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는 지금 ‘장편 3D’ 실험 시대
  • 라제기 |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
  • 승인 2010.07.26 18:4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극·공상 과학물 등 여러 장르에서 제작 돌입…기술·예산 문제로 계획에 차질 빚기도

충무로에 본격적으로 장편 3D 시대가 열리고 있다. <아바타>의 거센 폭풍이 지나간 뒤 조금씩 싹을 틔우며 새로운 영상 시대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미스터리 로맨스 <나탈리>를 시작으로 사극과 공상 과학물 등 여러 장르에서 한국형 3D 영상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 미스터리 로맨스 <나탈리>가 첫 테이프 끊어

<아바타> 열풍 이후 충무로에서도 3D 프로젝트가 쏟아졌다. 윤제균 감독이 제작하는 <7광구>가 먼저 깃발을 올렸고, 심형래 감독의 <라스트 갓 파더>와 김태희 주연의 경마 영화 <그랑프리>가 잇달아 3D 제작을 선언했다. 연평해전을 소재로 한 곽경택 감독의 <아름다운 우리>(가제)도 3D 제작을 발표하면서 바야흐로 충무로는 ‘3D 백가쟁명’ 시대를 맞는 듯했다.

하지만 정작 첫 테이프를 끊은 영화는 소리 소문 없이 제작이 진행되던 <나탈리>였다. <동승>의 주경중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이성재·김지훈 등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세 남녀의 사랑을 풀어놓는다. 5월 초 촬영에 들어가 지난 6월6일 크랭크업했다. 개봉은 9월 말 예정이다. 제작비는 비교적 ‘저렴한’ 14억원. 같은 영화사가 제작 중인 또 다른 3D 영화 <현의 노래>와 스태프, 촬영 기기를 공유하면서 제작비를 아꼈다. 이 영화의 강성욱 프로듀서는 “3D로 실사 촬영을 해본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으니 밤새 테스트를 하고 다음 날 촬영하는 식으로 제작을 했다. 3D가 하나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으니 아무리 힘들어도 굳이 안 할 이유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나탈리>의 뒤는 <7광구>가 잇는다. 지난 6월16일 촬영에 들어갔다. 100억원대의 대형 프로젝트로 내년 여름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석유시추선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해저 괴물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화려한 휴가>의 김지훈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안성기·하지원·오지호 등이 출연한다. 당초 모든 장면을 3D로 촬영할 방침이었으나 예산 문제에 부딪히면서 일부 장면은 2D로 찍고 있다. 2D로 찍은 장면은 3D 변화 작업(3D 컨버팅)을 거쳐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제3의 3D 영화 <현의 노래>는 김훈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밑그림 삼았다. 가야의 멸망을 다루며 당시 시대상을 폭넓게 조명했던 원작과 달리 가야 출신 신라 악성 우륵의 인생에 집중한다. 역시 100억원대 프로젝트로 지난 7월1일 크랭크인했으며, 내년 여름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나탈리>의 주경중 감독이 연출하고, 이성재가 또 주연을 맡아 눈길을 끈다.

■ 3D 영화의 토착화에 여전히 난관 존재

3D 영화는 아직도 충무로 제작 현장에서는 낯선 존재이다. 새로운 기술 습득과 막대한 제작비가 걸림돌로 남아 있다. 새로운 영역에 대한 도전 의식은 강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은 편이다.

<그랑프리>와 <라스트 갓 파더>는 예산이라는 장애물을 넘지 못하고 결국 당초 계획과 달리 2D 영화로 제작해 개봉한다. 곽경택 감독의 <아름다운 우리>는 촬영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첫 3D 영화가 되겠다던 야망을 품은 <7광구>도 예산 문제로 촬영이 늦추어졌다. <7광구>의 일부 장면 3D 컨버팅 계획은 경험해보지 못한 기술에 대한 불확실성도 작용했다.

투자배급사들도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추가 3D 영화 제작 발표를 미뤄두고 있다. 마땅한 성공작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3D가 황금알 낳는 거위가 될 수 있다는 막연한 환상만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지난해 개봉한 <해운대>의 쓰나미 장면을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 때에도 성공 여부를 두고 설왕설래 의견이 많았다. 3D 영화의 대세를 인정하지만 기술과 예산의 문제 때문에 선뜻 나설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모든 전설에는 시작이 존재하지만,

모든 전설에는 시작이 존재하지만, 어떤 전설의 시작은 의외로 초라하고 평범하다. 1969년 베트남 전쟁에 휘말린 미국의 세대 간 문화의 벽을 허물게 했던 우드스탁이 그랬다.

 

뉴욕 근방의 작은 마을 화이트레이크. 엘리엇은 다 쓰러져가는 부모님의 모텔에 청춘을 바치는 중이다. 파산 직전의 위기에서 겨우 모텔을 건져낸 그는 이웃 동네에서 열리기로 한 록 페스티벌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유치해 돈을 벌어보려 한다. 수천 평의 농장에서 축제가 준비되고, 낡아빠진 모텔은 페스티벌의 공식 숙소가 되어 북적인다. 마을에 히피가 몰려들면서 주민 여론은 나빠지지만, 마을은 히피의 성지가 되고 축제가 시작된다.

우드스탁을 통해 다른 인생을 살게 된 남자 엘리엇 타이버의 자전 소설을 각색한 <테이킹 우드스탁>은 ‘20세기 가장 큰 문화적 사건’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그리는 영화이다. 음악 페스티벌을 다루지만 영화는 음악 자체보다 그 주변의 사람들에 집중한다. 때로는 재기발랄한 화면 분할과 핸드헬드 촬영으로 다큐멘터리 같은 현장감을 전하면서도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축제를 만들고, 즐기고, 이를 통해 변화한 사람들이다.

<브로크백 마운틴> 등의 작품을 통해 섬세한 연출력을 선보인 바 있는 이안 감독은 자신의 장기를 십분 발휘해 몽롱하면서도 따뜻한 페스티벌 드라마를 완성했다. 이안은 짓눌린 청춘 엘리엇을 중심에 두고 다양한 인물과 풍경을 주변에 배치해 교직해냄으로써 이 장난기 가득하고 유쾌한, 그러나 한편으로 가슴 먹먹한 드라마를 꼼꼼하게 채워나간다. 초라한 시작은 전설을 낳았고, 마침내 역사가 되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 거대한 역사를 채우는 것은 작은 개인들이다. 그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할 때, 역사는 의미를 갖는다. 우드스탁이 아름다웠던 것은, 그래서가 아닐까?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