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총장·교육 관료 다수 배출 예술계에도 큰 산맥 형성
  • 이춘삼 | 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1.1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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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시사저널 박은숙


교육을 국가백년지대계라고 부른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 중요성이 망각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교육의 담당자와 그 수혜자 모두에게 그렇다. 교육학계의 거목으로 추앙받는 정범모 전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국내 교육학을 학문의 차원으로 한 단계 끌어올려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김종서 교수와 동기이자 원로로서 서울대 사범대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충북대와 한림대 총장으로 재직했는데, 관직에는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 학계에는 그를 참스승으로 존경하고 따르는 후배 제자들이 많다.

서울대 사대 출신은 아니지만 천원(天園) 오천석 선생은 광복 후 우리 현대 교육의 초석을 닦은 교육계의 태두이다. 해방 직후 우리나라 문교 행정의 책임자로서 교육 제도, 교육 법규, 교육 과정, 교과서 편찬 등 민주 교육 체제의 확립과 국립 서울대 설립안(국대안), 대한교육연합회(현 한국교총) 설립을 주도했다. 1987년 오천석 선생의 장례는 처음이자 마지막 ‘교육인장’으로 치러졌다.

사범계 출신이 교육계에 다수 진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따라서 각급 학교 총장과 교수, 교장과 교사 중에는 서울대  사대 동문들이 가장 폭넓게 퍼져 있고 그들이 중심 세력을 이루고 있다. 공무원 사회에서는 교육부와 각 시·도 교육위원회 등에 가장 많은 동문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국회의원 5명, 총리 2명 나와

그러나 서울대 사대 동창회의 김창철 상임부회장은 “정계나 관계의 고위직에 국한해서 보면 사범계의 진출이 의외로 적은 편이고 심지어 여러 부처 중에서 숫자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교육부 내에서도 사범계보다 비사범계 출신 고위직이 많다”라며, “아마도 사범계 출신들의 교사 지향적 성향이라는 것이 대체적으로 적극적이지 못해 로비력 면에서 떨어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풀이한다.

국회의원은 17대 국회에서 9명이던 것이 18대 들어 5명으로 줄었다. 류근찬(자유선진당), 심재철·임해규(한나라당), 원혜영·안민석(민주당) 의원이 그들이다. 지방자치단체장으로는 안상수 인천시장이 있다. 서울대 사대는 또 두 명의 총리를 배출했다. 정원식 전 총리와 이영덕 전 총리가 그들이다. 이 두 전직 총리와 교육학과 동기생 중에는 오병문 전 교육부장관도 있다.

사실 김종필 전 총리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1926년생으로 올해 84세인 그는 공주중학교 4년을 수료하고 1년간의 대전사범학교 시절을 거쳐 1946년 서울대 사대 교육학부에 입학했다. 3년 수료 후 육사 8기로 입교해 임관했다. 35세 때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5·16 거사에 참가해 초대 중앙정보부장을 지냈고 민주공화당 창당준비위원장으로서 정치 일선에 나섰다. 6~10대, 13~16대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박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밑에서 두 차례 국무총리를 지냈다. 수필·그림·서예·바둑·전자오르간·만돌린·검도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재능을 보인 그는 ‘영원한 2인자’라는 칭호를 들으며 한국 근대 정치사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3김’의 한 축으로서 큰 족적을 남겼다.

사대 출신 가운데는 관계·법조계 등 파워 엘리트 인맥도 적지 않다. 법조계 인물로는 한성수 전 대법원 판사와 신성택 전 대법관, 성광원 전 법제처장(장관급)이 눈에 띈다. 영어과 59학번으로서 졸업 후 고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12회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한 후 검사로 근무했던 이진록 변호사도 있다.

청와대에는 서울대 사대 교수 출신의 진동섭 교육과학문화수석비서관(교육 70)과 김정기 교육비서관(교육 74)이 있었다. 2002~03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을 지낸 이상주 전 성신여대 총장은 직업이 ‘대학 총장’이라고 불린 인물이다. 서울대 사대 교수를 지내고 강원대·울산대·한림대·성신여대 총장을 두루 역임했다. 대통령 교육문화수석비서관, 대한태권도연맹 회장, 아시아태권도연맹 회장, 세계대학총장협의회 한국집행위원장, 정신문화연구원장, 대통령 비서실장을 차례로 지냈을 만큼 관운도 특출했다. 

▲ 서울대학교 자연대학 ⓒ시사저널 박은숙

이돈희 전 교육부장관과 박성수 전 전주대 총장은 모두 장관과 총장이라는 고위직을 마치고 난 후 고등학교 교장으로 봉직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 전 장관은 2003년 민족사관고등학교 제5대 교장으로 취임해 한때 경영난을 겪었던 이 학교의 발전 기틀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박성수 전 총장은 2002년 8월1일 가을 학기부터 서울 명지고 교장직을 맡은 후 한 차례 연임해 재직 중이다. 박 전 총장은 1969년부터 30년간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로 청소년 상담 교육에 매진해 온 교육학자이다. 그가 전주대 총장직을 퇴임한 후 여러 대학으로부터 받은 총장 영입 제의를 사양하며 지내던 중 고교 교장 자리로 가게 된 것은, 선우중호 당시 명지대 총장의 간곡한 권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선우총장은 “명지고를 공고육 재건의 모범 사례로 만들어보고자 결례를 무릅쓰고 청소년 교육 전문가이자 대학 총장을 지내신 박총장을 초빙했다”라고 말했다. 서울대 사범대 은사이자 교육학과 교수로 함께 재직한 정원식·이영덕 두 총리의 격려도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임향순 다함 세무법인 대표이사 회장은 1964년 사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제10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재무부 관세국·국고국, 국세청의 각급 세무서장, 광주지방국세청장 등을 역임했으며 2001년부터는 세무사로 활동하고 있다. 22대와 24대 한국세무사회 회장으로 재임했다.

