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파업 ‘치킨 게임’의 끝은?
  • 채은하 | 프레시안 기자 ()
  • 승인 2010.04.26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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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만 부사장 선임 등 ‘약속 파기’가 핵심 쟁점…검찰 스폰서 고발한 의 반향에 사장측 ‘당혹’

MBC 파업 사태가 좀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벌써 파업 3주차를 넘기고 있지만 이렇다 할 타협점은 나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김재철 사장은 “노조가 업무에 복귀하지 않으면 징계 절차라든지 손해배상 소송이라든지 업무 방해 혐의로 고소할 수밖에 없다”라고 밝혀 파업 사태는 법적 고소·고발 사태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MBC 내부에서는 ‘노조 집행부 고소→공권력 투입’ 등으로 이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떠돌고 있다.

▲ 지난 2월9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 사옥 입구에서 MBC 노조원들이 황희만 신임 이사의 출근을 막고 있다. ⓒ연합뉴스

당장 이같은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김재철 사장은 지난 4월18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선은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어도 참을 생각이다”라며 ‘장기전’ 태세를 밝혔다. 그러나 그 이후 김사장은 ‘수순’을 밟고 있다. 파업 돌입 이후 12일간 출근하지 않던 그는, 4월20일부터 연일 MBC 사옥에 출근을 시도했다. 김사장은 사옥 정문을 막아선 이근행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조합원들과 언쟁을 벌였으나, 이들의 반대를 뚫고 사옥에 들어가겠다는 의지는 보이지 않은 채 발길을 돌렸다. 김사장은 “회사 인근에 사무실을 준비하고 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김사장의 연일 계속되는 출근 시도는 MBC 노조에 업무 방해 혐의를 부과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현재 MBC 노사가 대립하는 쟁점은 의외로 단순하다. MBC 노조는 김사장이 선임한 황희만 부사장의 퇴진과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에 대한 고소를 요구하고 있다. 즉 “약속을 이행하라”라는 것이다. 김 전 이사장이 사퇴한 이후 초점은 자연스럽게 황희만 부사장의 퇴진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그의 거취 문제가 첨예한 쟁점으로 떠오르지만, MBC 내부에서도 황부사장 자체에 대한 ‘인물평’이 나오지는 않는다. 이는 지금의 갈등이 ‘황희만 개인’에 따른 문제가 아니라, ‘노사 관계 신뢰’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임을 잘 보여준다. 또한, 그 배경에는 김 전 이사장의 ‘큰집 조인트 발언’에서 야기된 ‘정권 차원의 개입’이라는 노조측의 불신이 깔려 있기도 하다.

이에 더해 파업이 진행되면서 김재철 사장에 대한 불신이 확대되는 흐름이기도 하다. 파업 돌입 이후 회사에 출근하지 않은 김사장의 ‘외유성 행보’가 사내 중간 간부들의 불신을 키워온 측면이 그것이다. 파업이 진행되는 동안 회사의 정책과 전략을 담당하는 기획조정실 등에서도 “사장을 만날 수가 없다”라는 불만이 터져나올 정도로 김사장은 사내의 공식적인 절차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또, 항간에 나도는 소문처럼 김사장이 국회의원 출마에 뜻을 두고 ‘5도 2촌’이라고 불릴 정도로 주말마다 자신의 고향인 사천을 자주 찾아 정치 행보를 해왔다는 것도 불신을 키웠다.

김사장-국장단·부장단 면담, 성과 없어

MBC 내부에서 84·85·87사번 직원들의 성명, TV제작본부 보직 부장들의 성명, 여기에 더해 MBC 최고참 격인 이우호 논설위원이 “황희만 부사장의 임명과 그 이후 해명은 ‘조삼모사’이다”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글이 나온 것도 ‘김재철 사장이 과연 파업 사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느냐’라는 내부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는 전언이다. 김사장은 이에 연일 국장단·부장단 면담을 가지며 수습에 나서고 있지만, 이 자리에서도 “TV제작본부 보직 부장들의 성명을 의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행간을 읽어달라”라는 한 보직 부장의 말에 “노조의 불패 신화를 깨겠다”라고 답하는 등 여전한 인식 차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사장도 이러한 사내 분위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당장 공권력을 투입하는 등의 수순으로 가기에는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 4월20일 방송된 <PD수첩>의 ‘검찰과 스폰서’ 편이 상당한 분위기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이 프로그램이 검찰의 향응·촌지 관행을 정면으로 고발하는 내용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면서 역설적으로 김재철 사장으로는 불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이날 방송 이후 “이런 보도를 할 수 있는 것은 MBC, <PD수첩> 밖에 없다”라는 식의 시청자들 반응이 나왔고, 더불어 파업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MBC의 한 PD는 “<PD수첩>이 MBC를 지키는 분위기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미 <PD수첩> ‘검찰과 스폰서’ 편 방영 이후 ‘MBC 파업을 지지한다’는 시민들의 성원이 늘어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 때문에 김사장이 정면 충돌을 피하고 있는 모습이기는 하나 MBC 노사 간의 대립은 ‘치킨 게임’으로 번지고 있다. 이근행 위원장은 공공연히 “김재철·황희만이 나가지 않으면 내가 나간다”라고 말할 정도로 체포, 구속이나 해고 등의 상황을 각오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김사장 역시 MBC 노조의 파업을 “정치 파업이다”라고 비난할 뿐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현재 MBC 노사는 마주 보고 달리는 셈이다. 다만, MBC 노사의 ‘정면 충돌’은 그 속도가 늦다는 점에서 제3의 해법이 나올 가능성도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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