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클래식 무대 누비는 ‘국내파 신동’들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0.03.0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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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들, 해외 유명 콩쿠르 석권 줄이어

 

▲ 2007년 금호아시아나 솔로이스츠 금호 영재 출신 연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기념 촬영을 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밴쿠버의 별 김연아 선수는 일곱 살 때인 1996년부터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했다. 김연아 선수는, 어머니가 어릴 때부터 재능을 발견하고 개인 차원에서 적극 지원해 성공한 경우이다. 이런 성공 모델은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구문이다. 클래식 음악계는 요즘 국내에서 교육받은 영재들이 해외 유명 콩쿠르를 석권하는 국내파 음악 영재 시대이다. 

2008년 프랑스 롱티보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신현수(23)는 세 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해 예술고 1학년 때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고, 2004년 제2회 러시아 국제 파가니니 바이올린 콩쿠르 1위에 오른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25)는 세 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해 여섯 살 때 국내 콩쿠르에서 최연소 대상을 탄 뒤 한국예술종합학교(약칭 한예종) 예비학교에 입학했다. 지난해 반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준우승한 뒤 이탈리아 비오티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한 손열음(25)은 다섯 살 때부터, 2006년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김선욱은 세 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악기를 다루는 신동은 클래식 음악계에서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손열음·김선욱·신현수는 물론 세계 더블 베이스 3대 콩쿠르 중 두 곳에서 우승한 성민제(18), 지난해 일본 하마마쓰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16) 등은 모두 국내파라는 것이 과거와는 다른 점이다.

이들의 성공은 한예종이라는 실기 위주의 학교 시스템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이들은, 어릴 때는 한예종의 예비학교에 다니고 중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한예종의 학예사 과정에 입학했다. 요즘 프로축구 선수들이 중학교 졸업 뒤 바로 프로구단에 입단하는 경우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왕 할 것이면 어릴 때부터 집중해서 하자는 것이다.

김남윤 한예종 교수(바이올린 전공)는 “요즘은 중학교를 졸업했거나 고등학교를 중퇴한 신입생이 절반 정도 된다. 바이올린은 15명 신입생 중 반 정도가 그런 학생이다. 정규 고교 과정을 통해 전공을 살리기가 어렵기 때문에 아이들로서는 피치 못할 선택이다”라고 말했다.

한예종이나 한예종이 1994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예비학교’는 클래식 영재들의 조기 교육을 정착시킨 계기가 되었다. 예비학교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교 2학년까지의 학생들을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다. 피아니스트 임동민·동혁 형제와 손열음, 바이올리니스트 신아라·수현 자매, 첼리스트 고봉인 등 해외 주요 콩쿠르에서 입상한 스타급 연주자들은 대부분 한예종 예비학교 출신이다. 주말에 한예종 예비학교에 다니다 재능이 확인된 중3~고2의 학생은 바로 한예종 예술사 과정에 입학이 가능하다. 이런 이들이 최근 국제 콩쿠르 무대에서 코리아 파워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음악 조기 영재 교육이 부자들의 전유물이라고?”

한예종 예비학교에 다니다 바로 한예종으로 진학한 손열음씨는 “한예종으로 바로 간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가도 일반 과정을 거쳐 대학을 간 친구들과 비슷해서 좋았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음악은 시기가 너무 중요하기에 어렸을 때 시작하지 않으면 나중에 발전시키기가 힘들다”라고 조기 교육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요즘 학부모들의 관심은 온통 조기 영재 교육에 쏠리고 있다. 김대진 한예종 교수(피아노 전공)는 “요즘 조기 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관심이 너무 뜨겁다. 중요한 것은 선생과 학부모의 소통이다. 아이에게 진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이의 재능이 어떤 것인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에 대한 과잉 열망이 오히려 아이를 망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김교수는 한 재능 있던 어린 학생의 사례를 들려주었다. 음악적 재능도 있고 연주도 무척 잘하던 아이가 있었는데, 네 손가락만 사용하더라는 것이다. 아이의 손이 너무 작음에도 연주를 시킬 욕심에 선생이 네 손가락만으로 연주하는 요령을 가르친 결과이다. 그는 그 어린 학생의 재능이 아까웠지만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기 음악 교육의 또 한 가지 난점은 비용 문제이다. 스포츠 분야에서는 올림픽이라는 이벤트 때문에라도 어린 시절부터 엘리트 선수들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과 보상이 체계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음악 영재 등 예술 분야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게다가 고가의 악기, 레슨비 때문에 음악은 ‘부자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에 대해 김남윤 교수는 “틀린 말이다”라고 단정했다. 김교수는 “부자가 우리 사회에 몇 %나 되나. 10% 되나? 그중에 몇 %나 음악을 하겠나. 우리 학교 총장도 음악 하는 애들의 가정 형편을 보고 깜짝 놀란다. 10명 중 한두 명만 괜찮고 나머지는 다 어렵다.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져주고 도와줘야 힘도 생긴다”라며 관심과 지원을 촉구했다.

