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어게인 1966’ 꿈 이룰까
  • 신무광 | 재일 축구평론가 ()
  • 승인 2010.05.31 20:1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J리거·해외파 대거 앞세우고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44년 전 8강 올랐던 영광 재현 기대

1966년 이후 44년 만에 월드컵 출전이 결정된 북한. 본 대회에서는 우승 후보 브라질, 유럽의 전통 강국 포르투갈, 아프리카의 강호 코트디부아르가 소속되어 있어 ‘죽음의 조’라 불리는 G조에 속하게 되었는데, 그 가혹한 싸움을 기다리고 있는 선수가 있다. 정대세. 일본의 J리그 카와사키 플론탈레에서 활약하는 스트라이커이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재일교포 3세인 그는 말한다. “월드컵 출전이 결정되었을 때부터, 기왕이면 ‘죽음의 조’라 불리는 조에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세계의 강호라 불리는 나라와 대전해서 충격을 맛보고 싶다. 원하던 조 구성이다.”

▲ 북한 월드컵 대표팀 선수들이 공개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허세나 강한 척이 아니다. 원래 도전 정신이 왕성하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다. 무엇보다도 자타가 공히 인정하는 튀고 싶어 하는 성격이다. 우승 후보로서 세계 각국으로부터 주목받는 강호국과의 대전에서 활약하면 그 스포트라이트가 자신에게 향해질 수도 있다. 즉, 강호국과의 싸움은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빛을 발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정대세는 예측하고 있다.

“월드컵에서 활약하면 엄청 주목받을 것이고 눈에 띄겠죠.” 정대세와 비슷한 뉘앙스로 월드컵의 포부를 밝히는 젊은이가 있다. 안영학이다. 지난 시즌까지 한국 K리그의 수원 삼성에서 뛰었고, 이번 시즌부터 J리그의 다이큐 알디자에서 뛰고 있는 그도 말한다. “조가 결정된 직후에는 골치 아픈 조에 들어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마음을 바꾸었다. 이것은 축구 선수로서 최고의 기회라고. 브라질이 왜 세계 최강이라 불리는지, 피부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대된다.”

그리고 월드컵 직전에 북한 대표로 기용된 량용기이다. 정대세, 안영학과 함께 재일교포 3세로 J리그의 베가르다 센다이에서는 에이스 번호인 등 번호 10을 달았고, 재일교포로서는 처음으로 J리그 클럽의 주장을 맡고 있는 ‘테크니션’도 힘주어 말했다. “월드컵에서는 1분 1초라도 더 오래 그라운드에 서고 싶다. 프라이드와 책임감을 갖고 목숨을 걸고 플레이 하고 싶다.”

▲ (왼쪽 사진)지난해 4월 월드컵 아시아 예선 한국-북한전에서 한국의 황재원 선수가 북한 정대세 선수(오른쪽)에게 태클을 시도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여유로운 표정으로 훈련 중인 북한 대표팀 선수들. ⓒ연합뉴스

■ 정대세 등 J리거들, ‘죽음의 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정대세, 안영학, 그리고 량용기.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들이 북한 대표의 일원이 된 것은 조선학교에서 공부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학교는 북한의 말과 역사, 문화를 가르치는 민족학교로, 현재 일본 각지에 약 70개교 가까이 있다. 그 운영은 북한을 지지하는 조총련이 주도하고 있는데, 정대세와 안영학은 초등학교 때부터 그곳에서 배우고 자랐다.  그래서 민족심이 강하며, 축구를 만난 것도 필연이었다. 조선학교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부 활동을 의무화하고 있는데, 남학생은 대개의 경우 축구부에 들어간다. 축구를 국기로 하는 북한의 영향도 있어, 조선학교에 다니는 재 일교포 어린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접하며, 1966년 월드컵에서 북한이 이루어낸 아시아 첫 베스트 8 진출의 쾌거나, 1960~1970년대에 일본에서 무적을 자랑한 재일 북한축구단의 이야기를, 마치 전설처럼 들으며 자랐다. 일본에서 재일교포라는 마이너리티로서 자란 그들은 어렸을때부터 북한 대표를 동경했고, 그 북한 대표로 월드컵 무대에 서는 것을 꿈꾸었다. 그래서 더욱 그들은 ‘죽음의 조’라 불리는 G조에 속하게 되었어도 한탄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북한 대표로서 월드컵에 서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일교포 선수들뿐이 아니다. 북한의 선수, 감독, 코칭 스태프 모두가 남아프리카에 지러 간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강한 어조로 그렇게 말한 것은 북한 대표팀 코치를 맡고 있는 김광호이다. 그 또한 정대세, 안영학, 량용기와 함께 북한 대표팀에 합류한 재일교포이다. 김광호는 1980년대에 재일 북한교포로서 처음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북한) 대표로 뽑혔으며, 1985년에 열린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도 출전 경험이 있어 2008년 동아시아선수권대회부터 북한 대표의 코치를 맡고 있다.

