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이룬 기적적인 변화 그 시작과 과정의 서사시
  • 이지선 | 영화평론가 ()
  • 승인 2010.08.10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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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리뷰

석유와 미인의 나라로 유명한 베네수엘라에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자랑거리가 하나 더 있다. ‘엘 시스테마(El Sistema)’. 스페인어로 시스템을 뜻하는 이 말은 베네수엘라의 청소년 대상 음악 교육 프로그램을 일컫는 단어이기도 하다. 1975년에 시작된 이후 많은 음악인을 배출해 온 엘 시스테마는 음악이 어떻게 개인과 가족, 사회를 변화시키는가를 보여주는 놀라운 사례로 꼽힌다. 영화 <기적의 오케스트라-엘 시스테마>(이하 <엘 시스테마>)는 이 기적적인 변화가 어떻게 시작되고 유지되어오고 있는지에 대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아이들의 얼굴을 비추며 시작된 영화는 인터뷰와 연주 장면을 오가며 엘 시스테마의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한다. 창립자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를 비롯해, 창립 당시 구입한 차를 여전히 몰고 있는 공동 운영자 프랑크 디 폴로, 28세의 나이로 LA필하모닉 음악감독 자리에 오른 엘 시스테마 출신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 등 관련 인사와 현재 엘 시스테마를 통해 미래를 키워나가는 수많은 아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극적 효과를 철저히 배제한 구성이 상당히 건조하다는 것과 좀 더 체계적인 정보의 제시가 아쉽지만, 음악을 징검다리 삼아 각각의 이야기를 연결해나가는 감독 파울 슈마츠니와 마리아 슈토트마이어의 솜씨는 탁월하다. 아이들에게 다가간 카메라는 엘 시스테마 자체가 지닌 사실적 드라마를 극대화하고, 연출의 한계를 넘어 감동을 전한다.

총소리가 넘치던, 아니 여전히 총격과 범죄, 마약과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베네수엘라의 빈민가는 엘 시스테마를 통해 희망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지 않았으나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길이 생겨났다’던 중국의 문호 루쉰의 말처럼, 베네수엘라의 희망은 아무것도 없던 거리에서 그렇게 태어났다. 그리고 이제 모두의 것이 되었다. <엘 시스테마>의 마지막, 희망으로 빛나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는 것은 얼마나 따뜻한 경험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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