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FIFA컵은 누구 품에?
  • 한준희 | KBS 축구해설위원 ()
  • 승인 2010.05.3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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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후보는 어느 나라인가 / 스페인·브라질 ‘1순위’…잉글랜드·네덜란드가 바짝 추격

강호들의 각축장이다. 이름난 팀들이 대체로 망라되었다. 무엇보다 이번 월드컵에는 역대 우승 팀들이 빠짐없이 참여한다. 브라질(5회), 이탈리아(4회), 독일(3회)을 비롯해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이상 2회), 잉글랜드와 프랑스(이상 1회)가 한자리에 모였다. 여기에 월드컵 우승 경력은 없지만 축구 역사 전체에 끼친 영향력이 작지 않은 네덜란드와 스페인도 남아공 무대를 밟는다. 이는 지역 예선에서 강호들의 탈락 사태가 별로 많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잉글랜드는 1994년, 프랑스는 1990년과 1994년, 네덜란드는 2002년에 각각 본선 진출에 실패해 지구촌 최대의 축구 제전을 TV로 지켜보는 아픔을 경험하기도 했으나 이번에는 그러한 경우들이 없다.

 판도에 영향을 미칠 법한 도전자들도 여럿 모였다. 포르투갈, 세르비아를 비롯해 덴마크, 슬로바키아 등의 존재가 유럽세를 더욱 두텁게 만들어줄 것이며, 칠레와 파라과이 또한 남미 축구의 끈끈함을 펼쳐 보일 태세이다. 여기에 아프리카 대륙의 참가국들이 판세를 더욱 복잡하게 한다. 코트디부아르, 가나, 카메룬, 나이지리아, 알제리, 남아공은 현재의 멤버 구성을 감안할 때 아프리카가 내세울 수 있는 거의 최상의 카드들이다. 다들 쉽지 않은 조에 속한 것은 사실이지만 ‘개최 대륙’의 이점을 잘 살릴 수만 있다면 적어도 누군가는 아프리카 역대 최고 성적인 8강을 넘어설 것이 기대되기도 한다.

이렇듯 좋은 팀들이 득실대는 남아공월드컵이나 그래도 가장 우승에 근접한 것으로 보이는 양대 강자가 있다. 북메이커(베팅 업체)들의 월드컵 우승 배당률 상에서 장기간에 걸쳐 1, 2위를 마크하고 있는 스페인과 브라질이 그 주인공이다.

이 두 팀이 이러한 배당률을 받고 있는 데에는 충분한 근거들이 있다. 우선 2009년과 2010년 벌어진 A매치에서 스페인은 16승 1패, 브라질은 15승 2무 1패를 기록했다. 국가 간 실력 격차가 한결 좁아져 있는 요즈음의 축구 세계에서 이 정도의 승률은 한마디로 경이적인 수준이다. 스페인이 당한 불의의 1패는 지난해 미국에 당한 것이지만 그 패배 이전까지 A매치 35경기 연속 무패를 달려왔던 스페인임을 감안하면 근년의 스페인은 가히 ‘무적의 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모습이다. 브라질의 최근 성적에는 남미 예선 2무 1패가 포함되어 있으나, 고지대 에콰도르 원정에서의 무승부 하나를 제외하면 본선행을 이미 확정지은 이후의 패배와 무승부로서 사실상 큰 의미는 없다.

승률뿐 아니라 특히 스페인과 브라질이 다른 라이벌들과의 최근 승부에서 ‘한 수 위’의 능력을 과시해왔다는 사실이야말로 배당률을 정당화하는 결정적인 근거이다. 독일 월드컵 이후 스페인은 잉글랜드, 프랑스, 아르헨티나, 독일, 이탈리아를 모두 꺼꾸러뜨리는 놀라운 성과를 일궈냈다. 같은 기간 브라질도 숙적 아르헨티나를 압도적으로 눌러온 데다 이탈리아, 잉글랜드에도 우위를 점했다.

그러면 스페인과 브라질이 마침내 조우해 ‘세기의 대결’을 펼치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이 대결은 배당률 1, 2위 우승 후보 간 격돌이라는 의미를 넘어 실로 여러 가지 측면에서 흥미를 자아낼 법하다. 무엇보다 두 팀은 비슷한 면이 있으면서도 매우 다르다. 팀을 구성하는 선수들의 평균적 기본기가 우수하다는 것은 틀림없는 유사성이나, 서로가 추구하는 스타일은 사뭇 대조적인 까닭이다.

▲ 지난 4월5일 스페인 대표팀이 뉴질랜드와의 A매치 경기 전에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AP연합

■ 세밀한 스페인 “천재일우의 기회이다”

2008 유럽선수권에 이어 사상 첫 월드컵 정복에 나선 스페인에게 이번 월드컵은 놓칠 수 없는 기회이자 놓쳐서도 안 되는 기회이다. 그만큼 멤버 구성이 좋고 절정기를 달리는 선수들의 수가 ‘최대치’에 도달한 상황이다. 미드필드 거장 샤비 에르난데스, 최고의 저격수 다비드 비야도 연령 상 4년 후를 기약하기는 쉽지 않다. 지금이 적기이다.