“일반적으로 열에 아홉은 우리가 ‘전패한다’라고 말할 거라고 생각한다. 브라질, 포르투갈, 코트디부아르가 상대라면, 그렇게 예상하는 것이 당연하다. FIFA 랭킹도 우리가 최하위니까. 그래도 우리는 남아프리카에 지러 간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출전하는 이상 일단은 1승, 최소한 무승부로 승점 1점을 획득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러기 위해 준비도 해왔다.”(김광호)

실제로 북한 대표는 상당한 준비를 해 오면서 전력를 강화해왔다. 지난해 6월에 월드컵 출전이 결정되고, 10월에는 43년 만에 프랑스 원정을 실시했으며, 프랑스 2부 리그의 클럽과 콩고 대표와 시합했다. 또, 평양에 브라질 상파울로 주 1부 리그 클럽을 초청하여 강화 시합을 했으며, 11월에는 현지 적응을 위해 남아프리카 원정도 실시했다. 잠비아 대표와 시합을 한 것뿐 아니라, 월드컵의 해인 2010년을 맞이하자, 그 강화 일정이 더욱 충실해졌다. 한 달 동안 터키의 앙타루야에서 합숙하면서 스위스 1부의 루체룬, 루마니아 1부의 디나모 부카레스트, 오스트리아 1부의 마스터부르그 등 유럽의 클럽과 다섯 경기를 치렀다. 3월에는 남미에서 베네수엘라 대표와 멕시코 대표, 4월에는 스페인에서 남아프리카 대표와 시합했다. 실로 다른 나라가 부러워할 정도의 강화 일정이다. 그것이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은 국가의 강력한 지원 체제 덕분이라고 김광호는 말한다. “어떻게 이런 장기 강화 훈련을 할 수 있냐고 모두들 놀라는데, 역시 국가의 기대치가 높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표팀은 조선 인민의 희망이며, 감독과 선수들도 그 책임의 무게와 존엄성을 자각하고 있다.”

그 책임의 무게와 존엄성을 더 강하게 자각하고 있는 것은 팀을 이끌고 있는 김정훈 감독이리라. 김정훈 감독은 형의 영향으로 15살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고, 1973년부터 북한 내 강호의 군대팀, 4·25체육단, 북한 대표의 명 수비수와 주장을 거쳤다. 대표 감독이 되기 전에는 4·25체육단의 부단장을 맡고 있었지만 ‘우수한 실적을 갖고 있으며, 책임을 질 수 있는 지도자에게 대표 감독의 중책을 맡겨야 한다’라는 협회의 판단으로 2007년 11월에 대표팀 감독에 취임했다. ‘내용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그는 ‘전수·속공’의 5-4-1이라는 초 수비적 시스템을 채용하여 철저하게 수비하며 카운터를 노리는 스타일로 아시아 최강 예선을 통과했다. 현역 시절부터 김정훈 감독을 알고 지냈던 김광호 코치는 김정훈 감독의 알려지지 않은 일면을 알려 주었다.

“배포가 큰 당당한 인물이다. 속이 깊고 포용력도 있다. 선수들에 대해 위엄만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아버지 같은 자상함으로 대한다. 리더십도 있고 선수들에게 의욕을 불어 넣어 주는 데 능하다. 무게감이 있는 감독이다. 처음에는 5명이서 수비를 하는 축구에 관해서, 전문가들에게서 이런저런 말을 많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그는 자기 자신을 믿고 그런 경기 방법을 관철시켜, 결과를 일구어냈다. 그는 이런 말을 자주 한다. ‘나는 수비수지만 이런 수비적인 축구는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은 스페인의 FC 바르셀로나 같은 공격적인 축구를 하고 싶다’라고.”

▲ (왼쪽 사진)드리블하는 북한 대표팀의 홍영조 선수. (오른쪽 사진)한국팀 수비를 제치는 북한 대표팀의 안영학 선수(왼쪽). ⓒ시사저널 이종현

■ 북한 선수들도 ‘세계의 넓이’와 ‘세계의 상식’ 잘 알아

북한의 축구 관계자한테서 FC 바르셀로나라는 이름이 나온 것은 좀 의외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안영학의 말에 따르면 최근 북한의 선수들은 세계의 정보나 유행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영조는 쉴 때 아이팟을 듣기도 하고, 대세가 가져온 닌텐도-DS로 놀기도 하고, 세련된 인상도 준다. 영조뿐만이 아니다. 모두들 스파이크의 디자인이 개성적이 되고 색도 컬러풀해졌으니까(웃음). 해외에 나갈 기회가 많아져서 변했는지도 모른다.” 안영학이 말하는 영조란 북한의 첫 유럽 진출 선수가 된 홍영조를 말한다.

홍영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4·25체육단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2007년에 세빌리아 슈퍼리거의  베자니아로 이적한 뒤 7시합에 출전해 1골을 기록했다. 2008년에는 러시아 1부 리그(2부에 상당함)의 FC 로스토프로 이적한 뒤 16게임에 출전해 2골을 기록, 로스토프의 러시아 프리미어리거 승격에 공헌했다. 북한 대표 중 주장을 맡게 되는 스트라이커는 ‘세계의 넓이’도 ‘세계의 상식’도 알고 있다.

