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드라마인가, 배경이 막장인가
  • 정덕현 | 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0.07.06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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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 김탁구>에서 자극적인 요소 넘쳐나 ‘아슬아슬’…이야기의 맥락을 보면 비난할 수만 없어

 

▲ 에서 김탁구 역을 맡은 윤시윤

“천하고 더러운 것들.” 불륜 현장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라고 생각되지만, <제빵왕 김탁구>에서 이 대사는 놀랍게도 어른이 아이를 앞에 두고 하는 말이다. 거성식품 구일중(전광렬) 회장이 그 거성가의 보모이자 간호사였던 김미순(전미선)과의 사이에 낳은 아들 김탁구(아역 오재무). 한편, 비서인 한승재(정성모)와 불륜 관계를 통해 아들 마준(아역 신동우)을 낳은 거성가의 안주인 서인숙(전인화)이 갑자기 나타난 탁구와 미순을 곱게 볼 리 없다. 그래서 “천하고 더러운 것들”이라고 욕하지만, 그것은 불륜 사실을 속이면서 마준을 거성가의 후계자로 만들려는 서인숙과 한승재 자신들을 지칭하는 것만 같다. 그만큼 이 드라마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막장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자극적인 요소들로 넘쳐난다. 출생의 비밀과 불륜은 물론이고, 시어머니의 죽음을 방치하는 패륜, 지독할 정도의 가정 내 폭력, 심지어 강간 사주까지 등장한다. 이쯤 되면 막장 드라마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은 자극의 끝단을 이 드라마는 아슬아슬하게 걸어나간다.

이러한 자극적인 상황을 더욱 자극적으로 만드는 것은 그 엄청난 폭력을 당하거나 목격하는 대상이 어른이 아닌 아이들이라는 점이다. 한승재와 서인숙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고 빗길에 미끄러져 방치된 채 죽어가는 할머니(정혜선)를 보는 것은 다름 아닌 그 불륜의 씨앗인 마준이다. 마준은 그 와중에도 할머니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용서해주면 할머니를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아무리 할머니와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아이가 죽어가는 할머니에게 할 수 있는 말일까. 또, 한승재가 유경의 아버지에게 탁구의 어머니인 미순을 범하라고 사주하는 모습을 엿보는 이도 어린 유경이다. 미순이 결국 누군가의 손에 의해 끌려가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는 것도 다름 아닌 탁구이다. 즉, 이 드라마에서는 어른들의 추악한 범행들이 끊임없이 아이들의 눈에 목격된다. 그래서 탁구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이 비정한 세상에서 홀로 달려가며 “어무이, 쪼매만 기다려라! 내가 꼭 구해줄 테니” 하고 외치는 장면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것은 아무 힘도 없는 어린아이가 추악한 어른들의 세상에 대고 살아남기 위해 절규하는 장면처럼 보인다.

아이의 시점에서 시작한 성장 드라마

그런데 이 아이의 시점을 넣자, 이야기는 뜻밖의 대결 구도를 만들어낸다. 즉, 막장의 시대와 맞서는 순수한 아이의 대결이다. “결국에는 착한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라는 탁구의 슬로건은 그래서 상투적이면서도 강력하다. 즉, 시대는 막장이지만, 이 시대를 살아내며 성장해가는 탁구의 건강한 이야기가 진짜 이 드라마가 전하려는 메시지이다. 이렇게 보면 1970년대 개발 시대를 둘러싸고 있는 막장의 기운들을 우리는 이 드라마를 통해 감지해낼 수 있다. 드라마의 시작 부분이, 아들을 낳지 못하는 며느리 이야기라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개발 시대가 가진 그 막장의 분위기는 이처럼 이 드라마의 전반적인 배경을 구성한다. 아마 당대를 경험한 기성세대라면 그 억압의 분위기를 익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 시대의 분위기이기도 했으니까.

따라서 이런 관점으로 보면 <제빵왕 김탁구>는 막장인 시대를 살아낸 한 세대를 그리는 시대극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이 막장의 자극적인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그 위에 성장 드라마적인 요소들을 집어넣어 그 막장을 넘어서려는 시도는 이 드라마가 왜 그토록 폭발력을 갖는가를 쉽게 이해시켜준다. 기성세대의 입장에서 보면 이 드라마가 가진 막장적인 요소들은 이미 드라마적으로도 익숙한 것들이고, 또 당시를 떠올리면 어슴푸레 떠올려지는 향수이기도 하다. 시간은 아픔마저도 향수로 만들어버린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기성세대를 자극하는 당대의 막장적인 요소들을 뛰어넘는 방식이 성장 드라마라는 점이다. 이것이 이 드라마가 어떻게 기성세대는 물론이고 젊은 세대들까지 끌어들이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부분이다. 막장적인 시대적 분위기에는 비난을 이끌어내면서도 또한 향수를 자극하고, 그것을 해결해가는 착한 탁구의 성장 이야기는 이 시대와 전형적인 선악 구도를 구축한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막장을 경험하고는 이제 성장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탁구의 이야기는 1970년대를 거쳐 1980~90년대를 연 세대들의 감성 그대로이기도 하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제빵왕 김탁구>는 막장 드라마인가, 아니면 시대가 막장인 시대극인가. 장면 하나하나를 뜯어내서 보면 그 지독히도 자극적인 요소들은 막장 드라마라고 여겨지지만, 그 장면들이 엮어내는 이야기의 맥락을 들여다보면 막장이라고 확언하기가 어려워진다. 처음에는 막장 요소들로 시작했지만, 뒤로 갈수록 성장 드라마가 점점 강해지는 이 드라마는 바로 그 경계에 서 있다는 점 때문에 오히려 더 폭발력을 갖는다. 문제는 아역들이 사라지고 이제 성인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지금부터다. 막장의 요소들을 순수한 어린아이의 눈빛으로 이겨냈던 초반부와 달리, 성인들로 채워진 현재는 어떻게 이 자극적인 요소들을 이겨낼 것인가. 두고 볼 일이다. 

 허술한 얼개 덮어버리는 ‘속도감’

과거의 신파 드라마에서는 한 가지 막장적인 요소를 갖고 질질 끄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였다. 예를 들어 ‘혼사 장애’는 그 요소 하나로 드라마 한 편을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른바 막장 드라마라고 불리는 드라마들의 새로운 트렌드는 보통 드라마에서는 느낄 수 없는 빠른 속도감이다. 그 특유의 속도감으로 허술한 얼개를 덮어버린 <아내의 유혹>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제빵왕 김탁구>의 속도감도 여기에 만만치 않다. ‘출생의 비밀’ 같은 자극적인 코드를 단 몇 회 만에 드러내고,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팽팽한 대결 구도는 단 4회 만에 시어머니의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이제 자극적인 요소들은, 등장해서 어떤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면 곧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추세가 되었다. 이 속도감은 이제 그만큼 드라마의 극적 요소들을 꿰뚫고 있는 시청자들 덕분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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