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위기에서 호기 잡은 독일 유럽 경제 ‘관제탑’으로 우뚝 서나
  • 조명진 | 유럽연합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
  • 승인 2010.03.23 14:5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리스 재정 문제 해결할 재량권 쥐어…수출 주도형 경제에도 잇달아 ‘청신호’

 

▲ 최근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 아테네 도심의 한 중고품 가게에서 코스타츠 카라만리스 전 총리의 초상화가 보이고 있다. ⓒAP연합

지난해 말부터 불거진 그리스의 재정 위기는 유로존 전체를 커다란 충격에 빠뜨렸다. 이제는 어떻게 그리스에서 촉발된 재정 위기의 충격을 최소화할지가 다른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의 최대 관심사이다. 그 가운데서 독일이 가장 주목된 이유는 그리스를 위기에서 건져낼 수 있는 재량권이 독일에 있기 때문이다. 먼저 독일 경제에 대해 재평가해 보고, 이어서 그리스 위기의 추이를 살펴보자.

사실 1990년대 말만 하더라도 많은 경제학자는 독일을 유럽의 병자처럼 취급했었다. 통일 후 후유증으로 과도한 사회보장비를 지출했고, 생산성이 저하되는 현상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경제 침체에도 독일의 실업률은 5년 전보다 낮고, 세계 최대의 수출국 자리는 중국에 내준 상태이지만, 무역 수지는 아직 중국보다 좋다. 2009년 독일은 1천2백24억 유로의 무역 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또 주목할 만한 점은, 전후 독일 경제 성공의 상징인 마르크화를 포기하고 유로화를 채택한 것이 오히려 어떤 유럽 국가들보다도 독일에게 이득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독일 수출의 3분의 2가 유럽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환율 평가 절하로 독일의 경쟁력이 손상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유로존 국가로 수출하고 있다. 그 덕에 독일은 무역 수지 흑자를 만끽해왔다.

통일 이후 독일 경제의 걸림돌이 된 동독의 낮은 생산성에도 독일이 이룬 성과는 경이롭다. 동독을 통일 독일 경제에 통합시키는 비용이 2005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독일 경제에 고무적인 일이다. 이를 극복하고 경제력을 다시 보여주는 것은 독일 산업 전반의 잠재력 때문이다. 머니모닝 3월10일자는 “미국은 거대 금융 분야를 지니고 있고, 중앙 은행이 돈을 찍는 것을 막을 사람이 없다. 게다가 정부는 과다 지출을 한다. 이에 반해 독일은 리스크 자본이 없는 나라이다”라고 평가했다.

독일의 국가 재정 정책은 미국을 포함한 다른 선진국보다 우수하다. 2008년 경기 부양책에 대한 언급이 미국에서 나왔을 때, 독일의 재무장관인 피어 스타인부르크는 이를 두고 ‘무신경한 케인스주의(crass Keynesianism)’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 독일은 경기 부양책을 취하지 않았지만, 경기 침체에도 재정 적자가 GDP(국내 총생산)의 5% 이하이다. 2010년 예산에서 공공 지출을 58억 유로 삭감한 것에서 잘 나타나듯이,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독일 정부는 무분별한 공적 자금 사용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이러한 정책의 결과로 독일은 인플레이션 없는 경제 회복을 보였고, 재정 수지도 GDP의 5.2%에 해당되는 흑자를 보이고 있다. 1999년 11개 회원국이 통화 통합에 동참하기 전, 1백55명의 독일어권 경제학자들은 단일 통화 도입을 연기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이 경제학자들은 통화 통합에 참가한 회원국들이 국가 부채와 재정 적자를 낮춘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통화 동맹에 적합한 시기에 이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일부 회원국은 통화 동맹에 참여하기 위해서 인위적인 회계장부를 만들고 있어, 결국 유로화의 안정을 해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었다. 그런데 현재 그리스 재정 위기를 보면 그 예언이 실제로 맞아떨어지고 있다. 만일 그리스를 구제해주게 되면, 유로화 자체가 타격을 입게 되니, 유로화는 난관에 봉착한 셈이다.

▲ 지난 2월11일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만난 메르켈 독일 총리와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앞줄 왼쪽부터). ⓒAP연합

 

독일 중앙 은행 총재가 유럽 중앙 은행 총재 맡을 가능성도 커

이러한 딜레마가 가장 뚜렷이 체감되는 곳이 독일이다. 그리스의 구제 문제가 논의되자, 모든 시선은 EU의 경제 대국이자 최대 채권국인 독일로 쏠리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2월11일 EU 정상회담에서 그리스를 지원할 것이라고 모호하게 시사하면서, 동시에 그리스 정부에 재정 적자를 줄일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으라고 촉구했다. 

유로를 사용하는 16개국은 부채를 갚을 수 없는 회원국을 구제하는 장치로 IMF(국제통화기금)처럼 EMF(European Monetary Fund)를 창설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EU의 전례를 볼 때, EMF 구상은 유럽 경제의 발목을 잡을 뿐만 아니라 정치 자금으로 사용될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1999년 유로화가 전자 거래로 통용되기 시작했을 때, 유로화의 약점으로 꼽힌 것이 바로 재정 적자에 대한 통제 장치가 없다는 문제였다. 유로화를 채택할 수 있는 EU 회원국의 요건은 회원국 재정 적자가 GDP의 3%를 넘지 않는 것이었지만, 이 한도를 강제로 집행할 만한 장치도 없었고, 회원국의 파산을 막을 장치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 그리스 재무 위기가 독일에게 반드시 악재만은 아니었다. 그리스 위기로 인해서 올 초기에 유로화가 달러에 대해서 10% 절하함에 따라서 수출 주도 경제인 독일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더불어 이번 그리스 재무 위기는 독일 중앙 은행의 악셀 베버 총재가 유럽 중앙 은행 총재직을 계승할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고 관측된다. 그렇게 될 경우, 베버 총재는 더 강한 재정 정책을 펴서 제2의 그리스 사태의 발생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독일의 시사 주간지 <슈피겔> 3월17일자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는 17일 국회 연설을 통해서 공동 통화 정책을 유지하기 위한 규정을 어기는 유로존 회원국은 강제 방출되는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메르켈 총리는 그리스에 대한 조속한 지원은 없을 것이고, 그리스는 외부의 재정적 도움을 받기 이전에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독일은 그리스와 여타 유로존 국가들이 기대하는 역할을 맡지 않을 가능성이 커보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