음악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지원이나 교육 시스템은 과거보다는 발전되었다. 한예종이라는 실기 위주의 국립 교육 기관이 자리를 잡았고,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에서 클래식 신동들에게 무료로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악기를 지원하고 있다. 삼성의 고른기회장학재단이나 LG의 링컨챔버소사이어티 등 영재부터 저소득층 음악 지망생들에게까지 교육 기회를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있다.

레슨비도 한예종 예비학교나 신설된 한국예술영재교육원에 진학할 경우에 저렴하다. 문제는 한예종 예비학교에 뽑히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학부모들은 레슨을 따로 받을 정도이다. 이에 대해 김대진 교수는 “영재는 반복 훈련한다고 해서 영재성을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이가 영재일지 모른다는 부모의 열망이나 기대와 실제 아이의 재능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동’이 국내에서도 중견 음악인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여건 만들어야

정작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이렇게 배출한 음악 신동의 장래이다. 우리 음악 시장은 협소하다. 이웃 일본은 클래식 시장이 미국, 유럽에 버금가는 3대 시장으로 평가받는다. 외국 음악인에 대한 소비도 왕성하지만 자국 시장에서 자국 음악인들의 연주회와 단체 활동이 활발해 음악 생태계가 탄탄하다. 배출된 음악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길이 많다.

이에 비해 국내에서는 신동을 배출해도 이들이 중견 음악인으로 자리 잡아야 할 때 출구를 제공하지 못한다. 기껏해야 학교에 자리 잡는 것이 고작이다. 프로 연주인으로 활동하기에는 청중도, 음악회도, 일자리도 적기만 하다.

미국과 유럽이 클래식 시장의 주 무대여서 유럽으로 활동 본거지를 옮긴 김선욱이나 성민제, 미국으로 활동 본거지를 옮긴 손열음 등의 최근 선택에는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 손열음의 경우 3월13일에 국내 무대에 선 뒤 미국으로 가 이 달에만 플로리다부터 뉴욕까지 미국 3개 도시에 일정이 잡혀 있다. 김선욱 역시 유럽에서 투어 프로그램이 꽉 차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배출하는 신동들을 언제까지 ‘수출’만 할 수는 없다. 공산품의 세계에서도 내수가 뒷받침이 되어야만 수출도 활성화될 수 있다. 내수(국내 시장 활성화) 없는 수출은 언제든 꺾어질 수밖에 없다. 영재로 분류되어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주최한 콘서트에 섰던 영재들만 해도 1천여 명에 달한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국내 무대는 턱없이 부족하다. 

김대진 교수는 “클래식 음악의 패권은 이제 아시아로 넘어올 수밖에 없다. 외국의 유명 음악학교는 이제 아시아계 학생이 없으면 유지가 안 된다. 국제 콩쿠르도 아시아계 참가자가 없으면 수준이 너무 낮아진다”라고 말했다. 그는 다가올 아시아 시대에 우리나라가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신동이 등장한다고 흥분할 것이 아니라 국내 음악인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더 만들고 국내 음악 생태계를 정상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아시아권에서만이라도 교류를 활성화하고 주도권을 확보해야 클래식 한류 시대를 맞이할 수 있다며 국내 기획사들의 분발을 부탁했다.

