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적’ 만난 MB식 교육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0.06.08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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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김상곤 등 진보 성향 교육감 6명 출현…당선자들 공약, 현 정부 정책과 대부분 충돌

6·2 지방선거가 끝난 후 교육계가 술렁이고 있다. 개표 결과 전국 16개 시·도에서 진보 성향의 교육감 여섯 명이 당선되었다. 전국에서 82명을 뽑는 교육의원 선거에서도 진보 교육의원 16명이 배출되었다. 교육감과 교육의원 숫자에서 역대 최고이다. 이전에는 진보 교육감은 경기도 한 곳만 있었다.

교육 삼각 벨트로 불리는 수도권에서는 서울과 경기도가 진보 교육감 시대를 열었다. 강원도와 광주광역시에서는 전교조 출신의 교육감이 나왔다. 전북과 전남에서도 진보 성향의 인사들이 교육감으로 새롭게 진입했다. 향후 ‘진보 교육감 연합체’ 등을 형성할 경우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사안에 따라 중앙 정부의 교육 정책 자체가 무기력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진보 교육감과 현 정부 사이에 날선 대립각 형성이 예고되었기 때문이다. 교육계에서는 정부가 추진했던 학업성취도 평가, 전교조 교사 징계, 교장 공모제 확대, 무상 급식 등을 둘러싸고 충돌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엄민용 전교조 대변인은 “정부가 추진하는 교육 정책에 일정 정도 브레이크가 걸린 것은 사실이다. 현 정부의 교육 정책은 교육 주체와의 논의와 소통을 통해서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추진되어왔다. 진보 교육감들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들에 대해 분명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세워서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 정부는 지난 2년 반 동안 추진했던 교육 정책을 재검토하고 이번 선거 결과를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 그리고 당장 전교조와 대화에 나서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이목이 가장 집중되는 곳은 역시 서울이다. 서울은 대한민국 교육의 상징이자 축소판이다. 지금까지는 줄곧 보수 성향의 교육감들이 거쳐가면서 ‘보수 교육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곳이다. 중앙 정부의 교육 정책과도 같은 방향으로 갔다. 공정택 전 교육감의 경우 ‘MB 교육의 전령사’를 자처했을 정도이다.

그러다 올해 초 공정택 전 교육감과 그 측근들의 비리가 잇달아 터지면서 역풍을 맞았다. 학교 안팎에서는 ‘갈아엎자’라는 정서가 확산되었다. 진보 교육감 당선의 일등 공신은 ‘보수 교육감의 부패’였던 것이다. 곽노현 당선자도 선거 기간 내내 ‘서울시교육청의 부패’를 선거 전략으로 삼았다.


곽당선자는 당선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향후 교육 정책 방향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현 정부가 추진하는 ‘교장 공모제 100% 확대’ 등에 대해 난색을 표명했다.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는 지난 4월 교장 공모제 비율을 임기 만료 교장의 50% 이상으로 확대하겠다고 했고, 서울시교육청은 그 비율을 10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지원 자격도 교장 자격증을 가진 교원으로 제한했다. 사실상 평교사의 지원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 곽당선자는 반대되는 정책을 내놓았다. ‘평교사’의 지원 자격을 확대할 방침이다. ‘전교조 교사 징계’도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곽당선자는 ‘교과부와의 긴밀한 협조’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사실상 반대 입장을 내보였다. 현행법상 교원 징계에 관한 권한은 교육감에게 있어 ‘교육감의 의지’에 따라 징계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당선자(왼쪽)와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당선자(오른쪽). ⓒ 주간사진공동취재(왼쪽), ⓒ 연합뉴스(오른쪽)

무상 급식·전교조 문제 등 마찰 요소 수두룩

‘무상 급식’과 관련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곽당선자는 “서울 지역의 모든 초·중학생들에게 ‘친환경 무상 급식’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아토피 등을 없애기 위해 ‘친환경 유기농 식재료’만을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은 무상 급식의 ‘전면 확대’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향후 예산 배정 등에서 서울시장과 서울시교육감의 정면 충돌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자율형 사립고(이하 자사고) 추가 지정을 골자로 하는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도 더 이상 속도를 낼 수 없게 되었다. 곽당선자는 서울 지역에 자사고를 추가로 지정하지 않을 생각이다. 대신 자사고 등록금을 낮추고 지원 자격을 대폭 완화하는 등 대수술에 들어갈 참이다.

특목고에 대한 대폭적인 수술도 불가피해졌다. 그동안 논란이 되어온 ‘귀족 학교’를 없애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대신 자사고의 대안으로 ‘혁신 학교’를 들고 나왔다. 낙후된 지역의 초·중·고 3백 곳을 혁신 학교로 지정해 집중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처럼 곽노현 당선자의 공약 상당수는 현 정부의 교육 정책과 정면으로 맞서 있다. 향후 진통이 예상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정부가 ‘공권력 카드’를 꺼내는 것도 쉽지 않다. 교과부는 지난해 10월 전국 시·도교육청에 ‘시국 선언 참여 교사’에 대한 징계를 요청했다. 하지만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징계 유보’로 맞섰고, 교과부는 ‘직무 이행 명령’을 내리고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까지 했다. 지금은 서울시나 경기도의 상황이 그때와는 다르다. 자칫 무리하게 공권력 카드를 썼다가는 역풍을 맞을 공산이 크다. 서울시의 경우 예산안을 의결하는 의회를 민주당이 석권했다. 민주당은 전체 1백6석 가운데 다수인 79석을 차지했다.

때문에 서울시교육청의 예산안이 의회에서 순조롭게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오세훈 서울시장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물론 의회가 승인하더라도 단체장인 서울시장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구청장과 의회의 다수를 민주당이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거부권’ 행사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경기도의 경우도 서울과 비슷하다. 선거 개표 결과가 발표된 후 경기도에서는 ‘김상곤의 역습’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동안 경기도에서는 김문수 도지사 당선자와 김상곤 교육감 당선자가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워왔다.

주로 김교육감의 교육 정책에 대해 김문수 도지사가 발목을 잡는 형국이었다. 김교육감의 핵심 공약인 무상 급식, 혁신 학교 예산 등이 의회에서 전액 삭감되는 등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김지사는 경기도에 ‘교육국’을 신설해 교육청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번에는 반대 형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의회 전체 1백12석 가운데 민주당이 71석을 차지했다. 한나라당이 장악했던 의회를 민주당이 점령한 셈이 되었다. 이에 따라 김문수  지사의 운신 폭도 좁아들 수밖에 없다. 반면, 김상곤 교육감이 추진하려던 무상 급식과 학생 조례 등의 교육 정책이 탄력을 받게 되었다.

경기도교육청 공보담당관은 “교육 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의 밑바닥 정서와 기대가 투표로 나타난 것이다. 경기도 교육 정책의 경우 의회나 개혁 정책을 반대하는 그룹 때문에 늘 무리가 따랐고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의회가 변해서 향후 진보 교육 정책들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본다. 어떤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책임감도 더 커졌다”라고 말했다.

서울과 경기도뿐만 아니라 진보 교육감이 당선된 지자체에서는 인사와 조직에 일대 혁신이 예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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