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답게 ‘한 수’ 가르쳐 줘?
  • 김봉현 | 대중음악평론가 ()
  • 승인 2010.04.20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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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 컴백, 걸 그룹 인기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없어…신인 작곡가 전격 기용 등 ‘파격’ 또다시 화제

 

이효리가 돌아왔다.
‘여왕의 귀환’이다. 수십 개의 언론사를 몇 그룹으로 나누어 라운드 테이블 형식의 ‘묶음 인터뷰’를 제의한 것도, 그 제의에 모든 언론사가 응한 것도 모두 이효리의 ‘위엄’을 말해준다. 이렇듯 그녀가 위엄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1등’이기 때문이다. 만약 실력을 한 줄로 세워 측정할 수 있는 기계가 있다면 그녀는 1등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거의 모든 사람이 여성 가수라는 카테고리 내에서, 또는 주류 가요계라는 집합 안에서 그녀를 1등으로 여긴다는 사실이다. 언제나 실체보다 강한 것은 인식이다.

 오해는 하지 말자. 지금 이효리를 이미지뿐인 가수로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물론 지금까지 쌓아올려진 이효리의 위엄 안에 거품 같은 것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이효리의 현 위치를 흔들 만큼 큰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실제로 이효리는 훌륭한 엔터테이너이자 문화 아이콘으로 성장해왔다. 힙합, 알앤비 등 자신이 선호하는 흑인 음악을 기반으로-적어도 주류 가요계 내에서는-꾸준히 양질의 음악을 선보였고, 그녀의 무대 퍼포먼스는 대중이 여가수에게 기대하는 당찬 섹시함을 강렬하게 만족시켰다(물론 표절 시비가 있었지만 그녀에게 면죄부는 줄 수 없을지언정 책임의 큰 부분은 해당 작곡가가 짊어져야 옳다).

네 번째 솔로 앨범. 그러나 지금까지와는 상황이 사뭇 다르다. 2009년을 한바탕 휩쓸고 간 ‘걸 그룹 열풍’ 때문이다. 지난해 가요계의 가장 큰 이슈였던 걸 그룹 열풍은 정점을 찍은 듯 요즘 들어 다소 누그러진 기색을 보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가요계의 핵심적 경향이다. 이러한 걸 그룹 열풍을 보는 데에는 다양한 시선이 있지만, 이 글에서 주목할 지점은 그들의 ‘음악’이다. 온도 차야 있겠으나 걸 그룹의 음악이 예전에 비해 ‘발전했다’ 혹은 ‘들을 만해졌다’는 평가는 이제 ‘팩트’가 되었다.

그런 그들 뒤에는 작곡가가 있다. 용감한 형제, 이-트라이브(E-Tribe), 켄지, 신사동호랭이, 테디 등으로 대표되는 그 이름들은 때로는 소속사의 그룹들을 꾸준히 지원하면서, 때로는 다양한 팀과 가리지 않고 작업하면서 지난해 주류 가요계를 지배했다.

저마다 다양하고 복잡한 이들의 음악 성향을 딱 잘라 분류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대부분이 댄스-팝 성향을 띠었던 것은 사실이다. 먼저 잘 짜인 구성과 편곡으로 지겹지 않은 노래를 만드는 능력을 지닌 이-트라이브는 지난 한 해 모든 주류 가요를 통틀어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동시에 음악적으로도 인정받았던 소녀시대의 <Gee>를 탄생시켰고(<Gee>는 지난 3월 열린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노래’ 부문을 수상했다), 용감한 형제는 흑인 음악에 뿌리를 두지만 다양한 음악을 만드는 재주로 철저한 대중 맞춤형 곡도 만들어내며 애프터스쿨, 손담비 등을 도왔다. 또, SM엔터테인먼트 전속 작곡가인 켄지는 소녀시대의 <Oh!>, 에프엑스(F(x))의 <LA chA TA>와 <Chu~♡> 등으로 소속 그룹의 색깔을 확립했고, 그룹 원타임(1TYM) 출신의 테디 역시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의 태양, 투애니원(2NE1) 같은 가수들의 곡을 전담하며 힙합과 R&B를 기반으로 주류 가요가 포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본질에 가까운 음악을 들려주었다. 한편, 신사동호랭이는 포미닛(4Minute)의 <Hot Issue>와 <Muzik>에서 보듯 특유의 투박함과 번지르르함을 무기로 인기몰이를 했고, 티아라(T-ara)의 <Bo Peep Bo Peep>으로 일명 ‘후크송’ 열풍을 이어가며 유행에 대한 적응력을 드러냈다.

▲ 가수 이효리가 4월15일 Mnet ‘엠카운트다운’이 마련한 컴백 무대에서 4집 앨범 타이틀곡 을 선보이고 있다.

기존 가요계와 차별되는 색깔 만드는 ‘재주’ 독보적

이들이 만들어낸 음악은 지난해 ‘흑인 음악’ ‘후크송’ ‘웰메이드’ 등의 키워드로 묶이고 풀리기를 반복하며 2009년 주류 가요계를 이끌었다. 그리고 최근 들어 걸 그룹들은 약속한 듯 저마다 강한 여성으로의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며 또 한 번 새로운 판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소녀시대의 <Run Devil Run>, 카라의 <Lupin>, 티아라의 <너 때문에 미쳐>, 애프터스쿨의 <뱅!> 등이 좋은 예이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이효리의 컴백이 이루어졌다. 걸 그룹들을 라이벌로 인식한다면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고, 여성 가수의 강세라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걸 그룹과 이효리를 잇는 연결 고리는 생각보다 그리 단단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여성 가수라는 점, 유행을 선도한다는 점, 댄스에 기반을 둔다는 점 등에서는 같지만 이효리가 들고 나온 음악을 걸 그룹의 무조건적인 연장선으로 보기에는 관점에 따라 다소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무명 프로듀서의 전격 기용이다. 앨범의 대부분을 신인 작곡가(혹은 팀)인 바누스(Bahnus)와 라이언 전(Ryan Jhun)이 프로듀싱했다. 파격적이다.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대다수 걸 그룹이 히트곡을 이미 보유한, 그래서 흥행이 어느 정도 검증된 작곡가에게 곡을 맡기는 것과는 확실히 대조된다. 그녀가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타이틀곡 <Chitty Chitty Bang Bang>에 객원 래퍼로 참여한 씨제이(Ceejay) 역시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에서 활동해 온 잘 알려지지 않은 래퍼이다. 실은 이미 그녀는 지난 앨범에서 무명에 가까웠던 이-트라이브에게 타이틀곡 <U-Go-Girl>을 맡기며 화제를 불러일으킨 적이 있고, 이-트라이브는 현재 가요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프로듀싱 팀이 되었다. 이번 앨범에서도 그녀는 신인 작곡가를 기용함으로써 기존의 가요계와 차별되는 색깔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신인들의 앞길을 터주는 고마운 선배(?) 노릇을 톡톡히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걸 그룹처럼 미니 앨범이나 싱글을 발표하지 않고 정규 앨범을 발표한 것 역시 주목할 부분이다. 일종의 고집이다. 그녀가 아직까지 음악을 ‘원-히트 싱글’이 아니라 ‘구성된 하나의 작품’으로 본다는 증거이다. 선배 가수로서 모범적인 행동이다.

음악에 대한 세부적 평가를 논외로 한다면,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이효리의 컴백에서는 이렇듯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자기 색깔, 노력, 고집, 모범 같은 단어가 읽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이번에도 정상을 지킬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아마 우리 대중음악계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퍼포먼스를 그녀가 보여주리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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