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산을 덮은 검은 의혹의 그늘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0.05.11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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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홍익 학원과 건설업체의 수상한 ‘땅 거래’ 실상

서울 마포구 성산1동에는 높이 66m, 면적 12만㎡(약 4만평)인 작은 산이 있다. 일명 ‘성미산’이다. 지난 2001년부터 최근까지 서울시와 성미산 일대의 주민 그리고 일부 땅을 소유하고 있는 학교 재단들 간에 개발 여부를 둘러싸고 마찰이 끊이지 않은 곳이다. 최근에는 이 땅을 판 한양대 재단과 사들인 건설업체들이 검찰 수사를 받는 데까지 이르렀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 과정에서 거액의 비자금이 조성되었고, 정·관계 고위 인사가 관련되어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시사저널>이 그 내막을 추적했다.

▲ 홍익초·중·고등학교 이전 부지인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 성서초등학교 정문 옆 홍익재단 부지에 홍익학원의 사유지임을 알리는 공고판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시사저널 우태윤

지난 2001년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성미산 꼭대기에 배수지(수돗물 수압을 높이기 위한 물탱크)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서울시가 ‘성미산 배수지 사업’을 발표하자 성미산 일대에 땅을 갖고 있던 한양대 법인 한양학원도 덩달아 ‘아파트 건설’ 계획을 추진했다. 한양학원은 이 일대의 토지 약 6만1천2백74㎡(1만8천5백35평)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쳤다. 성미산 일대 주민들은 서울시의 배수지 공사와 한양학원의 아파트 건설 계획이 ‘생태 자연공원 파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서울시와 한양대 재단은 ‘건설 공사 포기’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아파트 건설 계획을 백지화한 한양학원으로서는 성미산 일대의 토지가 ‘애물단지’나 다름없었다. 도시계획상 대부분 공원 용지로 지정되어 있어서 더 이상의 개발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각을 결정한다. 이때부터 이상한 땅 거래가 시작되었다. 한양학원은 지난 2006년 8월18일 재단이 소유하고 있던 토지를 건설업체인 ㈜한웅상사·㈜세아주택 컨소시엄(이하 건설업체)에게 4백10억원을 받고 팔았다.

한양학원 관계자는 “건설업체들이 ‘공원 부지로 묶여 있고 개발도 안 되니 자신들에게 팔라’는 제안이 들어와서 매각했다”라고 말했다.

석 달 후인 2006년 11월28일 건설업체들은 매입 대금 잔금을 지불하고 한양학원으로부터 토지의 소유권을 넘겨받았다. 그런데 건설업체들은 이날 곧바로 홍익대 법인 홍익학원에 5백78억원을 주고 땅을 되팔았다. 땅을 계약한 지 3개월, 소유권을 넘겨받은 지 하루도 안 되어 무려 1백68억원의 시세 차익을 남겼다. 건설업체들이 봉이 김선달을 뺨치는 수완을 보인 것이다. 반면, 한양학원은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100억원이 넘는 거액을 손해 본 셈이다.

홍익학원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학원은 오래전부터 재단 부설 초·중·고를 옮기기 위해 학교 부지를 물색해왔었다. 성미산 일대 한양학원이 갖고 있었던 땅도 유력한 후보지 중 하나였다. 그런데도 홍익학원은 한양학원과 직거래를 하지 않았다. 굳이 건설업체를 끼고 100억원이 넘게 손해 보는 장사를 한 것이다. 

한양학원과 홍익학원 사이에서 거액의 시세 차익을 본 한웅상사와 세화주택은 어떤 회사일까. <시사저널>은 토지를 매매할 당시의 감사보고서를 통해 이들 회사의 재무 구조를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한웅상사는 1993년 3월에 설립되었고, 건축업·무역업·부동산 임대업이 주요 사업이다. 한양학원의 땅을 매입하기 바로 전해인 2005년 이 회사의 자산 총계는 35억원이었고, 부채는 28억원이었다. 자본이 6억7천만원밖에 되지 않았다. 매출액은 제로 상태였다.

그런데 성미산 부지를 매매했던 2006년에는 자산이 전년보다 약 1백50억원이 늘어난 1백85억원이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자본이 전년보다 50억원이 늘어난 56억원이었다. 매출액이 전혀 없었던 이 회사는 어떻게 1년 사이에 50억원을 불릴 수 있었던 것일까. 

