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서남부의 인재 산실 ‘동교동 권력’으로 정점 찍다
  • 이춘삼 | 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1.26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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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획 시리즈 - 한국의 신 인맥 지도 | 전남 목포권

▲ 목포시 전경 ⓒ시사저널 유장훈


모든 길은 목포로 통한다. 이는 적어도 서부 전남 지역에서는 통하는 말이다. 목포를 중심으로 하는 서부 전남 생활권은 신안, 무안, 영암, 해남, 강진, 완도, 진도를 아우르는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는 예부터 교역의 중심이 목포였고, 자녀를 주로 유학 보내는 곳 또한 이곳이었다. 특히 진도, 완도를 비롯한 도서 지역에서는 목포가 육지로 접하는 1차적인 관문이었다.

목포의 근세사는 1897년 개항으로부터 시발된다. 목포는 근대적 의미의 개항이 되기 전에도 이미 바다를 지키는 수군 기지가 설치되어 있었고, 수백 년 전부터 배가 드나들던 나루터였다. 목포는 우리나라에서 부산-원산-인천에 이어 4번째로 문을 열었다. 그러나 목포의 개항은 이전 다른 지역이 외세의 강압 혹은 불평등 조약으로 이루어진 것과는 달리 당시 대한제국 정부가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추진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목포의 개항은 단순히 목포에 국한되지 않고 전통적인 사회를 답습하던 호남 지방 전체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당시 개항된 목포는 봉건적인 양반 지배 체제로부터 벗어난 신천지였다. 이곳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는데 이들의 계층은 상인, 농민, 지주 등 다양했다. 이들은 서양 선교사들을 접하고 개항장을 통해 전파되는 서양 근대 문물에 눈을 뜨게 되었다. 개항 후 목포항을 통해 이루어진 무역은 1차 산품인 미곡이나 면화 수출이 주류였고, 공산품이 주로 수입되는 저개발형 통상 구조였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흑(黑)3백(白)’이라 하여 김, 쌀, 면화, 소금을 중심으로 한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져 목포에서는 물산이 풍부한 호남 제1의 도시라는 우월감이 대단했다.

목포고·문태고·목포상고 등 명문고, 명사 다수 배출  

일제는 자국민들을 대거 이주시켜 유달산을 중심으로 바다 쪽에 일인 거류지를 형성했다. 이들을 조망할 수 있는 언덕에 일본 영사관을 짓고 재판소와 경찰서를 두었으며, 수탈의 전초 기지인 동양척식회사를 세웠다. 지금도 목포 시내 도처에서 일제 강점기 시대의 흔적은 흔히 발견된다.

목포 지역에서는 목포고, 문태고, 목포상고, 목포공고가 명문 고     등학교로 꼽힌다. 서울이나 광주로 유학을 가는 예외를 빼고는 대부분이 이들 학교로 진학을 했다. 표에서 알 수 있듯이 각지에서 유학 온 수재들이 이들 학교에 몰렸다. 이러한 목포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물은  ‘신안군 하의도-목포상고’ 출신인 김대중(DJ) 전 대통령이다. 지난해 서거해 국민들을 슬프게 한 김 전 대통령은 한국 정치사에 큰 획을 그은 거목이었다. 김 전 대통령 집권 시절에 목포를 중심으로 한 이 지역 출신 인물들이 다수 권부에 진출해 활약한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동교동계’로 지칭되는 정치 세력은 우리의 정치사에서 한때 막강한 위력을 떨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현 시점에도 동교동계 전체가 권노갑 전 민주당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움직이고 있다. 이 모임에는 한광옥 민주당 상임고문과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김옥두 전 의원도 자주 참석한다. 모이는 인원은 전 의원들까지 포함해 40여 명으로 추산되는데, 지난해 가을에는 DJ 생가도 함께 찾는 등 결속력을 과시하고 있다. 권노갑 전 최고위원은 상도동계와 갖는 모임을 주도하는 등 계파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한화갑 전 대표는 마포에 개인 연구소를 운영하며 재·보선의 기회를 탐색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한광옥 상임고문도 여의도에 사무실을 열고 서울 지역에서 재기를 다짐하고 있는 중이다. 한고문은 지난 18대 선거에서 전주 완산 을에 공천 신청을 했다가 이광철 전 의원에게 패한 이후 다소 침체기에 있었으나, DJ 서거 후 동교동계가 다시 뭉치면서 활기를 되찾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교동계 내에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개인기를 가진 ‘선수’들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오는 7월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함께할 만한 파트너 내지 ‘우산’을 선택하는 데 고심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그런 가운데 박지원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범동교동계와 별도로 독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즉, 권노갑 전 최고위원을 필두로 한 동교동계는 김홍업 전 의원의 재기를 숙원 사업으로까지 여기며 고심하고 있는 반면, 박지원 의장은 이희호 여사와 3남 홍걸씨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심지어는 박의장의 지역구인 목포를 홍업씨에게 내주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통했던 천정배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 17대 때와는 달리 18대에 들어서는 뜻을 같이하는 측근 세력이 없는 편이어서 정동영 의원의 복당 문제를 지속적으로 거론하고 있는 입장이다.

