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기수’들 태풍 몰고 올까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0.03.16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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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이종현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 심상치 않은 40대 바람이 불고 있다. 이른바 ‘40대 기수론’이다. 깃발은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 무대에서 가장 크게 휘날린다. 유력 후보 3인방으로 꼽히는 오세훈 서울시장, 원희룡 의원, 나경원 의원이 모두 40대이다. 민주당에서도 이미 안희정 최고위원과 이광재 의원이 충남과 강원 도지사 자리를 노리며 뛰고 있다. 지방선거를 이끌 양당의 지휘부에도 40대가 대거 포진해 있다. 이들의 움직임은 차기 대선 구도와도 긴밀하게 맞물려 있어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지방선거 지형을 바꿀 40대 기수들의 면면과 의미를 짚어보았다.

정치권에 40대의 질주가 시작되었다. 40대인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탄생에서 보듯, 이는 우리나라에도 정치권에 거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반란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국회의원에 이어 주요 정당 당직과 지방자치단체장에 40대가 대거 포진하는 추세이다. 민주화 흐름 속에서 청년기를 지낸 이들은 여야를 떠나 합리적·개혁적이며 도덕적인 기반을 갖추고 있다. ‘40대의 약진’은 앞으로의 대권 구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역대 정치권에서 40대 기수론이 주목되었던 이유는 기성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염증을 잘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1970년이었다. 당시 제1 야당인 신민당은 한마디로 곪을 대로 곪아 있었다. 나약했고, 무기력했다. 당수였던 유진산은 ‘진산 파동’으로 도덕성 위기에 몰렸고, 대선 후보로 꼽혔던 유진오는 병마에 시달렸다. 위기에 빠진 야당에 활력을 불어넣은 이는 두 40대 정치인인 김영삼(YS)과 김대중(DJ)이었다. 이들은 ‘40대 기수론’을 주창하며 대권 도전을 선언하고 나섰다. 당시 중진 정치인들은 ‘구상유취’라고 비웃었으나, 국민은 이들 편이었다. 1971년 대선에서 신민당 대선 후보는 47세의 DJ였고, 1974년 전당대회에서 신민당 총재에 46세의 YS가 선출되었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 교수는 “국민은 정치인에게 항상 무언가 신선함을 원한다. 그런 면에서 분명 40대가 주는 어필이 있다. 기성 정치인과는 패러다임이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다”라며 40대 정치인이 갖는 의미를 설명했다. 변화를 요구하는 유권자들에게 ‘젊은’ 정치인의 당찬 도전과 거침없는 비판은 그 자체만으로도 주목의 대상이 된다. 지금 상황도 그렇다.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40대 기수론’이 들불처럼 일어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개인의 정치적 입지를 위한 전략용으로 자주 쓰였다는 얘기이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단순히 연령만 40대라고 해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구분할 수 없다. 문제는 21세기 정치 문화를 선도해갈 수 있는 자질을 갖추었느냐 하는 점이다”라고 말한다.

현재 40대 기수론의 깃발은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장에서 가장 많이 나부낀다. 유력 후보 3인방으로 부각되는 오세훈 시장, 원희룡 의원, 나경원 의원이 공교롭게도 모두 40대이다. “최고의 흥행 구도가 만들어졌다”라며 여권에서는 이를 한껏 활용하려는 눈치가 역력하다. “이제는 지방선거를 과거에 대한 평가에서 미래에 대한 평가 패턴으로 바꾸어야 한다”라는 얘기도 그래서 나온다. 한나라당의 ‘차기’ 또는 ‘차차기’ 주자들을 시장에 모두 내놓고 흥행 몰이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나경원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당에서 흥행 요소를 고려해서 세 후보의 경선을 몰아가려는 것 아닌가라는 지적도 일각에서 제기된다’라는 질문에 “그런 요구도 있었던 것으로 본다. 그런 의도로 얘기하시는 분도 봤다”라고 밝혔다. 강승규 한나라당 의원은 자신의 블로그에 이들 세 후보를 거론하며 ‘신 40대 기수론’을 직접 주장하고 나섰다. 현재 한나라당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의원 역시 40대 정치인이다.