세아주택도 한웅상사와 재무 구조가 비슷했다. 이 회사는 1993년에 설립되었다. 주요 사업은 주택건설업·부동산 임대업·건설자재 판매업 등이다.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에서 유통업체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성미산 토지를 매매하기 직전인 2005년도에는 감사보고서가 없어 2000년도를 기준으로 비교해보았다. 세아주택의 2000년도 재무제표를 보면 자산은 54억원, 부채가 50억원으로 자본은 4억2천여 만원이었다. 매출액은 92억원을 올렸으나 4천2백만원의 당기 순손실을 기록했다. 재무 구조가 그리 탄탄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성미산 토지를 매매했던 2006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자산은 2백81억원으로 무려 2백27억원이 불어났다. 부채가 늘어나기는 했으나 전체적으로 자본은 2000년보다 74억원 정도가 증가했다. 73억원의 당기 순이익도 기록했다. 성미산 토지를 한양학원에서 매입한 뒤 홍익학원에 팔면서 두 회사의 재무 구조가 상당히 호전되었던 것이다.

<시사저널>은 건설업체 대표들의 해명을 직접 듣기 위해 수차례 회사로 전화를 걸고, 메모를 남겼으나 묵묵부답이었다. 

검찰은 학교 재단과 건설업체들이 짜고 비자금을 조성했을 가능성에 대해 집중 조사하고 있다.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이중희 부장검사)는 지난 4월20일 건설업체 두 곳을 압수 수색했으며, 계좌 추적 등을 통해 돈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특히 한양학원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무게 중심을 두고 수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양학원 관계자는 “우리가 무슨 재벌기업도 아니고 학원에서 비자금을 조성할 이유가 없다. (성미산 부지를 매각할 때) 공인 감정 기관의 감정평가를 받고 정당하게 처분했다. 우리도 피해자이고 억울하다”라고 항변했다.

건설업체들은 계약금만 걸고 매매 차익 남겨

그렇다면 홍익학원이 추진하고 있는 학교 부지 조성 사업은 어디까지 진행된 것일까.
<시사저널> 취재진이 지난 5월4일 성미산을 찾아갔을 때는 도로와 인접한 부지 외곽에 어른 키 두 배만한 철판이 둘러쳐져 있었고, 곳곳에 홍익학원 사유지임을 알리는 공고판이 세워져 있었다. 서울시는 지난해 9월2일 성미산 일대 홍익학원 부지에 재단 산하 초·중·고교를 지을 수 있도록 도시계획 시설 변경 안을 가결했다. 이에 따라 홍익학원은 서울 서부교육청에서 학교 건축 허가가 나면 공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시사저널>의 취재 과정에서 홍익학원과 마포구청과의 유착이 의심된다는 제보가 접수되었다. 최형규 마포구의회 의원은 “지난해에 건설업체와 홍익학원의 부동산 계약서를 검토해보니, 건설업체들이 3개월간 계약금만 걸어놓고 1백70여 억원 정도의 이익을 남겼다. 홍익학원도 한 언론에 ‘홍익초·중·고 이전과 관련해 마침 성미산에 학교 부지가 있어 구입하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한양학원이 아파트 건립을 포기한 땅을 건설업체와 홍익학원이 매입한 것을 보면 학교 이전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라고 말했다.

지난 2008년 12월2일 신영섭 마포구청장은 구청 행정타운 준공식에서 ‘성미산이 학교 용지로 결정이 나면 성미산을 시 공원으로 하겠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때는 도시계획 시설 변경 안이 결정되기 전이었다. 최형규 의원은 “여러 정황을 볼 때 학교 재단과 건설업체 그리고 마포구청이 서로 유착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홍익학원의 해명을 듣기 위해 수차례 총무부서에 전화를 걸고 메모를 남겼으나 아무런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성미산은 또 한 번 큰 홍역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에 따라 대형 커넥션으로 번질 수도 있다. 문지웅 성미산 살리기 대책위원장은 “성미산은 마포에서 유일한 자연 생태공원이자 주민들의 휴식 공간이다. 이곳을 개발하기보다는 오히려 공원화해서 보존해야 한다. 그때까지 주민들은 ‘개발 세력’과 싸울 것이고, 성미산을 아름답게 지켜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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