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0.08.17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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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각계 인물 1백5명이 가려졌다. 역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은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재계 인물’ 1위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전체 영향력’ 2위에 올랐다. ‘차기 대권 주자’ 1위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3위로 그 뒤를 이었다. <시사저널>이 한국 언론 가운데 유일하게 1989년 창간 이후 해마다 실시하고 있는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의 2010년 조사 결과이다. 내용을 톺아보면 정치·경제·사회·문화·언론 등 전체 17개 분야에서 현재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 또는 집단들의 면면과 변화의 흐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지도자의 진정한 역할은 모든 것을 행하고, 혼자 생각하고, 통제하는 것이 아니다. 지도자는 모든 구성원에게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일깨우고, 그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를 관리하는 목표의 수호자이다.”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사회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프란체스코 알베로니는 저서 <지도자의 조건>에서 지도자의 진정한 역할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그는 “지도자는 명령의 특권만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창조적인 전략가이자, 변혁의 예술가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반면 가짜 지도자는 아무런 비전도 없이 조직의 장(長)이 되려고만 한다. 그런 이들은 특권과 지위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라고 밝혔다. 

<시사저널>이 1989년 10월 창간호부터 21년째 해마다 조사하고 있는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전문가 여론조사는, 지금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을 갖는 지도자는 누구인지, 한국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냉철하게 보여준다. 이 조사는 일반인이 아닌, 관료·교수·기업인·언론인·사회단체인 등 10개 분야의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다. 따라서 단순한 인물 선호도나 인기주의에 영합하는 여론조사와는 분명한 차별성을 띤다. 사회 현상과 흐름을 좀 더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분석하고 제시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해마다 <시사저널>의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조사 결과가 공개되면 정·관·재계 및 사회·문화·언론 각계에서 큰 관심을 나타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매년 <시사저널>의 의뢰를 받아 이 조사를 진행하는 미디어리서치의 이재욱 사회여론조사본부 수석부장은 “본사가 구축하고 있는 인물 정보 DB 자료를 바탕으로 해마다 기타 자료들을 더 추가해서 10개 분야에 속하는 전문가들 중 각 분야별로 100명씩 전체 1천명을 무작위로 추출하는 작업에만 1주일 이상이 걸린다. 국내 언론에서 이처럼 장기간에 걸쳐 기획 보도를 하는 것은 <시사저널>의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가 독보적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조사 대상에 따라 국민 여론조사를 해야 할 경우가 있고, 전문가 조사를 해야 할 경우가 있다. 국정 지지율 같은 경우에는 국민 여론조사가 대표성을 갖게 된다. 반면에 한국의 영향력 있는 인물을 평가하는 조사에서는 개인의 지지도 및 호불호를 따지는 것이 아닌 만큼, 여론 선도층인 오피니언 리더들의 인물 평가가 좀 더 객관적이고 적절한 지침서가 된다고 본다”라고 덧붙였다.  

▲ 이명박 대통령이 7월22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 까치산시장을 방문해 과일 가게에서 수박을 맛보고 있다. ⓒ연합뉴스

여론조사에 나타난 다섯 가지 특징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일반 국민 여론조사는 그 성격상 다분히 표면적이고 표피적인 결과 위주로 나온다. 반면 전문가 여론조사는 우리 사회의 영향력을 해석하는 가치가 좀 더 폭넓고, 또 근원적인 부분의 사회 현상까지 고려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라고 평가했다.

‘2010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전문가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특징은 크게 다섯 가지이다. 첫째,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의 정치 체제에서 갖는 막강한 현직 대통령의 영향력이 다시 한 번 입증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조사에서도 역시 ‘영향력 1위’는 이명박 대통령이다. 67.5%의 압도적 지목률을 보였다. <시사저널>이 1989년 처음 이 조사를 실시한 이후 현직 대통령이 1위에 오르지 못한 적은 딱 한 번밖에 없다. 1992년 당시 조사에서 퇴임을 불과 몇 개월 앞둔 노태우 전 대통령이 극심한 레임덕에 시달리며 여야의 대선 후보였던 김영삼(YS) 민자당 대표와 김대중(DJ) 민주당 총재에 밀려 3위를 한 것이 유일했다. 이를 제외하고는 항상 맨 높은 자리는 현직 대통령의 차지였다.

다만 지목률에서는 뚜렷한 변화 추세가 드러난다. 이대통령은 집권 첫해인 2008년 72.7%였다. 지난해에는 71.6%였다. 올해는 67.5%이다. 완만한 하향 곡선이 그려진다. 이 역시 5년 단임제가 갖는 특성이다.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힘이 떨어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역대 대통령들도 같은 길을 걸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집권 1, 2년차에는 70%대를 넘겼으나, 3년차인 2005년에는 67.4%로 떨어졌다. 이후 63.2%(2006년), 57.3%(2007년)로 뚜렷한 하향세를 나타냈다. 이처럼 전문가들은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힘이 떨어지는 ‘5년 단임제 대통령’이 갖는 영향력의 한계를 놓치지 않고 정확히 짚어낸다.

