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잠룡’ 3인방, 대권 경쟁 불붙었다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0.01.26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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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논란이 첨예한 여·여 갈등으로 치달으면서 여권 내 차기 주자로 점쳐지는 ‘1박 2정’의 대권 레이스도 본격 시작되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최근 들어 전에 없이 강한 모습을 보이고, 정몽준 대표는 ‘해밀

▲ ⓒ일러스트 이경국
‘중국 춘추 전국 시대 때 노나라에 미생(尾生)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랑하는 여자와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기다렸으나, 여자는 오지 않았다. 미생은 소나기가 내려 물이 밀려와도 끝내 자리를 떠나지 않고 기다리다가 마침내 교각을 끌어안고 죽었다.’ <사기>와 <장자>에 전해져 오는 고대 설화이다. 미생이 약 2천5백년 만에 다시 한국 정가에 부활했다. 요즘 정치판에서는 때아닌 미생 논란이 한창이다.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는 미생을 ‘고지식하고 융통성도 없이 약속만 지키려 하다가 결국 죽음을 당하는’ 인물로 소개했다. 세종시 원안 고수 입장을 굽히지 않는 박근혜 전 대표를 빗댄 표현이었다. 그러자 박 전 대표가 발끈했다. “미생은 죽었지만, 진정성이 있어 귀감이 되는 인물이었을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실제 <사기>에서는 미생을 ‘신의 있는 남자’의 예로 보고 있는 반면,
<장자>에서는 ‘작은 명분에 집착하는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예로 든다.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는 하나의 고사성어를 놓고 정대표와 박 전 대표 간의 해석이 전혀 판이하게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논쟁은 또 다른 논쟁을 낳고 말았다.

정몽준 대표가 난데없이 ‘미생지신’을 들고 나온 것은 지난 1월14일이었다. 현재 세종시 정국에서 최고의 뉴스메이커인 박 전 대표를 향해 모처럼 회심의 일격을 가한 셈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모양새가 이상하게 되어버렸다. 하필이면 반박이 뒤따를 수도 있는 고사성어를 예로 든 것이다. 좀 더 치밀한 전략이 필요했는데도 그렇지 못했다는 비판이 따른다. “주변의 참모가 제 역할을 못하는 것 아니냐”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금의 정대표 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정대표, 독자 계보 꿈꾸다 방향 틀어

▲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이정현 의원이 1월4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이 예정된 가운데 대화를 나누며 국회에 등원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세종시 문제가 첨예한 여·여 갈등으로 치달으면서 여권 내부의 대권 경쟁은 이미 총성이 울렸다. 이른바 ‘1박(朴) 2정(鄭)’이 각축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여기에는 한나라당 내의 뿌리 깊은 계파 갈등이 존재한다. 비주류이지만 친박계는 ‘1박’ 아래 똘똘 뭉치는 모양새이다. 주류인 친이계는 자파 후보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고용 사장’ 후보로 ‘2정’을 놓고 저울질하는 양상이다. 현재 마라톤 레이스에서 박 전 대표가 이미 21km 반환점을 돌았다면, 정대표는 10km 지점도, 정총리는 5km 지점도 채 지나지 않은 상황이다. 그나마 세종시 정국으로 박 전 대표는 다시 한 번 정국의 중심에 섰다. ‘수정안 바람’을 타고 정총리 역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서며 ‘한 방’을 노리고 있다. 이런 미묘한 상황에 위기의식을 느낀 채 먼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정대표 쪽이었다. 선두 추격도 버거운 판에 쫓아오는 3위 주자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정대표의 초조감은 최근의 다소 오락가락하는 행보에서 잘 나타난다. 친이계와 친박계의 경쟁 속에서 존재감이 점차 엷어지는 모습에 위기감을 느낀 탓인지, 자기 주변 챙기기에 나섰다. 친이계의 핵심인 장광근 사무총장을 교체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34쪽 기사 참조). “‘친정(親鄭)계’라도 만들려는 것이냐”라는 의심을 살 만했다. 정대표 주변에서 측근들이 ‘강한’ 조언을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친이계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자, 이번에는 또 앞장서서 친박계를 공격하고 나섰다. 친이계의 등에 올라타기 위한 전략 수정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대해 정대표의 한 핵심 측근은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당론 변경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민주 정당의 기본인 토론에 의해서 당론은 바뀔 수도 있다는 원칙을 말한 것이지, 친이계의 입장을 대변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정대표의 정치 스타일은 계파 정치와 어울리지 않는다”라고도 덧붙였다.