신승남 전 검찰총장을 비롯해 검찰에도 목포권 출신 인사들이 여러 명 있다. 김학재 전 대검 차장, 정충수 전 대검 강력부장, 김규섭 전 수원지검장은 목포고 12회 트리오라 불렸다. 목포고 출신 중에서는 특히 3·8회에서 명사들이 많이 배출된 것으로 회자된다. 최영철 전 통일부총리·정시채 전 농림부장관·전석홍 전 국가보훈처장(이상 3회),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정종득 현 목포 시장(이상 8회) 같은 이들이 그에 속한다. 이들 중 서한태 목포 환경과건강연구소 이사장이 천정배 의원의 장인이고, 소설가 천승세씨는 여류 소설가 박화성씨의 차남이다.

남종화의 대가로서 목포를 대표하는 남농 허건 선생은 소치 허유(조선조 헌종 때 궁중 화가였으며 시·서·화의 3절이라 불림)의 손자이자, 역시 화가인 미산 허형의 넷째아들이다. 소치의 화맥을 정통으로 이어받아 우리나라 화단에 불멸의 자취를 남겼다.

그 밖에 한국 근대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김환기 화백은 신안군 안좌면 출신이고,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 저항 시인 김지하, 가수 남진은 목포 사람이다. 또, 수필가로도 유명한 법정 스님도 이곳 출신이다.

흔히들 목포를 예향이라고 부른다. 개항 이후 목포가 급성장하면서 각종 예술 활동이 목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대부분 영리가 목적이 아니라 자선 사업으로 한 것이었다. 당시 지주나 유지들 사이에는 이런 예술 행사에 참여해서 후원금도 내고 그림도 구입해야 지역 사회에서 체면을 세울 수 있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본래의 작사·작곡 의도와는 달리 빨치산이나 민주화운동 세력에서 널리 불렸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던 <부용산>이라는 노래의 탄생지도 목포이다.                                      

※ 다음 호에는 ‘육군사관학교’ 편을 싣습니다.

 


ⓒ시사저널 이종현
정종득 목포시장 인터뷰

2006년 5월 제4대 지방선거에서 연임에 성공해, 오는 6월이면 4년의 임기를 마치게 된다. 지역 민심을 들어보면 뚜렷한 경쟁자가 없는것 같다.

좋게 봐줘서 고맙다. 이번에 당선되면 법적으로는 3연임이 되지만, 1차 때는 전임 시장의 갑작스런 유고로 치른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것이어서 실제 재직 기간은 1년이었다. 1년 한 것도 1회로 치는 것이다.

지자체장이라는 자리가 정치의 영역에 속하는 것인데, 40년 넘게 기업인으로 활동하다가 정계에 입문한 동기가 무엇인가?

목포에서 태어나서 성장기를 보낸 사람으로서 고향을 위해 무엇인가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그간 익힌 경영 마인드를 활용한다면 지역 발전을 위해 유익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한화갑 전 대표의 권유가 있었나?

그렇지는 않다. 한 전 대표와는 50년 지기로서 친하게 지내는 사이인데, 전임 시장이 돌아가시고 마침 기회가 생겨서 상의를 했다. 그런 다음 당규에 따라 치열한 경선을 치른 끝에 후보가 될 수 있었다.

목포는 역사도 깊고 산과 바다가 잘 어울려 매우 아름다운 도시인데, 그동안 다른 곳에 비해 발전이 더디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다. 역설적으로는 개발과 도약의 가능성과 폭이 더 클 것 같은데 시장으로서 어떤 구상을 갖고 있나?

목포는 문화·역사·예술적인 자산이 풍부한 도시로서 과거에는 전국적으로 3대항 6대 도시에 들었다. 광복 이후 오랫동안 중국과의 교류가 단절된 세월을 지냈고,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발전이 더뎠던 것이 사실이다.

목포는 상하이와 제일 가까운 도시이다. 그간의 태평양 시대를 거쳐 동북아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영남권은 공업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여러 가지 폐해가 동시에 생겨났지만, 호남은 지금도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목포를 중심으로 한 서남권을 도서 지역의 자연 환경을 잘 살리면서 국제적인 해양 관광 중심도시로 가꿔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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