청와대도 세대교체에 힘 실어주는 분위기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서울에서 펼쳐질 40대 후보들의 경쟁이 전국적으로도 신선한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민주당이나 진보 세력 정당 등에 비해 ‘노인 정당’ 이미지가 강했던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젊은 유권자들에게 파고드는 데 더없이 좋은 구도인 셈이다. 

주목할 것은 이런 분위기가 갑작스레 형성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나라당 내 소장파들이 오는 6월의 지방선거와 7월의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미 지난해부터 ‘세대교체론’을 강하게 들고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분석이 이를 증빙한다. 집권 후 지난 2년간 계파 싸움에만 매몰된 여당에 대한 국민들의 염증이 그 도를 넘어섰다고 보고 있다. 친이계로 분류되는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은 “최소한 우리들만큼은 계파적 시각으로 보지 말아달라. 계파를 떠나서 소장파들이 이제 당의 전면에 나서야 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일각에서는 “개혁 소장파만큼은 친이·친박이 아닌 중도파를 표방해야 한다”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들은 ‘범친이계’의 울타리 안에 아우를 수 있는 세력이라는 점에서 그 배경으로 청와대와 이명박 대통령을 빼놓고 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 지난해 8월 이명박 대통령이 오세훈 서울시장과 함께 광화문 광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세대교체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는 남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지난해부터 사정 기관과 행정 부처를 중심으로 과감한 인사 조치를 통한 세대교체 의지가 확인되고 있다. 한나라당이 지난 2월4일 새 당직자 임명을 단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대통령과 정몽준 대표의 청와대 회동에서 밑그림이 그려졌다는 전언이다. 지방선거를 책임지게 될 당직자를 모두 개혁 소장파 출신들로 임명한 것은 단연 두드러진다. 사무총장에 정병국 의원이 임명되었고, 남경필 의원은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았다. 이들은 원조 소장파로 상징되는 ‘남·원·정’ 멤버이다. 원의원 역시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직접 뛰어들었으므로 사실상 세 사람이 모두 이번 지방선거에 주역으로 나선 셈이다. 여기에 지방선거기획위원장을 맡은 정두언 의원도 남·원·정 트리오와 지난 17대부터 행동을 같이해 온 원조 소장파의 핵심 멤버이다.

 

이번 지방선거를 계기로 정치권의 세대교체 바람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은 그동안 청와대와 여권 주변에서 심심찮게 들려왔다. 청와대에서 최근 유난히 ‘토착·교육·권력형 3대 비리 척결’ 의지를 내비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청와대가 직접 움직인다는 얘기가 무성하다. 지방선거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40대 정치인이 지난 1~2월께 이대통령을 독대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주변에서는 “그저 ‘열심히 뛰겠다’ ‘건투를 빈다’는 정도의 덕담 수준이 오간 것에 불과하다”라고 말하지만, 만남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시각이 많다. 청와대의 한 수석이 직접 유력 후보들을 접촉하고 다닌다는 얘기도 나온다. 

“40대 기수론은 꼭 연령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정치 성향”

