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양김’의 아리송 행보 친이계 ‘PK 탈환전’ 신호탄인가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0.02.23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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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경남지사 ‘불출마’·김무성 의원 ‘새 수정안 제시’ 눈길…TK-PK 분리 전략 깔린 듯

 

▲ 2월9일 오전 국회 본회의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김무성 의원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연합뉴스


“정부와 ‘친이계’ 의원들의 공격이 점점 자극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제는 안전 지대에서만 머물기도 어렵고 전장으로 징집되어 나갈 수밖에 없다.” 세종시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한 ‘친박계’ 의원은 ‘전쟁’에 비유했다. 

 

세종시 문제를 둘러싸고 한나라당 내에서 벌어지는 계파 싸움은 미래 권력을 다투는 투쟁 양상을 띠고 있다. ‘생존 투쟁’이라는 표현까지도 나온다. 한쪽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사정이 담겨 있다. 여기에는 차기 대권까지 그리는 복잡한 셈법이 깔려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는 세종시와 관련해 저마다 자신만의 공식을 가지고 문제를 풀고 있다. 현재 표면상으로는 세종시가 들어설 충청도가 전장으로 보이지만, 좀 더 유심히 지켜볼 곳은 부산·경남(PK) 지역이다. 최근 PK 지역에서는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하나는 김태호 경남도지사의 3선 불출마 선언이다. 김지사는 지난 1월25일 “경남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인물이 새로운 생각으로 뜻을 펼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라며 전격적으로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친박계 성향으로 분류되던 인물이다. 3선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나온 갑작스런 불출마 선언에 지역 정가는 술렁였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3선에 도전하겠다던 김지사였다. 친박계 쪽에서는 이번 불출마를 미리 알지 못했지만, 청와대는 사전에 알았을 가능성이 크다. 지역 정가의 한 관계자는 “한 2주 전부터 불출마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주로 지역 사정 기관 쪽에서 흘러나왔던 모양이다”라고 전했다.

두 번째는 김무성 의원(부산 남구 을)의 행보이다. 한때 친박계 좌장으로까지 일컬어졌던 그는 지난 1월22일 친이계 소장파 의원들이 중심이 된 인문학 공부 모임 ‘아레떼’에 참석하면서 각종 정치적 해석을 만들어냈다. 일단 참석 시점이 세종시 문제로 양쪽 진영이 사생결단을 내려던 시기였다. 게다가 김의원은 친박계에서 유일하게 세종시 수정안을 공식적으로 지지했던 인물이다. 한동안 세종시 문제에 대해 말을 아끼던 김의원은 2월18일 기자회견을 가지고 세종시 해법으로 ‘7개 독립 기관 이전안’을 수정안으로 제안하며 박 전 대표에게 “관성에 젖어 바로 거부하지 말고 심각한 검토와 고민을 해달라”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가 불과 3시간 만에 고려할 가치가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두 사람은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이 두 가지 사건은 앞으로 PK 지역의 정치 변화를 예상하게 한다. 현재 PK 정치의 주도 세력은 친박계 진영이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혹은 친박연대로 당선되었던 사람들이 복당하면서 PK 지역 당협위원장은 친박계 인사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박 전 대표의 정치적 고향인 TK(대구·경북)는 제쳐두더라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친박계 세력이 PK 정치권마저 장악하게 된다면 친이계에게는 분명히 악재인 셈이다. 이번 지방선거는 이대통령의 후반기 국정 운영뿐만 아니라 차기 대권 구도와도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친박계, 친이계의 세력 바둑 작전에 또 다른 세력 바둑으로 맞서 

▲ 김태호 경남도지사가 1월25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6월 지방선거에 불출마하겠다”라고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여권 주류에서 칼자루를 들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많다. 특히 “모두 3선째 도전이 되는 부산·울산·경남 광역단체장 중 두 곳 정도는 교체되지 않겠나”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공교롭게도 세 사람은 모두 친박계 성향으로 알려졌고, 그중에서 김지사가 먼저 물러났다. 이를 두고 “PK 지역 공천 변화의 시발탄이다”라고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특히 “친이계의 포섭망에 김지사가 걸려든 것 아니냐”라는 해석도 있다. 한 친박계 의원은 “김지사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차기 도지사로 이야기되는 사람이 모두 친이계 사람이다. 김지사가 친박계 쪽과 대립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다름없는데 그런 결정을 혼자서 했겠나”라고 말했다. 친이계 핵심인 정두언 의원이 최근 한 인터뷰에서 김지사를 “굉장한 ‘물건’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호평한 것도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김무성 의원의 행보는 한 문건과 연관지어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난 1월 <신동아>는 ‘지난해 5월1일 친이계 핵심 인사에 의해 ‘당·정·청의 총체적 재정비 방안’이라는 문건이 청와대에 건네졌다’고 보도했다. 4월 재·보선 패배 이후 만들어진 이 문건에는 “박근혜 전 대표가 차기 대권 구도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확보한 상황에서, 친이계가 당권을 지속적으로 장악할 수 있는 당내 기반을 확보해야 한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친박계의 포섭 및 견제’와 그 구체적 방안으로 ‘상징성 높은 원내대표에 친박계 핵심 인사 배치’를 제안하며, 적임자로 김무성 의원을 지목했다. 지난해 5월 한나라당 내에서는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론’이 나왔고 박 전 대표는 ‘반대’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본격화된 시점도 이때였다.

친이계는 “TK는 어쩔 수 없어도 PK는 지켜야 한다”라는 전략을 깔고 있다. 이른바 ‘TK-PK 분리론’이다. 일단 PK 친박계에 균열을 일으키면서 동시에 이 지역에 자기 사람을 심는 것이 골자이다. 김태호 지사와 김무성 의원 때문에 친박계에서는 실제 미세한 균열 조짐이 일어나고 있다. 친이계는 일단 세종시 문제로 포석을 깔고 공천권을 통해 친박계를 TK에 고립시킨 뒤 PK에서는 친이계의 세력을 확대하는 세력 바둑을 둘 가능성이 크다.

반면, 박 전 대표측은 친이계의 세력 바둑에 또 다른 세력 바둑으로 맞서는 것으로 관측된다. 일단 원내에서 외연을 확대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중립 성향으로 알려진 한 의원은 “평소 친분이 있는 한 친박계 의원의 권유에 따라 어떤 행사에 참여했는데, 그 자리에 모두 친박계 의원들만 있어 당황스러웠다”라고 말했다.

장외에서 보이는 지지율 흐름도 주시하고 있다. 친박계 내부에서는 세종시 원안 고수 이후 충청뿐만 아니라 호남에서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상승한 것을 주목하고 있다. 세종시 원안 고수는 박 전 대표와 호남 사이에 소통의 통로를 넓힌 것으로 평가받는다. 일례로 세종시 문제가 본격화된 시점에 즈음해 동교동계에서는 ‘동서 화합’ ‘반MB’를 명분으로 박 전 대표와의 연대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박 전 대표가 모든 결과물을 가져갈 수도 있다”라는 우려가 나오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박 전 대표 입장에서는 고무적인 일이었다. TK 지역을 절대 아성으로 만들겠다는 야심도 감추지 않는다. 타깃은 친이계로 분류되는 김범일 현 대구시장이다. 김시장에 대해서는 친박계인 서상기 의원과 유승민 의원이 대항마로 거론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물밑에서는 이미 지방선거를 넘어 대권 싸움이 시작된 모양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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