 

한국전쟁이 휴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1955년 서울대 사범대 역사학과를 졸업한 박병선씨는 우리 문화재에 쏟은 각별한 열정으로 주목되는 인물이다. 그녀는 병인양요의 소용돌이 속에 프랑스가 빼앗아간 우리 유물을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프랑스로 건너갔다. 소르본느 대학과 프랑스 고등교육원에서 각각 역사학과 종교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일자리를 얻었다. 1967년부터 13년에 걸쳐 도서관에 쌓인 3천만종이 넘는 장서를 뒤진 끝에 마침내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과 외규장각 도서 2백97권을 찾아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주불 한국대사관에 알렸다. 그러나 프랑스측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녀는 사표를 내고 개인 자격으로 도서관을 찾아가 열람을 신청했다. 어렵게 열람 허가를 얻어낸 후 다시 10년 동안을 찾아다니며 외규장각 도서의 목차를 베끼고 내용을 요약하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고난 속에서 우리 문화재 되찾기에 앞장선 그녀가 노년에 치유가 힘든 병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사범대 출신으로 언론계에 입문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 중 상당수는 졸업 후 중·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신문·방송 쪽으로 자리를 옮긴 경우이다.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역임하고 문화관광부장관과 정무장관을 지낸 주돈식씨가 그런 사례이다. 소설가이자 언론인인 선우휘 전 조선일보 논설고문은 서울대 사대의 전신인 경성사범 출신으로서 정훈장교로 군 생활을 한 후 예비역 대령으로 예편했다. 이 밖에 이환의(MBC), 최준명(한국경제신문), 전만길(서울신문), 이병순(KBS), 이정식(CBS) 씨 등이 언론사 사장을 지냈다. 현역 40년이라는 최장 경력의 박종세 어나운서는 낭랑한 음성의 스포츠 중계뿐만 아니라, 5·16 새벽에 낭독한 혁명 공약으로 더 많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전영우 어나운서도 사대 국어과 출신이다. 1989년 EBS에 출연해 강의하면서 ‘밑줄 쫙’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서한샘 한샘학원 원장은 학원가에서 얻은 명성을 바탕으로 15대 국회의원도 지냈다. 그는 예전에 했던 출판과 학원 사업에 다시 전념하다가 최근 인천시의 투자를 받아, 사교육비를 절감하고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교육 복지를 실현시켜주자는 취지에서 새롭게 인터넷 교육방송을 시작했다.

자연대학

서울대 자연대는 우리 과학계에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그 가운데서 특히 눈에 띄는 인물은, 과학기술처장관을 지냈고 대통령 후보로도 출마한 적이 있는 정근모 한국전력 원자력 담당 고문이다. 그는 지난해 12월15일, 우리나라 기업과 무려 47조원짜리 원자력발전소 건립에 합의한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정부의 초대 원자력 국제 자문위원에 위촉되어 세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한스 브릭스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과 함께 앞으로 3년간 UAE의 제반 원자력 업무를 자문하게 된다.

홍성대 상산학원 이사장(수학·1957년 입학)은 입시 수학 참고서 <수학의 정석>으로 일가를 이루었다. 서울대 수학과를 나온 홍이사장은, 종로학원 수학 강사를 시작으로 험난한 학원강사의 길로 접어들었으나 탁월한 두뇌와 근면성으로 <수학의 정석>을 참고서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려놓으며 입지를 굳혔다. 그는 자립형 사립고 상산고를 설립하기도 했다. 김명자 전 환경부장관은 3년8개월 동안 재임해 역대 여성 장관 중 최장수 기록을 남겼다. 

음악대학

서울대 음대 출신들은 대체로 교직이나 오케스트라 단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화개장터> 등으로 유명한 대중가수 조영남씨는 3학년을 수료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동생인 박근영 전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이사장도 음대 출신이다.

미술대학

서울대 미대와 홍익대 미대는 우리나라 미술계의 양대 산맥이라 불린다. 그만큼 쟁쟁한 화가들도 많이 배출했다. 서울대 미대 출신 가운데는 한국화의 대가로 꼽히는 이열모·이종상·서세옥 화백 등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 많다.

또한, 그림 말고 다른 재능으로 유명한 사람도 있다. 김병종 화가와 가수 김민기씨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김병종 화가는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성균관대에서 동양철학 박사 과정을 마쳤다. ‘미술기자상’ ‘선미술상’ ‘한국미술작가상’ ‘기독문화대상’ 등의 미술상을 잇따라 수상할 만큼 화단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대학 재학 시절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고, 그해에 ‘대학민국 문학상’ ‘삼성문화재단 저작상’ 등을 받는 등 문학 방면에도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서울대 미대학장, 서울대 미술관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 미대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회화과를 전공한 가수 김민기씨이다. 그처럼 곡 하나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례를 쉽게 찾을 수 없다. 양희은씨의 청아한 목소리로 옷을 입힌 <아침이슬>은 군사정권에 짓눌린 젊은이들의 가슴에 파고들어 한 시대를 상징하는 노래로 자리 잡았다. 이 노래는 지금까지도 대학가에서 애창될 정도로 시대를 이어 큰 울림을 남기고 있다.  

 

※ 인맥 시리즈 ‘서울대’ 편은 이번 호로 마치고 다음 호에는 ‘목포·신안·무안’ 편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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