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위해 존재하는 군대인가
  • 이상돈 | 중앙대 법대 교수 ()
  • 승인 2010.06.2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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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의 천안함 사태 감사 결과 ‘충격’…신뢰 잃은 마당에 안보리 회부는 자충수 될 수도

 

지난 3월26일 백령도 육지를 코앞에 둔 지점에서 천안함이 침몰했을 때 많은 사람은 사고가 난 줄 알았다. 해군 당국자는 물론이고 천안함을 구조하러 간 해경의 함장도 ‘파공’ ‘침수’ ‘좌초’ 같은 단어를 입에 올렸다. 그런데도 조금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함정이 순간적으로 두 쪽이 나는가 말이다. 선박이 침수되면 결국은 두 쪽이 나서 침몰하는데, 그렇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린다.

타이타닉은 물론이고, 유조선 토리캐년과 아모코카디즈도 두 동강이 나서 물속으로 가라앉았지만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천안함은 순식간에 두 쪽이 났다. 이를 설명하고자 ‘피로 파괴’니, ‘전단 분리’니 하는 이론이 등장했다. 그러던 중 몇몇 신문이 ‘소식통’에 근거해서 북한의 어뢰 공격설을 등장시켰다.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 개입설’을 비웃듯이 백령도를 방문했다. 주한 미국 대사와 주한 미군 사령관도 백령도를 방문했다. 이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경고를 하기 위해 백령도에 갔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는 단지 시련을 극복하는 데 힘을 합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군 당국은 천안함 생존 장병들에게 환자복을 입혀서 언론에 공개했다. 당시 견시(見視)를 섰던 장병은 물기둥을 보지 못했다고 증언했고, 소나병(兵)은 소나에 어뢰 징후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이쯤 되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되고 만다. 서해 최전선인 백령도 부근을 항해하던 천안함이 폭음과 함께 두 쪽이 나서 장병 46명이 죽었는데, 해군은 한참 후에 “아,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우리가 어뢰에 맞았구나” 하고 깨달은 것이다.

국방부장관은 천안함의 소나는 구식이어서 잠수함과 어뢰를 탐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북한의 최신형 잠수정과 어뢰를 ‘비대칭 전력’이라고 불렀다. 우리의 3면 바다는 북한 잠수정의 놀이터가 되어 있으며, 북한은 어느 때이든 우리 함정과 상선을 침몰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어뢰에 맞고도 한 달이 지나서야 어뢰에 맞은 것을 비로소 깨닫는 해군이라면 더 이상 이런저런 말을 할 것도 없다. 도무지 어떻게 해서 우리 군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나.

6월10일 감사원이 발표한 천안함 감사 결과는 이런 의구심을 상당 부분 해소시켜 주었다. 감사원의 조사에 의하면, 해군 2함대사령부는 북한의 잠수정 위협에 대해 적절한 대응책을 취하지 않았다. 3월26일 밤 9시29분께 천안함으로부터 ‘어뢰 피격 가능성’을 보고받고도 이를 합참과 해군 작전사에 보고하지 않았으며, 속초함으로부터 “잠수정 의심 물체에 대해 포격을 했다”라고 보고를 받고 “새 떼를 오인 포격했다”라고 바꾸어 보고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또, 합참은 해군 작전사가 보고한 ‘사건 발생 시각 밤 9시15분’을 적당히 ‘9시45분’으로 고치고, ‘폭발음 청취’ 같은 어뢰 징후를 삭제해서 국방부장관에게 보고했다는 것이다. 일부 언론은 당시 합참의장이 만취해서 제대로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감사원 발표가 진실이라면, 해군과 합참은 사건을 처음부터 은폐했고, 국방부장관과 대통령은 이런 허위 보고에 속아 넘어갔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이런 사정을 모르고 백령도까지 갔으니 군이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을 갖고 논 셈이다. 정부가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발표해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군과 정부가 이리저리 말을 바꾼 탓이 큰데, 이렇게 말을 바꾼 이유가 군이 사실을 덮으려 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 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해 박시종 감사원 행정안보감사국장이 6월10일 서울 감사원 브리핑룸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국제 사회는 진실보다 자국의 이익에 따라 결정할 뿐

정부는 천안함 사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해서 북한의 소행임을 국제 사회로부터 인증받으려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우선 정부가 말을 이리저리 바꾸고, 또 이런 불행한 사건을 선거에 이용하려고 해서 자기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당하는 판국인데, 어떻게 국제 사회로부터 사실을 인증받는다는 말인가. 정부는 유엔 안보리가 진실에 대해 확정적 판단을 내리는 ‘신(神)의 법정’으로 알고 있는 모양인데, 그것도 한심한 일이다. 유엔 안보리의 구성원들은 지정학적(geo-politic) 고려와 자국의 이익에 따라 결정을 하지 객관적 증거를 보고 판단하지는 않는다.

이라크 침공을 앞두고 프랑스와 러시아 그리고 중국이 미국의 입장에 동조하지 않은 이유는 미국이 대량살상무기의 증거를 확실하게 제시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하면 지정학적 균형이 깨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라크의 후세인 정부에 무기를 비밀리에 팔아서 짭짤한 이익을 보았던 프랑스와 러시아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할 가능성은 당초부터 없었다.

우리 정부는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이 천안함 침몰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우리나라에 동조하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어야 했다. 우리가 북한을 침공하지 않는다면 구태여 안보리의 결의에 목을 맬 이유도 없다. 북한에게는 유엔의 경제 봉쇄도 별다른 의미가 없다. 북한에 대해 식량 원조를 끊고,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경제 봉쇄인데, 그것은 우리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다.

유엔 안보리가 우리 기대에 부응하는 결의를 채택하지 못하면 우리의 국제적 지위가 손상되며, 어렵게 밝혀낸 천안함의 진실이 또다시 흔들리게 될 것이다. 안보리 회부는 자충수가 될 가능성도 있다. 유엔은 정작 필요한 때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기능이 마비된(dysfunction)’ 조직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안보리에 대해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 아닐 수도 있다’는 내용의 서신을 보낸 참여연대에 대해 이적 행위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참여연대의 그같은 행동은 돌출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이적 행위가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실 생각해보면 더 큰 ‘이적 행위’는 다름 아닌 군이 저질렀다고 할 수 있다.

감사원의 조사 결과대로, 천안함 함장이 ‘어뢰 공격 가능성’을 보고했는데도 그것을 묵살하고 상부에 보고한 해군 당국자와, 사건 발생 시각을 조작하고 폭발음 청취 같은 중요한 부분을 삭제해 국방부에 보고한 합참 관계자들이야말로 ‘이적 행위’를 한 것이 아닌가 한다. 군인이 적의 공격을 숨기고 상부에 보고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래서 감사원 조사 결과에 대해 “설마 과연 저럴 수가 있나?” 하는 의구심마저 갖게 된다.

특히 3월26일 9시15분에는 “아무 일도 있지 않았다”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어뢰설’의 토대인데, 감사원은 ‘9시15분 사건’을 합참이 임의로 ‘9시45분’으로 고쳤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장관과 합참의장은 “군은 적당히 거짓 보고하는 집단이 아니다”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어뢰에 피격되었다면 지진계측기에 진동이 잡힌 9시22분까지는 아무 일도 없어야 하는데, 사실이 이렇게 뒤죽박죽이면 도무지 누구 말을 믿겠는가. 한국 정부와 한국군의 신뢰는 천안함보다도 더 깊은 바다에 빠져버린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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