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지 않는 풍차’ 지방 공립 미술관
  • 정준모 | 문화정책·국민대 초빙교수 ()
  • 승인 2009.12.29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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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들 너도나도 건립한 후 관리·운영은 뒷전

▲ 제주 도립 미술관의 외관은 뛰어나지만 운영은 건물의 위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주)간삼건축


최근 ‘창조 도시’, 또는 ‘도심 재창조’라는 이름의 사업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벌이는 이 사업의 요체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예외 없이 미술관이나 공연장 등 문화예술 시설을 설립하고 발전시키겠다고 내세운다. 문화와 예술이 창의력을 자극하고 발전시킨다는 근거 없는 믿음은 오페라극장과 미술관 건설로 이어져 공립 미술관의 경우 2001년 여덟 곳에 불과하던 것이 2009년 말에는 28곳으로 늘어났다. 2010년 개관 예정인 대구시립미술관을 포함하면 29곳이 될 예정이다. 

미술관 개관이 러시를 이루는 상황을 미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두 손 들어 환영해야 할 텐데 왜 걱정을 하는 것일까. 그 답은 간단하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설립·운영하는 대부분의 공립 미술관들이 미술관의 최소 조건조차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네스코(UNESCO) 산하 국제박물관협의회(ICOM)는 ‘미술관·박물관의 기본 원칙 및 전문 직원의 윤리 요강’(Code of Ethics for Museums)을 정했다. 미술관·박물관의 최소한의 조건이자 글로벌 스탠더드이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지자체가 설립해 운영하는 미술관이나 박물관 가운데 이 원칙에 부합하는 곳은 한 군데도 없다.

미술관은 작품과 전문 인력 그리고 건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미술관 건물을 짓기 전에 먼저 작품 수집을 해야 한다. 메뉴가 결정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릇을 장만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것은 한국에서는 가능한 일이고 전혀 이상한 일도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이다. 미술관을 구상할 당시, 근대적(Modern) 개념의 미술관으로 설계하고 건축을 완료했지만 근대미술을 수집하려 하자 예산이 부담되었다. 그래서 한글 명칭인 국립현대미술관은 그대로 두고 영문 이름은 당초 ‘National Museum of Modern Art, KOREA’에서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KOREA’ 로 슬그머니 바꾸었다. 그 후 근대미술관 용도로 지어진 건물을 현대미술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사용하면서 지금까지 적잖이 난처한 일을 겪고 있다. 한 번의 실수라면 봐줄 수 있으련만 이런 시행착오는 여전히 계속된다.

지방자치단체가 앞다투어 미술관을 짓는 까닭은 무엇일까. 미술관의 필요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음 선거를 위한 자치단체장의 치적용이자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건립할 때 비용 가운데 30%를 중앙 정부가 지원해주는 점을 이용해서 국고보조금을 조금이라도 더 타내기 위한 수단인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중앙 정부는 무조건 지원하기보다는 기본적으로 수집된 작품의 질과 양을 검토해서 국고를 지원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해야 마땅하다.

지자체들은 미술관을 세우면서 지방 경제의 활성화, 지역민들의 자긍심 고양, 관광 자원의 확대 등을 들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지역 사회에 미술관이나 공연 시설이 들어서면 자치단체의 재정적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나마 제대로 기능하려면 ‘돈’이 따라야 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제 아무리 많은 관객이 쏟아져 들어온다 하더라도 어떤 공연 시설이나 미술관도 자신들이 사용하는 예산의 50% 이상을 벌어들이지 못한다. 따라서 50% 이상의 예산을 매년 지자체에서 지원해주어야 한다. 

전문 인력·소장품도 없고 일부는 ‘대관’까지

▲ 일본 도요타 시립 미술관은 훌륭한 운영으로 유명하다

지차제들은 우선 문을 열고 본다. 임기 중 테이프커팅을 하는 것이 향후 어떻게 운영하고 유지·보수를 하느냐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개관식을 마치면 미술관과 문예회관은 천덕꾸러기가 되고 만다. 게다가 전임 단체장이 개관한 경우 새 단체장은 정적인 전임자 시절에 세운 미술관이 잘 되기를 바랄 턱이 없다. 그러다 보니 미술관은 당연히 고장 난 시계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단지 장식용으로 존재할 뿐이다.

