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도, 회장님도 취리히에 있으니…
  • 조명진 | 유럽연합 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
  • 승인 2010.02.02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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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지리적·인사상 요인 덕에 스포츠 외교 중심지 노릇…19개 국제 스포츠 기구가 스위스에 몰려

▲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국제축구연맹(FIFA) 사무국 건물. FIFA 역대 회장 중 유럽 출신이 아닌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연합뉴스


올림픽 공식 종목 34개 가운데 태권도와 유도를 제외하면 모두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특정 스포츠를 시작한 나라, 즉 종주국이 갖는 이점이 있다. 이러한 이점은 당사국 입장에서는 기득권이고, 제3자 처지에서는 텃새로 볼 수 있다. 스포츠계에서 유럽의 기득권은 먼저 스포츠 행정과 외교를 주관하는 국제 스포츠 기구들이 유럽에 자리 잡고 있다는 지리적인 측면과 그 기구들의 최고 실력자인 회장과 위원장들이 대부분 유럽 출신이라는 인사상의 측면에서 볼 수 있다.

먼저 국제올림픽기구(IOC)는 스위스 로잔에 위치해 있고 벨기에 출신 자크 로게가 위원장을 맡고 있다. 스페인의 사마란치 위원장 후임으로 2001년부터 맡아왔는데, 2013년에 퇴임할 예정이다. 역대 IOC 위원장 가운데 미국 출신의 애버리 브룬디지를 뺀 나머지 7명이 모두 유럽 출신이다. IOC 위원 총 1백8명 중 유럽 인사는 45명으로 6개 대륙 가운데 가장 많고, 아시아는 26명이다. 이를 인구 대비로 계산했을 때 유럽은 1천6백만명당 한 명의 IOC 위원을 둔 반면, 아시아는 1억5천명당 한 명의 IOC위원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큰 세력인 ‘빌더버그 그룹’의 핵심 인물인 헨리 키신저가 IOC 명예위원이라는 사실은 IOC가 그만큼 국제적으로 정계와 재계를 아우르는 인맥을 구축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또한, 올림픽 공식 종목 가운데 배드민턴(말레이시아), 태권도(한국), 3종 경기(캐나다)를 뺀 31개 종목의 본부가 유럽에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이 기구 중에 무려 19개 스포츠 국제 기구가 스위스에 몰려 있다는 사실이다. 국제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국제노동기구(ILO), 국제보건기구(WHO),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많은 국제 기구와 함께, 국제 스포츠 기구들이 유독 스위스에 집중 되어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스위스는 1·2차 세계대전에도 휩쓸리지 않았을 만큼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또, 비밀주의 문화이기 때문에 자금을 관리하고 운영하기가 용이하다. 시계 산업이 발달한 것에서 보듯 국민성이 정확한 것도 한 이유이다.

유럽은 통산 17회 하계올림픽을 유치했고, 아시아는 1964년 도쿄올림픽, 1988년 서울올림픽 그리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 등 3차례 올림픽을 개최했다. 제1회 하계올림픽은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개최되었고, 최근에는 지난 2008년 베이징에서 29번째 올림픽이 열렸다. 참고로 제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6년, 1940년, 1944년의 3회 대회는 취소되었지만 기록에는 넣고 있다. 한국이 최초로 참가한 하계올림픽은 1948년 런던 올림픽이었다. 앞으로 2012년과 2016년 올림픽은 영국 런던과 브라질의 리오데자네이로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제1회 동계올림픽은 1924년에 프랑스의 샤모니에서 열렸고, 올 2월12일에 캐나다 밴쿠버에서 21회 대회를 갖게 된다. 역대 동계올림픽 중 14회를 유럽에서 유치했다. 특이할 만한 것은 2차 대전 중인 1940년과 1944년은 전쟁으로 대회가 열리지 않았는데, 전쟁 후 스위스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에는 전쟁을 일으킨 독일과 일본을 초청하지 않았다. 한국이 동계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것이 바로 생모리츠 올림픽이었다.

아시아에서의 동계올림픽은 일본이 삿뽀로와 나가노에서 1972년과 1998년, 두 차례 개최한 것이 전부이다. 최다 유치국은 프랑스와 미국으로 각각 세 번 주최했다. 한국은 평창이 두 번 유치에 실패했지만, IOC 위원인 삼성의 이건희 회장을 특별 사면하면서까지 2018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한 세 번째 도전에 나섰다.

IOC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IOC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제축구연맹(FIFA)은 스위스 취리히에 있고, 회장은 스위스 사람인 블래터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가 2022년 월드컵 유치 활동을 위해 스위스 취리히 국제축구연맹(FIFA) 본부로 찾아가 만난 그는 국제 스포츠계의 거물이다.

