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에서 빛난 ‘스크롤 만화’의 힘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0.08.10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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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의 흥행으로 ‘웹툰의 저력’ 주목…전개 방식 비슷하고, 즉각적으로 시장 반응도 알 수 있어

강우석 감독의 영화 <이끼>가 개봉 3주 만에 관객 3백만명을 돌파했다. 올해 개봉한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 중 최고의 흥행 기록이다. <이끼>는 개봉 이후 영화의 원작인 윤태호 작가의 웹툰 원작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한동안 지지부진했던 웹툰 영화화 작업의 불도 다시 지피고 있다. 

강풀이나 윤태호, 양영순 등 웹툰 작가 16명이 소속된 누룩미디어의 홍종민 대표는 “영화 기획자들이 검증된 작품을 선호하면서 시장에서 반응이 확인된 웹툰을 선호하는 것 같다”라고 밝혔다. 누룩 소속 작가 중 5명의 작품 10여 편이 동시다발적으로 영화로 기획되고 있기도 하다.

▲ 영화 (큰 사진)는 원작인 윤태호 작가의 웹툰(작은 사진)을 소재로 영화화해 흥행에 성공했다.

웹툰이 영화화되기 쉬운 이유로 “스크롤로 전개되는 방식이 공간적인 확장이 아니라 시간 병행 순으로 기능하는 영화 리듬과 비슷하다”(황진미 영화평론가)라는 것이 있다. 동영상 화면을 캡처해서 시간 순으로 늘어놓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게다가 원작이 만화이기에 영화화를 위한 그림 콘티를 따로 작업하는 수고도 크게 줄여준다. 웹툰이 영화 소재로 인기를 끌 만한 이유가 충분한 것이다. 

하지만 웹툰 최고의 인기 작품이었던 강풀의 <아파트>나 <바보> <순정만화> 등은 영화로 이식되면서 ‘원작만 못하다’는 평과 함께 흥행에 실패했다. 하지만 <이끼>는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 <이끼>도 개봉을 전후해 원작 팬들이 ‘원작의 완성도에 미치지 못한다’라고 각종 게시판과 블로그에 ‘까댔음’에도 흥행에 성공했다.

흥미로운 대목이다. 영화평론가 중에는 영화 <이끼>가 웹툰 <이끼>의 완성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도 상당수이다. 이지선 영화평론가는 “원작의 주인공들이 품고 있는 사회적 맥락이 영화에서는 완전히 거세되었다”라고 평했다. 원작이 갖고 있는 등장인물과 사건의 깊이를 영화가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공권력(검사)의 사회 정의 실현’이라는 강우석표 버디 무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중박 이상의 흥행세를 보이고 있다. <이끼>의 홍보대행사는 “이미 제작비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라고 밝히고 있다.

원작보다 못하다는 비판에 “별개의 창작” 옹호론 맞서

영화 <이끼>의 옹호자들은 ‘영화와 만화는 같은 원작을 가지고 만들어졌다 해도 완전히 별개의 창작품’이라는 논리로 영화 <이끼>를 옹호하고 있다. 한 네티즌은 “2시간 정도의 한정된 시간에서 이야기를 풀어놓는 영화와 나오는 인물의 구석구석을 살피면서 상상의 여백을 무한대로 풀어놓는 만화는 완전히 별개의 장르이다”라면서 영화판 <이끼>를 옹호했다.

만화잡지 <윙크>의 오경은 편집장은 “만화를 영화로 옮기는 것은 감독의 창작 영역이다. 관람자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고 개인 입장에서 원작보다 ‘좋다’ ‘싫다’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옳다’ ‘그르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라고 평했다.

이런 논란에 대해 원작자 윤태호 작가는 “만화는 사적 행위라 혼자도 할 수 있는 장르이지만 영화는 상업적 책임감이 따르는 장르이다. 강우석 감독의 영화적 해석에 동의한다”라고 밝혔다. 영화와 만화는 산업적 속성이나 장르적 속성이 완전히 다르기에 동일 선상에 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영화 <이끼>의 흥행과 논란은 원작에 대한 관심을 되살리고 있고, 웹툰의 영화화 작업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내년까지 적어도 3~4편 이상의 웹툰 원작의 영화가 등장할 전망이다. 그 가운데 고영훈 원작의
<트레이스>는 원작 자체가 할리우드풍의 히어로물이라 국산 SF에 대한 기대치까지 더해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아이들의 얼굴을 비추며 시작된 영화는 인터뷰와 연주 장면을 오가며 엘 시스테마의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한다. 창립자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를 비롯해, 창립 당시 구입한 차를 여전히 몰고 있는 공동 운영자 프랑크 디 폴로, 28세의 나이로 LA필하모닉 음악감독 자리에 오른 엘 시스테마 출신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 등 관련 인사와 현재 엘 시스테마를 통해 미래를 키워나가는 수많은 아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극적 효과를 철저히 배제한 구성이 상당히 건조하다는 것과 좀 더 체계적인 정보의 제시가 아쉽지만, 음악을 징검다리 삼아 각각의 이야기를 연결해나가는 감독 파울 슈마츠니와 마리아 슈토트마이어의 솜씨는 탁월하다. 아이들에게 다가간 카메라는 엘 시스테마 자체가 지닌 사실적 드라마를 극대화하고, 연출의 한계를 넘어 감동을 전한다.

총소리가 넘치던, 아니 여전히 총격과 범죄, 마약과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베네수엘라의 빈민가는 엘 시스테마를 통해 희망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지 않았으나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길이 생겨났다’던 중국의 문호 루쉰의 말처럼, 베네수엘라의 희망은 아무것도 없던 거리에서 그렇게 태어났다. 그리고 이제 모두의 것이 되었다. <엘 시스테마>의 마지막, 희망으로 빛나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는 것은 얼마나 따뜻한 경험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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