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인 중독’ , 그 위험한 유혹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10.07.26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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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카페인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으려면 각성 효과의 힘이 필요하므로 카페인에 의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카페인이 주변에 흔하다. 커피부터 스타킹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그만큼 카페인 섭취량도 만만치 않다. 어떻게 보면 과잉 섭취하는 셈이다. 게다가 카페인은 향정신성 약물임에도 불구하고 그 유해성은 잘 모르고 있다. <시사저널>은 카페인을 섭취하는 현실과 그 유해성을 조목조목 들여다보았다. 
 


평소에는 멀쩡하다가도 주말만 되면 늘어지는 직장인이 있다. 운동이나 외출도 하지 않고 소파에 누워 꼼짝하지 않는다. TV 채널을 돌리거나 잠에 취한 듯 주말을 몽롱한 상태로 지낸다. 대다수 사람은 주중에 쌓인 피로와 수면 부족 때문일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에 카페인의 영향 때문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주중에는 커피나 녹차 등을 마시지만 주말에는 마시지 않아 힘을 못 낸다는 결론이다. 모든 사람이 이 연구 결과에 속하지는 않겠지만, 커피 등에 있는 카페인의 각성 위력은 대단해 보인다. 

니코틴(담배)·알코올(술)처럼 카페인도 기호 식품이다. 카페인은 지구상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향정신성 물질로 알려져 있다. 담배와 술은 건강을 위해 줄이거나 끊으라고 한다.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학교에서는 담배와 술의 판매를 엄격히 제한한다. 그러나 카페인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큼 너그럽다. 담배와 술만큼 신체와 정신에 큰 해를 주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카페인에는 중독성이 있다. 카페인 중독(caffeinism)이라는 용어가 엄연히 존재한다. 이 때문에 카페인을 끊으면 금단 현상이 나타난다. 국내외 전문가들이 이 물질의 폐해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그동안 카페인의 유해성은 많이 밝혀졌다. 담배만큼 심신에 해를 주지는 않지만, 현대인의 생활에 적지 않은 악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대학생 두 명 가운데 한 명은 심각한 카페인 금단 현상을 경험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임신부와 어린이의 카페인 섭취량은 과하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현대인은 얼마나 많이 카페인에 노출되어 있을까. 또, 그 폐해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커피부터 스타킹까지…가히 ‘카페인 천국’이라 할 만

현대인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카페인을 찾는다.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카페인에 의존하려는 현대인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마디로 현대인은 ‘카페인 권하는 사회’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유준현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현대인은 항상 바쁘게 일을 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쉴 새 없이 움직이기 위해 합법적인 향정신성 물질인 카페인에 의존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카페인의 유해성이 미흡할지라도 중독성이 있고 섭취량이 늘어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라고 경고했다.

우리 주변에는 얼마나 많은 카페인이 어떤 형태로 존재할까? 커피는 카페인의 대명사이다. 하루 카페인 섭취량을 100이라고 하면 50~60을 커피로 섭취한다. 커피도 종류나 제품에 따라 카페인 함량이 천차만별이다. <시사저널>은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 소비자시민모임(이하 소시모), 한국소비자원 등의 자료를 종합해 종류별 카페인 함량을 분석했다. 커피믹스 한 잔에는 60~69㎎의 카페인이 녹아 있다. 캔커피에도 36~74㎎이나 들어 있다. 커피 전문점에서 파는 원두커피에는 더 많은 카페인이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카페인 성분을 뺀 ‘디카페인 커피’에도 2~5㎎의 카페인이 들어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커피에서 카페인을 97% 제거하면 디카페인 커피로 인정한다.

그 다음으로 많이 마시는 카페인 음료는 녹차이다. 녹차에 있는 카페인 함량은 15~25㎎으로 생각보다 적다. 차를 우려내는 과정에서 카페인이 사라지기도 하고, 차에는 카페인 흡수를 저해하는 탄닌 성분도 들어 있기 때문에 실제로 체내에 흡수되는 카페인량은 커피보다 적다. 반면 페퍼민트, 로즈메리, 케모마일, 자스민 등의 허브차에는 카페인이 없다. 연잎차, 둥글레차, 유자차, 오미자차 등 전통차에도 카페인이 없다.

