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 단장’에 빠진 10대 학생들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0.08.03 18:2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장 즐기는 중·고교 남녀 학생들 점차 늘어…또래 연예인들에게서 받는 영향 커

 

▲ 7월28일 서울 명동에 위치한 홀리카홀리카 매장에서 10대 여학생들이 화장품을 고르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대개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면 화장을 시작한다. 중학생 정도 되면 아이라인은 자연스럽게 그릴 수 있다.”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강희영양(가명·15)은 항상 가방 안에 작은 파우치를 넣고 다닌다. 파우치에는 마스카라와 립글로스, 아이섀도와 컨실러 등 기본적인 색조 화장품이 들어 있다. 외출을 할 때에는 화장이 번졌을 때를 대비해 리무버도 잊지 않고 챙긴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화장을 시작한 희영양은 이제 눈매가 그윽하게 보이는 스모키 화장도 제법 능숙하게 한다.

이처럼 화장하는 10대들이 늘어나고 있다. 화장을 시작하는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스모키 메이크업 등 짙은 화장을 하는 청소년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런 추세에 맞물려 최근 화장품업계는 10대 중·고등학생을 주요 고객층으로 삼는 브랜드까지 출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학교에 가기는 너무 예쁜 그녀’라는 뜻의 ‘투쿨포스쿨(too cool for school)’이라는 브랜드를 들 수 있다. 이 밖에도 에뛰드 하우스, 홀리카홀리카 등 10대 이상 연령층을 타깃으로 삼는 브랜드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투쿨포스쿨의 홍보담당 최강문정 과장은 “투쿨포스쿨은 16~25세의 젊은 세대를 겨냥해 만든 브랜드이다. 아직 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 활동을 직접적으로 벌인 적은 없다. 하지만 화장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상당한 만큼 학생들의 졸업식 메이크업을 도와주는 이벤트 등을 구상하고 있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화장에 대한 관심은 여학생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요즘에는 10대 남학생들 역시 미용과 화장에 대해 예민한 편이다. 눈에 띄는 색조 화장을 즐기지는 않지만, 피부색을 보정하기 위해 ‘비비크림’을 바르는 등 기본적인 화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검정고시를 준비 중인 윤희준군(16)은 “미용 쪽으로 관심이 많아 지금은 헤어숍에서 스태프로 일하며 관련된 공부를 하고 있다. 주변 여자친구들이 대개 초등학생 때부터 화장을 해서 그런지 나 역시 화장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10대들이 주로 모이는 한 인터넷 카페에는 화장법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가는 게시판이 있다.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 중에는 여학생뿐 아니라 남학생들이 올리는 질문도 상당히 많다.

인터넷 등 통해 화장법 배울 수 있는 기회도 많아

초·중등 시절부터 화장을 시작하는 것은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캐나다 캘거리에 유학 중인 김민지양(14)은 방학을 맞아 잠시 한국에 체류하고 있다. 김양은 “캐나다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 정도의 나이가 되면 피부 베이스를 바르거나 아이라인을 그리는 것과 같은 화장을 시작한다. 화장을 하는 것은 학생들의 자유이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전혀 제재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자기 개성에 맞게 화장을 하고 다닌다”라고 말했다. 김양은 모임에 갈 때와 같은 특별한 경우에는 꼭 화장을 하는 편이다. 김양은 “부모님께서도 이제는 ‘화장을 깨끗하게 지워라’라고 당부할 뿐 화장하는 것에 대해 크게 나무라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10대들의 화장이 확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또래의 연예인으로부터 받는 영향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한국미용학회 이귀영 부회장(안산공과대학 뷰티디자인과 학과장)은 “10대 아이돌 그룹이 대세를 이루면서 이들을 추종하는 10대들의 수도 많이 늘어났다. 10대들은 좋아하는 연예인의 모든 패션을 따라하면서 만족을 찾는다. 10대 아이돌 남녀 그룹 대개가 짙은 화장을 통해 시선을 끌고 있는데, 이를 흉내 내는 아이들이 상당히 많다”라고 말했다.

화장품을 ‘싸게’ 사고 ‘쉽게’ 쓸 수 있다는 점 역시 또 다른 이유로 볼 수 있다. 즉, 화장에 대한 접근이 쉬워졌다는 말이다. 저가 로드 브랜드의 수가 늘어나면서 10대들이 화장품을 사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 실제로 저가 브랜드의 로드숍에서는 몇천 원대의 가격으로도 화장품을 구매할 수 있다. 강희영양은 “너무 비싼 화장품은 잘 사지 않는다. 싸고 질 좋은 제품들이 많기 때문이다. 종류도 다양해서 화장품을 구매할 때에는 꼭 인터넷에서 제품 후기를 꼼꼼하게 비교한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요즘에는 화장법을 알 수 있는 통로도 다양해졌다. 10대들을 위한 패션 잡지 이외에도 케이블TV를 통해 화장품을 소개하거나 화장법 등을 알려주는 스타일링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다. 또한, 인터넷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인터넷 블로그에 게시된 글을 보고 화장을 접하게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화장품과 관련된 ‘파워 블로거’들 중 대다수는 제품 사진과 함께 그 제품으로 화장하는 방법을 사진이나 동영상 등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굳이 주변 사람들에게 묻지 않아도 10대들이 화장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은 셈이다.