이에 비하면, 올해 다시 2위(21.1%)를 되찾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경우는 또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임기 없는 ‘재벌 권력’이 갖는 위상이다. 이건희 회장이 본지 조사에서 처음 10위권 내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1992년(7위)이었다. 이후 그는 꾸준히 4~6위권을 유지하며 ‘재계’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정계 인사들의 뒤를 이었다. 그러다가 2004년부터 2위로 올라서면서 본격적으로 현직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이후 7년간 이회장은 회장직을 물러난 지난해에 3위로 한 계단 밀린 것을 제외하면, 해마다 2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선출직’인 대통령의 영향력이 5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회장의 영향력은 임기도 없는 셈이다. 가히 ‘재계의 황제’라고 할 만하다. 이회장의 이런 영향력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또 그를 대신해서 누가 ‘재계의 황제’ 자리를 이어갈지도 향후 주목되는 부분이다.

세 번째는 ‘미래 권력’에 대한 예측이 제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차기 대권과 관련해 가장 잠재력 있는 정치인’ 1위에 오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전체 ‘영향력’ 조사에서도 3위(19.9%)에 올랐다. 이는 역대 조사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대통령의 ‘정적’들이 항상 대통령에 바로 이어 후순위를 점하고 있는 것이다. 노태우 정부에서의 YS와 DJ가 그랬고, YS 정부에서의 2위 역시 항상 DJ 몫이었다. DJ 정부에서는 이회창 한나라당 대표가 2위를 고수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이 3~4위권에서 엎치락뒤치락했다.

현 정부에서 ‘정적’의 역할은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여당의 박 전 대표가 담당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제1 야당인 민주당이 그만큼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그나마 올해는 정세균 전 민주당 대표가 4위(6.5%)로 올라섰다. 역대 최고 순위이다. 하지만 지목률 5~6%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야당 대표로서의 ‘자리 값’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최소한 전문가들은 정 전 대표를 아직까지는 ‘미래 권력’으로서 염두에 두고 있지 않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전인 지난해 5월28일 서울역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를 조문한 뒤 발길을 돌리고 있다. ⓒ연합뉴스

김대중·노무현·박정희 등 작고한 전직 대통령들 10위권 진입 ‘주목’

네 번째로는 고인(故人)이 유난히 많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올해 조사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5위가 고 김대중 전 대통령(4.6%)이다. 6위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4.4%)이 잇고 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3.6%)도 9위에 올라 있다. 10위권 밖에도 김구 선생(공동16위), 김수환 전 추기경(공동21위), 법정 스님(공동30위) 등이 올라 있다. 이에 대해 이현우 교수는 “이런 현상이야말로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특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망자라 해도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갖고 있는 위상과 영향력은 엄연한 현실임을 잘 보여준다. 호남에서 여전한 민주당의 힘, 지방선거에서 분 ‘노풍(盧風)’, 박근혜 전 대표를 향한 향수 등이 바로 고인들의 힘이다. ‘영향력 있는 인물’에서 이광재·안희정 지사 등이 언급되는 것보다는 노 전 대통령이 언급되는 것이 우리의 사회 현상을 좀 더 정확히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때, 이번 조사 결과의 정확성과 함께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다섯 번째로 김연아(7위·3.9%)와 박지성(8위·3.7%)으로 대표되는 젊은 스포츠 스타들의 약진이다. 올해 2010년이 동계올림픽과 월드컵이 열린 해였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20대의 두 젊은이가 한국을 움직이는 영향력 있는 인물 7, 8위에 나란히 선정되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이에 대해 이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가치의 다양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것이 단순히 정치·경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어느 분야에서든지 성공한다면, 그래서 그들이 우리에게 행복과 즐거움을 안겨준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영향력이 된다는 것을 증명해준다”라고 분석했다.

한편 지난해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렸던 박희태 국회의장은 공동 18위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공동 22위로 밀려났다. 두 사람은 각각 한나라당 대표와 국회의장직에서 물러나면서 후퇴했다. 지난해 공동 15위였던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 역시 올해는 공동 26위에 그쳤다. 앞에서 소개한 사회학자 알베로니가 언급한 “비전 없는 조직의 장은 지위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라는 지적처럼 특정 자리와 함께 영향력의 명멸이 심하게 요동치는 인사들이 아직은 우리 사회에 대다수이다. 이제 우리에게도 특정 자리와 상관없는 진정한 ‘지도자’가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삼성그룹의 2위 도약이다. 지난해 8.9%로 5위였던 삼성그룹은 올해 조사에서 14.4%를 차지하며 단숨에 2위로 뛰어올랐다. 이건희 회장이 있는 삼성과 없는 삼성의 차이는 이처럼 확연했다. 삼성의 기세에 밀려 지난해 2~4위였던 민주당과 언론계, 국회는 모두 한 계단씩 주저앉았다.

6~10위권에서도 지난해에 비해 큰 변화는 없었지만, 경제계가 10위에서 7위로 상승한 것이 눈에 띈다. 지난해 7위에 깜짝 등장했던 민주노총은 올해 조사에서는 20위권 밖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검찰은 정부 기구 가운데서는 여전히 가장 높은 위치를 점하며, 그 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11~20위권에서는 종교단체(11위·4.2%), 기업(12위·3.7%), 정당(13위·3.3%), 참여연대(17위·2.5%) 등의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삼성전자(2.0%)도 20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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