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 머신’ 최강의 조합은?
  • 서호정 | 스포탈코리아 기자 ()
  • 승인 2010.06.15 02:1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재능별로 본 ‘스페셜리스트’들 / 박지성의 심장·챠비의 눈·메시의 왼발·클로제의 머리 합치면 ‘무적’

월드컵을 앞두면 늘 빠지지 않고 나오는 기사가 있다. 바로 전세계 선수 가운데 개개인이 지닌 가장 뛰어난 능력을 모아 세계 최고의 선수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펠레의 오른발, 마라도나의 왼발, 차범근의 허벅지, 요한 크루이프의 두뇌의 조합이랄까. 이번 남아공월드컵에 나서는 선수들 중에서 ‘스페셜리스트’로 꼽을 만한 특별한 재능들을 살펴보자.

■ 최고의 머리

독일 미로슬라프 클로제(32)의 별명은 ‘헤딩 머신’이다. 폴란드 이주민 출신인 클로제는 2002년 독일 국가대표로 한·일월드컵에 참가해 자신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렸다. 그는 조별 리그 첫 경기였던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헤딩 골로만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월드컵에서 헤딩 해트트릭은 체코의 공격수 토마스 스쿠라비(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코스타리카전)와 클로제만 갖고 있는 진기록이다. 클로제는 헤딩의 황제로 통했던 올리버 비어호프 현 독일 대표팀 단장보다 키가 9cm나 작은 1백82cm에 불과하다. 그리 크지 않은 공격수이다. 그러나 월등한 점프력에서 나오는 헤딩은 역대 어떤 공격수보다 완벽하다는 평을 듣는다. 클로제는 지난 두 번의 월드컵에서 각 다섯 골씩 총 10골을 기록했는데, 그중 다섯 골이 헤딩골이다. 이로 인해 월드컵에서 머리로 가장 많은 골을 기록한 선수에 올랐다. 클로제는 호나우두가 기록한 월드컵 개인 최다골(15골) 기록을 넘어설 유일한 후보로 꼽힌다.

헤딩을 키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선수는 호주의 팀 케이힐(31)이다. 그는 오히려 클로제보다 4cm가 작은 공격형 미드필더이지만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헤딩을 구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케이힐의 헤딩은 위치 선정과 타이밍의 예술이다. 자신보다 10cm 이상 큰 장신 수비수들 틈에서 완벽한 위치를 선점한 뒤 돌고래처럼 솟아 헤딩으로 마무리한다. 사모아 혼혈 선수인 그는 헤딩골을 터뜨리면 코너 플랫으로 달려가 격렬한 복싱 세리머니를 펼치며 환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 ‘왼발의 달인’으로 불리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리오넬 메시. ⓒAP연합

 ■ 최고의 왼발

권투에는 ‘왼쪽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라는 격언이 있다. 한 템포 빨리, 혹은 늦게 나오는 왼손잡이의 경쟁력을 얘기하는 것이다. 축구도 다르지 않다. 왼발잡이는 전체적으로는 그 수가 많지 않지만, 세계적인 선수만 놓고 보면 비율은 오른발잡이와 비슷하다. 리베리노, 디에고 마라도나, 히바우두, 라이언 긱스 등은 왼발 하나로 한 시대를 풍미한 대표적 선수들이다. 특히 1986년 멕시코월드컵은 마라도나가 왼발로 세계를 정복한 기념비적인 대회로 꼽힌다. 24년이 지난 현재 감독으로 월드컵에 참가하는 마라도나는 자신의 후계자를 이끌고 우승에 도전한다. 바로 현존 세계 최고의 선수인 리오넬 메시(23)이다. 지난 시즌 공식 경기에서만 47골을 터뜨린 메시는 왼발을 이용한 드리블과 슈팅으로 1백69cm에 불과한 자신의 왜소한 체격 조건을 완벽히 상쇄시켰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왼발 슈팅은 골 그물을 찢어버릴 듯한 파괴력을 지녔다. 완벽한 볼 터치를 통한 저돌적인 왼발 드리블 앞에서 상대 수비수는 추풍낙엽처럼 떨어져나간다.

또 한 명의 ‘왼발의 마술사’는 네덜란드의 아르옌 로벤(26)이다. 과거 박지성, 이영표와 함께 PSV아인트호벤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로벤은 첼시, 레알마드리드, 바이에른뮌헨 등 최고의 클럽을 거친 천재형의 선수이다. 부상으로 인해 상승세를 꾸준히 유지하지 못했지만, 그의 왼발 드리블은 메시와 맞먹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흥미로운 점은 로벤이 오른발을 아예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모든 패스와 볼 터치를 왼발로만 하는 그는, 짧은 스텝으로 시종일관 공을 툭툭 치고 나가는 독특한 드리블을 구사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코스에서 나오는 왼발 슛도 로벤을 최고의 선수로 만든 무기이다.  

