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노무현’ 업고 ‘韓風’ 몰아칠까
  • 감명국·김회권 기자 ()
  • 승인 2010.04.20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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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호남·영남의 바람 북상시켜 수도권 공략할 채비…정체되어 있던 야권 후보들의 약진 발판으로도 활용

‘??? 죽이기’. 섬뜩하다. 보이지 않는, 그러나 우리 사회의 거대한 세력이 특정 인물 아무개를 죽이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판에 자주 회자되는 말이다. 이 표현의 시발점은 강준만 전북대 교수였다. 1995년 발간된 강교수의 저서 <김대중 죽이기>가 한껏 유명세를 탔다. 그는 2003년 <노무현 죽이기>도 펴냈다. 역설적이게도 두 사람은 ‘죽지 않고 살아서’ 대통령이 되었다. 현 정부 들어서는 한때 ‘박근혜 죽이기’라는 말이 떠돌기도 했다. 차기 대권주자로 부동의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위상을 보여준다는 측면 때문이었을까. 오히려 측근들인 친박계 주변에서 자주 회자되었다. 그 한편에는 박 전 대표를 두 전직 대통령의 위상과 나란히 하고 싶은 욕심도 숨어 있다.

ⓒ시사저널자료

최근 ‘한명숙 죽이기’라는 말이 민주당 주변에서 부쩍 자주 등장하는 현상 또한 다르지 않다. 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인 김진표 최고위원은 “노무현 죽이기를 해 온 이 정부가 이제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다시 한명숙 죽이기에 나서고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명숙 전 총리를 두 전직 대통령과 동일시하는 전략이다.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다음 날인 4월10일, 한명숙 전 총리는 서울 동교동에 있는 김대중평화센터를 찾았다. 그는 이희호 여사를 예방한 자리에서 “이번 일을 겪으면서 김대중 대통령 생각이 많이 났다. 오랫동안 정치하면서 공작 정치에 희생당하시고 아픔을 많이 겪으셨다. 그렇게 많이 당했지만 보복 정치는 하지 않으셨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곧바로 경남 김해 봉하마을로 내려갔다. 그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한 후, 권양숙 여사를 만나서 함께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한 전 총리는 “국민이 노 전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했는데, 노 전 대통령이 저를 지켜주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한 전 총리가 재판 이후 첫 행보로 동교동과 봉하마을을 찾은 것은 현재 자신이 처한 상징성과 향후 전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에 의해 정계에 입문했고 여성부장관을 지냈으며, 노무현 정부에서는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을 만큼 ‘친노’의 어른이면서, 민주당 상임고문을 겸하고 있다. ‘친노’ 정서에 가까운 주류와 ‘동교동’ 정서에 가까운 비주류가 대립하고 있는 민주당에서 한 전 총리가 비교적 양쪽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적임자로 꼽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당내 비주류로 분류되는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비주류에서 한 전 총리의 서울시장 후보 출마에 대해 다소 비판적이라는 얘기가 있다”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비주류라고 해서 한 전 총리를 반대하지는 않는다”라고 밝혔다.

그는 “물론 주변에서는 한 전 총리보다 좀 더 젊고 역동적인 후보가 나와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 전 총리를 대체할 만한 대안이 없다는 데에는 당내에서 다 동의한다. 동교동과 친노의 정서 양쪽에 교집합을 갖고 있는 정치인이라는 강점이 있다”라고 평가했다. 

경남·충남에서의 ‘대이변’도 노려

사실상 한 전 총리는 지방선거와 관련해 민주당의 운명을 양어깨에 혼자 짊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당의 전략은 호남에서 ‘DJ 정서’를, 영남에서 ‘친노 정서’를 동시에 일으키고, 이 바람을 북상시켜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풍’(韓風)은 민주당의 6·2 지방선거 최대 승부수이다. 과연 이 승부수는 통할까.

우선 한 전 총리의 1심 무죄 판결은 당장 지방선거 판도에 상당한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무엇보다 정체되어 있던 야권 후보들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수도권이 도드라진다. 한 전 총리가 무죄 선고를 받은 날, 민주당 송영길 최고위원은 인천시장 출마를 선언하면서 유필우 전 의원과 4월24일 경선을 치르게 되었다.