실제 6선의 관록과 굴지의 대기업 회장 그리고 한때 유력한 대권 주자였던 정대표의 행보를 심상찮게 보는 시각도 많다. 이미 정대표가 당사 밖에서 야망을 실현할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여의도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해밀을 찾는 소망(해밀)’ 연구소와 지난 1월13일 신문로에서 개관식을 한 ‘아산정책연구원’이 그것이다. 해밀 연구소는 사실상 정대표의 대선 캠프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는 정대표를 오랫동안 보필해 온 핵심 측근들이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현재는 정대표에게 정책적 조언을 하는 역할에 있지만, 본격적인 사인이 떨어지면 곧바로 세 규합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 주변 관계자의 전언이다. 눈에 띄는 것은 13일의 아산정책연구원 개관식이었다. 이 자리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나와서 이례적으로 정대표를 격찬하고 나섰다. 이홍구 전 총리, 조순 전 부총리, 한승주 전 장관 등 원로 인사들도 대거 모습을 나타냈다. 정대표의 한 핵심 측근은 “주변에서 지적하는 대로 정대표의 스킨십 부족과 참모의 역할 취약성, 그에 따른 전략 부재라는 비판이 많은 것을 잘 알고 있다. 반성하고 있다”라고 인정했다. 이는 바꿔 말해서 대권 주자로서의 지지율 답보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향후 대외 접촉을 좀 더 활발히 할 것임을 시사하는 발언이었다.

‘독주’ 박 전 대표에 맞서는 ‘2정’의 추격 전략은?

▲ 1월13일 아산정책연구원 신축 개관식에서 정몽준 대표가 김영삼 전 대통령과 나란히 참석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정운찬 국무총리의 최근 모습은 그야말로 ‘광폭 행보’이다. 정치인, 언론인, 충청 현지 주민들까지 만나고 다니며 전천후로 현장을 누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지난 1월18일부터 시작한 한나라당 의원들과의 만남이다. 각 지역별로 10명 안팎의 의원들을 매일매일 활발히 접촉하고 있다. 여권의 잠재적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정총리이지만, 당내 기반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세종시 문제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당내 입지를 넓히려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실제 이 자리에 참석한 한나라당 김용태 의원은 “정총리가 개인이 갖고 있는 인지도나 인맥에 비해 정작 여당 내에서는 거의 인맥이 없지 않나. 그런 면에서 스킨십을 늘려가야 할 필요성을 느낀 듯하다. 세종시 문제로 만난 자리였지만, 분위기 자체는 순조롭고 화기애애했다”라고 전했다.

지금의 세종시 정국에서 정총리의 국민 여론 지지율은 극히 미미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정총리를 평가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경우에 따라서는 가장 급반등을 하며 치고 올라올 수 있는 유력한 ‘잠룡’으로 첫손에 꼽힌다. 무엇보다 정총리가 주목받는 것은 여당 내의 최대 주주인 친이계의 기대감에 있다. 실제 친이계 소장파 의원을 중심으로 정총리측과 물밑 교감을 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 온다. 정총리에게 정무적 기능이 취약하다는 단점을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도권 지역의 한 친이계 핵심 의원은 ‘친이계를 대표할 만한 대권 주자의 부재’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대권 후보는 다이내믹한 역동성에 의해서 강하게 만들어지는 측면이 많다. 언제든 상황이 뒤바뀔 수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정총리는 누가 뭐라 해도 대한민국 최고의 경제학자이고, 서울대 개혁을 이끈 교육 전문가이며, 충청 출신이라는 세 가지 강점을 갖고 있다. 다만, 지금 세종시 문제에 빠져 이런 강점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까지 나타난 것만 가지고는 그의 큰 꿈을 섣불리 평가할 수 없다. 좀 더 기다리고 지켜봐야 한다”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 교수는 “흔히 정총리의 정치적 운명이 수정안과 함께할 것이라고 하는데, 수정안이 어떤 모습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그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정상적으로 당론 결정 과정이 이루어지고, 국회 표결이 부쳐진 상황에서 부결되면 정총리에 대한 책임론이 불가피할 것이다. 하지만 정파들 간의 이해관계로 인해 정상적인 논의조차 안 되고 장기 표류하게 되면서 처리가 안 될 경우, 그것까지 정총리가 책임을 떠안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후자의 가능성이 더 크다”라고 전망했다.

