한다. 젊은 층을 위한 개그가 존재하면 중·장년층을 위한 토크쇼도 필요하다. 그래야 사회가 건강해진다. 

말이든 몸이든 웃기면 되는 것 아닌가?

말로 하는 우스갯소리는 사람들 사이에 입을 통해 퍼져간다. 사회 전체를 웃게 하는 마술과 같다. 그러나 몸개그는 설명하기도 어려워서 퍼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몸개그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어떻게든 사람을 웃게 하므로 좋다. 다만, 더 많은 사람이 웃는 사회를 생각하면, 말로 하는 코미디가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사회는 어떤 사회라고 보는가?

독재 국가에서 웃는 사람을 본 적 있는가. 경직된 사회에서는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을 때 비로소 미소가 퍼진다. 웃음이 있어야 건강한 사회이다. 건강한 사회는 곧 민주주의의 발전을 의미한다. 일개 코미디언이 건방지게 민주주의를 들먹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웃을 수 있는, 건강한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건강한 사회인가?

코미디를 대하는 국민 의식 수준도 높아졌다. 과거에는 통하지 않던 코미디가 지금은 먹힌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아내의 신용카드를 도둑맞은 남편이 경찰에 신고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도둑이 아내보다 카드를 절반도 쓰지 않기 때문에 도둑을 잡지 않는 편이 낫다고 했다. 신용카드가 뭔지 몰랐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이런 조크(joke)가 통한다.

지금은 정치인을 빗댄 풍자가 자유롭다고 보는가?

정치인이든 경제인이든 어깨에 힘을 빼야 한다. 미국의 한 상원의원은 TV에 출연해 이런 말을 했다. 상원의원이 권총 강도를 만났다. 상원의원이라는 신분을 밝히자 강도가 ‘당신이 훔쳐간 내 돈 내놓으라’고 했다. 혈세를 잘못 쓰는 정치인을 정치인 스스로 비꼰 사례이다. 이런 여유가 있어야 건강한 사회가 아니겠는가. 국회의원은 뇌물을 잘 먹는다. 왜 그럴까? 익힌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과 생음식을 즐기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국으로 먹고 회로 먹는 사람이 모인 곳이 국회이다. 이 유머를 웃고 넘기는 국회의원과, 방송국에 전화 걸어 따지는 국회의원 중에서 누가 국민을 위한 사람일지는 명확해진다. 

건강한 사회를 위한 유머는 어떤 것일까?

시사성을 담은 유머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이슈거리를 토크쇼와 코미디에 접목시켜야 한다. 아동 성폭력 등 매일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 생겨난다. 미국에 있을 때 탤런트 최진실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 내가 한국에서 ‘진실’이 없어졌다고 말해서 주변 사람들이 잠시 웃었던 일이 있다. 비관적인 일을 곱씹으면 건강만 해치고 답도 없다. 그러나 웃어넘기면 희망이 생기고 답도 보인다.

토크쇼의 명맥이 끊어진 이유를 생각해보았는가?

친한 후배인 이주일씨와 박중훈씨도 토크쇼를 진행했지만 몇 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이런 일련의 일 때문에 한국에서는 토크쇼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그보다는 진행자의 입담과 인기를 앞세운 것이 실책이었다. 토크쇼의 성패는 진행자의 순발력에 달려 있다. 게스트의 말을 잘 받아치며 이끌고 갈 수 있는 애드리브(ad lib)가 필요하다. 한국이 결코 토크쇼에 부적합한 나라가 아니다. 또, 한국 토크쇼의 무대도 문제가 있다. 진행자와 게스트의 거리가 멀다. 방청객도 젊은 아가씨들이다. 그 안에서 공감대가 형성되기 어렵다. 국내 방송사는 때가 되면 거액을 들여 무대를 거창하게 꾸미려고 한다. 30년 된 미국의 <쟈니 카슨 쇼>의 무대는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겉치레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유재석이나 강호동같이 순발력 있는 진행자가 있지 않은가?

그들도 좋은 진행자이다. 그러나 연령층이 다르다. 50대 이상 장년층은 유재석의 <패밀리가 떴다>나 강호동의 <1박2일>을 보지 않는다. 장년층을 위한 진행자와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한 방송사 예능국장이 이런 말을 했다. 중·장년층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지만, 요즘 PD들이 젊어서 중·장년층을 이해하지 못해 방송 제작이 어렵다고 했다. 이런 정신 상태를 가진 사람이 예능국장으로 있으니 한국 예능계가 다양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사회에 필요한 프로그램이라는 판단이 서면 다른 PD를 데려와서라도 해야 하는 사람이 예능국장 아닌가.

미국 유명 토크쇼의 공통점은 일대일 대화 방식이다. 이것은 여러 명이 모여 수다 떠는 한국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시각도 있다. 

<미녀들의 수다>나 <무릎 팍 도사>와 같은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들은 여러 명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이지 토크쇼가 아니다. 내용도 개인의 삶이나 신변잡기가 주류이다. 사회적인 문제를 코미디로 승화시키지도 못한다.

내년 1월부터 방송을 진행할 계획으로 안다.

앉아서 하는 토크쇼가 아니라 서서 진행하는 버라이어티쇼이다. 노래도 있고 유머도 한다. 토크쇼만 웃음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후배를 양성하고 싶다. 후배들 중에는 말로 하는 코미디를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설 곳이 없어 고품격 코미디를 포기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싶다.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사회가 어려워도 인생은 한 번이다. 웃고 살아야 한다.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웃고 살자고 말하고 싶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