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시골 마을 흔든 ‘종교와의 전쟁’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10.03.23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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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의 방곡리 주민들, 대순진리회의 마을 일대 토지 매입에 ‘발끈’…군청의 종교 시설 건축 허가에도 반발

 

▲ 이상용 봉곡리 이장이 대순진리회가 건축 허가 승인을 받은 종교 집회장 부지를 가리키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충청북도 괴산군 장연면 방곡리는 90여 가구에 2백50여 명이 사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대순진리회를 창건한 박한경 도전이 태어나서 자란 곳이기도 하다. 박도전은 이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종교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전쟁 중 마을을 떠난 이후 1995년 12월 사망할 때까지 고향을 찾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이 마을이 시끄럽다. 대순진리회가 박도전의 생가를 복원한 데 이어 종교 시설을 건축하겠다고 나서면서 마을 주민들과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대순진리회는 지난 2006년 방곡리에 박도전의 생가를 복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대순진리회측에서 마을 일대 토지를 대거 매입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대순진리회는 방곡리 일대의 토지를 하나 둘씩 매입하기 시작했고, 그 규모가 46만2천㎡(약 14만평)에 이른다. 생가 복원 당시 마을 이장을 맡았던 황태진씨는 “생가를 복원할 때는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책임자가 생가 이외에는 다른 계획이 없다고 했다”라고 밝혔다.

마을 주민들은 대순진리회가 마을 일대 토지를 매입하면서 정작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고 주장한다. 옥수수 농사의 경우 경작할 수 있는 토지 면적이 넓어 땅을 빌려 농사짓는 임대 농가가 많다고 한다. 주민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상용 이장은 “특히 고향으로 귀농한 40~50대 초반 주민이 20여 명인데, 소유 농지가 적어 대부분 임대 농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대순진리회에서 자꾸 농지를 사들이니까 다시 도시로 나가야 할 판이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지난해 말 대순진리회가 마을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부지에 5천9백50m²(1천8백평)의 기념관 등 건물을 짓겠다며 괴산군청에 건축 허가 신청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마을 주민들의 반발이 본격화했다. 한 차례 우여곡절이 있었다. 대순진리회는 지난해 11월26일 종교 시설로 건축 허가를 신청했고, 군청으로부터 허가 승인을 받았다. 이에 마을 주민들은 상수원이 위치한 곳에 건물이 들어서면 안 된다며 문제를 제기했고, 대순진리회는 올해 1월22일 재단의 사업 계획 변경을 이유로 건축 허가 취소원을 제출했다. 이로써 갈등은 봉합되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대순진리회가 2월18일 당초 규모를 대폭 축소한 2백11.7㎡(약 64평) 규모로 종교집회장을 짓겠다고 다시 건축 허가를 신청하면서 갈등의 불씨가 되살아났다. 지난 2월22일 시위에는 주민 100여 명이 참가했다.

주민 생계 위협 주장에 대순진리회측, “마을 투표 결과 나오면 수용”

▲ 지난 2006년 복원된 박한경 도전의 생가. ⓒ시사저널 임준선

종교 시설을 짓는 데 반발하는 마을 주민들은 일련의 상황 전개가 의도적이라고 보고 있다. 이상용 이장은 “일단 규모를 줄여서 다시 허가를 신청했는데, 증축 허가는 쉽게 날 수 있다고 한다. 증축을 해서 원래의 계획대로 하려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괴산군청은 지난 3월12일 해당 건축의 허가를 최종 승인했다. 이에 따라 대순진리회에서 착공 신청만 하면 언제든지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괴산군청 관계자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기 때문에 허가를 내주었다. 증축 허가가 쉽다고는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상점이 모여 있는 마을 입구 땅을 두고도 갈등을 빚고 있다. 30여 년 전까지 5일장이 들어섰던 이곳은 이후 주로 마을 행사를 치르는 주민 광장으로 사용해왔다고 한다. 황태진씨는 “이 땅은 마을 소유로 알고들 있었다. (소유주가) 구두상으로 희사한 땅이다”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6월 대순진리회에서 운영하는 상생영농조합이 이 토지를 매입했다. 그리고 최근에 이 땅 주변에 가림막이 길게 펼쳐져 출입이 막혔다. 현장은 인근 상점의 입구와 맞닿아 있다. 이곳에서 보강약방을 운영하는 김봉기씨는 “가게 앞을 파내고 포장을 쳐서 영업을 방해하고 있다. 차도 못 들어오고, 오토바이도 못 꺼내고 있다. 식당은 아예 문을 닫았다. 이래서야 어떻게 생활을 할 수 있느냐”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주민대책위에서는 ‘대순진리회에서 주민들을 압박하기 위해서 이러한 조처를 한 것 아니냐’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상용 이장은 “대순진리회에서 이 땅을 매입한 후 온갖 일을 벌이고 있다. 상생영농 연구실로 사용하겠다고 하는데, 주변 상인들이 장사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지만, 압박용으로 이용하려는 것 같다”라고 주장했다.

주민들의 이같은 반발에 대순진리회는 “법에 위배되는 것도 아니고 유해 시설도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대순진리회 관계자는 “잘못된 일이라면 군청에서 허가를 내줄 일도 없다. 그리고 몇 사람의 주장일 뿐이다. 마을 전체가 반대한다면 시설을 짓지 않는다. 투표해서 그런 결과가 나오면 수용하겠다. 그런데 몇 사람이 나서서 사유 재산을 이래라 저래라 해서야 되겠느냐”라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또 “그동안 마을에서 원하는 요구는 다 들어주었다. 땅도 마을에서 사달라고 부탁을 해서 두 배 이상 높은 가격으로 샀다. 직접 나서서 매입한 것은 기념관을 지으려던 토지뿐이다. 이 땅을 사는 데도 마을 주민이 도움을 주었다”라고 밝혔다.

 

 ‘진짜’ 대순진리회는 어디?

대순진리회는 박한경 도전이 사망한 후 종권을 둘러싼 분열로 극심한 내홍을 앓았다. 같은 대순진리회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지만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법정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방곡 마을에 생가를 복원하고 종교집회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곳은 중곡도장이다. 중곡도장은 박도전이 대순진리회를 창설한 후 첫 번째로 세운 도장이다.

대순진리회의 도장들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큰 여주본부도장은 방곡 마을 사업과 관련이 없다. 여주본부도장 관계자는 “아무런 얘기도 없었고 협의도 없었다. 독자적으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본부도장에서 손을 쓸 수가 없다”라고 밝혔다.

방곡리 인근인 동부리에 위치한 중원대학의 경우 대진성도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진교육재단이 1997년 괴산대진보건전문대 건립을 확정했지만, 1999년 충북대진대로 개명이 되었다가 중원대로 다시 변경되었다. 개교 일정도 여러 차례 바뀌어 지난해에야 뒤늦게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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