소장품 없이 출발한 미술관의 경우 소장품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시될 수밖에 없다. 작품을 구입하는 데는 적지 않은 예산이 필요하다. 운영 경비도 부족한 처지에 소장품까지 구입하려면 여력이 없다. 사실 한국 공립 미술관들에서의 작품 구입을 위한 예산은 평균 5억~7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작품 한 점 가격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고 보면, 어느 세월에 유럽이나 미국의 중소 도시에 있는 미술관과 견줄 수 있을까. 이런 태생적인 한계로 인해 한국 공립 미술관들의 운명은 비참하다.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처지인데 억지로 세상에 끌려나온 꼴이다.  

더욱 큰 문제는 무자격자들이 미술관을 키우고 기른다는 것이다. 대개 지방의회는 자치단체가 건립·운영하는 미술관의 운영보다는 길을 닦고, 물길을 여는 사업에 관심이 높다. 연명하기도 어려울 만큼 쥐꼬리만한 미술관 예산은 삭감당하기 일쑤이다. 과시용 축제나 소모성 이벤트에는 수십억 원씩 배정하면서 작품을 구입하거나 기획 전시를 하는 예산을 쓰는 데는 인색하다. 그러다 보니 미술관은 전시장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 미술관을 경영하고 전반적인 활동을 관장할 관장(Director)의 경우 단체장과의 친분이나 지역 연고에 따라 정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미술관과는 다른 실기를 전공한 작가를 미술관장에 보임하는 후진적인 행태를 보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서울·부산·대전·광주·포항 등의 시립 미술관과 전남 옥과미술관, 보성군립 백민미술관 등이 이런 경우에 속한다. 제주 도립 미술관과 제주 도립 현대미술관의 경우 공무원들이 미술관장을 맡고 있는 웃지 못할 경우에 속한다. 또, 양구 군립 박수근미술관의 경우 관장이 없고, 서귀포 시립 이중섭미술관의 경우는 관장 없이 명예관장만을 두고 있다. 따라서 미술관은 간판만 존재할 뿐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미술관을 통해 지역 문화를 활성화하고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의지가 전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전문성이 부족한 관장 체제에 더해 공립 미술관들은 지역 사회에서 원로라고 자칭하는 지역 미술인들로 구성된 운영위원회나 자문위원회를 두고 있다. 이들의 입김은 관장의 결정권보다 세다. 이들이 미술인이라고 하지만 미술관을 전공한 이들은 아니다. 즉, 뮤지올로지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미술관 운영에 관여하는 것은 치과의사가 맹장수술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도 미술관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단지 미술인, 또는 미술대학 교수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따를 뿐이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미술관의 필수 요원인 전문 인력, 즉 뮤지움 프로페셔널 한 명도 없이 공무원들만으로 움직이는 미술관도 허다하다. 학예연구원조차 없는 제주도의 어느 미술관에서는 최근 일반 행정직 공무원들이 작품 구입 공고를 내고 작품을 선정하고 구입하는 참담한 일까지 벌어졌다. 학예연구원 외의 전문 인력인 교육 담당자, 등록 담당자(Registrar), 보존 담당자, 전시 디자이너, 사서, 소장품 관리자, 사진기사 등을 두고 있는 곳은 전무하다. 결국, 껍데기만 존재한다는 말이 절대로 부풀려진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 공립 미술관의 실상이다.

이처럼 전문 인력과 소장품이 부족하다 보니 경우에 따라서는 공공 미술관이 결코 하지 말아야 할 대관을 하는 경우까지 생기는 실정이다. 또, 외부의 기획 공모를 통해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외부에 맡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ICOM의 기본 원칙에 의하면 미술관과 박물관은 5년마다 중·장기적인 소장품 수집 계획을 수립해서 시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30여 곳에 달하는 우리나라 공립 미술관 중 어느 곳도 이런 계획을 수립해서 시행하는 미술관은 없다. 전북 도립 미술관의 경우 개관 당시 소장 작품이 80여 점에 불과해서 미술관 등록 여건에도 미치지 못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해서 국고 지원금이 회수되거나 개관에 차질을 빚은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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