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과 바티칸까지 들쑤시는 신부님들의 ‘부끄러운 이야기’
  • 조명진 | 유럽연합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
  • 승인 2010.04.1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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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회 성직자 관련 아동 성추행 사건 ‘장기간 조직적으로’ 은폐해 온 사실 드러나

▲ ‘성직자들로부터 학대를 받은 사람들의 네트워크’(SNAP) 회원들이 3월24일 바티칸 광장에서 피해자들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AP연합

성직자가 연루된 스캔들이 사회에 더욱 커다란 충격을 주는 것은 그들의 업이 세속적인 직업과 구별된 ‘성직(聖職)’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공개된 가톨릭 교회의 성직자와 관련된 아동 성추행이 세계적으로 더욱 화제가 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장기간에 걸쳐 은폐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점과 가톨릭교회의 수장인 교황 베네딕트 16세가 관할했던 독일 교구에서도 발생했었다는 점이다.

이번 아동 성추행 스캔들의 시발점은 미국이다. 지난해 11월 미국 코네티컷 대법원은 교회의 만류에도 코네티컷 교구 소속 신부들에 의한 성추행 사건과 관련한 문서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언론사에 공개된 문서에는 여섯 명의 신부가 관련된 23건의 소송을 담고 있고, 그 분량만도 2천 쪽에 달했다.

거의 같은 시점에 아일랜드에서도 가톨릭 교회와 경찰이 함께, 신부들에 의한 아동 성추행을 수십 년간 조직적으로 은폐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아일랜드 정부가 만든 7백 쪽에 이르는 이 문서에 따르면 이들은 성추행 피해자를 돕기보다는 비밀을 유지하는 데에 더 신경을 썼던 것으로 밝혀졌다. 더블린의 마틴 추기경은 성추행 사건의 상세한 내용을 보고 ‘역겨운 이야기(revolting story)’라고 토로하면서 “어떤 사죄의 말도 부족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12월26일에 공개되었고 ‘머피 보고서(Murphy Report)’라고 불리는 이 문서는 성직자에 의한 성추행 고발 문제가 어떻게 다루어졌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보고서는 1975년에서 2004년까지 45명의 성직자가 3백20명의 아동에게 행한 성추행을 망라하고 있다. 그런데 기소된 45명의 성직자 가운데 11명만이 유죄 판결을 받았고, 나머지 성직자들은 면책을 받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아일랜드 경찰은 이 나머지 성직자들이 법적 처벌을 받지 않도록 해주거나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사건을 해당 가톨릭 교구에서 내부 조사하라고 되돌려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물의를 일으키자 아랜 아일랜드 법무장관은 어린이를 상대로 파렴치한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누구이든, 언제 일어났든, 추적해서 처벌하겠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또한, 아일랜드 가톨릭 신부들이 저지른 아동 성추행에 대해서 현 교황 베네딕트 16세는 그들이 하나님에 대한 숭고한 서약을 저버린 것일 뿐만 아니라 성직자를 믿고 아이들을 맡긴 부모들의 신뢰를 저버린 것에 대해서 배신감과 수치심을 느낀다고 참담해했다. 문제가 된 교구 주교들의 사임을 포함한 징계조치가 뒤따를 것임을 시사했다. 지난 12월 바티칸 교황청은 아일랜드 가톨릭 신부들의 아동 성추행을 조직적으로 은폐해 온 책임을 물어 아일랜드의 브렌던 주교의 사임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같은 내부 징계 조치에도 설상가상으로 가톨릭 교회 성직자들의 아동 성추행은 미국과 아일랜드에 이어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에서도 드러나 그 파장이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독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은 100여 명의 가톨릭 성직자와 사제들이 1995년 이래로 독일 전역에서 아동 성추행을 벌였다는 의혹을 담은 기사를 실었고, 이 때문에 바티칸은 더욱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현 교황 베네딕트 16세의 출신 교구에서도 이같은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바티칸은 베네딕트 16세 교황의 형인 게오르그 라칭어 신부에게 화살이 향해진 것에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1924년생인 라칭어 신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겐스부르크 성당 성가대를 1964년에서 1994년까지 30년간 이끌었다. 문제는 이 성가대 운영을 맡았던 두 명의 신부가 성추행에 연루되어 사법적 처벌을 받은 바 있다는 것이다.

병원 치료 후 복직한 성추행 신부, 추가 범행 저지르기도

현재 서구 세계 곳곳에서 드러난 가톨릭 교회의 아동 성추행 문제와 은폐 의혹은 이제 베네딕트 16세 교황의 문 앞까지 근접해 있다. 베네딕트 교황은 바티칸으로 옮기기 전 뮌헨 추기경으로 1977년에서 1982년까지 재임했었는데, 뮌헨 추기경으로 있었던 1980년, 실제로 소년들을 성추행한 신부에게 병원 치료를 받게 한 후, 다시 복직시켜서 추가적인 성추행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바티칸 대변인 론바르디 주교는 “이 문제에 교황은 책임이 없다”라고만 발표하고 더 이상의 논평을 하지 않았다.

문제가 이렇게 확산되자 바티칸은 사죄하고 용서를 빌던 종전의 태도에서 바뀌어 교황의 권위를 침해하려는 음모라고 규정하며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지난 4월4일 교황의 부활절 미사에 앞서 로마 가톨릭 대학 학장인 안젤로 소마노 추기경은 “가톨릭 교회가 아동 성추행 추문에 대한 ‘하찮은 소문(petty gossip)’에 정신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라고 강론하며 교황에 대한 방어적 입장을 표명했다. 이런 바티칸의 태도에 대해 아동 성추행 피해자 모임 대표는 “피해자는 위로와 치유를 필요로 하는데, 이러한 외침이 그저 ‘하찮은 소문’으로 치부된다는 것은 모욕적인 일이다”라며 분개했다.

통상적으로 종교적 기준은 사회적 규범보다 고차원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에 따라 성직자에 대한 준거의 틀도 세속적인 직업과 구별되어왔다. 그러나 일련의 가톨릭 교회 내 아동 성추행 사건은 신앙심을 약화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톨릭 교회의 도덕적 권위에 커다란 손상을 입히고 있음이 분명하다.

가톨릭 성직자에 의한 아동 성추행 사건은 현 교황 베네딕트 16세와 바티칸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 교황 베네딕토 16세와의 만남을 위해 3월25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 운집한 청년 가톨릭 교도들. 교황청은 이날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자신들의 입장을 강하게 변호하고 나섰다. ⓒ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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