경기에서도 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로 확정된 김진표 최고위원과 국민참여당 유시민 전 장관의 단일화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지방선거 전선을 ‘현 정부가 좋은지 싫은지’로 단순하게 만들어주었다. 유권자들의 감정적인 결집이 쉽도록 선거판이 짜여졌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한풍’을 서울만이 아닌, 전국적인 바람으로 삼겠다는 전략은 쉽게 노출된다. 한 전 총리는 4월10일 봉하마을을 방문하면서 자연스레 첫 정치 행보를 PK(부산·경남)에서 가졌다. 권양숙 여사를 예방한 이후 부산 서면 교보문고에서 자서전 사인회를 가졌는데, 이 자리에는 부산시장 출마를 선언한 김정길 전 장관이 참석했고, 둘은 서로의 저서를 교환하는 행사를 가졌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산에 출마할 후보들을 찾지도 못했던 민주당은 지금 김정길 전 장관과 김민석 최고위원이 잇달아 출마를 선언하면서 흥행을 노리고 있다. 한나라당도 다소 긴장하고 있다. 지난 4월12일 ‘부산일보-부산MBC’ 여론조사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이 단일 후보로 나설 경우 한나라당 허남식 시장(35.2%)과 김 전 장관(23.3%)의 격차가 11.9%포인트로 예상보다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경남 역시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할 예정인 김두관 후보의 상승세가 만만치 않다. 충남의 안희정 최고위원 역시 최근 분위기에 고무된 모습이다(상자기사 참조). 꿈쩍 않던 경기도도 들썩인다. 한겨레가 4월11일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한나라당 김문수 지사와 민주당 김진표 최고위원의 가상 맞대결 결과가 47.2% 대 31.5%로 나타났다. 김지사와 참여당 유시민 전 장관의 맞대결 역시 49.3% 대 34.3%였다. 격차가 약 15%포인트 차로 좁혀졌다. 한 달 전 조사에서 무려 30%포인트 차 가까이 벌어졌던 것에 비하면 큰 변화이다. 민주당에서는 호남 지역의 안정 구도 위에 수도권에서의 선전을 기대하고 있고, 여기에 상대적으로 열세로 꼽혔던 경남과 충남 지역에서의 대이변을 최상의 시나리오로 생각하고 있다.

 

▲ (왼쪽)뇌물 의혹 사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4월12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 참석해 정세균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오른쪽)오세훈 서울시장이 4월14일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에서 재선 출마 입장을 밝히기에 앞서 지자자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한나라당은 경계 분위기…“유훈 선거 하고 있다” 비판도

한나라당은 이런 분위기를 잔뜩 경계한다. 정병국 사무총장이 “한 전 총리가 봉하마을을 찾고, DJ 생가를 찾는 등 과거 지향적인 행보를 보이며 유훈(遺訓) 선거를 하고 있다”라는 비판에 나선 것 또한 이런 고민을 엿보게 한다. 당 주변에서도 “한풍은 일시적인 현상일 것이다”라고 짐짓 무시하지만, 남쪽에서 발원한 동풍과 서풍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그나마 한나라당은 경향신문이 4월13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안도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한 전 총리의 무죄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비율은 전체적으로 높았지만, 검찰의 별건 수사에 대해서는 ‘혐의가 있으면 수사하는 것이 맞으므로 별 문제 없다’라는 응답(53.6%)이 ‘전형적인 피의자 흠집 내기로 문제 있다’는 응답(39.2%)보다 많게 나왔다. 당의 한 관계자는 “감정에 휩쓸리기보다는 이성적인 유권자가 많아졌다는 증거이다”라고 평가했다. 

한나라당은 영남권의 안정적 기반을 바탕으로 전통적으로 여당이 강세인 강원과 충북을 잡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수도권을 지켜내겠다는 전략을 담고 있다. 서울을 비롯해서 최소 8~9곳 정도만 승리해도 완벽한 승리라고 보고 있다. 은근히 천안함 애도 정국이 오래 이어지기를 바라는 분위기도 느껴진다. 서울에서 당내 40대 후보들이 역동적으로 경선 흥행을 성공시키는 것이 핵심 고리이며, 전체 지방선거판을 끌어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자신하는 분위기이다.