사실 ‘화장하는 10대들’을 특이한 현상으로 볼 이유는 없다. 이미 쌍꺼풀 수술과 같은 성형 수술도 청소년층으로까지 보편화되었다. 성형외과들은 중·고교 학생들의 졸업 시즌에 이른바 ‘성형 특수’를 누리고 있다. 청소년들이 주로 듣는 오후 8시~밤 11시 시간대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는 성형외과와 관련된 광고가 대부분일 정도이다. 이러한 현상에 견주어 보면, 10대들의 화장이 대수롭지 않아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자녀들의 화장에 대해 관대해진 부모들도 많아졌다. 서울 명동거리에 즐비한 화장품가게를 둘러보면 어머니와 함께 화장품을 고르고 있는 여학생들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중학생 자녀와 쇼핑을 하고 있던 김 아무개 주부(여·38·경기 일산)는 “딸의 화장품을 직접 골라주는 편이다. 아무래도 화장을 하면 피부가 나빠질 수 있어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꼼꼼하게 지울 수 있는 클렌징 제품을 꼭 사준다”라고 말했다. 

일찍부터 피부 노화 진행될 수 있어…깨끗하게 지우는 습관 들여야

▲ 중학생 희영양이 들고 다니는 파우치와 화장품들. ⓒ시사저널 임준선

10대들이 화장을 하는 이유를 하나로 꼽기는 어렵다. 화장을 즐기는 10대 청소년들에게 ‘화장을 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을 때, 대개는 또래 친구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답변을 했다. 특히 화장을 한 모습을 개인 미니홈피에 올리는 친구들을 보고 나서, 혹은 또래 친구들로부터 화장품을 소개받아 화장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래 집단끼리 유대가 강한 시기이기에 친구들로부터 받은 영향은 상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학교 3학년인 강효주양(14)은 “화장을 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덩달아 화장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물론 화장을 통해 자신의 개성과 취향을 표현하고자 하는 10대들도 있다. 이귀영 부회장은 “요즈음의 10대들은 자기 표현에 적극적인 세대이다. 개인 홈피를 통해서 화장과 헤어스타일 등이 담긴 사진도 별 거리낌 없이 공유한다. 화장을 자기를 표현하는 하나의 ‘언어’로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다”라고 설명했다.

10대들의 화장이 일반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른 시기부터 화장을 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전문가들은 10대 후반이면 피부 노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화장은 최대한 늦게 시작하는 것이 피부 건강에 좋다고 충고한다. 또한 중·고교 남녀 학생들이 일반적으로 바르는 ‘비비 크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비비 크림’은 원래 피부 보호를 위한 제품으로 알려졌지만 미용학계에서는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비비 크림은 커버력이 상당한 만큼 화학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자외선 차단제와 같은 일반 피부 보호 제품보다 오히려 더 피부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비비 크림을 사용할 경우에는 무엇보다 깨끗하게 화장을 지우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 일본 10대 소녀들이 ‘인디언 화장’을 한 채 가부키쵸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랏샤이마세(어서오세요).” 서울 명동의 상점가를 걷다 보면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명동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이 워낙 많다 보니, ‘서울 명동거리에는 일본인 반, 한국인 반’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이다. 상점이 즐비한 도로를 걷다 보면 유창한 일본어로 호객 행위를 하는 점원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신기하게도 상점 점원들은 일본인만을 ‘콕’ 집어 제품 홍보에 나선다. “일본 사람임을 한눈에 알아보는 비결이라도 있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명동 중심의 한 화장품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여직원 김 아무개씨(27)는 “염색머리에 짙은 스모키 메이크업을 한 여자들은 대부분 일본인이다”라고 답했다.

노란 염색머리와 아이라인을 강조한 짙은 눈 화장. 일본 여성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일 것이다. 사실 이런 이미지는 일본의 ‘고갸루족’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고갸루’는 고등학생을 의미하는 한자 ‘고(高)’와 ‘갸루(girl의 일본식 발음)’가 합쳐진 말이다. 1993년 6월 주간지 <SAP>에서 기사 타이틀을 통해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8월 아사히의 ‘M(매그니튜드) 10’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고갸루’ 특집 방송을 내보냈고, 이후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고갸루족은 흔히 짙은 화장에 태닝을 한 까만 피부 그리고 염색머리를 한 여고생을 뜻하며, ‘갸루’라고 줄여 부르기도 한다. 2000년 무렵부터 그 수가 크게 늘어난 ‘갸루족’들은 일본의 패션 산업을 이끄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갸루족’에 대한 분류도 다양해져 ‘오갸루(안 씻는 갸루족)’ ‘히메갸루(공주풍 갸루)’ ‘오네갸루(성숙한 갸루스타일)’ 등으로 세분화되기에 이르렀다. 또 갸루족의 화장을 즐기는 남성도 늘어나 ‘갸루오(갸루패션을 즐기는 남성)’라는 말도 생겼다. 현재는 갸루족들이 줄고 있는 추세이며, 그 분류도 ‘시로갸루(피부가 흰 갸루)’와 ‘쿠로갸루(피부가 검은 갸루)’ 정도로 나뉘어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