안영학도 이런 북한 대표팀의 변화에 대해 알려 주었다.

“의외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북한의 선수들은 챔피온 리그도 TV로 보고 있고, 유럽 리그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칸나팔로, 라든과 발사, 레알 등 고유명사가 일상 대화 중에 예사롭게 나옵니다.”

한편, 북한의 선수들은 세계의 많은 사람이 잃어버린 순수함을 지금도 갖고 있다. 정대세도 말했다. “예를 들면, 공항에서 갈아탈 비행기를 기다릴 동안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진 쪽의 이마를 때리는 게임을 계속 반복하면서 순진무구하게 웃는다. 감독은 물론 팀 메이트에 관해서는 험담을 일절 하지 않는다. 팀 내에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좀 특이한 선수가 있어서, 그 선수를 모두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본인이 없는데서 그런 말은 하면 안 된다’고 나무랐다. 세상에는 아직도 이렇게 소박한 민족이 남아 있구나 하고 감탄할 정도로 순수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불평하지 않고 남의 험담은 절대로 하지 않는 그런 순수함에 마음이 정화된다.”

개인적으로 필자가 감명을 받은 것은 안영학과 김영준의 교류 에피소드이다. 안영학에 의하면 김영준은 머리도 좋고 시야도 넓고 본국과 세계와의 관계나 차이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는 총명한 면이 있고, 누구보다도 남을 배려하는 자상함이 있다고 한다.

“나와 발 사이즈가 같아서 선물로 주려고 스파이크를 자주 가져가고는 하는데 ‘지난번에도 선물 받았으니까 괜찮다’라며 사양을 하는 거예요. 축구 선수니까 스파이크는 몇 켤레 있든 상관없잖아요. 실제로, 대표로 나갈 때마다 스파이크를 달라고 하는 선수도 있고요. 하지만 영준은 절대 욕심내지 않고, 괜찮으니까 아무 말 말고 받아 두라고 해도 후배들에게 주고 말아요.”

그리고 안영학이 본국으로 돌아갈 때에는 스파이크에 대한 답례라며 꼭 북한의 특산품을 건네준다. 한 번은 녹용으로 만든 한방주와 고려인삼주 등 고가품을 수건과 비닐로 꼭꼭 싸서 일부러 원정지까지 가져 와서 선물해준 적도 있었다. 잊을 수 없는 것은 2009년 크리스마스에 있었던 일이다. 그날 안영학은 같은 재일교포로 고교 동창생이었던 연인과 결혼에 골인했는데, 결혼식이 한창 진행 중일 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김영준이었다. 친구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기 위해, 중국 해남도에서 북한 대표팀 합숙 훈련에 참가한 량용기의 휴대전화를 빌려서, 다음과 같이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그곳에 가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우린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어. 두 사람이 언제까지나 행복하도록 같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기도할게.”

자란 환경도 가치관도 다르지만 마음은 서로 통한다. 떨어져 있어도, 비록 정치 체제가 방해를 한다 해도 우정의 인연을 갈라놓을 수는 없다. 그런 것을 실감할 수 있었던 전화였다고 한다.

▲ 1966년 잉글랜드 대회 이후 44년 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따낸 북한 축구 대표팀이 지난해 6월20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귀국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고전’ 예상되지만 자신감 넘쳐 ‘기적’ 일어날 수도

더욱이, 월드컵에서 북한 대표가 불리하다는 것은 선수들 모두가 자각하고 있다. 수비를 중시하는 축구로 아시아 예선은 그럭저럭 통과할 수 있었지만, 팀의 실력과 대전국의 힘 관계를 냉정하게 생각해 볼 때 월드컵에서는 더욱 힘든 싸움을 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고전은 당연한 것이다. 대부분의 미디어가 예상하는 대로, 3전 전패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대세는 믿고 있다. 팀의 저력을. 축구의 세계에 ‘자이언트 킬링’이라는 이름의 기적이 일어날 것을. “분명히 남아프리카에서 대적할 나라들은 모두 힘든 상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시아 예선에서도 북한이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1%도 되지 않았다. 그 예상을 뒤집고 월드컵 출전권을 따낸 지금, 팀에는 약간의 가능성과 소망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다는 자신이 있다. 설사 진다고 해도 흔적은 남기고 싶다. 좀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상대에게 흉터를 남겨 주겠다. 정대세라는 이름의 흉터를.”

정대세라는 이름의 흉터를 남긴다. 그것이 골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탁월한 신체 능력으로 돌파해 최고의 골 결정력을 자랑하고 있는 정대세에게 거는 기대는 크다. 44년 만에 월드컵으로 돌아오는 ‘붉은 번개’가 다시 기적을 일으키기 위해서도 정대세의 천둥이 불가결한 것이다.

“얼마 되지 않는 카운터에서 찬스를 골로 연결해야만 하는 월드컵에서는 내 개인적인 능력이 시험받게 된다. 1시합 1득점이 목표지만, 최소한 2득점은 올리고 싶다.”

과연 북한이 목표로 하는 ‘again 1966’은 이루어질지. 그 열쇠는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교포 J리거들이 쥐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