섭취 빈도는 낮지만 카페인 함량이 가장 많은 제품은 녹차 아이스크림이다. 소시모가 지난해 시중에서 판매하는 카페인 제품 45종의 카페인 함량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특정 회사의 녹차 아이스크림에는 최고 100㎎까지 카페인이 포함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커피믹스의 1.5배, 캔커피보다는 약 세 배 많은 양이다. 아이들에게 일반 아이스크림 대신 녹차 아이스크림을 권하는 습관을 되돌아보게 하는 결과이다.

어린이도 카페인 섭취에서 자유롭지 않다. 학교 매점, 집 근처의 슈퍼마켓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콜라(13~25㎎), 코코아(6~7㎎), 커피맛 우유(45~47㎎), 커피맛 요구르트(36㎎), 초콜릿(16~34㎎), 커피맛 껌(32㎎), 케이크(36㎎) 등에 카페인이 숨어 있다. 스포츠 음료 등 기능성을 강조한 식품에도 카페인이 들어 있다. 아이들은 성인에 비해 카페인 해독 능력이 떨어진다. 체구도 작기 때문에 적은 양에도 카페인 중독에 빠질 수 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이들은 8세부터 카페인을 섭취하며 10대 청소년의 약 7%가 하루 섭취 기준보다 많은 카페인을 섭취한다. 몸무게 30kg인 한 여자아이가 하루 2백35㎎의 카페인을 섭취해 하루 섭취 기준 75㎎보다 1백60㎎을 더 섭취한 사례도 있다. 황선옥 소시모 이사는 “우리 주변에 생각보다 많은 카페인 함유 식품이 있으며, 아이들이 아무런 제재 없이 이런 식품을 섭취한다는 결과가 놀라웠다. 이 결과를 학교나 가정에 알리고 카페인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카페인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 변화를 위해 식품에 카페인 함량을 표시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시사저널 윤성호

유해성 경고는커녕 카페인 함량 표기된 제품 거의 없어

일부 제품에는 원재료명 표시란에 천연 카페인(향미증진제)만 표기하고 있다. 함량이 표기된 제품은 거의 없다. 이에 대해 주부 김혜령씨(34)는 “어떤 과자와 초콜릿에 얼마나 많은 카페인이 들어 있는지 소비자가 알기 어렵다. 카페인 함량과 그 유해성을 함께 표기할 필요가 있다. 외국에서는 업체들이 자율적으로 카페인량을 제품에 표기한다”라고 말했다.

카페인의 하루 섭취 기준은 법이나 규정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미국이 정한 기준을 들여와 사용하고 있다. 이영자 식약청 첨가물기준과 과장은 “성인은 4백㎎ 이하, 임신부는 3백㎎ 이하, 어린이는 몸무게 1kg에 2.5㎎ 이하를 섭취하도록 되어 있다”라고 설명했다. 성인의 하루 카페인 섭취 기준 4백㎎은 커피믹스 5~6잔, 원두커피 3~4잔 정도에 해당한다. 직장인이 끼니마다 커피를 마시고, 업무상 녹차나 콜라 등을 섭취하면 하루 섭취 기준을 넘기기 십상이다.

임신부는 감기에 걸려도 태아를 생각해서 약을 먹지 않는다. 그러나 커피, 콜라, 초콜릿, 껌 등은 거리낌 없이 즐긴다. 카페인은 임신부와 태아에게 우려할 만한 영향을 줄 수 있다. 해마다 몸무게가 변하는 어린이는 몸무게 kg당 2.5㎎ 이하로 카페인을 섭취해야 한다. 몸무게가 22kg인 7세 아이라면 55㎎이 하루 카페인 섭취 제한선이다. 이 아이가 하루에 콜라, 초콜릿, 커피맛 요구르트를 먹었을 경우 이미 하루 섭취량을 초과한다.