황인상 P&C정책개발원 대표는 “한 전 총리에 대한 무죄 선고는 수도권 표심에 어느 정도 파급력을 갖고 영향을 줄 것이다. 반면, 그에 따른 반대 효과도 있다. 이미 이런 상황에 위기의식을 가진 ‘결집된 보수층’이 나타나고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한풍을 이어갈 수 있으려면 단지 ‘한명숙이 좋아서 찍어달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현재 실종된 ‘한명숙이 왜 시장감인가’에 대한 논의를 살려내고 그에 따른 합당한 이유를 국민들에게 좀 더 설득력 있게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경남·충남이 뜨거워진다 

‘한풍’을 가장 크게 기대하는 곳은 역시 ‘친노’ 세력이다. 그런 면에서 지방선거를 40여 일 남겨둔 지금, 가장 주목되는 최대 접전 지역 두 곳 역시 공교롭게도 대표적인 친노 인사들이 뛰고 있는 곳이다. 바로 경남과 충남이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열세인 친노 야권 후보들이 ‘대이변’을 노리고 있다.

특히 야권 단일 후보로 경남도지사에 또다시 출사표를 던진 김두관 전 장관을 주목하는 시선이 많다. 세 번째 도전을 하며 꾸준히 다져온 지역 기반, 한 전 총리 사건으로 뭉쳐진 야권 지지자는 김 전 장관이 가진 경쟁력의 밑천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골치가 아팠다. 당내 후보 선출 방식과 관련해 이달곤 전 행안부장관과 이방호 전 사무총장이 격렬하게 대립한 것이다. 이 전 사무총장은 당의 ‘이달곤 밀어주기’라고 반발하면서 적전 분열 양상까지 보이기도 했다.

결국, 4월16일 이 전 사무총장이 전격적으로 후보 사퇴 선언을 하면서 ‘3자 대결 구도’로 가던 경남지사 선거 판세는 일단 ‘이달곤-김두관’의 대결로 압축된 모양새이다. 하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 전 사무총장이 비록 여권의 압력에 굴복하기는 했지만, 그를 지지하던 밑바닥 정서가 고스란히 이 전 장관 쪽에 다 흡수될지는 미지수라는 분석이다. 여전히 김 전 장관이 틈새를 파고들 여지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경헌 포스커뮤니케이션 대표는 “김두관 전 장관 입장에서는 이방호 전 사무총장보다 이달곤 전 장관과 대립각을 세우는 데 다소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전 장관은 대통령이 직접 파견을 보낸 후보로 일종의 대리인이기 때문에 ‘MB 정권 심판’이라는 슬로건 자체를 선명하게 가져갈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충남에서는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이 변수가 아닌 상수로 자리 잡았다. “충청도의 이익을 위해서는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에 대항할 수 있는 힘 있는 야당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는 안최고위원의 경쟁력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지난 3월21일 충청투데이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안최고위원은 이완구 전 충남지사가 출마하지 않을 경우에는 모두 1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충남의 변수는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이 전 지사의 출마 여부이다. 최호택 배재대 교수는 “충남 지역에서는 지역 맹주의 손을 잡지 않고서는 당선되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지난 4월14일 한나라당 충남도당은 ‘맹주’ 이 전 지사를 한나라당의 충남지사 후보로 전략 공천해줄 것을 중앙당 공천심사위원회에 건의했다. 최근 영입한 박해춘 전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충남도당의 한 관계자는 “세종시 문제로 생긴 반 여당 정서가 없어질 만하니까 한 전 총리 문제가 겹쳐버리면서 선거전이 갈수록 어렵다. 기초단체장이나 기초·광역 의원 후보들이 이 전 지사가 나오지 않으면 당선이 어렵다고 하소연한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선거전이 쉽지 않다는 방증이다. 게다가 자유선진당 역시 충남지사 후보 공천에서 갈등을 겪고 있다. 특히 이회창 대표가 직접 영입한 이태복 예비후보측은 박상돈 의원이 갑자기 가세하면서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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