이미 청와대가 ‘차기’ 구도까지 그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하는 시각도 있다. 여권 내에 만연하고 있는 ‘친이-친박’ 간 계파 갈등 이미지도 불식시키고, 아울러 친박계의 입지를 좁힐 수도 있어 일거양득이라는 계산이다. 밀어주어야 할 인물과 그렇지 않은 인물의 윤곽이 서서히 구분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최근 정부에서 발행하는 한 책자의 표지에 여권의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인사가 올랐으나, 청와대에서 제동을 걸었다. 이 인사를 좋지 않게 보는 정서가 강하게 느껴졌다”라는 한 유력 언론사 관계자의 전언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청와대 주변에서 다시 개각설이 부쩍 나돌고 있고, 여기에는 김태호 경남지사, 원희룡 의원을 포함한 40대 정치인들의 이름이 활발하게 오르내리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을 키워야 한다”라는 목소리가 여권 내에서 점점 더 강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사실 40대 기수론을 먼저 들고 나온 쪽은 민주당이었다. 민주당에서는 진작부터 ‘486세대’(40대 나이,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를 중심으로 한 40대 기수론으로 지방선거와 대선을 정면 돌파해야 한다는 내부 움직임이 있었다. 민주당은 이미 안희정 최고위원과 이광재 의원이 충남과 강원 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뛰고 있다. 송영길 최고위원 역시 인천시장 출마를 당에서 강력히 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과 마찬가지로 민주당 역시 지방선거 사령부는 온통 40대 정치인 일색이다. 김민석 최고위원이 지방선거기획본부장을 맡고 있고, 최재성 의원이 당 통합혁신위원회를 이끌고 있다. 다른 야당과의 단일화 협상은 윤호중 수석 사무부총장이 협상 대표를 맡아 뛰고 있다. 최의원은 “이제는 40대가 된 과거의 386세대들이 정치 전면에 나서야 한다. 우리도 40대의 깃발을 들어 ‘세대 약진’을 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동교동계의 막내로 불리는 장성민 전 의원 역시 ‘40대 기수론’을 강하게 주장하며 오는 7월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 경선에 출마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들의 움직임은 비단 지방선거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이어질 전당대회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길게는 2012년 대선까지 바라보며 대세 몰이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라고 전했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 교수는 “과거 1970년대의 상황과 지금은 분명히 다르다. 양김씨처럼 40대 정치인이 일거에 당권을 장악하고 대선에 뛰어들 가능성은 작다. 다만, 두 가지 측면에서 향후 상당한 정치 지형의 변화를 몰고 올 것은 분명하다. 우선은 지금까지 지방선거 경향이 과거 회귀적이었는데, 40대 기수론을 통해서 미래 전망형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전체 선거판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또한, 40대 기수론은 꼭 연령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정치 성향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인의 충원 과정에서도 486세대의 다량 유입이 예고되는 만큼 정치권의 세대교체가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밝혔다.

 ‘양김’ 이후에는 대부분 ‘찻잔 속 돌풍’
역대 40대 기수론자들의 대권 도전사

역대 대선마다 ‘40대 기수론’을 내세우거나 또는 그 이미지를 계속 부각시키며 대권에 도전한 정치인은 많다. 하지만 ‘원조’ 격인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들과는 달리, 그 후예들은 대부분 단발에 그쳤다. 

양김씨 이후 40대에 가장 유력한 정치인으로 올라선 이로는 박찬종 전 의원을 꼽을 수 있다. 1987년 13대 대선 때 그는 양김씨의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는 삭발식을 감행하는 등 누구도 넘보지 못했던 양김씨의 권위에 도전했다. 실제 그는 1992년 대선 때 단기 필마로 출마해, 양김씨의 틈바구니에서 1백50만 표를 얻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1997년 당내 경선에서 탈락하며 대권의 꿈을 접어야 했다.

1992년 대선에서는 박철언 전 장관이 뒤를 이었다. 노태우 정권의 ‘황태자’로 불리며 40대에 이미 재선 의원에 정무·체육부 장관을 두루 역임했던 그는 YS의 벽을 끝내 넘지 못하고 분루를 삼켜야 했다. 이인제 의원은 DJ 이후 실제 40대의 나이에 대선 출마까지 한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49세 때인 1997년 대선에서 여당인 신한국당의 대선 후보로 급부상하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회창 후보에게 경선에서 패하자, 당을 탈당하고 신당을 창당하며 대선 출마를 강행했다. 결과는 3위 낙선이었다. 이후 2002년 대선에 다시 한 번 도전했으나, 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또 패배하고 말았다.

2002년 대선에서는 정동영 의원이 깃발을 이어받았다. 그는 2001년 민주당에서 정풍 운동을 주도했고, 이 기세를 이어나가 2002년 대선에 출사표를 던졌으나 당내 경선을 완주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정의원은 이를 기반으로 여권의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로 부각되었고, 2007년 대선에 출마했다. 마찬가지로 현재 여야의 잠룡으로 분류되는 원희룡 의원과 유시민 전 장관 역시 지난 2007년 대선 경선 과정에서 40대 기수론의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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