우리나라는 개개의 연주자들의 분발로 어느새 탄탄한 클래식 연주 강국이 되었다. 이들이 도약할 수 있는 크고 탄탄한 플랫폼(음악 생태계)이 필요한 시점이다. 문화예술은 올림픽처럼 무대에서 태극기를 걸고 순위를 가릴 수 있는 분야는 아니지만, 문화는 그 모든 상품 교역과 국가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지렛대이기 때문이다.

ⓒ시사저널 임준선
손열음과 김선욱이라는 국내파 피아노 신동을 국제 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시킨 김대진 한예종 교수는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로망이기도 하다. “영재는 분명히 존재한다”라고 말하는 그로부터 음악 영재 교육에 대해 들어보았다.

 

영재는 있다. 기초가 없어도 연주할 수 있는 학생이 영재이다. 반복된 학습에 의해 표현하는 능력을 익힌 학생은 영재라고 부를 수 없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32번 같은 곡을 어린 학생에게 연습시켜 들어본다. 이 곡은 베토벤이 말년에 작곡한 것으로 그의 인생의 모든 역량을 투입한 곡이다. 꼬마들이 이 곡을 콩쿠르에서 연주한다. 그때 꼬마들이 어떻게 표현하는지 듣는다. 정말 어른처럼 이 곡을 해석해 연주하는 꼬마들이 있다. 이 친구에게 나중에 ‘어떻게 쳤니’ 하고 물어보면 “별 생각이 없이 쳤는데요”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무의식의 상태에서 연주했음에도 곡의 본질을 즉각적으로 표현해내는 아이들이 영재라고 생각한다.

해외 콩쿠르에서 우승하면 영재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문제가 있다. 콩쿠르라는 것에서 만장일치의 우승자는 드물다. 만장일치로 뽑힌 경우는 김선욱 정도이다. 콩쿠르는 의외의 결과가 나오기에 좋은 구조이다. 음악계 권력과 심사위원의 취향에 따라 우승자가 엉뚱하게 갈릴 수 있다. 때문에 콩쿠르의 심사 결과만 놓고 영재이다, 아니다를 판단하는 것은 무리이다. 콩쿠르 이후의 활동까지 놓고 판단해야 한다. 1회성 연주만 놓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콩쿠르로 아이를 망칠 수도 있다. 성장기의 아이는 슬럼프도 오기 마련이고 그것을 다 겪어야 한다. 한 번 우승했다고 언론에서 갑자기 띄워주면 슬럼프가 올 수도 있다.

영재든 아니든 한 번은 반드시 성장통을 겪는다. 손열음이나 김선욱은 연습량이 누구보다 많았던 제자이다. 8~9년 동안 엄청난 연습을 했고, 기초곡도 아주 많이 다루었다. 어떤 면에서 그 둘은 운이 좋기도 했다. 열음이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선욱이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한예종 예비학교에서 만났다. 그 당시만 해도 일반인 사이에 요즘처럼 영재 교육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그런 분위기 덕에 그 아이들은 차분하게 단계별로 공부하면서 클 수 있었다.

 

ⓒ시사저널 임준선
일산에 사는 이동열군(15)은 요즘 집에서 혼자 공부한다. 지난해 국제 첼로 콩쿠르를 준비하면서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홈스쿨링을 택했다. 오전에는 첼로 연습을 하고 오후에는 학과 공부를 한다. 토요일에 한국예술영재교육원에 첼로를 배우러 다닌다. 다섯 살 때 첼로를 시작했고, 아홉 살 때 한예종 예비학교에 입학해 장형원 교수와 정명화 교수에게서 지도를 받고 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초등학교 때 금호아트홀에서 두 번의 콘서트를 열 정도로 영재성을 인정받았다. 오는 3월27일에 다시 금호아트홀에서 콘서트를 연다.

 

이군의 어머니 김경영씨(39)는 “선생님과도 상의해보았는데 첼로를 전공하면서 일반 학교에 다니면 이중삼중으로 교육받고 첼로에 집중하기 어려워 홈스쿨링을 택했다. 외국에서 공부할 것까지 생각해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라며 동열군도 이에 동의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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