감기라도 걸려 약을 복용하면 카페인 섭취량은 더욱 늘어난다. 종합 감기약(1회 2알 섭취 기준)에는 10~15㎎의 카페인이 들어 있다. 두통약에도 50㎎이 있다. 운전기사, 직장인, 수험생 등이 피로 회복, 집중력 강화를 목적으로 마시는 자양강장제(박카스 등)에도 카페인이 30㎎ 함유되어 있다. 비타민C 드링크류에는 카페인이 없다. 조영연 삼성서울병원 영양파트장은 “감기약에는 항히스타민 제제와 함께 카페인이 들어 있다. 항히스타민제가 졸음을 유발하기 때문에 카페인을 넣어 각성 효과를 주려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카페인에는 각성 효과가 있다. 살 빼는 약 성분과 함께 사용하면 체중 감량 효과를 촉진한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아예 카페인이 함유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 상품까지 팔리고 있다. 카페인 성분이 들어 있다는 비누, 샴푸, 건강 기능 식품, 스타킹 등이 대표적이다. 대부분 외국 제품이다. 수입·판매업자들에 따르면 카페인 비누에는 카페인 2백㎎이 함유되어 있으며 피부 속으로 스며들어 각성 효과를 낼 뿐 아니라 피부암에 걸릴 위험까지 줄여준다고 한다. 지난 6월 월드컵 야간 경기 때에는 각성 효과로 잠을 자지 않고 경기를 볼 수 있다는 광고까지 했다. 카페인 샴푸는 모근에 영향을 주어 머리카락이 잘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카페인 스타킹은 하루 7시간씩 28일만 입으면 지방이 분해되어 허벅지 둘레가 2~3cm 줄어든다고 한다. 이에 대해 대다수 전문가는 피부로 흡수되는 카페인은 미량이므로 효과를 볼 수 없다고 단정한다.

커피나무, 카카오, 차, 콜라나무, 마테나무 등 60여 가지 식물에서 카페인을 추출한다. 카페인은 해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식물이 분비하는 물질이다. 일종의 천연 해충제인 셈이다. 사람은 이 물질을 연간 12만톤(1997년 기준) 소비하고 있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하루에 한 개씩 카페인 음료를 마시는 양이다.

ⓒ시사저널 임준선
책을 쓰는 작가 조영이씨(가명ㆍ22ㆍ여)는 밤에 일하는 이른바 ‘올빼미족’이다. 3년 동안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하면서 카페인 섭취량이 늘었다.

오전 9~10시 눈을 뜨자마자 커피를 끓이는 일로 아침을 맞는다. 인스턴트 커피를 블랙으로 진하게 마셔야 하루를 열 수 있다고 한다. 머그잔에 가득 채운 커피를 마시면서 이메일을 확인한다. 샤워를 한 후부터는 글 쓸 내용을 구상한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진한 커피를 마시느냐고 묻는다. 식사는 하루에 한 끼만 먹는다. 오후 3~4시 정도에 밥을 먹는다. 나머지 시간에는 계속 커피와 녹차를 마신다. 마테차를 마실 때도 있다. 하루에 커피를 머그잔으로 일곱 잔쯤 마시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조씨는 물은 밍밍해서 마시지 않고 대신 커피를 입에 달고 산다고 했다. 이따금 아이스크림도 먹는다. 한 번에 세 개 정도 먹는다. 초콜릿은 자주 즐기지 않지만 한 번 먹으면 바 형태의 초콜릿 두 개는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술과 담배는 하지 않는다. 본격적으로 글 쓰는 작업은 저녁 9시부터 시작된다. 저녁을 먹지 않는 조씨는 빵이나 스낵으로 허기를 달랜다. 옆에는 어김없이 머그잔에 진한 커피가 담겨 있다. 글을 쓰는 작업에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일을 마치고 새벽 4~5시에 잠자리에 든다.

그녀는 박카스를 먹어도 아무런 효과가 없을 정도로 카페인 중독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중독이 아니라고 말한다. 조씨는 ”카페인을 많이 먹는다. 그렇지만 중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물 대신 여러 가지 차를 마실 뿐이다. 경험상 어느 순간 카페인을 끊어도 별다른 증상이 없다. 하지만 다시 카페인을 섭취하면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각성하는 것이 느껴진다. 하루 이틀 지나면 다량의 카페인을 섭취해도 별 반응이 없다. 내성이 생기는 듯하다”라고 말했다. 이런 증상으로 그녀가 병원을 찾은 적은 없다. 조씨는 최근 간과 신장이 좋지 않은 것 같으며 카페인이 원인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전문의들에 따르면 조씨는 카페인 중독일 가능성이 크다. 잠을 자도 수면의 질이 떨어질 수 있으므로 병원을 찾아 전문의와 상담한 후 카페인 섭취량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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