▲ 정운찬 국무총리가 1월20일 대구·경북 지역을 방문해 김범일 대구시장 등과 건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대표와 정총리, 두 사람의 확실한 목표물은 결국 박근혜 전 대표이다. 어떻게 하든 당내 최대 계파인 친이계의 지지를 등에 업고 박 전 대표와 운명을 건 한판 대결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너무도 잘 알기에 박 전 대표 또한 최근 들어 전에 없이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 정치’로 대변되던 평소 그녀의 절제되고 정제된 언어 구사를 최근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어지간하면 침묵으로 일관했던 모습도 이제 옛말이다. 여기서 밀리면 한없이 밀려난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로서는 가장 상상하기 싫은 시나리오가 친박계의 결속력 와해로 세종시 수정안이 살아나는 경우이다. 실제 친이계의 한 의원은 “언론에게 거꾸로 되묻고 싶다. 친박계를 정확히 카운팅해봤나? 나는 (언론에서 말하는) 50~60명은 분명히 과장되었다고 본다”라고 강조했다. 세종시에 대한 당론 변경이나 수정안 가결이 결코 비관적이지만은 않다는 자신감이었다. 김형준  교수는 “지금의 세종시 문제가 대권 경쟁에 불을 댕긴 것은 맞다. 하지만 이 문제가 장기 표류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을 때 3자 간의 대결은 세종시 이후의 사안으로 넘어가면서 더욱 본격적으로 불붙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전망했다. 이미 박 전 대표나 ‘양정(兩鄭)’은 절대 양보가 안 되는 선상에 섰다. 타협은 없는 셈이다. 선두를 달리고 있는 박 전 대표가, 이 기회에 추격의 싹을 아예 잘라버리겠다고 강하게 나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대표와 정총리의 생존 전략이 주목된다.


“지역·연령 따라 ‘들쭉날쭉’

박근혜·정몽준·정운찬 지지층 비교

현재 여권의 차기 대권 주자 ‘빅 3’로 거론되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정몽준 대표, 그리고 정운찬 총리는 지지 기반도 각기 다른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시사저널>이 지난 1월14일 실시한 전국 여론조사의 교차분석표를 살펴보면 이런 양상이 잘 드러난다. 가장 큰 편차는 지역에서 두드러진다. 박 전 대표는 전체 지지율 32.7%보다 대구·경북(49.2%)과 강원·제주(47.2%), 충청(39.6%)에서 상대적으로 더 높게 나타났다. 반면, 정대표는 전체 지지율(8.4%)보다 서울(10.0%)과 인천·경기(9.7%) 등 수도권에서 상대적으로 강했다. 충청(10.0%)도 평균보다 수치가 높았다. 정총리는 비록 전체 지지율이 1.5%에 불과한 미미한 수치였지만, 인천·경기에서(2.5%)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지지 연령층에서도 박 전 대표는 40대(35.6%)와 50대(39.8%)에서 더 높게 나타났다. 정대표는 50대(11.3%)와 60대 이상(10.9%)에서, 정총리는 20대(1.9%)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직업별로는 박 전 대표가 농·임·어업 종사자층(40.9%)에서 강했고, 정대표는 자영업자(10.0%), 정총리는 학생층(3.4%)에서 상대적으로 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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