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점령 작전’ 나서는 한국전쟁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0.05.11 19:2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발발 60주년 맞아 전쟁 영화만 10여 편 제작 중…‘이념보다 인간’ 앞세운 휴먼 드라마 많을 듯

▲ ⓒ태원엔터테인먼트

 

국내에 전쟁 영화 붐이 일고 있다. <포화 속으로> <고지전> <아름다운 우리> <벅샷> <혹한의 17일> <연평해전> <서부전선 이상 없다> <디데이> <빨간 마후라> 등 전쟁을 다룬 영화가 즐비하다. 여기에 6월에 방영 예정인 <로드 넘버원>(MBC)과 <전우>(KBS)까지 더하면 전쟁, 그중에서도 가히 한국전쟁 영화 홍수라고 할 만하다.

보통 기획 단계에서 엎어지는 영화도 많기에 이 영화들이 모두 극장에 걸릴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미 상당 부분 진척된 영화가 많다. 이재한 감독의 <포화 속으로>(이재한 감독, 차승원·권상우·탑 출연)는 6월께 개봉될 예정이고, 장훈 감독의 <고지전>은 쇼박스가 메인 투자자로 나서 여름에 크랭크인을 목표로 캐스팅 작업이 진행 중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고석만 연출가가 진행 중인 <벅
샷> 역시 시나리오 작업 중이고, 연평해전을 다룬 곽경택 감독의 3D 영화 <아름다운 우리>도 캐스팅 작업이 거의 끝나가고 있어서 6월 중 크랭크인이 확실시되고 있다. 할리우드 자본이 만들고 있는 한국전쟁 배경의 <혹한의 17일>도 감독이 확정된 상태로 올겨울에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왜 갑자기 전쟁물 붐일까. 일단 올해가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0년을 맞는 해라는 숫자 마케팅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다. 또, 세종문화회관에 걸린 ‘성웅 이순신’ 같은 펼침막에서 찾을 수 있는 정치권의 ‘호국 마케팅’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실제로 어떤 영화는 보수·우익 단체가 제작 지원에 나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작비가 100억원이 훌쩍 넘는 영화를 정치권의 협조만 바라고 만들 수는 없다. 과거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성웅 이순신’류의 영화가 줄지어 나왔는데, 이것은 외화 수입 쿼터 등 반대급부가 보장된 것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정부가 내놓을 당근이 빈약하다. 

‘제3차 세계대전’이라 할 만큼 중요한 소재로 부상

영화사에서도 ‘반공 영화’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포화 속으로>를 제작한 태원엔터테인먼트에서는 <포화…>가 “이념을 다룬 것이 아니라 전쟁에 참여한 학도병의 인간적인 면에 초점을 맞춘 휴먼 드라마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혹한의 17일>의 한국 쪽 제작 파트너인 김성권 PD도 “이념이나 단순한 미국식 영웅주의를 다룬 영화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PD는 “한국전쟁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현대적인 전투였고 영화적으로 매력 있고 복합적인 소재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전쟁이 사실상 제3차 세계대전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대규모의 인명 살상을 가져온 현대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한 사례로 중공군이 인해 전술만 편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몇몇 전투만 빼고 인해 전술 대신 게릴라전을 더 많이 폈고 등장한 무기도 2차 세계대전 이후 개량화된 현대식 무기였다. 또, 당시 동해에 떠 있던 항공모함만 일곱 대였고, 소련군 비행사도 참여하는 등 동서의 냉전 체제가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미군 사망자도 2차 대전 사망자를 웃돌 정도로 큰 전쟁이었다.

영화가에서는 10여 편에 달하는 이 영화들이 모두 극장에 걸릴 것으로 보지는 않고 있다. 대규모 예산이 필요한 전쟁물인 만큼 펀딩이 만만치 않다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21세기는 일단 시장에서 상업성 평가를 통과하는 것이 먼저이다. 몇 편이나 극장에 걸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기영의 <하녀>를 리메이크한

김기영의 <하녀>를 리메이크한 임상수의 <하녀>는, 치정극이라기보다 현재 한국 사회의 쩍 벌어진 계급 격차를 보여주는 사회극이다. 인물들 간의 계급 차는 원작이 속한 1960년도가 아니라, 김동인의 <약한 자의 슬픔>이 속한 1919년에 가깝다. 이것은 시대 착오인가? 아니다. 양극화로 인해 계급 분화가 가속된 한국 사회에 대한 시의적절한 고발이다.

 

임상수는 상류층의 삶에 대한 일반적 상상 그 너머를 보여준다. 박물관이 연상되는 광대한 저택에서, 인물들은 진지하게 행동할수록 풍자된다. 원작의 부(富)가 여주인의 10년간의 노동으로 일구어진 것이었던 반면, 임상수 작의 부는 세습된 것이다. 하녀 역시 갓 상경한 처녀가 아니라, 대학도 다녔고 지방의 아파트도 소유한 이혼녀이다. 노동이나 교육으로 뒤집히는 계급이 아니라는 말이다. 원작에서 경제력이 없던 남편은 낙태 이후 아내에게 조종당하지만, 임상수 작에서 부의 원천인 남편은 “감히, 누가 내 자식을 죽일 수 있느냐”라며 장모에게 따진다. 과연, 왕은 무치(無恥)이다. 원작의 낙태는 종용된 것이었지만, 하녀는 아들과 남편을 죽이는 복수를 감행한다. 반면, 임상수 작의 낙태는 기망에 의한 것이었으나, 복수는 피학적으로만 일어난다. 사태를 지켜보고 심경의 변화를 겪는 늙은 하녀 역시 일을 그만두는 것에 그친다. 90년 전 <약한 자의 슬픔>의 ‘약한 자’조차 재판을 걸건만, 21세기 ‘하녀들’은 (아들이 검사임에도) ‘감히’ 재판을 상상하지 못한다.

첫 장면, 복잡한 유흥가의 노동 계급 여성들을 스케치하며 담아낸 어느 여인의 투신이 아스팔트에 핏자국으로만 남았듯이. ‘21세기 식모살이’라는 화두를 꺼낸 <지붕 뚫고 하이킥>의 세경의 사랑이 참혹한 결말로 ‘꿈의 불가능성’을 입증했듯, 임상수의 <하녀> 역시 ‘복수의 불가능성’을 역설한다. 세월이 거꾸로 가고 있다. 5월13일 개봉. 감독 | 임상수    주연 | 전도연, 이정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