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조작’ 의혹 싸인 LG가 3세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10.05.1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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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현 엑사이엔씨 전 대표, 나노텍 인수 과정에서 부당 이득 취한 혐의로 검찰 조사 받아

▲ 서울 구로동에 위치한 엑사이엔씨. ⓒ시사저널 박은숙

 

 

검찰이 LG가(家)의 3세를 수사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사3부는 구본현 엑사이엔씨 전 대표를 횡령과 주가 조작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 구 전 대표의 아버지는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막내동생인 구자극 전 LG상사 미주법인 회장(현 엑사이엔씨 대표)이다. 구본무 LG그룹 회장과는 사촌 간이다. 이런 인연으로 엑사이엔씨는 그동안 사무실 파티션에서부터 전자 부품인 스피커, 첨단 소재인 탄소나노튜브(CNT) 등 다양한 제품을 LG그룹 계열사에 납품해왔다. 지난해 이 회사는 매출 7백10억원, 영업 이익 15억6천6백만원을 기록했다. 당기 순이익은 22억원이다.

검찰은 현재 구씨에 대한 조사를 상당 부분 진행한 상태이다. 수사는 크게 세 갈래로 이루어지고 있다. 구씨는 지난 2007년 7월 탄소나노튜브 전문 업체인 나노텍을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시세를 조정해 부당 이득 1백14억원을 취한 혐의(주가 조작)를 받고 있다. 구씨는 합병 정보를 미리 지인들에게 흘린 혐의(미공개 정보 제공)도 받고 있다.

검찰은 구씨가 직원 명의로 회사 돈을 대출받아 8백억원 규모의 차명 계좌를 운영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차명 계좌는 강남의 한 사채업자를 통해 운영했다. 이 돈은 두 차례에 걸쳐 엑사이엔씨 주가를 끌어올리는 데 투입되었다(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 검찰은 지난 5월 초 서울 구로동 엑사이엔씨 사무실과 함께 강남에 위치한 사채업자 사무실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검찰 관계자는 “구씨가 직원 명의로 회사 돈 8백60억원을 대여받아 주가를 끌어올리는 데 사용했다는 임원 진술을 확보했다. 현재 강남 사채업자 사무실 압수수색을 통해 추가로 확보한 차명 증권 계좌를 추적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구본현씨의 이같은 행보는 지난 2008년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구본호씨 사례와 비슷하다는 평가이다. 구본호씨는 지난 2006년 미디어솔루션(현 레드캡투어)을 인수했다. 구씨는 공시를 통해 투자한 자금이 자신의 돈인 것처럼 허위로 공시했다. 하지만 이 돈은 조풍언씨가 김우중 전 회장에게 대우그룹 퇴출 저지 청탁과 함께 받은 자금이었다. 구씨는 이같은 방법으로 7천원이던 주가를 4만원까지 끌어올려 1백70억원대 시세 차익을 거두었다. 구씨는 지난 2009년 6월 열린 항소심에서도 징역 2년6개월에 추징금 86억원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다른 재벌 그룹 2·3세들에게로 수사 확대될지 주목

두 사람은 나노텍 인수 과정에서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구본현씨는 지난 2007년 7월 나노텍을 인수하면서 1백50억원 규모의 사모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했다. 이 과정에서 구본호씨 이름이 등장한다. 지난 2007년 구본호씨와 함께 액티패스를 인수하는 데 참여했던 박성훈 이노버티브홀딩스 대표가 1백5억원어치를 인수했다. 박씨는 구본호씨가 지분을 보유한 액티투오(옛 액티패스)의 대표도 겸직하고 있다. 나노텍 인수도 박씨가 중간에서 주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구본호씨 역시 케이에이치케미칼이라는 탄소나노튜브업체에 100억원을 투자한 후 박성훈씨를 통해 탄소나노튜브에 대한 전략적 제휴를 맺을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은 지난 4월 1천억원대 회사 돈을 빼돌린 혐의(특경법 횡령 및 배임)로 박성호 액티투오 대표를 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박씨는 엑티투오 돈을 빼돌려 중견 기업 3~4곳을 인수한 뒤, 회사 돈 1천1백72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씨는 검찰에서 “회사 자금을 횡령하거나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것이 아니라, 투자한 것이다”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은 박씨가 수십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포착하고 사용처를 추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구본현씨의 수상한 자금 흐름이 검찰에 포착된 것이다. 검찰은 현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정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그동안 대검 계좌 추적 요원을 통해 여러 차례 관련 계좌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최근 발행된 2백20억원 규모의 수표에 대해서도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때문에 검찰 수사의 칼날이 다른 재벌 그룹 2·3세들에게로 확대될지 주목되고 있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자 엑사이엔씨는 초긴장 상태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탄소나노튜브(CNT) 분야에서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면서 경영 실적이 호전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수사에 나서면서 내부적으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필요한 자료는 검찰에 모두 제출했다. 수사를 지켜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지 않느냐”라고 토로했다.

지난 2월 엑사이엔씨 대표가 구자극·구본현 각자 대표 체제에서 구자극 단독 대표 체제로 바뀐 것도 검찰 수사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엑사이엔씨 최대 주주는 18.25% 지분을 보유한 구본현씨이다. 구자극 회장의 지분은 6%대에 머무르고 있다. 구자극 회장은 그동안 홍채인식업체인 아이리스아이디의 경영에만 전념했다가 갑작스럽게 등장했다. 회사 내부 관계자는 “구자극 대표가 일찌감치 본현씨의 행태를 알아차리고 자기 돈까지 투입해 바로잡으려 했으나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판단해 본현씨를 대표이사에서 물러나게 했다”라고 밝혔다. 

ⓒ한국경제신문
구본호씨에 비해

구본호씨에 비해

 

구본호씨에 비해 덜 알려져 있지만, 구본현씨(사진) 역시 LG가 3세이다. 구씨는 지난 1998년 군에서 제대한 뒤, 크린룸 전문 업체인 예림인터내셔널에 입사했다. 그리고 얼마 뒤 회사가 경영난에 빠지면서 직접 경영에 참여하게 된다. 코스닥 상장은 지난 2004년 전자 태그(RFID)와 전자 부품 사업을 하는 이림테
크를 인수하면서부터다. 이후 회사 이름을 엑사이엔씨로 변경하면서 본격적으로 기업 사냥에 나서게 된다. 엠소닉, 이노자인테크놀로지, 나노텍 등을 잇달아 인수했다. 그럴 때마다 엑사이엔씨의 주가는 요동을 쳤다.

 

지난 2007년 이노디자인의 라이프코드 투자에도 구씨가 참여했다. 당시 구본현씨는 구본호씨가 투자한 액티투오 임원들과 함께 유상 증자에 참여했고, 관련 주가가 ‘구본현 효과’로 상승했다. 지난해에는 퓨처인터넷 지분 보유 사실이 공시되면서 이 회사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다. 회사측은 지난해 7월 구본현씨가 대표로 있는 엑사이엔씨가 자사 신주인수권부사채 88만여 주를 취득했다고 공시했다. 이후 주가가 ‘재벌 테마’를 형성하면서 나흘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구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투자한 비상장사가 퓨처인터넷에 넘어가면서 현금 외에 BW를 매각 대금으로 받게 되었다. 이것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오해를 받게 되었다”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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