▲ 필살기 ‘무회전 킥’을 장착한 포르투갈 대표팀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AP연합

■ 최고의 오른발 

오른발잡이가 최고가 되려면 일반적인 선수가 갖지 못한 특별한 무기가 필요하다. 메시의 라이벌이자 최고의 미남 선수로 꼽히는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5)에게는 ‘무회전 킥’이 그런 무기이다. 무회전 킥이 호날두의 전매 특허가 된 것은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시절이다. 그는 프리킥 상황에서 발 안쪽이나 바깥쪽으로 때리는 일반적인 방법 대신 발등으로 정지해 있는 공의 정중앙을 시속 1백30km/h에 육박하는 속도로 강하게 때렸다. 회전을 최소화시킴으로써 축구공의 이음매에서 생기는 불규칙한 공기 저항이 예측 불가능한 볼의 궤적을 만든 것이다. 호날두는 어린 시절 탁구를 치면서 무회전 킥의 원리를 깨달았고, 강한 임팩트를 구사하기 위해 빼빼 마른 몸을 근육 덩어리로 변화시켰다. 그 덕분에 호날두는 거리에 상관없이 골대를 향해 강력한 슛을 날릴 수 있는 오른발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호날두의 프로 팀 동료인 스페인의 사비 알론소(29)는 오른발의 정교함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선수이다. 중앙 미드필더인 그는 중·장거리 패스의 달인인데, 특히 패스는 cm 단위로 조절이 가능하다. 역습 상황에서 한 번에 보내는 패스는 오차 없이 정확히 아군에게 향한다. 잉글랜드의 주장 스티븐 제라드(30)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오른발 중거리 슛을 구사하는 선수이다. 1백89cm의 당당한 체구에서 나오는 완벽한 임팩트의 오른발 슛은 회전 없이 그대로 쭉 뻗어나가 상대 골망에 꽂힌다. 팀이 위기의 순간에 빠질 때마다 뿜어나오는 시속 1백60km/h에 육박하는 빨랫줄 슈팅은 보는 이의 가슴마저 후련하게 만든다.
 

▲ 최고의 패스 마스터로 통하는 스페인 대표팀의 챠비 에르난데스. ⓒAP연합

■ 최고의 눈

 축구계는 정교한 패스의 달인들에게 ‘패스 마스터’라는 영광스러운 수식어를 붙여준다. 최고의 패스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발뿐만 아니라 경기장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시야가 필요하다. ‘최고의 패스 마스터는 여덟 개의 눈을 지녀야 한다’라는 얘기도 그런 논리에서 나온 것이다.

현재 세계 축구에서 패스 마스터로 통하는 대표적인 선수는 스페인의 챠비 에르난데스(30)이다. 스페인 대표팀 핵심 선수인 스페인의 챠비는 미드필드 2선에서 상대 수비진에 난 아주 작은 균열을 찾아내 그 사이로 공을 침투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지녔다. 스페인의 유로2008 우승을 이끌 당시에는 대회 내내 90%가 넘는 패스 성공률을 자랑했다. 특히 결승전에서는 94%의 성공률을 기록하며 대회 MVP에 올랐다. 바르셀로나의 정신적 지주인 요한 크루이프는 “챠비가 없다면 메시의 위대함은 반감될 것이다”라며 챠비의 2선 지원에 극찬을 보냈다.

이탈리아 안드레아 피를로(31)의 패스도 챠비 못지않다. 이탈리아가 2006년 독일월드컵 우승을 차지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피를로는 패스 실력 하나로 전술의 흐름을 뒤엎는 선수이다. 패스와 경기 조율이 뛰어난 미드필더는 공격진 바로 아래에 공격형 미드필더로 배치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하지만 피를로는 수비 라인 바로 앞에 위치한다. AC밀란의 전 감독이던 카를로 안첼로티는 카운터어택 상황에서 피를로가 구사하는 완벽한 패스를 살리기 위해서는 좀 더 깊숙한 위치에 세워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을 했고, 결과는 대성공으로 이어졌다. 

▲ ‘산소 탱크’라 불릴 만큼 강한 심폐 기능을 소유한 한국의 박지성 선수. ⓒ시사저널 유장훈

■ 최고의 심장 

현대 축구는 기동력의 싸움이다. 공간의 지배가 곧 승부를 가르는 만큼 경기 시작부터 종료까지 쉴 새 없이 뛸 수 있는 강철 체력을 가진 선수를 필요로 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축구 스타 박지성(29·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을 만든 것도 그 끝없는 체력이다. ‘산소 탱크’ 혹은 ‘두 개의 심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박지성은 매경기 10km 이상의 활동량을 기록할 만큼 많이 뛰는 선수이다.

그의 헌신적인 수비 가담은 기존 측면 공격수들이 갖지 못한 특별한 무기였고, 명장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그를 주목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박지성은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입단 당시 가진 메디컬 테스트에서 마라톤 선수 수준의 심폐 기능과 회복 능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았다. 과거 대표팀이 태릉선수촌에서 합숙 훈련을 할 당시 박지성은 레슬링 선수들이 독점하던 불암산 크로스컨트리에서 3위를 차지해 관계자들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

박지성이 수비하는 공격수로서 왕성한 체력을 자랑한다면, 반대 개념의 선수는 브라질의 마이콘(29·인터 밀란)이다. 풀백인 그는 자신의 진영 코너플랫부터 상대 진영 코너플랫을 경기 중 수시로 왕복하며 오버래핑을 구사한다. 상대팀 풀백은 물론 그 앞선에 버티고 있는 공격수마저 체력적 한계에 부딪히게 만들 만큼 마이콘이 보여주는 오버래핑은 위력적이다. 2009년 챔피언스리그에서 박지성과 마이콘이 한 차례 격돌했다. 당시 두 선수의 체력전은 맨유와 인터 밀란의 승패를 결정할 요소 중 하나로 주목 받았다. 결과는 절친한 동료인 풀백 에브라와 협업으로 마이콘을 봉쇄한 박지성의 승리였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