블래터 회장은 ‘2010년 올림픽 운동을 실천하는 데 가장 영향력을 행사할 인물’ 1위에 올랐다. 더불어 <포브스> 잡지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권력을 행사하는 인물 53위에 랭크된 바 있다. 블래터 회장은 이미 1999년부터 IOC 위원직을 갖고 있으며, FIFA 회장 4년 임기는 내년 2011년에 만료되지만, 재선에 도전하겠다고 공표한 상태이다. 블래터 회장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자신이 세계 축구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2018년까지는 회장직을 연임해 FIFA 회장 자리에서 월드컵이 유럽에서 개최되는 것을 보고자 하는 개인적인 야망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FIFA는 1904년 프랑스, 벨기에, 덴마크, 네덜란드, 스페인, 스웨덴, 스위스 등 7개국 축구협회가 공동으로 창단했다(축구 종주국인 영국과 축구 강국 독일은 창단 멤버가 아니었다). FIFA 역대 회장을 보면 100년 넘는 역사상 브라질의 아발랑제 회장을 제외하고 모두 유럽 출신이 회장을 맡았다.

대륙별 월드컵 유치 횟수, 유럽은 10회인데 아시아·아프리카는 1회

올 12월 열리는 FIFA 집행위원회에서 2018년과 2022년 월드컵 개최지를 동시에 선정하는데, 2018년 대회는 유럽에서 개최될 가능성이 크다. 유력한 후보 국가는 영국과 공동 개최를 희망하는 네덜란드와 벨기에 그리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이다. 따라서 2022년 월드컵은 유럽이 아닌 다른 대륙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아시아 또는 오세아니아 국가가 유치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일본, 인도네시아, 카타르, 호주와 경합하고 있다.

월드컵을 대륙별로 유치한 횟수를 보면, 유럽 10회, 북미·남미 6회, 아시아 1회, 아프리카 1회로 단연 유럽이 앞선다. 그리고 대륙별 우승 국가를 보면, 유럽 9회 우승(이탈리아 4회, 독일 3회), 15회 준우승(독일 3회), 남미 9회 우승(브라질 5회), 유럽과 남미가 동률로 9회 우승이다. 하지만 준우승 횟수에서 유럽이 15회로 남미 2회보다 앞서기 때문에 더 나은 성적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 참가하는 최종 엔트리 32개국 중에 유럽은 13개국이 진출한다는 점만 보아도 유럽의 기득권을 알 수 있다. 전세계 FIFA 회원국은 총 2백8개이고, 그중 유럽의 FIFA 회원국 수는 아프리카와 같이 53개이다. 그런데 최종 엔트리에 아프리카는 개최국 남아공을 제외하면 5개국이 참가하게 되고, 45개 FIFA 회원국을 둔 아시아는 4개국만 참가한다.

유럽 인구는 약 7억명으로 68억명인 세계 인구의 11%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구 비중으로만 보면 38억명의 아시아 인구에 비해 너무도 커다란 이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성적에서 나타나듯이 유럽이 경기력 수준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대륙에 비해 많은 국가가 출전권을 얻는 것은 ‘원조’로서 기득권을 누리는 것이다.

FIFA 안에 소속되어 있는 유럽축구연맹(UEFA)은 본부가 스위스 제네바에 있고, 회장은 프랑스의 축구 영웅 미셸 플라티니가 맡고 있다. 유럽에 국한된 스포츠 조직인 UEFA까지 언급한 이유는 국제 스포츠 기구의 회장들이 체육인 출신이라는 점이다.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은 1968년 멕시코올림픽, 1972년 뮌헨올림픽 그리고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 벨기에 국가 대표 요트 선수로 참가한 체육인이다. 블래터 FIFA 회장 또한 스위스 아마추어 상위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이처럼 국제 스포츠 기구의 수장을 행정력을 겸비한 체육인이 맡고 있다는 사실은 아시아 스포츠 단체장들을 재계 거물들이 차지하는 것과 사뭇 비교되는 대목이다. IOC와 FIFA 역대 회장들의 공통점은 우연히도 8명의 회장이 100년간에 걸쳐 두 스포츠 기구를 장기 집권했다는 것과,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유럽인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더불어 올림픽과 월드컵 개최국을 대륙별로 비교해보아도 유럽이 압도적으로 많다. 유럽인들에 의해서 시작된 국제 스포츠 행사는 더 이상 그들만의 경기가 아니라 세계인의 경기로 자리 잡고 있다. 유럽과 북미를 제외한 대륙은 ‘객(客)’에서 이제는 주인 역할을 하고자 나섰으나, 서구 세계가 쌓은 철옹성에 도전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다시 말해, 올림픽과 월드컵이 서구 세계만의 스포츠 제전은 아니다. 그러나 아시아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유럽 전체보다 인구가 많은 중국과 인도가 분발해주지 않는 한 한국과 일본의 선전만으로는 ‘세계 대회’라는 색깔만 내는 데 보탬을 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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