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지도자 '우먼 파워' 으랏차차
  • 신명철 / 인스포츠 편집위원 ()
  • 승인 2010.05.18 14:1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자 프로배구에서 첫 여성 감독 나오면서 타 종목 확산 기대... 우수 선수 많이 배출했는데 늦은 감 있어

중·장년 스포츠팬들에게는 무척 귀에 익은 별명 ‘나는 작은 새’의 주인공 조혜정 한국배구연맹 경기
운영위원이 여자 프로배구 GS 칼텍스 사령탑을 맡게 되었다. 구기 종목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
(동)을 차지한 1976년 몬트리올 대회 여자배구 대표팀에서 유경화, 유정혜 등과 함께 주력 선수로 활
약한 조 신임 감독은 이탈리아 리그에서 코치 겸 선수로 뛰는 등 코치 경험은 있지만 사령탑을 맡은
적은 없다.

여성이 한국 스포츠 발전에 이바지한 정도를 보면 종목별로 조 신임 감독 같은 지도자가 벌써 여
럿 나왔어야 한다. 그러나 조감독의 부임을 전하는 언론 보도에는 ‘조감독은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첫 여자 감독이 되었다’라는 설명이 따라붙는다. 야구와 축구는 종목의 특성과 발전 과정으로 보아 그
럴 수밖에 없겠지만 여자농구와 여자배구는 여성의 사회적 진출에 장벽이 있었기에 아직까지 프로
팀 감독이 나오지 않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여자배구가 비록 올림픽 메달의 영예를 먼저 안았지만 여자농구도 1967년(프라하)과 1979년(서울), 두 차례 세계선수권대회 준우승과 1984년로스앤젤레스올림픽 은메달로 세계 수준의 경기력을 자랑했고 박신자, 박찬숙 등 그같은 수준에걸맞은 우수 선수를 많이 배출했다.스포츠팬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야구와 축구에서도 여성들의 참여가 오래전에 이루어졌다. 한국 야구사는 1925년 3월5일 마산 의신(義信)여학교 14명의 학생이 진주로원정을 가 시원(柴園)여학교 학생들과 야구 경기를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의신여학교가 당시 농구 스코어보다 많은 48-40으로 이겼다고 하니경기력은 운동회 수준이었을 것이다.그러나 그 무렵 여성이 야구를 했다는사실 자체가 놀랍다.

1949년 6월28일과 29일,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서울운동장(옛 동대문운동장)에서 벌어진 제2회 전국여자체육대회 개최 종목은 육상, 배구,농구, 핸드볼 그리고 놀랍게도 축구였다. 무학여중, 중앙여중, 명성여중이겨루어 무학여중이 우승했다고 <한국 축구 100년사>는 적고 있다.두 가지 사례에서 여성들 스스로는 물론이거니와 그 무렵 체육 지도자들이 여성의 체육 활동과 사회 진출에 대해 선각적인 사고를 하고 있었다는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스포츠에서 여성 지도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한국이 준우승한 1979년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의 우승국은 미국이다. 그런데 당시 국내 스포츠팬들은 경기 수준보다도 미국 대표팀을 이끌고 있던 감독이 여성이라는 점에 놀라워했다. 게다가 나이도 많지 않아 보였다. 미국 대표팀 감독 패트 헤드 서미트는 그때 스물일곱 살이었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여자농구 은메달리스트로 24세부터 지도자생활을 한 서미트는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산하 농구 종목의 남녀부는물론 모든 디비전(경기력에 따라 나눠놓은 등급)을 포함해 최다승(1천35승1백96패)을 기록하고 있으며, 2010년 현재에도 현역이다.

아마추어 종목에서는 현정화 감독 필두로 우수한 ‘후보’들 많아
아마추어 종목에서는 가물에 콩 나듯이 여성 지도자가 나오고 있다. 2007년 7월 탁구 팬들이 기다리던 뉴스가 있었다. 1987년부터 1993년까지 여자 선수가 탁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차지할 수 있는 모든 종목의 우승을 휩쓸고,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여자 복식 초대 챔피언이 된 현정화 국가대표팀 여자 감독이 KRA(한국마사회)사령탑을 맡은 것이다.

탁구에서 여성이 실업팀의 지휘봉을 잡은 것은 이에리사 현대백화점 감독과 정현숙 단양군청 감독에 이어 세 번째였다. 현정화 감독은 소속팀 코치로 일하던 2005년 5월 유남규 남자 감독과 함께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발탁되었다. 소속팀 감독보다 먼저 국가대표팀 감독이 된 것이다. KRA는 이대섭 전 감독이 정년 퇴임하면서 1996년 창단 때부터 코치를 맡아 온 현정화 감독을 승격시키는 절차를 밟았다. 이대섭 전 감독은 한국화장품 시절현정화 감독의 스승이다. 연공서열과 사회 진출에서의 남녀 불균형 문제 등 한국적 현실이 깔려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 대목이다. 이에 앞서 이 해 6월에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여자농구 은메달의 주역 박찬숙이 여자 프로농구 우리은행의 새 감독 선임 과정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고용차별을 겪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일이 있었다. 박찬숙은 서울 숭의여중 3학년 때 최연소 국가대표가 된 뒤 10년 넘게 박신자 이후 최고의 센터로 국내외 코트를 누볐다. 1980년대 후반 타이완의 백금보석과 1990년대 초반 태평양화학의 코치 겸 선수로 뛰었고, 2005년에는 마카오에서 열린 제4회 동아시아경기대회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했다.국내 프로스포츠 1호 여성 감독은 배구가 아닌 농구에서 나올 뻔했다.

▲ 지난 4월15일 여자 프로배구 GS칼텍스 감독으로 선임된 조혜정 감독.조감독은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첫 여성 감독으로 기록되었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이런 형편이니 1967년 체코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하는 데 크게 한몫을 한 박신자가 1982년 신용보증기금창단 감독을 맡고 이듬해 여자청소년 대표팀을 이끈 것은 매우 드문 사례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눈여겨볼 종목이 여자유도이다. 여자유도는 20여년 전만 해도 “여자가 무슨 격투기 종목을 하느냐”라는 비아냥을 듣던 종목이다. 그러나 1991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김미정(72kg급)과 문지윤(72kg이상급)이 금메달을 딴 데 이어 김미정이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에서 올림픽 챔피언이 되면서 단숨에 효자 종목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짧은역사이지만 여자 유도인들이 지도자와 심판 등 여러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김미정은 이미 A급 국제심판이 되었고 뒤를 이어 옥경숙, 정선용, 조민선, 정성숙, 현숙희 등이 B급 국제심판 자격증을 받았다. 김미정은 용인대 교수로 모교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1993년 해밀턴(캐나다) 대회와 1995년 지바(일본) 대회에서 2연속 세계선수권대회 정상에 선 데 이어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66kg급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조민선은 모교인 한체대에서 교수로 활동하며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몸과 몸이 부딪히는 종목의 특성과 빠른 속도로 세계 수준에 오른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우수한 여성 지도자의 배출을 장려하는 해당 종목 관계자들의 앞선 사고도 한몫했을 것이다.

뛰어난 후배들이 나오지 않고 있다며 지난 4월12일 정규 시즌 최우수선수 시상식에서 눈물을 보인 프로농구의 정선민, 프로배구의 김연경, 역도의 장미란, 스피드스케이팅의 이상화,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가 10년쯤 뒤국가대표 선수들 또는 프로팀의 지도자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아닐까.물론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은 필수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