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지기도 놓친 거짓말 찾아낸다”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10.05.11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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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프로파일러로 활동하는 마크 류 박사 인터뷰 / “미세한 표정이나 행동 변화에서 진위 드러나”

미국 방송사 ABC, CBS, CNN은 지난해 4월29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생중계했다. 당시 FOX TV는 이를 거절하고 드라마 <라이 투 미(Lie To Me)>를 방영했다. 이 드라마는 인간 표정을 연구하는 칼 라이트만 박사가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국(CIA)을 도와 용의자 얼굴 표정이나 행동으로 진술의 진위를 가려내는 내용이다. 같은 시간대에 대통령 기자회견을 내보낸 방송사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칼 라이트만 박사는 당시 방영된 드라마에서 정적 존 매케인 의원에 대해 호의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는 오바마의 연설 내용을 반박했다. 극 중에서 칼 라이트만 박사는 “매케인 의원을 칭찬하면서 중지를 세워 콧잔등을 긁는 모습은, 억지로 거짓 칭찬을 할 때 나타나는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미국 내에서 <라이 투 미>는 ‘오바마를 누른 드라마’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한국에도 방영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칼 라이트만 박사는 허구의 인물이 아니다. 국적이나 성별, 인종, 나이 등이 다르더라도 분노나 두려움, 놀람, 경멸 등은 얼굴과 신체 동작에 똑같이 표현된다는 폴 에크만 박사의 연구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폴 에크만 박사는 이같은 기법을 ‘마이크로 익스프레션(Micro Expression)’이라고 불렀다. 지난 4월29일 폴 에크만 그룹의 공식 코치인 마크 류 박사가 한국을 방문했다. 리더십 컨설팅사인 폴앤마크 주최로 <라이 투 미> 세미나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현재 싱가포르 국가정보원뿐 아니라 검찰청, 경찰청 등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은 세미나를 앞두고 마크 류 박사를 만났다.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이라는 용어가 생소하다.

일종의 프로파일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국은 얼마 전 부산 여중생 살해범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수사 기관은 프로파일러를 투입해 용의자의 진술과 행동 변화를 파악했다. 황우석 박사 사건 때도 검찰은 진술하는 표정을 분석해 진위 여부를 파악한 것으로 알고 있다.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은 이를 좀 더 전문화한 것이다. 사람의 얼굴에는 43개 근육이 있고, 이 근육이 만들어낼 수 있는 표정은 10만 가지가 넘는다. 제 아무리 포커페이스라도 0.2초 동안의 순간적인 감정은 숨길 수가 없다. 미세한 얼굴 표정이나 행동의 변화를 잡아내 거짓말을 밝혀주는 것이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이다.

거짓말을 할 때 나타나는 표정이나 행동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 않나?

그렇지 않다.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데이비드 마츠모토 교수는 최근 일반인과 시각 장애인 선수의 올림픽 시상식 장면을 분석한 적이 있다. 표정이 하나같이 똑같았다. 시각 장애인들은 한 번도 일반인의 표정을 본 적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사람들마다 진실을 말할 때와 거짓말을 할 때의 정형화된 표정이나 행동이 있기 마련이다. 특별한 질문을 던지면 미세한 표정 변화가 나타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진실과 거짓을 밝혀낼 수 있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달라. 

얼마 전 타이거 우즈가 섹스 스캔들로 기자회견을 한 적이 있다. 한 기관과 이 동영상을 분석한 적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이미 2주 후에 타이거 우즈가 복귀할 것으로 짐작했다. 누군가에게 거짓말을 하려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모두 신경을 써야 한다. 확실하지 않은 것을 말할 때 보통 한 발짝 뒤로 물러서거나, 어깨를 살짝 들썩이게 된다. 말하는 속도도 중요하다. 어떤 순간에 멈칫하게 되면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크다. 눈동자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에 따라서도 거짓임을 알 수 있다. 과거를 기억할 때와 거짓을 꾸며낼 때에 따라 눈동자의 방향이 달라진다. 동영상을 계속 분석해보면 앞서 언급했던 내용이 자주 목격되었다.

거짓말 탐지기와는 어떤 점이 다른가?

잘 훈련받은 사람은 거짓말 탐지기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다. 거짓말 탐지기를 사용할 때 끔찍한 생각을 하면 감정이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모든 대답이 똑같이 나오게 되고, 기계 자체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연기자들이 울 때 미리 슬픈 생각을 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순간적인 표정 변화까지는 숨길 수 없다.

최근 삼성그룹 직원을 상대로 강의를 했다고 들었다.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이 기업 경영과 무슨 상관이 있나?

상관관계가 많다. 한 정보기술(IT) 기업의 임원을 예로 들어보자. 이 임원은 우수한 기술과 실적을 바탕으로 승진에 성공했다. 하지만 관리자가 되면서 기술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부하 직원을 얼마나 다독여서 성과를 내는가가 중요하다. 기술자 출신은 이런 훈련이 안 되어 있다 보니 어려움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복잡한 매트릭스 구조로 운용되는 요즘 경영 환경의 경우 어려움은 더하다. 팀마다 밝히고 싶지 않은 얘기가 있다 보니, 이유 없이 프로젝트가 늦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매니저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파악하게 해서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강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의 모든 기술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표정을 통해서 거짓을 읽는 법 등을 어떻게 적용하는지 등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게 되면 어떻게 대응할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최근 컨설팅을 한 글로벌 정유회사를 예로 들어보자. 이 회사는 글로벌 금융 위기 때문에 감원을 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직원들에게도 이런 사실을 전달해야 했다. 직원들이 대형 파업으로 치달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매니저들을 상대로 내용을 전달했을 때의 반응을 살펴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기술을 전달했다. 이 회사는 최근 1분기에 좋은 실적을 거둔 것으로 알고 있다.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이라는 기법을 응용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한 것 같다.

그렇다.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을 응용하는 것은 아직 초기 단계이다. 드라마 <라이 투 미>를 보면 공항 보안 담당 에이전트인 리아 토레스(모니카 레이먼트)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능력을 발휘한다. 일반 에이전트보다 7배 이상 높은 검거율을 기록했고, 후에 라이트만 박사에게 스카우트된다. 실제로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학에서는 최근 일반인 1만3천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적이 있다. 그 결과 31명이 거짓말을 감지할 수 있는 천부적인 능력을 보였다. 일부 공항에서 이들에게 같은 일을 맡길 가능성이 있다. 한국 속담에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다. 기업의 비즈니스에서나, 국제 회담에서도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을 응용할 수 있다면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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