스페인은 세밀한 패스와 볼 간수를 바탕으로 한 이른바 ‘점유율 축구’에 있어 압도적인 능력을 자랑한다. 게다가 플레이의 다양성 및 투쟁심의 측면에서도 이전에 비해 좋아져 있다. 2년 전 그들이 유럽을 제패할 수 있었던 것도 세밀함에 더하여 빠른 공수 전환 스피드에다 성실한 수비까지 곁들여졌기 때문이다. 쓸 수 있는 카드 또한 다른 팀들의 혀를 내두르게 하는데, 세스크 파브레가스, 페르난도 토레스와 같은 이들을 후보 선수로 활용할 수 있는 팀은 스페인이 거의 유일할 것이다. 따라서 선수들이 제 기량을 발휘해주고 유럽선수권 수준의 수비력이 뒤따른다면 스페인을 액면가로 능가할 팀은 존재하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변수는 역시 수비이다. 2년 전 유럽선수권에서 미드필더 마르코스 세나, 수비수 카를로스 마르체나는 한마디로 초인적인 활약을 펼쳤다. 이번에는 어떤 선수들이 당시의 세나와 마르체나가 될 것인가. 스페인의 운명은 여기에 달렸다.

▲ 지난 3월2일 브라질 대표팀 선수들이 아일랜드와의 친선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AP연합
■ ‘실용주의’ 브라질 “토너먼트에 유리하다”

대조적으로 브라질에게는 수비는 두드러진 우려 사항이 아니다. 아니, 바로 그 수비야말로 둥가의 브라질이 지닌 최대의 강점이다. 지금 세계에서 조직력 면에서나 개인 능력 면에서나 최고의 수비 역량을 지닌 팀 하나를 꼽으라면 이탈리아가 아니라 브라질이라는 것이 적절한 답이다. 유럽 챔피언 인터 밀란의 후방을 지키는 브라질 선수들(줄리우 세자르, 루시우, 마이콘)을 떠올리면 더욱 알기 쉽다. 선수 시절 브라질답지 않은 ‘실용주의 축구’로 월드컵을 들어 올린 경험을 지니고 있는 둥가 감독은 자신이 뛰던 시절의 효율성을 자신이 지도하는 팀에 옮겨놓으려 애썼고, 그 노력은 적어도 현재까지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이는 화려한 공격 축구를 열망하는 브라질 팬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치기도 했으나 둥가가 지금처럼 성적을 내는 한 그 반발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월드컵에서의 우승이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화려함과 점유율과는 별개로, 안정성의 바탕 위에서 효율성과 재능을 적절하게 버무린 브라질의 득점력은 월드컵과 같은 대회에서는 매우 유력한 승리 공식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소속 클럽에서 좋지 않았던 선수들조차 대표팀으로만 가면 제 몫을 해내고는 하는 성향 또한 틀림없는 브라질의 강점이다. 따라서 소위 ‘죽음의 조’에 걸려 있다는 사실 한 가지를 제외한다면, 브라질은 스페인에 비해 더 안정적이고 변수가 적은 스타일의 우승후보이다.

▲ 지난 3월2일 잉글랜드 대표팀이 이집트와의 친선 경기를 앞두고 몸을 풀고 있다. ⓒAP연합
■ 잉글랜드·네덜란드·아르헨티나 “우리도 할 수 있다”

배당률에서 스페인과 브라질의 바로 뒤를 잇는 팀은 잉글랜드이다. 잉글랜드가 지닌 최고의 무기는 역시 감독 파비오 카펠로이다. ‘우승청부사’ 카펠로는 월드컵 무대에서 노출되고는 했던 잉글랜드의 약점들을 냉철하게 분석해 향상시킬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인물이다. 웨인 루니가 제 몫을 다 하고 고질적인 부류의 실책을 최소화하기만 하면 잉글랜드는 마침내 이번 월드컵에서 ‘종가의 귀환’을 노려볼 수 있을 법하다.

첫 우승에 도전하는 네덜란드 또한 결코 만만치 않은 세력이다. 각자의 소속 클럽에서 최고의 수준을 펼쳐 보이는 아르옌 로벤, 웨슬리 스네이더, 로빈 반 페르시는 모든 상대 팀들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선수들이다. 선수들 간의 조화 및 대회 중 나타날 수 있는 기복 여부가 네덜란드의 변수이다. 공격수들의 개별 능력만으로는 최상급인 아르헨티나는 공격과 다른 포지션들 사이에 적절한 밸런스를 끌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디에고 마라도나의 지도력도 믿음을 주고 있지는 않으나 흐름을 잘 탈 경우 무서운 팀으로 부상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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